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스크랩] 조선 8대 명당이라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韓蘭)선생 묘

장안봉(微山) 2016. 2. 29. 19:42



 2009년 7월 5일 목요반 수강생 중 10여명과 함께 현장실습을 위하여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韓蘭) 선생 묘소(墓所)를 찾았다.



 차에서 내리자 웅장한 순전(脣氈)의 모습(사진①)이 왕릉을 연상시키며 눈길을 끌었다. 옆으로 난 계단을 통하여 혈장(穴場)에 오르니 혈(穴) 앞의 소명당(小名堂)이 길게 뻗어나가고 그 끝이 솟아올라 앞을 약간 가리는 듯한 특이한 혈장이 재미있었다.(사진②) 마치기다란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묘 앞(사진③)으로 가서 묵례를 올리고 혈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혈증(穴證)을 찾는데는 실패하였다. 다시 입혈맥(入穴脈)(사진④)을 살펴보기 위해 묘 뒤편으로 가니 산신제 상석이 입혈맥을 누르고 있어 눈에 거슬렸다.



 맥을 따라 혈성(穴星) 머리에 올라보니 철조망으로 차단되어 더 이상 외입수(外入首)와 부모산(父母山) 및 소조산(少祖山)을 밟아 볼 수가 없었다. 발길을 돌려 입혈맥을 천천히 살피며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 본 바대로 실망감을 없애줄 만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밝고 단단해야 할 토질이 그렇지 못했고 혈을 맺기 위한 몸부림도 없었다. 입혈맥은 최종적인 탈살(脫殺)로 기(氣)를 모아 혈(穴)에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말하자면 기복(起伏)없이 흘러내리고 굴곡(屈曲)도 없으며 속기(束氣)도 약하고 힘없이 퍼져서 되는대로 흘러내리는 소극적인 모습이 아쉬웠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이라면 혈성머리(星頭)로부터 혈까지 약 ⅔지점쯤에 작은 바윗돌이 있는데 그 뒤로 속기의 흔적이 있고 잠시 맥이 멈출 듯한 흔적에 위안을 삼기로 했지만 못내 아쉬웠다.



 다시 혈장에 내려와 혈증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혈장의 양 옆이 거의 굴곡이 없이 혈 뒤에서 순전까지 곧게 앞으로 나갔다. 이곳에 특별히 풍비(豊肥)하게 부풀어서 기(氣)가 뭉쳐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다만 오른쪽(백호방) 혈장의 옆 부분이 다소 완만하게 살쪄나간 곳(사진⑤)이 있지만 그 정도로는 약했다. 왼쪽(청룡방) 혈장의 옆은 전혀 살찐 곳이 없이 곧게 앞으로 나가니 이곳이 혈장인지 지나가는 맥인지 구분을 못할 만큼 혈증이 전무(全無)하였다.(사진⑥)




 혈 뒤편은 곡장(曲墻) 뒤로 약간 도두룩하게 솟은 흙더미가(사진⑦) 쌓여 뇌두(腦頭) 역할을 하고 있는데 주변 지세를 살핀 바 인작(人作)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보통 뇌두 뒤는 잘록하고 분수처(分水處)가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못하고 평평하게 퍼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 자리의 최대 혈증은 순전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혈이 혈장에 단단히 고정되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혈과 혈장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니 혈을 상하(上下)로 옮긴다 해도 지금과 별 차이가없을 정도이니 반드시 이곳이어야만 한다는 그 혈증(승금, 상수, 인목, 선익, 우각, 분합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승접법(乘接法)에 보면 수성의 성질은 움직이니 그 고요한 것을 취하고 목성의 성질은 고요하니 그 움직이는 것을 취한다(水性動取其靜, 木性靜取其動)했으니 이곳 혈장은 앞뒤로 곧게 뻗었으니 수성보다는 목성에 가까우므로 그 동처(動處)를 취해야 하는데 취할 동처(動處)가 없는 것이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소위 조선8대 명당이라 소문난 곳이 아닌가. 그런 곳이 어쩌다가 혈인지 아닌지를 의심받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내 안목이 잘못 되었겠지 하면서 진혈 여부의 판단은 잠시 유보하기로 하고 용(龍)혈(穴)에 이어서 사(砂)수(水)를 살펴보기로 한다.




