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향교,서원)

[스크랩] 포천의 향교와 서원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계승

장안봉(微山) 2013. 3. 3. 13:39

포천향교, 옥병서원, 화산서원, 용연서원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계승

 

 

박성진(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

 

 

들어가는 말

 

유교는 종교인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인가?

유교의 비종교 논쟁은 서구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유교는 살아서 성인되어 현세를 대동화평하게 하는 성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종교이다. 죽어서 천국가는 것 보다 살아서 천국(즉 천지인의 조화)을 만드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후세계 보다 살아서의 실천을 중시하는 현실 실천종교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유림들 종교라 말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정책은 종교로 편성하고 종교인 숫자로 대우한다. 이젠 현실 종교로 생존해야 한다. 종교라고 말해야 한다. 복수종교라도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 당위성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유교정책이다라고 할 수 있다.

 

향교서원의 존재는?

우리 유림들의 영혼의 안식처이다. 향교 서원 사우에 정신적 맥을 두고 현세 사회를 계도해 왔다. 향교는 그냥 유교적 학교였다. 국가나 자치단체에서 필요한 교육된 인력수급의 기지인 돈대주는 공립학교. 유림의 영혼은 서원과 사우, 영당, 생사당에 있다. 대원군 시절 697개를 47개만 두고 모두 철폐시켜 유림활동의 영혼안식처를 파괴했다. 선말부터 일제 때 의병할일 운동의 결사 구심처가 모두 유림에서 나왔지만 핵심거점인 영혼이 없어져 향교 서원의 역사가 이 땅에 민멸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지금은 700개로 서원이 늘어났다. 우림영혼의 생명력이 아직도 자라고 있다. 그럼 무엇인가를 서원 향교에 넣어야 하지 않는가?

현대의 생활방식과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돼 온 서원과 향교를 오늘날의 생활 속에 끌어들여 지역 문화활동 공간으로 유도해야 한다. 21세기 물질문명의 성장에 비해 정신문화는 날로 피폐해지고 특히 청소년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국가적으로 주 5일 근무제의 정착과 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문화활동의 증가에 따른 건전한 지역 문화 활동 활성화와 향토의 특색 있는 문화공간 확보가 필요하다.

 

서원 향교의 트랜드, 즉 경향이 완전히 변화했다. 문중, 학파의 거점이면서 학문연마와 교화중심지에서 공간적으로는 문화적 요소로 축이 이동되어 버렸다. 유림은 공부하고 수양하는 사람에서 서원 향교를 유지 운영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현실적으로 재정은 고갈되었고 헌성금과 보조금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공공재산으로 환원하거나 개방하되 서원과 향교는 이제 공공의 자산이다. 자체 가능한 재원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충족해 주어야 한다. 다른 방도는 없다. 왜냐하면 공공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원과 향교에 이를 운영할 유림이 없다면 자치단체에 넘어가버리고 말 것이다. 전통문화자산으로 보호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서원과 향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브랜드가 되었다. 세계가 400년전에 600개의 사립학교와 300여개의 공립학교가 이 작은 반도에 산골까지 있었던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서원 향교를 남이 찾아와 주기 바라지 말아야 한다. 서원 향교의 주인은 우리 유림이고 우리가 먼저 활용해야 한다. 회의도 하고 강학과 강회도 하고 그 다음에 지역민도 부르고 학생들도 부르고 일반인들도 불러와라. 서원 향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자료에도 나와 있는 것 처럼 무궁무진 하다. 문도 안 열고 유림들도 활용하지 않으면서 활용 걱정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향교 서원을 문을 활짝열고 풍속에 어긋나지 않으면 지역사회 누구나 사용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운영에 힘이들고 재정소요가 많아서 개방이 어려우면 유림 고유권한인 제향을 제외하고는 운영에 관해 젊은 단체에게 위탁하던가 운영자를 선정해야 한다.

 

향교 서원 본래의 목적을 준수하되 시류를 따라야 한다

서원 봉향제도를 지속해야 한다. 조선 말기에서 멈추면 구시대의 화석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지금현재에 지역에 헌신한 자, 지극히 봉사한 자, 종교 종파를 떠나서 지역사회 풍속교화와 삶의 향기가 가득한자를 별도 종향 자리에 모시고 그와 관련된 기념, 추모 행사를 지속해야 한다. 현재도 살아있는 서원으로 가꾸어 가는 운동이 개개 서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서원향교는 우리들의 방식으로 현재인들의 삶을 안을 수 있어야 칭송받고 생명력이 생겨난다.

 

1. 대한민국의 향교와 서원

 

1) 현대사회와 서원 향교

향교(鄕校)가 조선시대의 공적인 교육을 담당하는 지방의 교육기관이라면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명현(名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한 사설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의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쇠퇴해간 반면 사설 교육기관인 서원은 조선 중기 풍기군수(豊基郡守)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백운동(白雲洞) 서원이 최초로 설립된 이후로 점점 번성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혈연(血緣지연(地緣) 관계나 학벌(學閥사제(師弟당파(黨派) 관계 등과 연결이 되어서 지방에 소재하는 양반층들의 이익집단화(利益集團化)하는 경향을 점차로 띠게 됐다.

특히, 나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의 경우에는 부속된 토지는 면세되고 노비는 면역(免役)이 되었기 때문에 양민(良民)의 투탁(投託)을 유인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서원은 양민(良民)이 원노(院奴)가 되어 군역(軍役)을 기피하는 곳으로 변질돼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군정(軍丁)의 부족을 초래했고 불량(不良)한 유생(儒生)들의 협잡소굴(挾雜巢窟)이 되는가 하면 서원세력을 배경으로 지방의 수령(守令)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등 작폐(作弊)도 극심했다.

또한 면세의 특권을 남용(濫用)한 서원전(書院田)의 증가로 인해 국고(國庫)의 수입을 감퇴시켰으며 유생(儒生)들은 관학(官學)인 향교(鄕校)를 외면하고 서원에 들어가서 붕당(朋黨)에 가담해 당쟁(黨爭)에 빠져 향교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이처럼 서원이 본래의 설립 목적과 기능에서 벗어나 부정한 정치권력과 부패의 소굴이 된 나머지 결국 고종(高宗) 2년인 1865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전국에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되기에 이른다.

