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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설화의 구조와 의미
조춘호
1. 서 론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인데, 감여(堪輿)· 지리(地理)· 지술(地術) 등으로도 불린다. 땅 속에 있는 살아있는 기운이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수기(水氣)를 만나면 멈추게 되기에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에서 풍수라는 말이 성립되었다. 풍수라는 말의 유래는 중국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쓴 『 장경(葬經)』(일명 『 금낭경(金囊經)』이라고도 함)에서 찾을 수 있다.1]
이처럼 풍수는 인간생존에 있어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바람과 물에 대한 관심의 증폭에 의해 성립되었다. 특히 중국에 있어서는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겁고 거센 바람이 생물을 위협하였고, 양자강과 황하의 범람은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북풍(北風)을 막고 수해(水害)를 피할 수 있는 지점을 택하는 복지(卜地)사상이 생겨났고, 이 복지사상으로부터 땅의 힘과 땅의 모양을 관찰하는 법인 상지법(相地法)이 발달하여 풍수설의 기틀이 되었다. 이후 풍수설은 죽은 자를 좋은 땅에 묻으면 그 복과 기운이 자손에게 미친다는 감응론(感應論)이 제기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풍수의 종류에는 양기풍수(陽基風水)와 음택(陰宅)풍수가 있다.
전자는 주택을 길지에 선택함으로써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조상의 묘를 좋은 당에 조성함으로 해서 자손에게 복이 미치도록 꾀한다는 것이다. 양기풍수는 음택풍수에 비해 그 규모가 크고 집단적이었기에 초기 미분화된 사회에 있어서는 크게 중요시되었으나 사회가 분화되고 개인위주의 사고가 발달해 감에 따라 집합적이고 특수한 계층에 한정된 양기풍수보다는 음택풍수가 훨씬 더 발전하였다. 이는 권력 지위 부 등이 세습적인 사회에서 신분의 이동이나 부의 분배 등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일반 백성들의 잠재적 욕망에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풍수설은 자생적인 것인지 아님 중국에서 전래된 것인지 그 근원에 대하여 논란이 있으나 수천년전부터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자리하여 왔으며,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결정하는 초월적인 작용으로 인식되어 민간신앙으로 자리를 잡아왔다2]. 특히 고려 왕조를 건국한 왕건태조는 후세 왕들을 경계하여 남긴 ‘훈요십조’에 풍수설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을 드러내고 있다. 3]
1]곽박, 『장경』 「氣感篇」, “경에 이르다. 기가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에 닿으면 머문다. 옛사람은 기를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기를 행하다가 멈추게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를 풍수라 하며, 풍수의 술법에는 득수를 으뜸으로 치고 장풍을 그 다음으로 한다.(經曰 氣乘風則散 界水則止古人聚之使不散 行之使有止 故爲之風水 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
2]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46쪽.
3]훈요십조 중 풍수설과 직접적인 관련은 제 2조와 제 8조이다. 제 2조는 사찰건립에 관한 것이고 제 8조는 공주 이남지역 출신의 관리등용 제한에 관한 것으로 풍수설의 폐단을 거론할 때 적시되는 예이다.
諸寺院皆道詵推占山水順逆而開創 道詵云吾所占定外妄加創造則 損簿地德祚業不永朕念後世國王公侯后妃朝臣各稱願堂或增創造則大可憂也 新羅之末競造成浮屠 衰損地德以底於亡可不戒哉.
(訓要十條 중 제2조)
車車峴以南公州之江外 山形地勢並趨背逆人心亦然 彼下州人參與朝庭與王候國戚婚姻得秉國政則或變亂 國家或啣統合之怨犯蹕生亂且其會屬官寺奴婢津驛雜尺或投勢移免或附王候宮院姦巧言語弄權亂政以致 灾變者必有之矣 雖其良民不宜使在位用事.(訓要十條 중 제 8조)
이러한 토양의 바탕 위에 풍수에 관한 이야기인 풍수설화는 문헌기록으로 남겨진 것도 상당하지만4] 오늘날까지 설화의 구연(口演)현장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고 있으며, 그 형태도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5] 이러한 풍수설화 속에는 풍수설의 영향이라는 사회적 의미 외에도 풍수설화 그 자체만으로써도 구연을 즐길 수 있는 문학성이 내포되어 있고, 다양한 양상의 설화들에 어떤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서사구조(敍事構造)가 있어 그것이 풍수설화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풍수설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유형을 정리하고, 그 유형들이 가지는 일관된 질서 즉 체계적인 서사구조를 살펴보고 그러한 서사구조를 통해 표출되고 있는 풍수설화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4] 손정희. 한국풍수설화연구, 부산대학교 박사논문, 1992, 42-50쪽.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에서 편집 발간한 『 한국문헌설화전집』에 수록된 「계서야담」 「청구야담」 「동야휘집」 「어우야담」 「해동야서」 「鶴山閑言」 「梅翁閑錄」 「靑野謾輯」 등에 50여편에 가까운 풍수설화가 수록되어 있음을 정리하였다.
