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판서 권찬(權纘)
?∼1560(명종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조(繼祖). 유순(有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琳)이고, 아버지는 민수(敏手)이며, 어머니는 김휘손(金徽孫)의 딸이다.
1532년(중종 27) 생원으로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34년 주의(注擬)에 이어 설서(說書)가 되었는데,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될 뻔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듬해 호조좌랑이 되고, 1538년 헌납(獻納)·부교리(副校理)가 되었다.
1539년 시강관·장령(掌令)·응교(應敎)를 거쳐 이듬 해 부응교·사간을 역임하였다. 1541년 직제학·동부승지가 되고, 1544년 병조참지에 이어 특명으로 승지에 서용되고, 경주부윤으로 통정대부가 되었다가 곧 가선대부로 승격하였다.
인종이 즉위하자 공조참판으로 『중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인종이 죽은 뒤에도 역시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호조참의가 되고, 이듬 해 이조참의를 거쳐, 1547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550년 대사헌이 되고, 1553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가 승려들의 도적 행위를 적발하고 이의 점검을 주장했으며, 흉년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 1556년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나, 윤원형(尹元衡)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소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1557년 호조판서가 되어서는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국가의 재정을 풍부히 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듬 해에도 국가 재정이 부족하므로 재실(災失 : 재해로 인한 손실)의 법을 밝혀 각 읍의 전답 수를 파악하고, 암행어사를 파견해 여러 읍의 수령들을 사찰하고 민생을 편안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1559년 지중추부사에 임명되고, 동생인 소(紹)와 함께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다 하여 가자(加資 : 품계가 오름)되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오르고 정문이 세워졌다. 이것 때문에 사간원에서는 부당하다는 소를 올렸으나 허락되지 못하였다.
벼슬은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딸이 중종의 5남인 덕양군 기(德陽君岐)의 부인되어 왕실과 사돈간이 되었다. 찬성에 추증되었다.
동생 권소(權紹) 묘(전)와 형 호조판서 권찬(權纘 ) 묘(후) 전경
호조판서 권찬 묘 전경
호조판서 권찬(權纘)의 동생 권소(權紹) 묘-권찬 묘 앞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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