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현공)

[스크랩] 일묘연 만왕만래(一妙衍 萬往萬來)

장안봉(微山) 2013. 1. 31. 22:37

 一妙衍 萬往萬來

 

 

 

-낙서의 生(陽,數,용변)과 하도의 成(陰,理,부동본)이 만왕만래한다.

 

-衍-널리 퍼진다. 一妙衍-하나가 묘하게 퍼진다. 萬往萬來-수없이 반복하여 오고간다.

 

-하나는 묘리의 작용이다. 오다(來)-하나에서 삼라만상이 화생하는 것(一卽三, 一卽多),  가다(往)-궁극에는 근원으로 돌아 가는 것(三卽一, 多卽一),  오고 간다는 것은 본체와 작용의 합일을 말한다.

 

 

*, 하나의 妙理의 작용은 삼라만상이 오고가며 그 쓰임(用)은 무수히 변하지만 근본은 변함이 없다.

 

*, 삼라만상이 오고 가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 쓰임(用)이 무수히 변한다는 것이다.

 

*, 一의 묘연은 점(.), 一의 본처에서, 태극으로 無空을 열어 출발한다. ‘一’에서 출발한다.

 

*, 4,5,6,7,8,9數를 경과하며 運化成環하여 그 경과하는 동안 천지묘리가 만왕만래하며 변화창조를 이루게 된다.

 

*, 일점에서 비롯되며 극묘하게 대연하되 그 일점을 一로 하여 부동의 기본이 되 하낙의 用變不動本한다.

 

*, 우주만물의 근본이 하나(一)로 통하는 즉 三卽一의 이치와 소우주인 인간과 대우주인 천지와의 합일을 통해 하늘의 이치가 인간속에 징험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一)의 이치와 그 조화기운이 하나가 되는 一心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구체적인 현실태를 제시하고 있다.

 

 

 

 @, 일묘연만왕만래(一妙衍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 )

 

                                    ---아래글은 삼산노주선생의 글월입니다.

 

                                

해석 : 한ㆍ이 신묘神妙하게 펼쳐져서 만 번이나 돌아가고 만 번이나 돌아온다. 작용은 변동變動하나 본처本處는 변동하지 않는다.

 

부연 : 묘연妙衍은 묘용妙用이다. 곧 묘연은 신묘神妙하게 작용한다는 뜻이고 또는 신묘하게 펼쳐진다는 뜻이다. 일묘연一妙衍은 한이 1 2 3 4 5 6 7 8 9 10 백 천 만 억 조를 지나서 불가설불가설전불가설不可說不可說轉不可說로 신묘하게 펼쳐지는 것을 말한다. 그냥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펼쳐지는 양상이 매우 신묘하다. 한이 그냥 1 2 3 4 5 6 7 8 9 10 백 천 만 억 조로 순차적으로만 펼쳐졌다면 신묘하다고까지 말할 것은 없었을 것이다. 묘연妙衍 곧 신묘하게 펼쳐졌다고 말한 까닭은 한정각세간正覺世間 기세간器世間 유정세간有情世間의 삼세산三世間에 펼쳐져서 변화하는 양상이 이사무애理事無碍하고 사사무애事事無碍하여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법도法度에 하나도 호리毫釐의 간극만큼도 어긋남이 없기 때문이다. 한이 신묘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일체 경계에 만왕만래해도 전혀 티끌경계에 물들지 않는다. 곧 천부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81자 전체가 자연의 법도에 딱딱 들어맞게 짜여져 있는 것이다. 일묘연의 한은 또한 대삼大三을 합한 중심 육六이기도 하다. 이 여섯이 묘연하여 만왕만래하기 때문이다.