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 한국구비문학대계』에 1260여편의 구비풍수설화가 수집되어 있음이 검토되었다. 신월균, 한국 풍수설화의 서사구조와 의미분석, 인하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1989, 17-18쪽
2. 풍수설화의 유형
주지하다시피 풍수설은 살아있는 인간이 살아가야 할 집의 선택과 죽고난 뒤 인간이 안치(安置)되는 장지(葬地)의 장소여하에 따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무덤에 묻힌 장자(葬者)의 후손에게 길흉화복의 영향이 미친다는 관념으로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고유신앙의 한 형태다.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풍수설이 가지고 있는 과학성이 일부 입증이 되면서 풍수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폭되고 있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풍수설은 민간신앙으로 신봉되면서 다양한 문헌설화(文獻說話)와 구비설화(口碑說話)를 생성 전승시켜왔다.
선행연구에 있어 정리된 문헌설화는 백 수편에 이르고, 최근 조사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구비설화는 천 수백편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방대하고 다양한 풍수설화는 풍수설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그 표현하는 의미나 지향하는 의미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6]
풍수설화는 집터나 묘터를 잡아주는 풍수가(地官)와 집터와 묘터를 제공받는 수용자(喪主 등), 그리고 지관이 명당을 점지해 주고 이를 수용자가 획득하게 되는 동기 또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풍수설화는 이야기로서 전승되기에 이야기의 생명력을 갖게 하는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의 대응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요컨대 화자는 풍수설화의 관심을 어디에 촛점을 맞추어서 구술하며, 청자는 관심을 어디에 두고 경청하는지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풍수설화가 지관과 상주, 명당을 얻게 되는 과정, 그에 따른 발복(發福)이 대부분 함께 나타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에 풍수설화 각편이 갖는 의미의 변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화자와 청자의 관심 부분과 그 대상이 무엇인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풍수설화의 이야기 중심이 명지관에게 있는지, 발복현상에 있는지, 혹은 발복과정에 있는지 등에 따라 그 유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7]
즉 지관 중심 이야기, 수용자(상주) 중심 이야기, 과정 중심 이야기, 기타 등으로 기준을 삼으면 풍수설화의 유형은 가. 지관담, 나. 발복담(發福談), 다. 적덕보은담(積德報恩談)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분류를 기준으로 풍수설화의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6] 강중탁, 풍수설의 국문학적 수용양상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1987.
손정희, 한국풍수설화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1992.
신월균, 한국 풍수설화의 서사구조와 의미분석, 인하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1989.
이수봉, 백제문화권역의 상례풍속과 풍수설화 연구,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6. 등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많은 풍수설화들을 정리하고 그 유형을 분류하고 있으나 그 체게적인 방법의 모색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7]기존 풍수설화의 유형분류는 다음 논문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나 그 체게를 세운 기준의 제시가 혼란스럽다.
강중탁, 풍수설화의 분류시론, 명지어문학 18집,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6.
장장식, 풍수설화의 유형분류, 한국민속학 22집, 민속학회, 1989.
3. 풍수설화의 구조
가. 지관담(地官談)
지관담은 지관을 중심으로한 설화로 지관의 성격이 이인(異人)이거나 이름난 풍수(名風水)이거나 아님 가짜 풍수이거나로 크게 대별된다. 지관담은 명풍수로서의 성격을 지닌 이인의 이야기와 바보인듯하지만 명풍수인 이인의 성격을 가진 이야기가 많다. 대표적인 설화를 한편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서야담』 권2 「嶺南士人」8]
ㄱ. 영남의 한 군에 사는 선비가 나이 마흔에 외아들을 잃고 상심해 있었다.
