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羅 王 陵 現 況
경주지역에는 992년 동안 신라를 경영한 56대 왕 가운데 제51대 진성여왕과 제56대 경순왕을 제외한 나머지 54왕의 왕릉이 상정되나 현재 36기의 왕릉(王陵)만이 전해진다.
경주지역에 있는 왕릉들은 6개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다. (일부 예외)
① 오릉을 중심으로 한 西남산지구 : 혁거세왕과 알영왕비,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 등의 무덤으로 전하는 오릉과 지마왕, 일성왕, 아달라왕, 경명왕, 신덕왕, 경애왕의 왕릉.
② 보리사 東남산지구 : 헌강왕, 정강왕의 왕릉.
③ 선도사(서악)지구 : 무열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 진흥왕, 법흥왕의 왕릉.
④ (소)금강산지구 : 헌덕왕, 탈해왕의 왕릉.
⑤ 낭산과 토함산지구 : 보문동, 구황동, 배반동, 구정동, 괘릉리로 이어지는 왕릉들이 서에서 동으로 일직선에 전개되어 있다. 선덕여왕, 진평왕, 신문왕, 효공왕, 신무왕, 효소왕, 성덕왕, 방형분, 괘릉(원성왕릉).
⑥ 현곡면 오류리의 진덕여왕릉, 안강읍 육통리의 흥덕왕릉.
신라왕릉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우선 신라가 불교를 수용하면서부터 왕릉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왕릉의 외형(크기)과 내부구조에 있어서 초기에는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에 중기 법흥왕을 전후해서 구릉지 야산 속으로 왕릉이 옮겨 가면서 횡혈식 석실분으로 변화하고 그 규모면에서도 거대한 외형에서 현저히 축소되었다.
아울러 왕긍 근처의 평지에서 평야 주변의 구릉진 야산으로 장소가 옮겨진다.
순장(딸려묻기)풍습이 없어지고, 불교의 영향으로 십이지신상과 왕릉 사방에 돌사자 , 석인 석상을 배치해 놓았다.
○ 역대 신라왕과 왕릉의 위치 및 문화재지정 현황
연대 |
왕명 |
성씨 |
왕릉의 위치 |
문화재지정 |
비고 |
1 | 혁거세(BC57~AD4) | 박(朴) | 경주 탑동 67외 오릉 | 사적 172 | - |
2 | 남해(4~24) | 박 | 경주 탑동 67외 오릉 | 사적 172 | - |
3 | 유리(24~57) | 박 | 경주 탑동 67외 오릉 | 사적 172 | - |
4 | 탈해(57~80) | 석(昔) | 경주 동천동 산17 | 사적 174 | - |
5 | 파사(80~112) | 박 | 경주 탑동 67외 오릉 | 사적 172 | - |
6 | 지마(112~134) | 박 | 경주 배동 30 | 사적 221 | - |
7 | 일성(134~154) | 박 | 경주 탑동 산23외 | 사적 173 | - |
8 | 아달라(154~184) | 박 | 경주 배동 73-1 삼릉 | - | - |
9 | 벌휴(184~196) | 석 | - | - | - |
10 | 내해(196~230) | 석 | - | - | - |
11 | 조분(230~247) | 석 | - | - | - |
12 | 첨해(247~261) | 석 | - | - | - |
13 | 미추(262~284) | (金) | 경주 황남동 89-2 대릉원 | 사적 175 | - |
14 | 유례(284~298) | 석 | - | - | - |
15 | 기림(298~310) | 석 | - | - | - |
16 | 흘해(310~356) | 석 | - | - | - |
17 | 내물(356~402) | 김 | 경주 교동 14 | 사적 188 | - |
18 | 실성(402~417) | 김 | - | - | - |
19 | 눌지(417~458) | 김 | - | - | - |
20 | 자비(458~479) | 김 | - | - | - |
21 | 소지(479~500) | 김 | - | - | - |
22 | 지증(500~514) | 김 | - | - | - |
23 | 법흥(514~540) | 김 | 경주 효현동 산63외 | 사적 176 | - |
24 | 진흥(540~576) | 김 | 경주 서악동 산92-2 | 사적 177 | - |
25 | 진지(576~579) | 김 | 경주 서악동 산92-2 | 사적 178 | - |
26 | 진평(579~632) | 김 | 경주 보문동 608 | 사적 180 | - |
27 | 선덕(632~647)* | 김 | 경주 보문동 79-2 | 사적 182 | - |
28 | 진덕(647~654)* | 김 | 경주 오류리 산48 | 사적 24 |
십이지신상有 |
29 | 무열(654~661) | 김 | 경주 서악동 842 | 사적 20 | - |
30 | 문무(661~681) | 김 | 경주 양북면 봉길리 26 | 사적 158 | - |
31 | 신문(681~691) | 김 | 경주 배반동 453-1 | 사적 181 | - |
32 | 효소(692~702) | 김 | 경주 조양동 산8 | 사적 184 | - |
33 | 성덕(702~737) | 김 | 경주 조양동 산48-6 | 사적 28 |
