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여년의 향(香) 내음
상주시 함창읍 증촌2길 10-13(증촌리 탑동마을 258-2번지)에 보물 두 점을 간직한 아담한 맞배지붕의 용화사(龍華寺: 1954년 중건)가 자리하고 있다. 함창현지(1986년)에는 대사(大寺)라 적고 있는데 「신라시대의 고찰로 현서(縣西) 사창(社倉) 뒤편에 있으니 현재의 함창읍 증촌리 탑동의 용화사로...」라 적고 있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곳에는 본래 신라 문무왕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상안사(詳安寺⇒함창군읍지에는 「祥安寺在宰嶽山或曰蛇安以邑基是形故名云今廢」라 적고 있다)의 유지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이 없어 상고 하기는 어려우나 조각품이 신라시대 석조유물이 수점 남아 있어 규모가 큰 옛 절의 유지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용화사의 보물 두 점이 함창의 오랜 역사와 불교문화를 엿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절의 약사전 안에는 오른쪽에 보물 제118호인 石造如來立像과 왼쪽에 보물 제120호인 石造如來座像 각 일구(一軀)가 봉안되어 있고, 경내에도 석탑 및 석탑재․ 광배편(光背片)․ 장대석(長大石) 등 많은 석조의 부재가 마을 인근에 산재하고 있었던 것을 절 안에 모아 두고 있다. 석탑은 법당을 중건 할 때에 동편 옆집으로부터 옮긴 것이며 법당안의 석불 양구(兩軀)도 석탑 북쪽 대지위에 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봉안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반적으로 법당 안에 들어갈 때 측문을 이용하지만 용화사나 전남 영광의 불갑사등은 정면으로 바로 들어가는데 이는 석불(불상)이 서쪽을 향하여 봉안 되어 있기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 측면이 되기 때문이다.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은 출토불로 전해지며 한 장의 판석으로 여러 입상을 양각 하였으며 판석은 곧 광배를 이루고 있는데 그 표면은 마멸이 심하여 화염문(火焰紋)을 조각 한 것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불상의 높이는 148cm정도로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섬세한 조각의 부분은 알 수 없으나 조형이 정제되고 조성 수법도 우수 하다. 원만하고도 미련한 상호라던가 당당한 양쪽 어께와 가슴, 그리고 부드러운 양팔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에서 느껴지는 인상으로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座像)은 용화사 법당의 주존 불로 봉안 하고 있는데 광배는 없으나 대좌(臺座)를 갖추고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의 석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덟모로 조각한 하대석에는 복판연화문(伏瓣煙花紋)이 조각되어 있고 중대석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으며 상대석은 원형으로 조성 되었고 측면에 앙연(仰蓮)을 홀 잎으로 각 여넓각에 꽃잎을 한 개씩 조각하고 각 면에도 꽃잎을 한 개씩 배치하여 합해서 열여섯 개의 꽃잎인데 각각 꽃잎 안에는 다시 이중의 화판장식이 있다. 불상은 운모가 많이 섞인 화강석으로 조성된 여래상으로 불상의 높이는 168cm 정도이고 전면적으로 마손이 심하여 풍부한 인상을 감하고 있으나 상호가 원만하고 양쪽 어께가 당당하여 통일 신라의 작품으로 추측되며 양쪽 손과 발의 조각이 둔중(鈍重)하고 의문(衣文)이 선명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신라 하대인 9세기 경의 작품으로 추측 할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말에 요사채를 크게 불사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로이 하고 있다.
함창읍 용화사에 보물 제118호와 120호가 소재하고, 상주 왕산에 자리하고 있는 복룡동 석조여래좌상은 보물119호이다. 상주에 석재로 된 작품 중에 보물이 6점 소재하는바, 사벌면 화달리 삼층석탑이 보물 제117호이며 상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각천인상은 보물 제661호이고 화북면 상오리 칠층석탑은 보물 제683호로 지정 되어 있다. 모두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복룡동 석불여래좌상과 상오리 칠층석탑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 佛紀 2559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천년 전의 아름답고 수준 높은 문화적인 향 내음에 한번 심취해 보시지 않으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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