ㄴ. 과객이 지나다가 그 까닭을 물어 사실대로 이야기 하니 선산의 산소를 면례하면 생남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ㄷ. 선비는 반신(半信)하면서도 과객이 강권하여 면례를 하였다.
ㄹ. 면례를 한 뒤 재취하나 재취한 부인이 죽었다.
ㅁ. 과객이 찾아와 그럴 것이라 하면서 삼취(三娶)하면 생남하리라 했다.
ㅂ. 세쩨부인이 생남하니 과객이 와서 아들의 장수(長壽)를 예언했다.
ㅅ. 과객이 며느리를 구해주겠다 하여 따라가 첩첩산중의 한 노옹과 사돈을 맺었는데 신부가 천하박색이었다.
ㅇ. 자부를 데리고 돌아오니 일가가 자부의 박색에 모두 놀라나 본인은 태연히 1년을 지냄.
ㅈ. 시부모가 늙어 자부에게 살림을 맡겼다.
ㅊ. 살림을 도량있게 잘 하고, 비 올 것 등 앞일 예언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3년만에 살림이 일어 모두 칭찬하였다.
ㅋ. 시부모의 나이가 일흔이 넘자 자부가 땅들을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도록하여 4년만에 재산이 모두 없어졌다.
ㅌ. 자부가 새로운 살 곳을 찾아 친정으로 가서 몇 년을 지냈다.
ㅍ. 시부가 고향생각에 쓸쓸해 하자 자부가 높은 산에 올라 예전 살던 곳을 보게 하니 왜구의 침입으로 황폐화였다.
ㅎ. 시부의 물음에 미물도 천기를 알고 비와 바람을 피한다면서 사람으로 당연한 능력이라 하고, 권속을 이끌고 나아 치산하여 부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야기로 나뉘어진다. 전반은 과객이 이인풍수로 등장하여 절손의 위기에 있는 집안의 산소를 옮기게 하여서 아들을 낳게하여 대를 잇게 하는 이야기이고, 후반은 이인인 며느리의 선견지명으로 가족이 왜구의 난리를 피하고 치산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양분되어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부는 여성이인으로서 고소설 『박씨전』에 나오는 박씨와 비슷한 성격 즉 박색이지만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과객인 이인이 절손의위기에 처한 집에 머물게 됨
②조상묘를 면례하면 위기를 면할 수 있어 면례시킴
③아들을 얻게됨
④이인자부를 얻게 되어 환란을 피하게 됨
이 설화는 이인풍수의 행위를 중심으로 보면 절손의 집안에 머뭄(발단)--조상의 묘를 면례시킴(전개)--대를 이을 아들을 봄(절정)--이인 자부를 봄(결말)로 정리할 수 있으며, 절손의 위기에 있은 영남선비의 입장에서 보면 대를 이을 독자가 죽음(결핍)--면례하면 생남할 수 있음(과제제시)--면례를 함(과제해결)--생남하여 대를 이음(결핍해소)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구비설화에서도 많이 확인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지는 ‘절손의 위기에 있는 선비의 집에 후손을 이을 길지를 정해 면례하게 하여 대를 잇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구비설화에서 ‘사자생손(死者生孫)설화’ 또는 ‘고목생화(枯木生花)설화’라고 하며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9]
이러한 지관담이 다른 풍수설화보다 많은 양이 전승되고 있는 것은 지관담의 성격이 정적(靜的)인 것보다는 동적이며, 논리적이며 지루한 것보다 다소 비논리적이더라도 흥미를 갖게 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바보인듯한 이인은 보통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서민들과 더욱 가까우며, 이 이인이 도와 주는 가짜 지관은 바로 자기 자신이거나 이웃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전승층들은 주인공을 자신들과 동일시할 수 있어 더욱 이야기에 긴장하게 된다. 이 지관담에는 신분의 우열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우열에 의해 대접받고 평가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풍수설화의 또 다른 문학적 가치를 느끼게 한다.
또한 숱한 전란을 겪고 외세의 힘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대내외적인 입장에서 많은 영웅이야기를 만들어 스스로 자긍으로 삼고 영웅결핍의 현실에 대한 보상의 심리를 갖기도 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지관담에서 가난한 학자와 부유한 풍수가 비교되고 있고, 가난을 면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패철(佩鐵)을 구해서 지관이 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 지관이 되는 길이 설화의 전승자들에게는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인식되었으며, 자신들도 기회가 되면 지관이 되고 싶어했던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묘터나 집터의 길흉유무에따라 후손에게 미치는 화와 복의 결과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풍수를 구해 명당을 차지하려고 했던 사회적 현상은 많은 실학자들이 지적한 폐단과 다르지 않아 사회적인 병리현상(病理現狀)이 되었고 풍수설 자체를 허황된 악습으로 전락시키는 역할을 했다.10]
8]『 한국문헌설화전집』 「계서야담」 120-124쪽.