십이지신상有 |
34 | 효성(737~742) | 김 | - | - | |
35 | 경덕(742~765) | 김 | 경주 내남면 부지리 산8 | 사적 23 |
십이지신상有 |
36 | 혜공(765~780) | 김 | - | - | - |
37 | 선덕(780~785) | 김 | - | - | - |
38 | 원성(785~798) | 김 | 경주 외동읍 괘릉리 산17 | 사적 26 |
십이지신상有 |
39 | 소성(798~800) | 김 | - | - | - |
40 | 애장(800~809) | 김 | - | - | - |
41 | 헌덕(809~826) | 김 | 경주 동천동 80 | 사적 29 | 십이지신상有 |
42 | 흥덕(826~836) | 김 | 경주 안강읍 육통리 능골 산42외 | 사적 30 |
십이지신상有 |
43 | 희강(836~838) | 김 | 경주 내남면 망성리 34 | 사적 220 | - |
44 | 민애(838~839) | 김 | 경주 내남면 망성리 산42외 | 사적 190 | - |
45 | 신문(839~839) | 김 | 경주 동방동 660 | 사적 185 | - |
46 | 문성(839~857) | 김 | 경주 서악동 산92-2 | 사적 178 | - |
47 | 헌안(857~861) | 김 | 경주 서악동 산92-2 | 사적 179 | - |
48 | 경문(861~875) | 김 | - | - | - |
49 | 헌강(875~886) | 김 | 경주 남산동 산55 | 사적 187 | - |
50 | 정강(886~887) | 김 | 경주 남산동 산53 | 사적 186 | - |
51 | 진성(887~897)* | 김 | - | - | - |
52 | 효공(897~912) | 김 | 경주 배반동 산14 | 사적 183 | - |
53 | 신덕(912~917) | 박 | 경주 배동 73-1 삼릉 | 사적 219 | - |
54 | 경명(917~924) | 박 | 경주 배동 73-1 삼릉 | - | - |
55 | 경애(924~927) | 박 | 경주 배동 73-1 삼릉 | 사적 222 | - |
56 | 경순(927~935) | 김 | 경기연천 백학면 고랑포리 산18-2 | 사적 244 | - |
1. * 표시는 여왕, 왕명의 ( )안은 재위기간, 박씨 10왕 석씨 8왕, 김씨 38왕
2. 왕릉의 위치에 표기가 없는 왕은 그 왕릉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는 경우임)
○ 호석(護石)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왕릉의 변천史
무열왕릉式 왕릉 : 봉토의 둘레 기초부분에 둘레석을 돌리고 비석을 세운 것이다. 봉토 주위에 돌을 돌리는것은 옛 신라에서 시작 되었는데, 처음에는 봉토의 아래 경계를 표시하는 한줄의 돌이 점점 2단, 3단으로 높아지면서 돌담으로서 봉토 밖으로 나가게 되고 무너짐을 막기 위해서 선덕여왕릉처럼 지탱할 수 있는 보조석을 설치하는 경우도 생겼다. (성덕왕릉, 흥덕왕릉)
신문왕릉式 왕릉 : 봉토의 둘레돌이 2~3단의 돌담처럼 된 것이며, 무너지지 않도록 삼각형의 지탱석을 세운 예이다. 그 전 단계인 자연석에서 발전하여 다음은 호석(護石)이 지대석이다.
경덕왕릉式 왕릉 : 봉토의 돌담 같은 둘레돌 대신에 판석(板石)을 세워서 돌리고 그 판석면의 표면 혹은 판석과 판석 사이에 세워진 돌못(네모난 돌)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것으로 이 양식은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릉으로 이어진다. (진덕여왕릉, 김유신 장군묘)
성덕왕릉式 왕릉과 괘릉式 왕릉 : 능의 둘레에 십이지신상은 물론 당의 영향을 받아 석인 석상, 능비(龜趺), 돌사자 등의 석조물을 갖추고 가장 정리가 잘 되고 발달된 형식이다. (괘릉(원성왕릉), 흥덕왕릉)
헌강왕릉式 왕릉 : 가공석을 이용하여 호석을 쌓았을 뿐 돌받침이나 돌난간이 없는 간단한 형식이다. (정강왕릉)
민애왕릉式 왕릉 : 헌강왕릉처럼 가공석으로 호석을 쌓고 길이 약 1미터가량 되는 5각형 돌기둥을 호석 둘레에 쌓아가며 받쳐 놓은 형식이다.
○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왕릉
경덕왕릉, 성덕왕릉, 괘릉(원성왕릉), 헌덕왕릉, 진덕여왕릉, 흥덕왕릉
○ 화장을 한 왕
문무왕(30대), 효성왕(34대), 원성왕(38대), 진성왕(51대), 효공왕(52대), 신덕왕(53대), 경명왕(54대)
○ 능이 없는 왕 (왕릉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는 경우)
벌휴왕(9대), 내해왕(10대), 조분왕(11대), 점해왕(12대), 유례왕(14대), 기림왕(15대), 흘해왕(16대), 실성왕(18대), 눌지왕(19대), 자비왕(20대), 소지왕(21대), 지증왕(22대), 혜공왕(36대), 소성왕(39대), 애장왕(40대), 경문왕(4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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