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千仞臺(천인대)와 百仞臺(백인대)
상주시의 최동단(最東端: 동경 128° 20′28″)에 위치한 중동면 우물리에 세칭 길지(吉地)라 일컬어지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절승지(絶勝地)가 있다. 이곳은 두 강(낙동강, 위강)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이고, 세 산(속리산, 일월산, 팔공산)의 종단지(終端地)로서 기(氣)를 더 하는 곳이라 많은 산행객들이 찾기도 한다. 그 이전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1,600년대 초에 남원양씨와 풍산류씨가 입향(入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풍산류씨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셋째 아들인 수암(修巖) 류진(柳珍)이 우물리의 가사리에 터전을 잡아 오늘날까지 많은 문화유산을 남기고 있다. 수암 공의 고향 안동의 하회마을을 “연화부수형”이라 한다면 이곳은 “매화낙지형”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태백에서 가지를 친 낙동정맥이 일월산을 지나고 보현산에 이르러 팔공산으로 나아가기 전에 북으로 이어져 사곡령- 해망산- 삿갓봉- 곤지산- 문암산을 빗고, 상주와 안동사이에 그 자태도 아름다운 비봉산(紫薇山:의성군 다인면)에서 물흥산(物興山)을 지나 수암종택(修巖宗宅) 뒷 줄기로 이어져 낙동강에 닿아 힘차게 솟은 봉(峯)이 바로 합강정봉(合江亭峯)이다. 남으로 향하는 이곳은 왼쪽에 위강, 오른쪽이 낙동강으로 양쪽 모두 기절할 절벽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중국에 있었다면 이곳에도 “귀곡잔도”를 설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대강사업으로 인하여 거대한 호수를 이루어 이곳에 오르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예전에 이곳에는 현감(縣監) 김각(金覺)· 낙서헌(洛西軒) 이항(李沆) 선생이 합강정(合江亭)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산정(山頂)에는 원삼국 시대로 추정되는 봉황성의 흔적도 뚜렷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낙동강에 닿은 절벽을 천인대(千仞臺)라 이름 한다. 맞은편인 낙동면 물량리에서 바라보면 수암종택이 보이는 곡부(谷部)를 중심으로 비슷하게 생긴 대(臺)가 두 곳인데 오른쪽이 천인대이고 왼쪽이 백인대(百仞臺)이다. 그 사이로 물댕이 나루가 있었는데 중동면 우물리 우천에서 낙동면 물량리(탑말개,봉양)를 이었다고 한다. 이곳 천인대에 많은 글(詩)들이 전하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면
『千 仞 臺』(江臯강고 柳尋春류심춘1762~1834) 千仞臺何許(천인대하허) 翠屛天半垂(취병천반수) 中間風度急(중간풍도급) 高處鳥飛危(고처조비위) 淸露承盤影(청로승반영) 癯仙立月儀(구선립월의) 休祥多聖世(휴상다성세) 丹鳳未應遲(단봉미응지) (천인대가 어떠하뇨 푸른 병풍이 하늘가에서 드리워진 것이다. 중간은 바람이 겨우 지나가게 되고 높은 곳은 새가 날기도 위태롭다. 맑은 이슬을 쟁반에 받든 형상이고 늙은 신선이 달빛에 서 있는 모양이다. 聖世(성세)에 아름답고 祥瑞(상서)로운 일 많으니 붉은 봉황이 오는 것이 아마 늦지 않으리) ※江臯(강고) 柳尋春(류심춘)은 洛坡(낙파) 柳厚祚(류후조) 대감의 아버지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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