 기다란 소명당 끝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백호작국(白虎作局)에 소조산도 백호 쪽에 솟아있었다. 3중(三重)의 백호(사진⑧)가 꽃잎처럼 혈장을 감싸니 내가 화심(花心) 속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청룡도 유정(有情)하게 감싸 안고(사진⑨) 그 끝으로 수구(水口)가 되었다.(사진⑩)



 명당(明堂)은 대체로 둥근 형태로 손바닥 가운데처럼 아늑하고 수취천심(水聚天心)하였으니 발복이 장구할 상이다.(局員則悠久 : 국이 둥글면 유구하다.) 참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명당 가운데를 향하지 못하였으니 혈장이 국내(局內)에서 청룡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명당이 향(向)을 중심으로 왼쪽은 좁고(사진⑪) 오른쪽은 넓으니(사진⑫) 중심을 향하지 못하여 자손이 고르게 잘 되지 못하고 차등이 있을 수 있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우수도좌(右水倒左)에 청룡이 백호보다 짧으니 흠이 된다. 만약 청룡이 길어 백호 밖을 감쌌다면 수성(水城 : 물길)이 지현굴곡(之玄屈曲)하여 대지(大地)의 기틀을 마련하였을 텐데 그렇지 못하여 아쉬웠다. 따라서 내당수(內堂水)를 청룡이 완전하게 역수(逆水)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들어올 때 보았듯이 가용만마(可容萬馬 : 만 마리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의 넓은 외명당(外明堂)의 물길도 내명당의 물길과 같이 우수도좌(右水倒左)이니 아쉽다 그러나 청룡과 안산의 사이로 수구사(水口砂)(사진⑬)가 외명당을 차단하니 안심이 된다. 글에 이르기를 명당에는 내외가 있는데 내명당은 발복의 느리고 빠름을 주관하고 외명당은 발복의 크고 작음을 주관한다(明堂有內有外. 內則主發祿之遲速. 外則主發祿之大小)고 하였으니 이곳은 명당만을 놓고 본다면 소명당, 중명당, 대명당을 다 갖추었으며 각기 합법하니 발복이 빠르고 또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나경 사용법 교육을 위하여 측정하여 보기 전에 먼저 뒤로 용 쪽을 보니 좌선룡(左旋龍)이었고 명당수(明堂水)는 우선수(右旋水)로 배합이 잘 맞는다. 방위는 건외입수(乾外入首)에 건입혈맥(乾入穴脈)에 건좌손향(乾坐巽向)이며 오득손파(午得巽破)였다. 즉 양룡(陽龍)에 음향(陰向)에 양득수(陽得水)니 음양박잡(陰陽駁襍)으로 정음정양(淨陰淨陽)법에 맞지 않고 88향법으로는 수국(水局)에 절처봉생(絶處逢生) 자생향(自生向)에 당면출수(當面出水)로 불가경용(不可輕用 : 俱從天上去 ~ 不可冲犯地之 ~ 左水不可來 ~ 右水或大或長而來 ~ 百步轉攔不見蕩然直出 ~ 總之龍不眞穴不的不可亂扦 : 가벼이 사용할 수 없다. : 모두 천간자로 나가야 하고 지지를 범하면 안 되며 왼쪽 물이 오면 안 되고 오른쪽 물이 크거나 길게 와야 하며 백보전란하고 탕연직출하는 것이 보이면 안 된다. 전체적으로 용진혈적하지 않으면 함부로 천장할 수 없다.)에 해당한다.