서원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현존(現存)하는 서원은 이미 그 역사적 의미와 기능을 다한 구시대(舊時代)의 유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서원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아니 경제적인 여건이 유족(裕足)해짐에 따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철폐된 서원들이 하나 둘씩 복구(復舊)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과거 자기 조상들이 운영했던 서원의 영화(榮華)를 이 시대에 되살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존재나 자기 가문을 과시(誇示)하기 위한 것으로 간단하게 치부(置簿)해 둘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범주에 드는 서원들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오늘날 서원 본래의 설립 목적과 가능을 잘 살려서 현대 사회에 알맞은 교육과 연수, 시민들의 삶 속으로 다가가는 성공적인 서원도 존재하고 있기에 이 시점에서 서원의 활용문제를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검토하고 고민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서원은 선현(先賢)과 향현(鄕賢)을 제향(祭享)하는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를 아울러 갖추게 됐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초기까지 서재(書齋) · 서당(書堂) · 정사(精舍) · 선현사(先賢祠) · 향현사(鄕賢祠) 등과 문익점(文益漸)을 제사하는 도천서원(道川書院)1401(태종1) 경상남도 산청군의 단성(丹城)에 세워졌다.

이 같은 서원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현재 서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복구되고 있는 서원의 문제를 애써 외면할 수만은 없다.

특히 서원의 양대(兩大)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제향(祭享)과 교육(敎育) 기능 가운데 현재의 서원들은 대부분 제향 기능만 남아 있고 교육의 기능은 사라진 상태에 있다.

그러다보니 서원은 건축물만 덩그렇게 남아있고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며 언제나 문이 닫힌 채 흉물(凶物)처럼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엄청난 재원(財源)을 투입해 복구한 서원을 우리들이 현재처럼 별다른 활용이 없이 방치해 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와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시급하게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하여 파악하고 이를 현실에 맞게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시급히 모색해 방치된 서원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몇몇 서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에 산재(散在)하는 대부분의 서원에 해당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한국 현존 서원 : 637개소

- 국가 사적으로 관리하는 서원 : 9개소

-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서원 : 96개소

- 시도기념물로 지정된 서원 : 27개소

- 시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서원 : 19개소

- 시도 민속자료인 서원 : 1개소

- 비지정 문화재로 후학 · 후손 · 유림이 관리하는 서원 : 485개소

- 향교 : 전국 234개소

 

2) 서원의 가치

서원은 앞서 말했듯이 향촌사회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곳이다. 학자의 자율성에 바탕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양성하며 인간을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동양경전을 통한 내면의 진리를 탐구하던 인격도야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인적 인격을 완성해가는데에 있어서 가장 중시했던 교육방식은 선현을 본받는 것이었다. 인격교화의 대상으로서 선현에 대한 경모의 마음 가짐은 물론 향사(享祀)를 통해 현존하는 정신적 거울로 선현을 대했다. 아울러 지방 풍속(風俗)과 예속(禮俗)을 교화하는 지역문화 중심이기도 했다.

향촌 사회에 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질서를 재편성하는 중심이었으며 향촌 지역공동체를 이끌어 간 정신적 지주였다고 할 수 있다.

각 서원들은 학령과 원규를 갖추어 자율적으로 준수하게 하였고 비형식적인 자득(自得)교육을 중요한 교육방식으로 삼았다.

서원은 주로 선현들의 연고지에 건립되었다. 출생한 곳이거나 목민으로서 선정을 베풀던 곳 혹은 정치적 수난으로 귀양을 갔던 곳이나 사망한 지역에 사원이 건립되었다. 중국 서원의 영향을 받아 자연 경관의 일부로서 서워이 건축되었으며 최대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배산임수한 지역에 건립하였으며 대부분 경사를 이용해 주변경관을 건축물 내부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즉 천인합일적 사상에 바탕하여 자연이 인격감화에 미칠 수 있는 최대한의 건축적 배려였다고도 할 수 있다.

 

3) 서원의 공간구성 및 시설현황

서원은 기본적으로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을 위주로 하여 다양한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이를 기능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구분

건 물

진입공간

홍살문, 하마석(下馬石), 외문(外門), 누문(樓門) 및 누()

강학공간

강당, 재사(齋舍), 장판각, 장서각

제향공간

신문(神門), 사당(祠堂)

부속공간

고직사, 전사청, 제기고

시설물

(), 관세(盥洗), 망례위, 석등, 정료대

강학과 제향기능 이외에 서원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도서관과 출판 기능을 갖춘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제지기술과 인쇄술의 발달에 의한 도서수집, 출판, 보존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 거점이었다.

4) 한국의 서원의 국가 유산화 필요성

중국에서의 서원은 관학적 성격이 강했으며 국가에서 제공해주는 각종 책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적 기능이 강했다. 반면에 한국의 서원은 사액(賜額)이라는 후원정책은 있었으나 철저하게 사립학교의 형태를 취했다.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시대에 전국에 700개소의 서원이 산재했으며 직업교육이 아닌 인문교육을 통해 전인적 인격체를 양성하던 교육방식은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지식교육체계였다고 하는 말은 근간에 지어진 말은 아니다. 400여년 전에 보편적 인성과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킨 교육기관인 700개의 사립학교가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교육혁명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명문 대학입학과 고시로 대변되는 교육제도의 전형이 바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서원의 교육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리라는 상상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즉 한국 교육열의 근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원은 현재에도 그 필요 충분한 의미를 갖추고 있다.

첫째는, 역사적 의미로서 단순 서원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서원이 가지고 있던 강학정신과 의례정신이 녹아있다는 점이다. 비록 갑오경장으로 전통적인 교육제도가 완전히 변모는 되었지만 선현봉사라는 중요한 서원 본연의 전통은 그대로 면면히 계승되고 있고 유림활동의 근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둘째는, 서원태동에 바탕이 되었던 철학 즉 성리학적 인간본성의 연구에 대한 부분이다. 지역 학자들과 유림을 중심으로 각 지역이 배출한 선현들의 연구를 통해 지역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확충해 나가는 일의 중심으로서 서원의 존재를 자산화하는 부문이다.

셋째, 한국서원의 세계사적 존재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세계자산화 노력이다. 근래에 들어 한국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련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선 한국의 서원 가운데 진정성(Authenticity), 완전성(Integrity), 탁월한보편적 가치(OUV)를 갖춘 9개 서원을 세계유산등재 1차 목표로 추진하고 이를 확대하여 전국의 서원으로 확대해 간다는 취지하에 201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2. 경기도 서원과 향교

1) 경기서원의 정체성

 

첫째, 기호학의 본고장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자운서원(율곡), 파산서원(우계 성혼), 대로서원(송시열), 노강서원(박세채와 박태보)을 중심으로 충청 호남 황해도로 확대되어 가게 된다.

포천 유학의 큰 줄기는 기호학이라는 철학적 기반위에서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미 앞선 발표자들이 언급한 바와 같다.

 

둘째는 개혁정신의 진원이라는 특징으로 조선건국을 통한 국가개혁의 발원이었거나(정도전 문원사) 훈구세력에 대항한 사림정치의 발로지 였다 (조광조 용인 심곡서원, 기묘명현 박세희를 모신 화성 안곡서원)

 

셋째는 구국과 위정척사 운동의 구심점이라는 점이다.