9]최래옥, 고목생화설화의 성격, 관악어문연구 2집, 1977.
10]최창조, 『 땅의논리 인간의 논리』 민음사 1992 중 124-161쪽의 「실학자들의 풍수관」 참조.
『 한국구비문학대계』 6-3.「하인에게 빼앗긴 명당」 11]
ㄱ. 충청도에 두 진사가 있어 항상 ‘뒷산 어디어디가 명당이다’고 말하면서도 선뜻 묘를 쓰지 못하는 것을 종이 들었다.
ㄴ. 종이 그 자리가 탐이 나 계책을 내어 그 자리에 ‘나라에서 묘를 쓴다’고 거짓말을 하여 두진사로 하여금 자리를 포기하도록 하였다.
ㄷ. 종은 논의 나락을 베어 말려 놓고 일부러 봇물을 터뜨려 벼를 물에 잠기게 한 후 벼를 말린다는 핑계로 매일 뒷산에 올라다니면서 그 자리에 몰래 부모뼈를 암장하였다.
ㄹ. 그 뒤 종이 아들을 낳았는데 매우 영리하여 대과에 급제하고 큰 인물이 되었다.
ㅁ. 종은 진사 밑에서 고생한 것을 보복하려는 심정으로 양반의관을 하고 진사를 안하무인으로 대하였다.
ㅂ. 진사가 분하나 어찌할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ㅅ. 다른 묵은 양반들도 쫓겨나고 종이 양반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종이 두 진사가 대화에서 뒷산이 명당이라는 말을 들음
②계책을 내어 진사들 몰래 명당에 부모의 뼈를 암장(暗葬)함
③종의 아들이 대과에 급제하고 큰 사람이 됨
④동네에서 진사들을 쫓아내고 양반이 됨
이 설화를 수용자의 입장에서 정리하면, 종이 뒷산이 명당이란 사실을 엿들음(발단)--계책을 내어 자기부모의 뼈를 암장함(전개)--아들이 과게에 급제함(절정)--양반들을 쫓아내고 양반이 됨(결말)로 단계지울 수 있으며, 미천한 신분(결핍)--명당에 암장(과제)--암장함(과제해결)--아들이 과거급제하고 양반이 됨(결핍해소)의 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명당 자리를 차지하여 발복하는 이야기는 전통사회에 있어서 세습적인 신분의 질곡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고 희망으로 작용하였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발복을 통하여 신분상승하는 이야기는 풍수설화로 분류되지만, 풍수적인 요소가 제거된 많은 신분상승이야기를 조선조 후기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12]
이들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분을 감추고 출세를 꾀하던 조선후기 노비나 종들의 동향을 중심으로 봉건사회의 해체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발복담 가운데는 이 설화와 같이 종이 그 부모를 몰래 명당에 암장하여 그 발복으로 양반이 되는 신분상승의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몰락한 양반집에서 명당발복의 힘을 입어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이야기도 많이 유포되어 있다. 심지어 삼정승 육판서가 난다는 명당이지만 살아있는 삼형제가 죽는 희생을 치루어야만 가능한 명당을 지관이 정해주자 당대의 삼형제를 희생하더라도 후손에게 정승을 볼 욕심으로 그 자리에 묘를 쓴다는 이야기도 많다. 후손에게서 정승을 보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 즉 삼형제의 연이은 죽음도 감수하겠다는 결의는 한 개인의 영화나 복보다는 가문과 혈족을 먼저 생각하는 혈족중심의 사고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문의 영달을 위해 당대 자식들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명당의 발복을 기대하였다. 이는 현실의 고난을 벗어나려는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풍수술과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13]
발복담에서는 발복의 효험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지관의 지술이나 행위가 부각되지 않는다. 발복하는 명당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의식이 강렬하게 나타나나 대부분의 인물들이 미천한 신분이거나 궁핍한 까닭로 지관을 청할 입장이 못되어 상전이나 다른 사람의 묘터 또는 공유지에 투장(偸葬)이나 암장을 통해 발복의 꿈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꿈의 형상화는 조선조 후기의 사회적 상황이 신분적 동요를 보이고 있어 부의 축적으로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었던 사정이 반영되어 형성된 이야기라고 파악된다. 이처럼 자신의 복으로 명당을 차지한 이야기의 내면에는 부귀는 하늘이 정해준다는 운명론적 사고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구비문학대계」6-3, 「하인에게 빼앗긴 명당」, 231-235쪽.