 이 일묘연一妙衍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천부경 안에서 해석이고, 둘째는 천부경 밖에서 해석이다. 첫째는 천부경의 첫머리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부터 성환오칠成環五七까지 문장 전체가 한이 펼쳐진 것이고, 또한 일묘연一妙衍부터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까지 전체가 한이 펼쳐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천부경 81자 전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이 신묘하게 펼쳐져서 만왕만래萬往萬來하는 변화를 서술한 것뿐이라 단언할 수도 있다. 천부경 81자가 한에서 시작하여 한에서 끝마치는 것이 모두 이 때문이다. 일묘연의 처음은 일시一始의 한이고, 끝은 종일終一의 한이며, 그 중간이 모두 묘연妙衍이고 만왕만래이다. 둘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일체 형상이 한의 신묘한 작용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곧 비로자나불이 화엄경을 설하실 때 발바닥 발등 무릎 배꼽 가슴 치아 미간백호 육계정상 등에서 각각 방광할 때 한에서 방광을 시작하여 무수한 국토에 이르는 것도 일묘연의 작용이고, 태극이 양의로 나누어져서 4상 8괘 64괘 384효로 확장되는 것도 일묘연의 작용이며, 1부터 10까지 각 수를 제곱하여 더하면 384수가 나오는 것도 일묘연의 작용이고, 태초에 한 말씀이 있어서 무수한 인종의 언어로 전변하는 것도 모두 일묘연의 작용이다. 곧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한이 삼극三極으로 1차 전변轉變하고, 대삼大三이 합한 여섯 육六으로 2차 전변하며, 일곱과 여덟 그리고 아홉으로 3차 전변한 것이고 보면, 이 칠七 팔八 구九에서 나온 일체 명상名相은 바로 한정각세간 기세간 유정세간에 신묘하게 펼쳐져서 변화한 작용이 아님이 없는 것이다.


 한의 작용은 만왕만래하며 수시로 변동變動하지만 한의 본처本處는 조금도 변동하지 않는다. 이 본처를 금강경金剛經의 경문을 인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금강경 첫머리에 환지본처還至本處란 말씀이 있다.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1천2백 명의 제자와 함께 계시었다. 그때 세존께서 공양할 시간이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서 사위대성舍衛大城에 들어가 걸식하심에 차례로 걸식하고 나서 다시 본처本處로 돌아와 공양을 드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 나서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如是我聞 一時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爾時世尊食時着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次第乞已 還至本處飯食訖收衣鉢洗足已敷座而坐)


도道가 무심無心하여 사람에 계합하고

사람이 무심하여 도에 계합契合한다.

이 낱 도리를 알고자 하느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道無心合人 人無心合道

欲得箇中意 一老一不老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에 가면 “도가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여의었다.”(道不遠人人遠道 山不離俗俗離山)라는 현판이 있다고 한다. 일묘연一妙衍 곧 한이 신묘하게 펼쳐지는 양상이 도와 같고 산과 같다. 도는 원래 무심하다. 도가 무심하기 때문에 일체 때에 일체 생명체의 본처에 계합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무심하여 도에 계합하는 것이다. 이미 도에 계합한 사람은 무심해서 도에 계합하였을 것이고, 아직 도에 계합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이라도 무심하면 바로 도에 계합할 수 있다. 이 낱 도리를 알고자 하느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늙은 것은 무엇이고, 늙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차고 더운 것을 먹어보아야 스스로 아는 법이다>


 가고 옴이 없고 또한 머무름도 없는 것을 본처라 말한다. 우리 범부들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돌아오는 것을 환지본처還至本處로 보지만, 깨달은 도인의 눈으로 보면 부처님과 제자들이 일찍이 기원정사를 떠나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가서 걸식하고 다시 본처로 돌아오신 것이다. 가고 옴이 없고 또한 머무름도 없는 것이다. 가는 바 없이 잘 가시는 분이 있고 오는 바 없이 잘 오시는 분이 있으니, 이를 일러서 선서善逝라 하고 여래如來라 하는 것이다. 한의 본처가 이와 같다. 한이 신묘하게 펼쳐져 작용하기 때문에 곧 도가 무심하여 사람에 계합하는 것이며, 또한 한이 신묘하게 펼쳐져 작용하기 때문에 1천2백 명의 제자들도 걸식하러 성 안으로 만 번이나 들어가고 만 번이나 돌아오는 가운데 작용은 한없이 변하지만 낱낱 행위가 무심의 본처에 계합하므로 중생 경계에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만왕만래하며 그 낱낱 행위가 본처와 계합하지 못하면 그것은 중생의 경계에 떨어지는 것이니, 그 작용을 신묘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한의 묘연이 아니다. 일묘연一妙衍 곧 한이 신묘하게 펼쳐져 만 가지로 변화하는 것은 본처와 계합한 작용을 말한 것이다. 만왕만래萬往萬來하며 용변用變하는 것이 일묘연一妙衍의 묘연妙衍이고, 부동본不動本하는 것이 일묘연一妙衍의 일 곧 한이다. 이 때문에 두 구절을 한 문단으로 합친 것이다.

 

 

출처 : 동양역학인연합회
글쓴이 : 고운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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