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해(金生海)
김생해(金生海, 1512년~1558년 )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자는 지혼(之渾), 본관은 (신)안동이다.
선친은 평양서윤(平壤庶尹)을 지내고 이조판서(吏曹判書) 대제학(大提學)에 추증(追贈)된 휘 번(璠) 선조와 증정부인(贈貞夫人) 남양홍씨의 외아들로 중종 7년(1512) 임신년에 출생 하였다.
음직으로 경기전 참봉(慶基殿 參奉)에 보직되었다가 희릉참봉(禧陵參奉)으로 옮기고 관례에 따라 선공감 봉사(繕工監 奉事)에 승진되었다. 중종 32년(1537) 丁酉 26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상서원 직장(尙瑞院 直長)에 제수되었고 그 후 사섬시(司贍寺) 내자시(內資寺) 전생서(典牲署)의 주부(主簿),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통예원인의 겸 한성부참군(通禮院引儀 兼 漢城府參軍)을 지낸 뒤 중종 36년(1541) 辛丑 5월 호조좌랑(戶曹佐郞)이 되었다. 같은해 7월 29일에는 정랑(正郞) 권겸이 좌석상에서 "김생해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스런 옷을 입고 스스로 호걸인 체한다"고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그 후 판관(判官)을 거쳐 장례원 사의(掌隷院 司議), 형조정랑(刑曺正郞) 그리고 금산군수(錦山郡守),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지냈다. 명종 13년(1558) 戊午 4월29일 향년 47세로 타계 한 뒤 아들과 손자들의 현달(顯達)로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되었다.
배위는 증정경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완산이씨)로 정덕(正德) 경오년1510년 10월 21일에 태어나 만력(萬曆) 신묘년1591년 9월 6일 향년82세로 졸하였다. 친정아버지는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成宗大王의 제9男)이고, 처조부(妻祖父)는 성종(成宗)이며, 처조모(妻祖母)는 숙의(淑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외조는 첨정 증찬성(僉正 贈贊成) 윤첩(尹堞)으로 본은 파평(坡平)이다. 묘는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 석실 서윤부군(庶尹府君:아버지 김번)의 묘소 동쪽 축좌에 합장하였다. 갈(碣)은 좌의정 임당 정유길(鄭惟吉)이 찬하고 좌찬성 퇴계 이황(李滉)이 썼다. 표(表)는 현손 공조참판 김수증(金壽增)이 찬하고 음기(陰記)를 아울러 썼다.
김생해는 일찍이 중종(中宗)의 부마(왕의 사위) 물망에까지 올랐다. 물론 초간에 그쳐 부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성종의 아들 景明君 李忱(경명군 이침)의 사위가 됨으로써 왕실의 일원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문벌가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國婚이나 王室과의 통혼이 있어야 하는 당시의 관행을 생각한다면 김생해의 혼인은장동김씨(신안동김씨)의 성장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극효(金克孝)
증조부는 상주판관(尙州判官)를 지낸 김영수(金永銖)이고, 조부는 평양서윤 김번(平壤庶尹 金璠)이며, 부친은 신천군수(信川郡守)를지낸 김생해(金生海)이다. 왕실과 긴밀한 관계였는데, 그의 부친은 성종(成宗)의 아들인 경명군 이침(景明君 李忱)의 사위였다.
또 김극효는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그의 가문에 장가를 들었는데, 정유길은 광해군의 장인인 류자신(柳自新)을 사위로 두었다. 따라서 정유길은 광해군의 처외조부가 되고 김극효는 광해군의 처이모부가 된다.
1562년(명종 17)에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고, 1564년(명종 19) 갑자식년사마시(甲子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 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봉해졌으며 관직은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묘와 신도비는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 석실에 있다. 슬하에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장남인 김상용(金尙容)은 우의정, 4남인 김상헌(金尙憲)은 좌의정에 오르는 등 그의 가문에서 고관대작이 조선말까지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다. 그래서 그를 신안동김씨의 중시조로 삼는다.
김광찬(金光燦)
1597(선조 30)∼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회(思晦). 아버지는 부사 상관(尙寬)이며,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상헌(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광해군 때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음서(蔭敍)로 세마(洗馬)가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아버지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통진ㆍ교하의 현감 등 지방관을 역임하던중, 아들 수흥(壽興)ㆍ수항(壽恒)이 출세하자 1661년(현종 2) 공조참의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뒤에 청풍군수ㆍ파주목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1637년 아버지 상헌이 척화를 주장하며 자살을 기도하였을 때 적극 만류하지 않아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안동김씨 묘역전경
김광찬묘(중앙), 김생해묘(우상), 김상헌 묘(우하)
정경부인광주이씨묘(좌상), 김극효묘(좌하), 김광찬묘(우하)
김극효 묘 전경-뒷쪽은 정경부인광주이씨 묘이다
증의정부영의정행돈녕부도정김공극효지묘/정경부인동래정씨부좌
김광찬묘 전경
사미당 김극효 신도비-김광찬묘 아래에 김광찬신도비와 함께 세워져있다
비명은 李廷龜가 짓고 柳時定이 썼으며 두전은 金尙容이 썼다
김광찬 신도비-宋時烈이 짓고 金壽增이 썼으며 두전은 金壽恒이 썼다
김생해 묘 전경
증의정부좌찬성행신천군수김공생해지묘/정경부인한산이씨부
김대효 묘 전경-김광찬 묘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증의정부영의정행삼가현감김공대효지묘/정경부인완산이씨부
김수증 묘 근처에 있는 비석들-석실서원묘정비,취석,송백당유허비,도산석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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