12]이우성 임형택, 조선후기한문단편집 중, 일조각, 1984.
13] 경산시 유곡동 달성서씨 선산 하에 박씨묘가 있는데, 이 곳에 전해는 이야기로 박시묘는 달성서씨 딸네의 시부묘라 전해진다.(필자조사)
다.적덕보은담(積德報恩談)
적덕보은담은 적덕과 보은의 주체가 모두 사람이기도 하지만 적덕은 사람이 보은은 동물이 하는 이야기도 많다. 또한 이야기의 주체가 적덕하는 이가 되기도 하고 보은을 하는 이가 되기도 한다. 곧 사람이 동물에게 은혜를 베풀고 동물이 명당이나 어떤 일을 지시해 그것을 따른 사람이 보은을 입는다는 이야기인 ‘나무꾼과 선녀형’의 이야기도 많이 유포되어 있으며, 본격적인 풍수설화에서는 적선의 주체자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적선하여 도움을 받은 이가 지관이어서 명당을 점지해 주어 그로인해 발복하여 큰 행운을 잡게 된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한 적덕 즉 죽 한그릇 또는 물 한그릇을 대접하고 명당을 점지받아 살아 생전에 찢어질듯한 가난을 해소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당대발복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설화를 한편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동야서』 「李措大學峴訪地士」 14]
ㄱ. 풍수객 이의신이 산맥을 찾다가 좋은 곳을 발견하였다.
ㄴ. 몹시 허기가 져서 고개아래에 있는 집을 찾아가 죽 한그릇을 얻어 먹었는데 그집이 마침 초상집이였다.
ㄷ. 허기를 면한 것이 고마워 찾아놓은 길지를 그집에 일러주고, 묘를 쓰고 난 뒤 부자가 될 것이나 십년이 지나면 면례하려는 의논이 있을 것이므로 학현에 있는 자기를 찾아오라고 일러 주었다.
ㄹ. 이의신의 말대로 부유하게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다.
ㅁ. 십년이 되자 한 과객이 찾아와 묘터가 복치형(伏雉形: 꿩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므로 꿩은 한 곳에 오래 엎드려 있지 못하니 십년이 지났으니 기가 쇠하였다며 면례할 것을 권하였다.
ㅂ. 주인이 이의신의 말이 생각나 학현으로 이의신을 찾아갔다.
ㅅ. 주인이 올 줄 알았다며, 묘의 주인과 함께 무덤으로 가서 무덤 주위의 산세를 설명하였다. 즉 무덤 앞은 구현(狗峴:개모양의 언덕)이고 뒤는 응봉(鷹峰: 솔개모양의 산봉오리)이고 앞에 흐르는 내는 묘천(猫川: 고양이 모양의 내)이어서 꿩이 움직일 수 없다고 설명함.
ㅇ. 주인이 탄복하면서 면례를 하지 않았다.
ㅈ. 그 때의 상주가 송산이씨였는데 송산이씨는 이때부터 창성하였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풍수객 이의신이 길을 가다가 몹시 허기가 짐
②길가의 집에서 죽을 한그릇 얻어 먹음
③마침 상가여서 자기가 봐둔 명다을 소개함
④점차로 부유하게 되어 잘 삶.
이 설화는 일어난 행위를 중심으로 보면, 풍수의 허기짐(발단)--죽을 얻어 먹고 허기를 면함(전개)--명당을 정해 줌(절정)--명당의 발복으로 잘 살게 됨(결말)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수의 굶주림(고난)--시헤자의 도움으로 굶주림 면함(고난해결)--명당점지(과제)--발복(과제해소)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시혜자가 상주인 것은 일반적인 풍수설화와 같으나 보은자가 뛰어난 풍수가로서 예언자로서의 성격까지 갖춘 이인으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적덕의 행위도 굉장한 것이 아니라 죽한그릇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보답은 풍수가가 애써 찾아 둔 명당길지를 제공하여 큰 발복을 보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동야휘집」의 “득복지미아작배(得福地美娥作配)”15] 등 문헌 구비 모두 많은 이야기가 확인된다.
