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사(東海寺)를 품고 있는 상주의 식산(息山:503m)
백두대간상 웅이산(熊耳山:763m)에서 여남재- 백운산- 기양산- 수선산- 갑장산에서 굴티로 자세를 낮추어 다시 국사봉을 일으키고, 이어서 배우이고개로 잠시 주춤 하다가 다시 뾰족하게 솟구치니 식산입니다. 우리는 이 산줄기를 「여남지맥(일명 기양지맥)」이라 이름 합니다. 정상부는 큰 암석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서 동북쪽으로는 병풍산으로 이어져 낙동강에 닿으며, 서북쪽으로 뻗은 줄기는 외답 삼거리 인공폭포에서 쉬고 있는데, 상주시 동문동과 낙동면을 가르고 있지요.
일찌기 식산(息山)이만부(李萬敷:1664~1732)선생은 산천잡영(山川雜詠)에서 "식산"을 「息山亦自息,遼分平光野,軆靜而後茂,我欲安吾常“식산은 또 스스로 그칠 줄 알아 아득히 평야의 빛을 나누었네. 근본이 고요한 뒤라야 무성한 법 내 나의 상도에 안온하려네“」라고 상산지에 전 하고 있지요.
선생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서(仲舒), 호는 식산(息山). 父는 예조참판 옥(沃)이며, 母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승지 동규(同揆)의 딸이다. 가족과 함께 상주의 외답리(논실)에 안주한 것은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 논실에 집을 지어 천운당(天雲堂)이라 명명하고 자신의 아호를 “息山”이라 했다. 이는 논실 남쪽의 산이 바로 식산이었기 때문이다. 1700년에 창건된 천운정사(天雲精舍)는 지방문화재민속자료 제70호(외답동167-1)로 지정되어 있지요. 선생은 지행록(地行錄)을 비롯하여 식산문집20책 외에 역통(易統) 3권, 대상편람(大象編覽) 1권, 사서강목(四書講目) 4권, 도동편( 道東編) 9권, 노여론(魯餘論) 1권 등이 있으며 상주박물관에서도 선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동해사(東海寺)는 상산지에 「東海寺: 一名寒山寺在州東十里息山上高秀臺無學上人爲邑基創寺寺後有大明壇處士李景南爲大明皇帝每當祭日焚香拜哭」라 적고 있는데, 일명 한산사(寒山寺)로,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무학대사가 ‘상주는 지형이 행주형(行舟形)이어서 높은 곳에 집을 지어 주읍(舟揖)의 역할을 해야 안정하다.’며 풍수지리에 의하여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이 절은 1638년에 희선장로(熙善長老)가 재창하였고, 1838년에는 용담화상(龍潭和尙)이 삼창(三創)하였다고 전하나 당시의 건물은 없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이 절은 1600년대 중기 숭명처사(崇明處士) 이경남이 경내에다 충효당(忠孝堂)을 짓고 숭명배청(崇明排淸)의 사상을 고취한 후로 이 뜻을 기리는 수많은 시문을 탄생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절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중간쯤에 봉황대(鳳凰臺)가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鳳凰臺: 在州東五里寒山寺北麓疊石崔嵬俯臨大野有舊刻鳳凰臺三字 “주동5리 한산사 북록에 있으니 첩석이 최외하고 대야를 부임하고 있으며, 옛적에 봉황대라 새겨 놓은 삼자(三字)가 있다”」라고 상산지에는 傳하고 있으나 실제로 찾기가 쉽지 않네요, 이 대(臺)에서 상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광활한 시가지 전경을 볼 수 있으며,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서북부 쪽의 산줄기는 가히 한 송이 연꽃을 보는듯한 비경입니다. 조금 더 올라 정상에서면 조망은 더 멀리로 확대되어 눈앞에 펼쳐집니다. 상주 외답농공단지와 상주보, 병풍산 방향의 풍경은 가슴을 아주 시원하게 하기도 하지요. 이곳에서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반대방향으로 국사봉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오면 낙동에서 상주로 이어지는 옛 한양과거길의 "배우이고개"를 만나 서곡동(시내)으로 내려오면, 잘 단장되어 깔끔한 "도림사(道林寺)"가 기다립니다. 혹자는 이곳에서 마주 보이는 노음산(露陰山:728.5m)을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고도 합니다. 이어 고색이 찬연한 "도곡서당(道谷書堂:1551년)"도 접할 수가 있지요,
서곡동 초입에서 동해사- 봉황대- 정상- 배우이고개- 도림사- 서곡동으로 원점회귀를 하는데, 쉬엄쉬엄 사찰에도 들리고 조망도 하면서 옛길도 체험하는데,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곳이 될 것입니다(참고: 상산지, 상주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