 한 수강생이 묻기를 이곳은 향법 상 절향절류(絶向絶流)라 한다는데 맞는지를 물었다. 답하기를 그 말은 요즘 사람들이 붙인 이름같고 원전을 보면 지리오결에는 자생향(自生向)에 당면 출수(當面出水)라했고 직지원진에는 자생향에 소천간출수(消天干出水)라 했으니 절향보다는 자생향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하였다.


 또,한 수강생이 묻기를 백호쪽 오방(午方)득수(得水)가 팔살황천이 아니냐고 하기에 잠깐 설명하고자 한다. 팔살황천은 관귀효살(官鬼爻殺)로 오는 물을 꺼리고(忌來水) 향을 꺼리며(忌向) 택일에도 적용(乾山忌壬午 : 건룡(乾龍)에 임오(壬午)연월일시를 꺼림)된다. 글에서는 내룡좌산에 모두 그것을 보기를 꺼린다. 범하면 형육이 있다.(凡來龍坐山俱忌見之主犯刑戮)고 하였다. 이곳도 건룡(乾龍)에 오수래(午水來)로 황천살이다.


 다시 나경의 인반중침으로 주변 사(砂)를 측정하니 제일 높은 봉우리가 백호쪽의 곤방사(坤方砂)인데 성수오행상(星宿五行上) 목성(木星)으로 왕사(旺砂)이니 발사가(撥砂歌)에 이르기를 왕사는 재록을 맡고 자손이 많다.(旺司財祿多子孫)고 하니 길(吉)하고 그 옆의 정방사(丁方砂)는 소위 삼길육수방에 남극성으로 장수를 상징하고(天星曰南極 ~ 其所主人福壽 : 천성은 남극성이라 하고 그곳은 사람의 복과 수명을 주관한다.) 성수오행상으로는 노사(奴砂)가 되니 재물을 가져다 줄 봉우리로 생각된다.(奴砂爲財帛居官得祿又和平 : 노사는 재백이 되니 벼슬하여 녹봉을 얻고 또 화평하다.) 하지만 이기(理氣) 못지않게 형기(形氣)가 중요하니 우리 수강생들은 이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형세 보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수강생이 어디서 보았다며 이곳이 기룡혈(騎龍穴)이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말하기를 기룡혈은 행룡(行龍)하는 중간에 맺히는 혈인데 이곳은 용진처(龍盡處)에 해당하는 곳이며 아마 그 말은 소명당 끝이 솟아올랐기 때문에 나온 말 같은데 그렇다고 기룡혈은 될 수 없다했다.


 또, 한 수강생이 묻기를 이곳은 형국(形局)이 누에혈(臥蚕穴)이라 한다는데 맞는지 물어왔다. 답하기를 형국 즉, 갈형(喝形)은 혈장 모양뿐만 아니라 용세(龍勢)와 안산(案山) 등을 참고하여 정하는 것인데 그 말은 이곳 혈장이 누에가 누운 것처럼 보이니까 붙인 이름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한 송이 꽃봉오리로 보인다고 답했다.



 끝으로 이곳의 최대 쟁점이자 특징은 조선팔대 명당에 걸 맞는지부터 짚어 보아야겠다. 물론 많은 후손의 발복으로 치자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진혈여부(眞穴與否)부터 판별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진혈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혈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곳의 혈증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두(星頭)에서 혈(穴)쪽으로 입혈맥 ⅔지점의 바윗돌 부근에 있는 약간의 속기 흔적과 잠시 멈춘 듯한 곳이 첫째고 그 다음으로는 혈의 백호쪽 혈장 옆으로 다소 살쪄 나온 부분(사진)이 둘째고 풍만한 순전이 세 번째 혈증이 되겠는데 조선팔대 명당이라는 칭호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혈증이다. 왠지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에 맑고 밝은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와서 보아야겠다.

출처 : 민중원 풍수학당
글쓴이 : 야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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