한편 적덕보은담은 아무리 명당을 차지하였다 하더라도 그 집안의 내력에 큰 죄를 지은자가 있었다면 발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사고나 도선 등 명풍수가 보은하기 위하여 잡아준 명당이라하더라도 적덕자가 아니거나 집안에 큰 악행을 행한 자가 있으면 묘를 쓰고 난 뒤에 바로 절명하거나 병이 나거나 집안이 망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다16]. 이는 악행자에게는 명당이 없으며, 그 화(禍)를 반드시 자손이 받게 된다는 인과론(因果論)의 반영이며, 적선자에게는 복이 있고 악행자에게는 화를 내린다는 중세적 사고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적덕을 행하는 주체는 대부분 아주 가난한 형편의 사람들이고 적덕의 은혜를 입고 보은을 행하는 이들은 현재의 신분이 무엇이던 간에 지술(地術)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관들로 지술로 은혜를 갚는다. 이야기 중에는 은혜를 입을 때는 나이가 어려 보은 할 수 없었거나 지술을 몰랐으나 나중에 의도적으로 지술을 배워 은혜를 갚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활인적덕(活人積德) 즉 죽고자 하는 사람 또는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서 살려내는 활인적덕담은 반드시 그 은혜를 갚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남을 도와주기에는 자신이 너무 가난하지만 있는 모든 것을 주어 살려낸다.
이 활인적선담에는 적선을 행하는 당사자는 물론이지만 그 가족까지도 자신들의 형편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적선에 불평하지 아니하고 옳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는 등 가족의 마음이 한결같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개인의 적선으로 가족 내지 가문의 발복을 얻을 수 없다는 혈연적 집단의식의 반영이라고 해석된다. 이 적덕보은담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는 전통적 인과응보의 인식이 반영되어 풍수설화 중 가장 많은 양을 보이고 있다.17]
적덕으로 인하여 명당을 얻고 명당의 발복을 입는 이야기 가운데 명당에 묘를 쓴 후 아내를 얻게 되고 이 아내의 도움으로 부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적덕으로 명당의 금시발복으로 돈많은 과부, 재상가의 딸 등 이러한 여자와의 결합으로 남자가 벼락부자가 되거나 벼락양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보은과 발복의 중심이 전적으로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4]『한국문헌설화전집』 6, 「해동야서」 ‘李措大學峴訪地師」, 539-540쪽.
15]『한국문헌설화전집』 3, 「동야휘집」 “득복지미아작배”, 289-296쪽.
16]이러한 이야기는 구비풍수설화에 많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명풍수가인 이들이 자신들의 묘는 명당에 쓰지 못했다던지, 이들이 잡아 준 산소자리가 발복이 되지 않았다던지 등의 이야기가 많이 구전되고 있다. 현재에도 많은 풍수가들에게 ‘福人得吉地’라는 인식이 확고하며, 복인은 남에게 많은 은혜를 베푼 즉 적덕자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강조하고 있다.
17]신월균, 앞의 논문, 20-21쪽.
4. 풍수설화의 의미
풍수설화는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의식이나 이해에 걸맞는 단편적인 문학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의식과 이해가 반영된 문학이며, 이에는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잘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설화에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산천숭배신앙이나 산신숭배, 지령숭배(地靈崇拜)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장지(葬地)를 구하러 갈 때 흔히 답산(踏山)하러 간다거나 구산(求山)하러 간다는 표현은 장지 자체를 산으로 보고 산에 정성을 드리면 감동하여 보답이 있다고 믿어왔다.
이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무격(巫覡)신앙과도 접맥된 것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민족의 생활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즉 무격은 정령과 접근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특수한 의식을 통해 인간이 소망하는 것을 빌어주고 예언도 하고 병도 다스리는 사제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풍수가를 지세를 보고 땅의 길흉을 점치는 자라고 하여 상지자(相地者)라 불렀는데 이는 예언자적 성격을 가진 무격의 역할과 닮은 점이 있다.