구국의 선봉에 섰던 조중봉(우저서원)과 권율(행주서원), 이항로(포천화산서원). 이덕형(용연서원, 서희 장군이(설봉서원)한 축이요, 또 한축은 한말 위정척사의 구심점이었던 이항로(노산사, 최익현(채산사) 등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영남이 주로 사승관계에 따른 계보 중심의 서원이 주종이라면 경기 서원의 정체성은 기호학적 성리관의 현실주의적 특징이 중심 되면서 실학으로, 또는 실천 철학으로 연계되어가는 하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 경기도의 서원수는?

조선시대 철폐전 서원 숫자는 전국적으로 서원 680개소, 사우 1041개소에 이르렀으나 47개를 제외하고 모두 철폐. 현재는 거의 복원되어 전국적으로 670여개소의 서원이 존속 혹은 재건되었다.

경기도의 서원 숫자가 작은 것은 서원 건립 운동이 경상도에서 시작하여 전라 충정으로 거쳐 경기도로 확산되어 올라왔기 때문에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면도 있고, 자신의 출신지에 제잔나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기 때문에 경기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원 철폐 후에는 서원 기준 경기8개소, 경상도 9개소로 대동소이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서원이 사림중심에서 문중중심으로 넘어간 후 폐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개방에 대한 논의가 3년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서원 스테이 등이 전국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서원 활용은 포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설미비로 인하여 아직 활용하기가 어렵고 주로 외부에 학습체험장을 건립하는 추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 포천의 유교문화 유산

 

1)향교

(1) 포천향교(抱川鄕校)

포천향교는 고려 명종3(1173)에 창건되었다 전하며, 조선 선조 25(1592)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27년 중건하였고, 1916년 중수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파손된 것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삼문 안에는 강학부인 명륜당이 있고 내삼문 안에는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 곳에는 공자를 위시한 중국 5성과 송조 4현 및 홍유후 설총, 고운 최치원, 회헌 안향, 포은 정몽주 증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공자 탄신일 등 연 2회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통진향교(通津鄕校 ; 1127(고려인종5)창건) 다음으로 창건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2) 서원

(1) 용연서원((龍淵書院)

용연서원 1691(숙종 17)에 이사상(李師相) 등의 남인계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덕형(李德馨)과 조경(趙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와 영정을 모셨다. 남인 집권기인 1692(숙종 18)용연(龍淵)’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용연이라는 사액은 지금의 서원터 부근에 있었던 연못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용연서원은 특히 경기도내 남인세력의 유력한 근거지로서 선현배향과 향촌교화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임진왜란 당시 이덕형이 세운 공로가 인정되어, 1868(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 강당, 동재, 서재 등이 있었으나 6·25 등으로 소실되어 사우만 남았었다. 사우는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목조기와로서 1972년에 보수하였다. 사우 안에는 이덕형, 조경의 영정과 위패가 각각 중앙 좌우에 봉안되었다. 처음에는 남인계 유생들이 조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남인인 윤선도를 사면토록 한 조경의 상소에 앙심을 품은 노론파의 반대로 좌절되고 중립적 덕망이 있는 한음 이덕형을 함께 봉향토록 했다. 이후 지속적인 복원사업으로 강당, 담장, 외삼문, 홍살문 등을 복원하여 창건 당시의 모습을 거의 회복하였으나, 동재와 서재는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였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포천유림의 주관의 음 2·8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통예절 교육도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모범적인 초등학생과 대학 진학생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2) 화산서원(花山書院)

화산서원은 가산면 방축리 산 16번지에 있는 서원이다. 이전에는 백사서원이었다가 뒤에 꽃뫼로 이전하면서 화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631(인조9)에 이혐을 비롯한 포천유림의 공의로 이항복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가산면 우금동에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백사서원이라고 하였다. 1635(인조13)에 지금의 화봉산 아래에 이건하였다. 1659(효종10)에는 이곳의 지명을 따서 화산이라 사액되었다.

그 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5)에 훼철되어 위패는 땅에 매안하였다. 그 뒤 유림의 뜻을 모아 사우터에 단을 만들고 향사를 이어왔다. 1971년에 이명우 등이 화산서원복원추진회를 결성하여 포천유림의 공의로 사우를 복원하고, 지속적으로 동·서재, 담장, ·외삼문, 홍살문 등을 복원하였다. 현재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사당, 내삼문 동·서협문 각 3칸의 필운재와 동강재 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 중앙에는 이항복선생의 영정과 문충공백사이선생(文忠公白沙李先生)’이라고 쓴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정은 근래에 모사한 것인데, 상단에 최석정이 짓고, 이유원이 쓴문충공백사선생상찬(文忠公白沙先生像讚)’을 부기하였다. 동강재와 필운재는 강당을 겸한 재실인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서원입구에는 하마비와 백사선생유적비, 홍살문 등이 있다. 매년 음력 912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3) 옥병서원(玉屛書院)

옥병서원은 선조 대 영의정을 지낸 뒤 포천에서 말년을 보낸 사암 박순(思庵 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본래 서원 터는 박순 사위의 집이 있던 자리로, 벼슬을 그만두고 포천에 머물 뜻이 있던 박순에게 내어드린 것이라 한다. 박순은 이곳에 새로 집을 짓고 배견와(拜鵑窩)라 이름 하였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649(인조 27)에 지역유림들이 배견와 터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1698(숙종 24)에 신완(申玩)이 상소하여 이의건(李義健)과 김수항(金壽恒)을 추가 배향하였고, 1713(숙종 39)에 옥병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옥병이란 이름은 이곳 지명인 창옥병(蒼玉屛)에서 따왔으며, 창옥병은 영평팔경(永平八景)의 하나로 영평천 물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을 가리킨다.

그 후 옥병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에 따라 훼철되었으며, 위패는 매안하였다. 이때 배향인물의 영정은 이덕수(李德秀)가 보관해오다가 1892년 유림들이 서원 터에 영당을 세워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을 계속하는 한편 김성대(金聲大)와 이화보(李和甫)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어 1926년에는 윤봉양(尹鳳陽)을 추향하였다. 이후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영당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978년에 옥병서원복원추진회를 결성하고 1980년에 사당과 삼문을 복원하였고, 이듬해에는 배향인물의 위패를 다시 봉안하였다. 1983년에 담장을 보수하고 1987년에 동재·서재·홍살문 등을 복원하였다. 서원에서는 음력 3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3) 영당(影堂), 사단(祠壇)

