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사·이태연 묘비 [李德泗·李泰淵 墓碑]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덕사는 본관이 한산(韓山)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으며, 거유(巨儒) 송시열(宋時烈)의 장인이다. 이덕사의 아들 태연은 충청도·전라도·평안도 관찰사와 병조·이조 참의 등을 지냈다. 이덕사의 묘비는 1666년(현종 7)에 건립되었고, 크기는 높이 144㎝, 너비 67㎝, 두께 24.5㎝이다. 앞면에 '유명조선의금부도사증이조참판이공덕사지묘(有明朝鮮義禁府都事贈吏曹參判李公德泗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생전의 행적과 사위인 송시열의 감회가 기록되어 있다. 이태연의 묘비는 1725년(영조 1)에 건립되었고, 크기는 높이 163.2㎝, 너비 68.5㎝, 두께 28.5㎝이다. '유명조선평안도관찰사이공태연지묘(有明朝鮮平安道觀察使李公泰淵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옆면과 뒷면에는 권상하(權尙夏)가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태연 [李泰淵, 1615~1669]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의금부도사 이덕사(李德泗)의 아들이자 이덕수(李德洙)의 조카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 검열을 거쳐 대교가 되었으며, 1650년 공산현감, 수찬을 지냈다.
낙당(洛黨) 김자점(金自點) 일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652년 당진현감에 등용되었다. 이듬해 교리로서 대간의 월권행위를 상소하다가 다시 파직되었으나 1656년 필선으로 복직되어 보덕, 사간, 응교 등을 지냈다.
이듬해 수원부사를 거쳐 1659년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도내의 유배죄인 7명을 임의로 풀어주어 다시 파직되었다. 이듬해 경주부윤으로 복직되어 1661년(현종 2)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승지, 병조참의를 지냈다. 1666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를 지내고 평안도관찰사를 지냈다.
낙당(洛黨) 김자점(金自點) 일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652년 당진현감에 등용되었다. 이듬해 교리로서 대간의 월권행위를 상소하다가 다시 파직되었으나 1656년 필선으로 복직되어 보덕, 사간, 응교 등을 지냈다.
이듬해 수원부사를 거쳐 1659년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도내의 유배죄인 7명을 임의로 풀어주어 다시 파직되었다. 이듬해 경주부윤으로 복직되어 1661년(현종 2)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승지, 병조참의를 지냈다. 1666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를 지내고 평안도관찰사를 지냈다.
[출처] 이태연 [李泰淵 ] | 네이버 백과사전
이덕사.이태연 묘소 전경
평안도 관찰사 이태연 신도비-宋時烈이 撰하고 宋來熙가 썼다
이덕사 묘소 전경- 도사 이덕사는 우암 송시열의 장인이다
도사증참판이공지묘/정부인밀양박씨부좌
이덕사묘 후경-묘 좌,우에 망주석을 많이 세운것이 특이하다
이덕사 묘비-사위인 우암 송시열이 썻다
이덕사의 아들인 이태연 묘소 전경
이태연 묘비-수암 권상하가 썼다
이태연 묘하에 위치한 납골묘(?)-봉분 주위에 상석과 묘비를 세웠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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