풍수설화에는 영혼불멸관(靈魂不滅觀)이 내재되어 있다. 조손일치의식(祖孫一致意識)에 의해 죽어서도 후손의 발복을 위해 좋은 자리 곧 명당에 들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사자생손(死者生孫) 혹은 사자득손(死者得孫) 혹은 고목생화(枯木生花)설화는 절손(絶孫)의 위기에 있는 가문에 대를 잇게할 수 있는 길지(吉地)를 정해 장례를 치러 후손을 보고 대를 이을 수 있다는 설화는 이러한 의식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풍수설화는 우리 민족이 가진 천(天) 지(地) 인(人)의 합일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기복(祈福)과 발복(發福)에 나타난 것은 현실중심적 세계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양의 적덕보은담이 바로 이러한 천지인이 조화롭게 합일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풍수설화에 나타난 천지인은 우리 민족이 보편적으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하늘은 삼라만상을 주재하고 관장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이며, 땅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그 기운인 지기(地氣)에 의해 그 속에 들어온 시신에게 많은 감응을 갖게 하며, 사람은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자보다 무식하고 천한 신분이지만 남을 위해 인정을 베푸는 소박한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풍수설화에 반영된 명당은 이들 천지인이 합일되고 조화를 이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라는 저서에서 최창조교수는 다음과 같이 명당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地有機體的 사고관념은 천지인 상관적 관념의 연속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민족에 있어서는 모든 사상체계의 기본이랄 수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開基 時에는 땅의 주인이 반드시 地運과 그의 사주팔자와 운세를 가리어, 좋은 날 밤중에 정성스럽게 술 과일 포 소금 향 초를 준비해서 제물을 갖추어 토지어 신에게 고하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 바, 땅을 파서 깊이 깨끗한 흙을 열고 반드시 새 땅을 본 뒤에 그친다. 혹 나무뿌리, 사람의 모발 및 다른 더러운 물건이 있으면 다 제거한다. 흙의 성품, 즉 土性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땅에는 각각 주인이 따로 있는 만큼(地有各主) 좋은 땅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지인의 음양오행에 맞추어 相生과 相比 그리고 相剋을 살펴 天性과 地性 人性이 서로 맞아야 한다. "18]
풍수설화에서 가장 많은 양을 보이고 있는 적덕 보은담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천지인이 합일된 조화로운 세게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효행은 인간 뿐아니라 미물까지도 감동시켜 명당을 얻는다는 이야기나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 인명을 구하는 활인적선의 공덕 뿐만 아니라 하찮은 죽한그릇 물한그릇이라도 자신의 정성을 다하여 적선하여 명당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사람의 도리를 다한 까닭에 하늘과 땅을 감동시켜 명당을 얻고 발복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곧 명당구득과 발복은 이러한 천지인의 합일과 조화가 이루어 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관점과 해석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와 폐단을 지적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19] 그러나 이는 풍수설을 보는 시각의 편협성을 드러 낸 것이다. 풍수설을 단순한 기복적이고 운명론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인 까닭로 여겨지지만, 많은 풍수설화에는 ‘착하고 바르게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심성이 잘 반영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최창조,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서해문집, 434쪽.
19]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의 논문을 들 수 있다.
이종항, 풍수지리설의 성행의 원인과 그것이 우리 민족성에 미친 악영향에 관한 일고찰, 경북대학교 논문집 5집, 1966.
5. 결론
풍수설은 우리의 토양에서 자생한 것인지 중국에서 유입되어 우리의 전통사상과 습합되어 발달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규명은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풍수설에 관한 민중의 인식은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과 성품 생활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행복추구와 자손번영에 대한 욕구를 하늘의 도움과 땅의 살아있는 기운을 이용하여 해소하고자 한 것이 풍수설의 본질로 파악된다.
풍수설화에 나타난 다양한 이야기를 지관담 · 발복담 · 적덕보은담으로 단순화시켜 그 구조와 의미의 분석을 통해 풍수설화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명당을 점지해 발복하게 해 주는 지관이 보통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풍수설화를 전승하고 있는 자신들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풍수설을 허황되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 현실부정적 또는 기복적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둔 세게관에 입각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러하기에 발복과 보은이 천지인의 조화와 합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음을 설화 각편의 분석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풍수이야기만을 대상으로 풍수설을 살폈고 풍수설에 대한 인식을 검토하였기에 풍수설의 폐단 또는 허상, 풍수설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악영향 등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하였다. 풍수설화에 나타난 구체적인 풍수이론의 검증은 그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풍수설의 수용이 어떻게 얼마만큼 민중들에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논의는 풍수설에 대한 필자의 이해가 더 깊어진 이후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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