(1) 청해사(靑海祠)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며 청해이씨의 시조인 이지란(1331-1402)과 그의 8세손으로 정사공신이 된 이중로(李重老)를 제향하는 사우(祠宇)이다. 1970년에 건립된 사당은 대지 약150평에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서 정면 7.30m 측면3.70m규모이다. 내부에는 이지란과 이중로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지란의 자는 식형(式馨) 본성은 퉁, 초명은 쿠란투란 티므로로 여진의 금패천호 아라부카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직위를 세습해 천호가 되고 공민왕때 그 부하들과 더불어 고려에 귀화하여 살다가 1382년 이성계와 함께 호바투의 군대를 길주에서 대파시켜 개국을 도운 1등 공신이 되고 청해를 본관으로 하는 이씨(李氏)()을 하사받았다. 이중노의 자는 진지(鎭之) 호는 송재(松齋)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본관은 청해이다. 이지란의 8세손으로 1605(선조38)년 약관 16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623(인조1)년에 김류 이귀등과 함께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이등 공신이 되고 청흥군에 봉해졌다. 1624(인조2)이괄의 난때 경기 강원 양도좌방어사가 되어 예성강 상류에서 이괄의 반란군을 방어하던 중 반란군의 기습을 받고 백병전을 벌이다가 부하 군사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에 왕은 그의 충의의 용맹을 가상히 여겨 병조판서에 추증하였으며 1694(숙종20)년에는 황해도의 사림들이 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금천에 충렬사를 짓고 비를 세웠다. 1712(숙종38)년에 숙종은 다시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청흥부원군을 추증하고 시호와 함께 충의의 정려를 내렸다

 

(2) 청성사(淸城祠)

신북면 가채리 산 23-2에 있다. 청성사는 신라말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을 봉향하는 사당이다. 영조 44(1740)에 영당을 건립하였는데 처음 영당을 봉안하던 곳은 영평현의 백로주와 청학동 사이로 지금의 영중면 금주리였다. 이후 포천 유림의 발의로 1935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청성사라 개칭하였다. 현재 청성사의 향사는 매년 음력 911일에 행한다.

 

(3) 채산사(茝山祠)

신북면 가채리 678에 있다. 구한말의 거유이고 학자이며 청지가로서 또는 의병장으로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회복하고자 위정척사의 기치를 높이 드신 최익현 선생과 우국지사 염재 최면식 선생을 봉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본래 채산사는 면암 최익현 선생만 봉향해 왔다. 1906년 면암 선생이 대마도에서 순국하자 유림들이 그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처음 건립하였으나 1927년 일본군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후 1931년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1943년에 일본인에 의해 훼철되었다. 해방이후 1949년에 복원하고 위패와 영정을 봉안해왔으며 퇴락한 것을 1975년에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이어 1986년 포천유림의 뜻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염재 최면식 선생을 서향하여 종배하였으며, 위패와 영정을 함께 봉안하였다. 현재 채산사의 향사는 매년911일 정하여 행한다.

 

(4) 길명사(吉明祠)

일동면 길명리 산175-1에 있다. 길명사는 봉래 양사언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 올리는 사당이다. 포천유림에서 1988년 사당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청주양씨 문중과 포천군의 재정지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건축양식은 겹처마 맞배 지붕에 이익공의 방풍반 목조건물이다. 영정과 위패 봉안이 1991년에 이루어지면서 향사를 올리고 있다.

 

(5) 동음사(洞陰祠)

이동면 연곡리 735에 있다. 동음사는 안산김씨(安山金氏) 선조 촌로(村老) 김성대(金聲大)선생과 아우 성재(省齋) 김성발(金聲發), 동구(東邱) 김성옥(金聲玉) 선생 그리고 청풍김씨(淸風金氏)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선생 등 네분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으로 1833(순조33)에 창건 되었다. 1907년 왜인에 의해 반소되어 1914년에 보수하였으나 19526?25때 전소되었다. 김성대선생은 자는 이원, 호는 율강, 촌로, 본관은 안산이다.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으며 72세때 진사시에 응시하였을때 숙종이 보시고 제릉참봉을 제수하였으나 연로하여 취임하지 모하였다. 사후에 자헌대부에 추증되었고 영조때에는 대사헌에 재차 추증되었다. 196111월에 포천의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사당 건립이 발기되고 이듬해 9월에 비로소 준공되었으며 19889월에 군비와 후손들의 성금으로 중건하였다. 제향일은 매년3월 중해일이다.

 

(6) 운담영당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 625-1에 있다. 운담영당은 뜻있는 지역 인사들에 의하여 1915년 음력 10월에 건립되었다. 주자, 송시열, 이항로, 김평묵 네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를 모시어 오다가 6.25전쟁으로 전소되었다. 운담 영당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9991029일 준공하면서 안향 선생을 추가 배향하였다. 김평묵(1819~1891)선생은 조선후기의 대학자로 높이 추앙을 받고 있다.

 

(7) 충목단

포천시 소흘읍 무봉133에 있다. 사육신중의 한 분인 유응부 장군의 유허비, 제단, 정려가 세워져있다. 공은 세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무인으로서 평안도 절제사를 거쳐 1455년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이해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여 명나라 사신 초대연에서 별운검이 되어 세조를 살해하고자 하였으나 김질의 배신으로 잡 고문 끝에 생을 마쳤다. 그이 사후 숙종 때 병조판서로 추증되고 충신으로 충목공의 시호와 정려가 내려졌다. 1746(영조22)에 처음 단비만 세워 충목단이라 하였고 배향된 인물로는 유응부 외에 한남군 이어와 퇴은 양치 선생을 고종 27(1890)에 추가 배향하여 삼위 절단이 이루어졌다.

 

(8) 요산단(堯山壇)

포천시 포천읍 신읍리에 있다. 김창흡(金昌翕)선생을 배향하기 위하여 헌종연간(1835~1849)에 건립하였고 1850(철종1)에 요산영택(堯山影宅)으로 사액하였다. 대원군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고 그 후에 포천유림들이 설단했다. 1987년에 비를 세웠다.

 

(9) 졸탄단(拙灘壇) 대곡단(大谷壇)이라고도 한다. 1893(고종30) 김권(金權)과 김평묵(金平黙)선생을 위해 창건했다. 1986년에 신축하였다.

 

4) 포천 유교문화유산(포천정신)의 의미

포천 유교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면모를 분류하면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정신으로 요약정리 할 수 있다.

하나는 나라위한 충절에서 우러나오는 위국충절이 포천의 대표정신의 하나라 한다면 또 하나는 유독 청백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효와 관련된 설화나 인물이 많기는 하지만 유교의 근본인 효제(孝悌)가 바로서면 위국헌신과 절의, 청백리 정신은 자연적으로 발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천 정신을 요약하면 충절과 청백정신이라 요약 표현할 수 있다.

