조금은 한가한 시간 강남의 한 복판 선릉을 찾아본다.
긴 겨울 동안 겨울 잠에서 깨어 나기위한 몸부림을 치면서
선릉의 공원은 봄 바람 타고 수림들이 파랗게 물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뭇가지가 제법 파랗게 동한기의 겨울옷에서 벗어나려 하는 모습이 였보인다.
간간히 아이들 데리고 산책 나온듯 아직도 차가운 공원바닥에 자리깔고
데리고 나온 아이와 도란도란 소근 그리는 모습도 눈에 잡힌다.
봄이 머지않은 모양이다. 나그네의 마음 속에서 핀 꽃 향기가...
선릉 들어서며 정릉을 먼저 들려, 공원을 휘 감아 돌아 외편으로 선릉을 향한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수가 없으나 공원 해설사는 어린 아이들 데리고
열심히 우리의역사를 아이들에게 일러 준다.
여기는 조선 제9대 성종대왕 선릉이고, 저 건너편으로 가면
조선 제 11대 중종대왕 의 능침인 정릉
이라고 열심히 일러준다.
그 설명을 들어며 나는 선릉으로
발길을 옮긴다.
선릉의 표지 안내판
선릉의 표지를 보면서 왼편으로 감돌아 오르려니
수 백년 됨직한 소나무가
능침 입구에 웃둑서서 나그네의 길을 반긴다.
조선 제 9대 성종 선릉(成宗 宣陵)
◈ 선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으로 서쪽 언덕에
조선 9대 왕인 성종대왕이, 동쪽 언덕에는 계비(繼妃) 정현왕후가
모셔져 있고 홍살문과 정자각이 두 릉의 가운데 위치한다.
◈ 성종은 1457년 7월 30일 경복궁에서 세조의 맏 아들인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조의 뒤를이은
예종이 1469년 11월 28일 재위 14개월 만에 승하하자
정희대비(세조의 비) 의 명에 따라13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 체제를 완성하고
조세제도로는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유고예법을 확립하고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밖으로 윤필상 등을 보내
압록강, 두만강 건너의 야인을 물리쳐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왕비로는, 원비인 공혜왕후(1456~74)는
후사 없이 승하하여 파주 순릉(順陵)에 모셔졌고,
연산군의 모후인 윤씨(1455~1482)는
폐비가 되어 서삼릉의 회묘(懷墓)에,
계비 정현왕후(1462~1530)는
선릉의 동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 성종은 3비 9후궁에게서
16남 12녀를 두고 1494년 12월 24일
창덕궁에서 보령 38세에 승하하니
재위기간 25년 1개월이 었다.
◈ 졍현왕후는 윤호의 딸로
1462년 6월 25일 태어나 태어났다.
1473년 6월 숙의(淑儀)가 되었고, 1480년 11월 8일
왕비가 되어 중종과 신숙공주를 낳았다.
1530년 8월 22일 경볻궁에서 보령
69세로 승하하여 10월 29일
선릉에 장사 하였다.
◈ 성종대왕은 병풍석의 면석(面石)에는
구름문양 속에 십이지신(十二支神)이, 지대석(地臺石)과
만석(滿石)에는 연꽃문양, 인석(引石)에는 해바리기와
모란 문양이 조각 되어 있고 상석(裳石) 및 난간석이 있다.
정현왕후 릉은 병풍석과 상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으며 이곳 석물들은 국조오례의에
의하여 장대하면서도 조화가 잘
이루어 져 균형미가 있다,
_ 참고자료 ; 문화제청 안내 자료_
정현왕후릉 ↕
멀리서 본 성종대왕릉침
- 홍살문 -
선릉의 홍살문과 정자각은 성종대왕릉과 정현왕후릉 사이에있다.
선릉의 개나리꽃은 이제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3월 17일)
동행한 동반자가 나를 기다리도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촬 영 ; 2013. 3. 17.
글 /편집 ;푸른솔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