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마을의 洞祭記錄 120년-
한 마을의 역사, 소통과 화합으로 마을 발전.
매년 대부분 正月에 行하여지는 민속신앙(民俗信仰)인 동제에 관한 기록(대가리동제사)을 『120년간』이나 이어 온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이안면의 중심부인 대가산(大佳山) 자락 아래로, 성주이씨(星州李氏) 집성촌(集成村)인 흑암리 대가마을이다. 이 산은 상산지에는 佳嶽山으로『在利安面芍藥一枝東走爲咸昌鎭山其南有佳嶽李將軍軸故里』로, 함창군읍지에는 大駕山으로『在西七里俗傳伽倻王遊幸于此故名云』이라 적고 있다.
동민이 질병(疾病)과 재앙(災殃)으로부터 풀려나고 농사가 잘되고 육축(六畜)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이 마을의 동신(洞神)은 면도 변(邊) 흑암리 381-1에 정좌(正坐)한 자연입석(自然立石)이다.
제일(祭日)은 정월대보름날 01:00로, 제관은 매년 마을노인회 총회 시 생기복덕(生起福德)이 있는 3명(제주와 축관, 공양주)을 선정한다. 제관들은 시행 3일전에 문전(門前)과 동신 주위에 황토를 뿌리고, 왼새끼를 꼬아 한지를 꽂고 금(禁)줄을 쳐서 타인의 출입을 금하고 목욕재계를 하고 출행을 삼간다. 당일 제수(祭羞)는 떡(백설기3되), 밥과국(쌀1되), 나물무침3그릇(도라지,고사리,콩나물), 삼실과(三實果)이며, 술은 반드시 정종을 올린다. 이날 소지(燒紙)는 12장(주민부귀와 복록3, 가축의 번식과 무병3,질병과 재화방지3,풍년농사3)으로 온갖 정성을 다한다.
제의(祭儀)절차는 제주가 분향, 재배, 헌작, 독축, 소지, 재배의 順이고, 축문은 『維歲次干支 某月 干支朔 某日干支 幼學 000 敢昭告于 洞神奠座 前日村下 竪石 爲之洞神 主鎭四方 災退祥臻 招選吉人 謹誠齋沐 伏惟尊靈 勿抱勿忌 敬伸奠獻 尙饗』이다.
속전(俗傳)에 입석신은(立石神: 높이1.5m,둘레3.0m)은 임진왜란 때 창의군의 선봉장인 가악재(佳岳齋) 이축장군이 대가산에 올라 적침(敵侵)을 감시하던 차, 이안마을에서 대가마을로 왜병이 들어오자 큰 바위를 던지니 왜병이 놀라서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그 후 이 바위는 왜병을 물리치고 마을에 태평을 안겨준 바위라 하여 동신으로 모시며 동제를 올렸다고 한다.
1999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로 동신의 자리가 편입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앉은 것이라 한다. 이 마을에는 가악재 장군의 묘소와 사당인 경충사(景忠祠)가 자리하고 있으며, 당일 아침에 전 동민이 모여 음복하고, 마을회의도 열고 윷놀이도 하면서 하루를 즐긴다.
이제 동제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주민의 소통(疏通)과 화합(和合)으로 변모(變貌) 되어 마을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대가마을 동제의 역사는 400여년이라 하나 을미년(乙未年,1895년)부터 내용을 기록화 하기 시작하여, 자그마치 동제(마을)의 역사가 문서로 증명된 것만 금년이 만 120년(乙未年,2015년)이라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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