충절의 대표적 인물이라면 단종폐위에 맞섰던 벽랑 유응부, 임진란을 당해 국난극복에 앞장선 이항복과 이덕형, 비운의 한말 스러져가는 나라를 일으키려 애썼던 최익현과 김평묵을 대표로 들 수 있을 것이며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로는 봉래 양사언, 백사 이항복과 용주 조경, 사암 박순 선생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영평팔경(포천8)에 대적한다면 포천 8현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며 유교문화 자산과 함께 연결할 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물

배향지

항목

비고

벽랑 유응부

(미상~1456),

충목단

불사이군의 충절

 

봉래 양사언

길명사

청렴, 효행, 선정

금수정

백사 이항복

(1556~1618)

화산서원

청백리, 효충

 

한음 이덕형

(1561~1613)

용연서원

명재산, 충열

 

용주 조 경

(1586~1669)

용연서원

청백리, 절의

 

사암 박 순

(15231589)

옥병서원

청백리, 절의

 

면암 최익현

(1833~1906)

채산사

위정척사, 절의

 

중암 김평묵

(1819~1891)

운담영당, 졸탄단, 동음사

위정척사, 충의

운담정사(雲潭精舍)

 

4. 유교생활문화 유산의 자원화 방안

이제 문화재에 대한 정책적 방향이 변모되고 있다. 이전에는 문화재의 단순보존에 의미를 두었다면 현재는 적극적 활용을 통한 보존이라고 하는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이에따라 문화재청의 보존정책국이 문화재 활용국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도 그 한 예라할 수 잇을 것이다.

우리 서원과 향교는 목조 전통생활문화 유산의 범위에 든다. 학문과 수양공간으로는 성균관. 향교. 서원. 사우(재실 포함)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할 것이며 종교시설공간으로는 전통사찰을 들 수 있겠고 한옥집단마을과 종택, 기타 고택 등이 목조 전통문화의 범주에 든다고 할 것이다.

2011년 기준 전통불교사찰이 933개소에 이르는 반면 서원 향교 사우는 전국적으로 1,167개송에 이른다. 보존 관리를 위한 막대한 국가예산과 관련비용이 투입되고 있으나 아직 단순 보존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 문화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 유산 활용방안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서원과 향교도 문화, 교육, 관광 등의 범주로 편입하여 보존과 활용이라는 측면을 적극재검토해야 하며 이를 분류하자면 보존방안으로서는 생활 문화공간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뜻이고 문화교육관광화 자워 측면에서 보면 활용방안의 혁신적 검토가 필요하다 하겠다.

 

1) 향교서원의 활용현황

전국의 234개 향교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동하계 방학기간을 이용한 충효교실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아울러 전국 서원에서도 제한적으로 템플스테이에 상응하는 서원스테이가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승려와 신도 등이 거주할 수 있는 생활공간을 보유하고 있는 관계로 쉽게 프로그램 운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서원과 향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도 않을 뿐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냉난방도 갖추고 있지 않아 시설을 개보수 하기 전에는 사실상 활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서원 향교가 10~20명 규모가 입재하여 교육을 받던 장소이기 때문에 협소한 동서재로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상응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향교와 서원 인근에 체험 학습장을 신축하여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서원과 향교가 시행하고 있는 서원 향교 프로그램 및 활용현황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활용방법

활용내용

활용장소

활용시간

활용대상

비고

제향

제향인물에 대한 향사

대성전

사당,재실,전사청

제향시간내

유림,문중

모든향교와 서원

한자교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학습

명륜당,유림회관,강당,재실

주말 또는 방학

,중등학생

도시 또는 도시인접 학교와 서원,유림회관

예절교실

(충효

교실)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집단학습(문광부지원프로그램)

명륜당,강당,재실,유림회관

주말 또는 방학

,중등학생

도시 또는 도시인접 학교와 서원,유림회관

동아리

학습

취미나 학습 등 공동목적으로 결성된 동아리 활동

명륜당,강당,재실

주로

하절기

대학생,

일반인

역사성이있는 서원

한옥체험

전통적인 한옥 경관을 느끼고 휴식을 위하여 인근 전통가옥과 연계

재실

주말 또는 방학

가족,일반인

전통마을과 인접한 서원

현장답사

향교와 서원의 역사와 건축, 경관에 대한 답사학습,인근 전통가옥과 연계

유교유적 및 주변경관

불특정시간

학생 및 일반

 

전시관

박물관

기념관

서원의 역사와 인물,유적중심으로 전시

전시장 및 서원영역

 

학생 및 일반

소수,도산,자운,필암,덕천.

활용방법

활용내용

활용장소

활용시간

활용대상

비고

제향

제향인물에 대한 향사

대성전

사당,재실,전사청

제향시간내

유림,문중

모든향교와 서원

한자교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학습

명륜당,유림회관,강당,재실

주말 또는 방학

,중등학생

도시 또는 도시인접 학교와 서원,유림회관

예절교실

(충효

교실)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집단학습(문광부지원프로그램)

명륜당,강당,재실,유림회관

주말 또는 방학

,중등학생

도시 또는 도시인접 학교와 서원,유림회관

동아리

학습

취미나 학습 등 공동목적으로 결성된 동아리 활동

명륜당,강당,재실

주로

하절기

대학생,

일반인

역사성이있는 서원

한옥체험

전통적인 한옥 경관을 느끼고 휴식을 위하여 인근 전통가옥과 연계

재실

주말 또는 방학

가족,일반인

전통마을과 인접한 서원

현장답사

향교와 서원의 역사와 건축, 경관에 대한 답사학습,인근 전통가옥과 연계

유교유적 및 주변경관

불특정시간

학생 및 일반

 

전시관

박물관

기념관

서원의 역사와 인물,유적중심으로 전시

전시장 및 서원영역

 

학생 및 일반

소수,도산,자운,필암,덕천.

자연경관이 수려한 포천은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예로부터 국가의 대소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낸 충신 열사와 명현을 많이 배출한 고장답게 충효교육과 청소년 인성교육을 꾸준히 실시하여왔고 한문반. 경전반. 서예교실을 20년이상 개설하여 50여명 이상 강사를 배출하여 초. . 고등의 각 학교에서 한문과 예절을 가르치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명륜대학을 주16개월 과정으로 개설하여 2010년까지 3기에 116명의 수료자를 배출하거나 배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 타지역의 서원향교 활용사례

 

(1) 문경 근암서원의 활용사례

. 서원 스테이 연중 상설 운영

전통문화 체험을 통해 전통보존 및 민족성 고취하고 서원 기능의 회복을 통한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되었다. 전통예절, 심신수양, 경전읽기, 문화체험을 중심으로 하며 일일체험, 12, 23일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다.

 

. 서원 아카데미 개설 상시운영

연령과 유형별, 이용단위별로 인성교육과 청정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심성도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연령대에 맞는 프로그램 구비 (초급한문, 명심보감, 소학 등)하고 직장인들과 성인들의 위한 다양한 인성교육과 수련, 체험 프로그램을 구비하여 진행하고 있다.

