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충청도)

[스크랩] [충남 아산]고균 김옥균(古筠 金玉均) 묘소

장안봉(微山) 2012. 12. 14. 22:16

고균 김옥균(古筠 金玉均)

 

조선 말기의 정치가.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 시호는 충달(忠達), 본관은 안동.

72년(고종 9) 문과에 급제, 옥당승지(玉堂承旨)·정언(正言)을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박규수·유대치·오경석 등의 영향으로 개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81년(고종 18)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온 데 이어, 이듬해 다시 수신사 박영효 일행의 고문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박영효·서광범·홍영식 등과 나라의 개혁방안을 의논하고, 84년 다시 일본에 가 군인양성을 위한 300만원의 차관을 교섭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청나라의 세력에 기대어 지나치게 수구적인 정치를 펴는 민씨일파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정부를 세우기로 결심, 84년 12월 우정총국 낙성연을 기회로 박영효·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수구파 거두들을 제거하고 신정부를 조직하여 호조참판 겸 혜상공국 당상(惠商公局堂上)이 되었지만, 청나라 주둔군의 개입으로 정변은 3일 만에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일본으로 망명, 이와다(岩田周作)로 이름을 바꾸고는 10년간 일본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그 후 오랜 뜻을 이루기 위해 청나라의 이홍장을 만나 도움을 청하려고 상해로 건너갔다가, 본국정부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94년 12월 4일 살해되었다. 유해는 본국으로 옮겨져서 양화진(楊花津)에서 시체를 찢는 극형에 처해졌으나, 이듬해 갑오개혁으로 개화당 내각이 들어서자 법무대신 서광범과 총리대신 김홍집의 상소로 반역죄가 씻기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기화근사(箕和近事)> <치도약론(治遺略論)> <갑신일록(甲申日錄)> 등이 있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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