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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북 상주] 함창김씨 시조 전고령가야왕릉(傳古寧伽倻王陵)

장안봉(微山) 2016. 5. 16. 05:16

전고령가야왕릉(傳古寧伽倻王陵)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에 있는 고령가야의 왕릉으로 전해오는 고분.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 1기. 원형봉토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29 함창현()의 건치연혁조에 의하면 함창은 ‘본래 고령가야국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아 고동람군(, 일명 )으로 하였다가 경덕왕 때에 고령()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서기 41년(유리이사금 18)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육가야 중 이곳 함창에 고령가야국을 건국한 태조왕의 왕릉을 ‘서릉(西)’, 왕비릉을 ‘동릉()’이라 한다.

1592년 ‘(고령국태조가야왕릉)’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묘비가 발견되어 당시 관찰사 김수()와 함창현감 이국필() 등에 의하여 확인된 뒤 함창김씨()의 자손들이 매년 10월 1일과 3월 15일에 향사를 지내오고 있으며, 1712년(숙종 38) 왕명에 의하여 묘비()와 석물()을 다시 건립하였고, 그 뒤 수차례 비를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왕릉은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원형봉토분으로 약간 구릉진 지대에 있으며, 능의 크기는 직경 6.7m, 둘레 21m, 높이 3m이며, 앞에는 비석 1기, 석등 1기, 상석 1기, 석상 1쌍, 석수 2쌍이 있다. 왕릉 앞의 50m 지점에 재사()인 만세각()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200m 정도 떨어진 동편의 구릉진 쪽에 왕비릉이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함창김씨시조고령가야왕릉입구

 

 

함창김씨(咸昌金氏)

 

함창()은 경상북도 상주시()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대에는 고령가야국()이었다. 524년(신라 법흥왕 11) 고동람군( : )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고령군()으로 고쳤으며, 관산현() · 가선현() · 호계현()을 영현으로 관장하였다. 964년(고려 광종 15) 함녕군()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상주()에 속하게 하였다가 후에 함창현으로 개칭했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 태종이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함창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 함창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폐지되고 상주군에 병합되면서 함창면이 되었고, 1980년에 함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함창김씨()는 근원을 달리하는 두 계통으로 그 시조를 각각 달리 하고 있다.

첫째로는 김해()의 구지봉()에서 김수로왕()과 함께 금합()에서 태어난 고령가야왕()의 후손이다. 왕손은 253년(신라 첨해왕 8) 실국 후 대다수는 가야연맹()의 각국으로 이산하고 혹은 백제()로 망명하였으며 일부는 고국()과 주변에 은둔하면서 투쟁을 계속하다가 신라()가 고령가야국()과 사벌국() 유민() 중 항거()하는 왕족과 호족 80여 가()를 영덕()의 사도성()으로 이주시켰는데 그때 추방된 일파()에서 고려 인종 때 출생하여 현달()한 덕원군() 김종제()와 덕양군() 김종계() 형제()를 중조()로 하여 새로이 문호를 열었으며, 그 후 의산군() 김세순()의 종파와 어사공(使) 김균()을 지파로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다른 계통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 김인관()의 14세손 김선()의 후손이다. 김선은 1468년(세조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강원감사()로서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에 책록되었고 함안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선대의 세거지인 함창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자금문

고릉관

 

가야문

고령국태조가야왕릉/고령국태조가야왕비릉

사당 숭녕전(崇寧殿)과 영정각(좌)

태조왕릉입구

 

전고령가야왕릉 전경

고령국태조가야왕릉

재실 만세각

왕비릉 전경

 

 

 

왕비릉 전경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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