 

. 한자왕 선발대회 개최 - 매년 1회 개최

전통교육에 대한 이해도모와 지역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한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시행하고 있다. 매년 9~10월경 관내 초등학생 6학년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행사규모를 확대하여 도대회 또는 전국대회로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문경시 각 유림단체 행사개최 - 년중 개최

문경시 관내 각 유림단체에서 추진하는 전통행사 및 정기총회 등을 서원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차원에서 서원을 활용하고 있다. 각 유림단체별로 개최하는 행사를 최소한 1번씩은 서원에서 개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 음악회 등 예술공연 개최 - 년중 정기개최

각종 음악회 및 예술공연을 년 중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계기 마련하자는 취지이다.

. 출사동이 선비문화체험 - 년중 운영

지역 학생들에게 선비들의 생활과 정신을 체험함으로써 올바른 가치관과 자긍심을 부여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시행되고 있다. 선비복장입기 체험, 선현뵙기, 인성교육, 전통놀이체험 등이 관내 초등학생 및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시행되고 있다.

 

전국 600여 곳의 서원 중 대부분의 서원이 제사기능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강학기능은 이미 사라진지가 오래되어 버렸다. 현재 대체적으로 운영이 잘 되고 있는 서원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소개하는 서원들은 서원 자체적으로 운영이 되는 곳도 있겠지만 대부부의 서원이 해당 지자체와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는 곳들이다.

 

(2) 광주 월봉서원의 살롱 드 월봉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월봉서원은 1575(선조 8)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고 기대승(奇大升)의 위패를 모셨다. 1646(인조 24)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1654(효종 5)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1671(현종 12) 박상(朴祥박순(朴淳)의 위패를 옮겨 봉안했으며, 1673년 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을 추가 배향했다.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38년 이후 일부가 복원되었다.

얼마전 뉴스에서 월봉서원이 '2011 문화재 생생사업 공모'4년 연속 선정돼 신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5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뉴스를 통해서 알수 있는 내용은 바로 이러한 것이 서원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어 졌기 때문이다. 특히 월봉서원에서는 서원스테이 프로그램 일환으로 철학스테이를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서삼경을 이용한 '논어 산책-비움과 버림의 미학' 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고전 아카데미가 그것이다.

논어 원전해석을 통한 인간 공자와 그의 사상에 대해 흥미롭고 유익한 강연을 할 예정이다

월봉서원 드라마 판타지아, '광산 500년 역사 초대장을 찾아서', 고품격 서원 문화살롱, '살롱 드 월봉'(salon de Wolbong), 월봉서원 MD(Music Design) 프로젝트, 고봉 어린이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 월봉서원 자경(自警) 기록 카드 '도라봄' 운영, 광주 8(빙월당과 황룡강 물안개) 문화 콘텐츠 개발 등이다.

아이들은 서원 내 기숙사 명성재에서 하룻밤을 숙박하며 서원 체험과 예절교육을 받았다. 첫날에는 서원 인근의 고봉선생 묘소와 학문을 논했던 귀전암, 귀후재 등을 둘러보았으며 둘째날에는 서원에서 배우는 다례(茶禮) 체험, 자연놀이, 기념촬영 등을 진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 경기도 이천 설봉서원

현재의 서원은 지난 2007413일 준공되어 136년 만에 다시 복원된 건물이다. 이천시 관고동 설봉공원 6,612부지에 대성전, ·서재, ·외 삼문 등 건물 10채를 갖추고 있는데 설봉서원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학과 예절을 배우는 하계학생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와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등 오경을 배우는 과정을 개강하여 전통예절을 배우고 인성을 함양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학생 체험교육 1741, 평생교육의 일환인 일반인 교육 12572, 외국인·다문화가정·기업 등 수시위탁교육 2371명 등을 배출했으며, 4354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4)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촌, 수련원

- 소수서원과 연계하여 선비촌, 선비문화 수련원, 청소년 수련원, 소수박물관 등을 건립하여 일일 500명 수용 가능한 숙박시설과 체험시설, 45명의 체험보조 전담인력 배치 등을 통해 연간 외국인 8,000, 내국인 2만명 이상을 유치하여 체험및 학습 활동을 시행하고 있으며 소수박물관의 전시 및 체험기능, 선비촌의 숙박및 전통문화 체험기능, 소수서원과 선비문화 수련원의 교육기능이 계통적으로 자리잡는다면 서원활성화의 전형으로 새로운 서원문화를 선도해 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2008년부터 영주시 선비문화축제를 소수서원과 선비촌, 영주시내 일대에서 개최하여 서원 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선비정신함양 활동을 정례적으로 펼쳐갈 계획임. 금년에는 국제 서원학술대회와 백일장, 선비서당체험 외 30여종의 다양한 관련 축제 항목을 선보이고 있다.(중국의 백록동 서원과 자매결연)

 

(5) 경남 산청의 덕천서원과 남명선비문화축제

- 남명 선비문화축제는 실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知行合一)이라는 주제로 남명 선생 묘소 참배, 선비학춤공연, 남명선생 제자들의 의병출정식, 남명제, 남명 선생 얼 이어 받기, 경남 어린이 학생백일장, 어린이 민속놀이경연대회, 진주검무와 악가무 공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 서예체험, 인쇄문화체험, 선비복장 입어보기 체험(사진 찍기), 어린이 선비문화 체험교실 등 선비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남명의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는 남명 유적순례, 전통혼례 재현 행사, 지리산 야생화의 한방약초 전시회, 민속놀이 체험을 함께 개최하고 있으며 현재 남명선비문화수련원을 현재 공사 중에 있다.

 

(6) 안동 도산서원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안동과 도산서원은 가장 광범위한 정신문화적 요소를 구비한 지역으로서 도산서원과 퇴계종택, 국학진흥원 등을 연계해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현재 운영중이다. 연수내용은 선비문화와 현대교육, 선비의 몸과 마음, 선비와 생활예절, 안동의 정신과 문화, 유학과 선비문화 체험 등을 중심으로 각계 각층에 필요한 교육항목을 세분화하여 맞춤형 교육 실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홈페이지 참조)하고 있다. 운영성과는 2002년 개설 후 교직원, 공직자, 경제인단체, 학생, 학부모 등이 202기에 걸쳐 10,783명 수료하였고 시설로는 2009년 국, , 시비 등 30억을 투입, 교육과 체험이 가능한 선비문화수련원건립하였다.

 

(7) 장성에 있는 필암서원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서원으로서 현재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기리기 위해 건립했으며 1590(선조 23) 김인후의 문인 변성온(卞成溫) 등이 주도하여 기산리(岐山里)에 서원을 세웠는데, 이 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1624(인조 4) 복원되었다. 1662(현종 3) '필암'으로 사액되었으며 1672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1786년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필암사원은 지난 2011()대동문화재단과 협약을 맺고 오는 2014년까지 필암서원 집성관을 위탁 운영하게 되며, 전국의 초대학 등 각급 교육기관과 연계하는 다양한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 및 체험 학습 등을 전개한다. 특히, 장성군과 대동문화재단은 매년 장성군민을 위한 공익적 사회 환원 프로그램을 집성관에서 2회 이상 무료 운영하고, 장성군민과 출향 인사, 사회적 약자 등에게는 집성관 이용료 50% 할인 등도 추진한다. 20118월부터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문화재 생생사업으로 '문불여(文不如) 무불여(武不如)' 장성체험 12일 캠프,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우리 문화재 지킴이 활동, 외국인과 함께하는 '두번째 나라 한국 체험' 등 교육이 진행된 바 있다.

 

5) 포천 유교문화 자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검토

(1) 유교문화자산의 복원 시설 개보수

포천의 용연서원은 용주 조경 선생을 배향하는 서언으로 건립되어 숙종연간에 사액을 받았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사원 중의 하나이다. 사당과 강당, 동서재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전란으로 인하여 불타고 사당과 1986년에 지은 조그마한 강당만 남아있어 실재적으로 서원의 기능을 하기에는 시설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복원한 강당도 실재적인 강당이라 하기에는 어렵고 전사청의 규모에 지나지 않아 실질적 활용이 어렵다. 포천정신의 핵심이기도 한 용연서원의 실질적 복원은 경기도와 포천시의 일차적 숙제이기도 하다.

숙종원년에 사액한 화산서원의 실정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당과 소규모의 동서재만 남아있기 때문에 견학정도의 선양학습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성과 한음은 조선 명신 가운데 수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명재상이며 포천 정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분들을 현창할 기념관은 차치하고라도 현창대상인 서원의 면모가 이 규모를 가지고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노릇이다.

옥병서원 또한 수려한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당과 동서재가 겨우 1981년에 국비와 도비로 지어였고 인근에는 조립식 창고가 들어서는 등 천인합일이라는

환경적 요소도 고려되지 못하고 겨우 제향만 봉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3곳을 제외한 사와 단, 영당도 제향을 위한 공간에 지나지 않아 포천 출신 명현의 정신을 계승하거나 훈도받기에는 역부족인 감이 있다.

각 서원과 사우의 인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분을 일목요연하게 보존하거나 선양하기는 어렵다. 일차적으로는 서원봉향 인물에 대한 시설 복원이나 개보수가 우선되고 그에 따른 스토리텔링 등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에 태어나 경관보다 빛나는 초천명현의 현창은 포천의 문화바탕을 건실히 해 줄 것이다.

(2) 향교서원 네트워크 구축

향교와 서원은 더 이상 유림들만의 자산은 아니다. 규모면에서 실질적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유림들이나 후손의 힘만으로 향교와 서원을 유지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포천시청과 관련 유림, 이를 교육현장에 활용하려는 교육청과 문화원, 문화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운영에 참가해야 이를 보존할 수 있을뿐더러 극대화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서원은 유림들이 겨우 향사나 지낼 뿐 유지 관리에 많은 애로를 느끼고 있다.

이를 위해 일부지역에서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지역 문화자산을 조존 활용하기도 하고 제향을 제외한 모든 시설들을 자치단체에 기부채납하여 자치단체가 직접 관리운영을 하거나 문화단체에 위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활용단계까지는 못미치더라도 우선 보존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서원 향교와 지역 네트워크는 가장 1차적 보존활용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초중고등학교와 서원간 1:1 네트워크 구축으로 자매결연 및 부설 교육장으로 활용하거나 대학 혹은 대학내 관련기관(국문학,사학,철학,한문 등)1:1 서원 네트워크 혹은 지역내 1행정기관과 서원간의 1:1 네트워크 등을 통해 서원 사우의 청결유지와 보존 활용이라는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갈 필요가 있다.

 

(3) 서원 아카데미 개설(사회교육 포함)

포천지역에서는 향교와 서원의 시설이 교육환격에 적합지 않은 관계로 주로 유림히관이라는

거점을 통해서 지역 유교문화 현창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다양한 교육들이 향교조직과

유도회, 청년 여성 유도회 등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들을 지속할 수 있는

지방자치 단이의 지원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연령대에 맞는 프로그램 구비하여

컴퓨터 세대를 위한 서예교육을 통해 문자와 예술에 대한 이해증진 도모는 물론 초급한문

부터 명심보감, 소학 등 한글교재를 활용한 청소년 인성교육, 그리고 직장인들과 성인들을

위한 다양한 인성교육과 수련, 체험 프로그램들이 구비되어 자연스런 생활유교 재교육이

이루어져야 지역 명현의 정신 또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갈 것이다.

아울러 포천서원 만의 특성화를 위한 서원발전을 위한 세미나, 서원 학술대회, 서원

관계자들간의 정기적 교류 프로그램과 청소년, 지역주민, 다문화가정, 외국인들이 함께 참가할

수 있는 전통 문화 프로그램 또한 지역문화원 등과 연계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포천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영평8경 등과 연계한 각종 답사가 이루어 지고

있으나 포천 지역민들을 넘어서서 수도권 전역이 참가할 수 있는 대중화된 체류형 프로그램의

개발과 홍보는 포천 관광에 큰 축이 될 수있을 것이다.

포천 지역에서의 서원 스테이는 서원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인근에 교육장을 확충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겠다. 대표 서원 인근에 초천 선비문화를 선양하는 교육관의

신축을 충분히 검토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포천의 서원은 항시 문이 닫혀있다는 글들을 자주본다. 서원을 항상 개방하여 방문객이 명현의 정신을 알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개방이 필수적이기는 하겠으나 관리, 화재 등 여러 방면의 검토들이 따라야 하겠으나 네트워크나 문화유산해설사 활용 등 가능한 방법들을 적극 검토할 필요는 있다 하겠다.

 

 

나가는 말

 

문화코드로의 인식전환 필요

옛날에 왕조에서 사액서원이라는 당근으로 교육열을 채찍질 했다면 현대사회에서 서원을 중앙과 지방의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이미 교육기구에서 문화코드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도 그러했듯 향교 서원의 기능이 이미 공익적 차원으로 진입되었는 만큼 향교서원에 대한 지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다. 역사성을 갖춘 자랑스러운 문화코드를 구시대의 유물로 내버려두고 유림들에게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하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기도와 포천시에서 경기도의 기호학을 중심으로 한 연구 및 활용 센터가 건립되어야 한다. 경북이나 경남에서는 한국국학진흥원과 남명학연구소 등 위대한 사상가를 중심으로한 연구와 편찬, 사회계도 및 세계적인 한국철학 거점으로서의 기구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이를 세계유교문화축제나 남명축제 등과 연계하여 한국인문학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경기 유학문화의 중심 거점이 건립되어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으로 거점을 옮겨가고 있는 기호학을 세계화할 수 있는 경기국학센터의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으며 한국 지성사적 맥락에서 경기 북부에 이를 건립하는 정책적 준비가 필요하다.

 

명현 현창 시설 우선되어야

포천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유학적 세계관의 중요한 특징인 충의에 바탕한 청백정신과 위정척사로 대변되는 국가위기 관리정신이 타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두드러진 지역이다. 아쉽게도 학술발표회 규모를 벗어난 선양활동이나 지역 정신문화의 핵심으로 이를 문화코드화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없다.

유교관련 시설들이 전란으로 인해 모두 파괴되고 새롭게 복구는 되었다하나 부족한 재원 탓도 있겠지만 관내의 시설들이 온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로 남아있다는 것이 포천의 숙제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서원들이 본래의 면모로 대규모로 복원되고 인근 지역에 교육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자치단체 등이 주도하여 지역 정신문화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포천의 노력은 아직 미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포천의 3개 서원 모두 사당시설을 제외하고는 거의 복원이 되어있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유림들이 후원하는 관련 시설들의 복원이 1차적 숙제로 남는다.

 

인의예지는 현대사회 윤리의 축약

제도적으로 보면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유교는 그 정신적 맥락을 중시한다. 우리들 피속에 남아있는 역동적 개혁과 사회발전,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 동방의 유태인이라 비유하는 것처럼 재빠른 산업화와 마케팅은 결국 경기 유교가 지향했던 3가지 정신의 현대적 표현이며 지금도 역동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지금 현재의 정치에서도 부모를 보고 자식을 판단하거나 청빈해야하는 계층이 타락했을 때 국민들의 질타는 극에 달한다. 서구적 민주주의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우리 몸속에 녹아있는 관료들의 청빈 정신 이것이 유교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서원 향교를 많이 짓는다고 위상과 역할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유교가 주창하던 정신적 기반 즉, 인문학에 바탕한 휴머니즘()과 사회정의()와 국내외의 평화적 질서구축(), 운영주체인 인간의 청빈과 검소 나아가 환경생태 보호()를 바탕으로 세계사에 기여()할 때 인류평화의 주체(大同和平)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록 : 경기도의 향교(鄕校)와 서원(書院)

 

경기도 소재 향교(25개소)

가평향교(加平鄕校) 1398년 창건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551-2

고양향교(高陽鄕校) 1398년 창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03-1

과천향교(果川鄕校)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81

광주향교(廣州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206-3

교하향교(交河鄕校) 1407년 창건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71-7

김포향교(金浦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253-3

남양향교(南陽鄕校) 1397년 창건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남양리 335

수원향교(水原鄕校) 1285년 창건(고려충렬왕11)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교동 43

안성향교(安城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안성시 인지동 362-2

양근향교(楊根鄕校) 1398년 창건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817

양성향교(陽城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동항리 114

양주향교(楊州鄕校) 1401년 창건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 226

양지향교(陽智鄕校) 1413년 창건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79

여주향교(驪州鄕校) 고려말 이곡이 창건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홍문리 193-46

연천향교(漣川鄕校) 1398년 창건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 245

용인향교(龍仁鄕校) 1400년 창건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언남리 335

이천향교(利川鄕校) 1389(고려창왕1)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408-10

적성향교(積城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516

죽산향교(竹山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314

지평향교(砥平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1295

진위향교(振威鄕校) 1398년 창건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 1030

통진향교(通津鄕校) 1127(고려인종5)창건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 서암리 714-7

파주향교(坡州鄕校) 1398년 창건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파주리 335

평택향교(平澤鄕校) 창건년대 미상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 187-26

포천향교(抱川鄕校) 1173(고려명종3)창건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신읍리 23-2

 

경기시도지정 문화재 서원(12개소)

경기 기천서원(沂川書院)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 555-5 문자 75

경기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146-1 기념물 41

경기 덕봉서원(德峰書院)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유형 8

경기 심곡서원(深谷書院)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상현동 203-2 유형 7

경기 용연서원(龍淵書院)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유형 70

경기 우저서원(牛渚書院)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 492 유형 10

경기 운계서원(雲溪書院)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 산7 문자 18

경기 자운서원(紫雲書院)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기념물 45

경기 충열서원(忠烈書院)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118-4 유형 9

경기 파산서원(坡山書院)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늘노리 문자 10

경기 행주서원(杏洲書院)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162-1 문자 71

경기 화산서원(花山書院)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산16-1 기념물 46

 

문화재 비지정 서원(19개소)

경기 대포서원(大浦書院)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대포리 산32

경기 덕양서원(德陽書院)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433

경기 매산서원(梅山書院)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번도리 산321

경기 문봉서원(文峯書院)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경기 문헌서원(문헌書院) 경기도 오산시 내삼머동 753-2

경기 미강서원(眉江書院)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37-2

경기 미원서원(美原書院)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1리 산70

경기 사천서원(沙川書院)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24

경기 사충서원(四忠書院)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100-2

경기 서봉서원(서봉書院) 경기도 여주군 홍천면 하다리

경기 소산서원(蘇山書院)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산12

경기 수곡서원(水谷書院)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수곡631

경기 안곡서원(安谷書院)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586

경기 옥병서원(玉屛書院)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210

경기 용강서원(龍江書院)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경기 용주서원(龍洲書院) 경기도 파주시 월릉면 덕은리 291

경기 운봉서원(雲峯書院) 경기도 이천시

경기 임장서원(臨章書院)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경기 잠곡서원(潛谷書院)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 140-17

 

 

대원군 당시 경기도 미철사원(서원7개소,3개소)

노강서원(鷺江書院) 시도기념물41 문열공 박태보(文烈公 朴太輔) 경기의정부(議政府)

사충서원(四忠書院) - 충헌공 김창집(忠獻公 金昌集) 경기 하남(하남)

숭양서원(崧陽書院) - 문충공 정몽주(文忠公 鄭夢周) 경기 개성(開城)

심곡서원(深谷書院) - 문정공 조광조(文正公 趙光祖) 경기 개성(開城)

용연서원(龍淵書院) 시도유형70 문익공 이덕형(文翼公 李德馨) 경기 포천(抱川)

우저서원(牛渚書院) 시도유형10 문열공 조 헌(文烈公 趙 憲) 경기 김포(金浦)

파산서원(坡山書院) 문화재자료10 문간공 성 혼(文簡公 成 渾) 경기 파주(坡州)

강한사(江漢祠) - 문정공 송시열(文正公 宋時烈) 경기 여주(驪州)

기공사(紀功祠) - 장렬공 권 율(莊烈公 權 慄) 경기 고양(高陽)

현절사(賢節祠) - 문정공 김상헌(文正公 金常憲) 경기 광주(廣州)

 

자세한 사항은

향교관계는 인터넷홈페이지 성균관 참조

서원관계는 한국서원연합회 홈페이지 전국서원찾기 참조

 

출처 : 동양문화이야기
글쓴이 : 예문관 박성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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