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임당리 김씨고택]
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 19세기에 건축된 집으로 추정되는데 내시(內侍)들이 대대로 살던 집이란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현재 안채○큰사랑채○중사랑채(중문간채)○큰고방채○작은고방채○대문채○사당이 존재하고 있다.
임당마을은 운문산 한줄기가 서북으로 뻗은 시루봉(538m)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다. 동창천(東倉川)을 바라보며 마을은 아늑하게 형성되었고 고택은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내시부통정김일준가세계 內侍府通政金馹俊家世系>에 세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16대까지는 내시로 봉직했음을 알 수 있다. 말년에 퇴임 후 낙향해 이 곳에 머물다가 사망하면 여기에 묘를 쓰곤 하였다.
이들은 국가에 기여한 바 있어 제9대 정세경의 경우는 1727년에 봉작한 원종공신 훈작에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이 되었다. 17대 이후는 실제 내시로 봉직하지 않고 향리 발전에 적극 기여해 왔다.
내시들의 묘소는 현재 마을 뒤의 재궁산, 중솔산(中率山)과 운문면 묵방동(墨防洞)의 안산에 산재해 있으며, 묘표석과 석의물(石儀物)이 갖추어져 있다.
고택은 솟을대문에서부터 시작하는데 5칸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큰사랑채, 우측에 중사랑채가 있다. 대문과 다른 건물들은 서남서향이나, 큰사랑채와 그 뒤에 있는 곳간채는 남향하고 있다.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필 수 있는 자리를 절묘하게 차지하였다.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에 측면 2칸의 평면을 하고 있는데 사랑방이 2칸이고 나머지는 대청이다. 중사랑채는 홑처마 맞배지붕에 정면 4칸 측면 2칸인데 왼쪽 1칸이 중문이 되었다. 통과하는 이들을 살필 수 있게 배치에서 유의하였다. 방 3칸, 마루 3칸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북향하다시피 했고 앞에 작은 고방채가 마당을 가로막았다. 안채와 작은 고방채 서쪽 산기슭 쪽으로 큼직한 큰 고방채가 가로막고 있어 결국 ㅁ자형의 배치 구성이 되었다. 안채 뒤에 장독대가 있고 중사랑 남쪽에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대궐을 바라다보고 북향해서 지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이다.
중사랑채 쪽부터 건넌방○대청○안방○부엌의 순이다. 안채 안방의 벽체는 이중으로 되었다 하나 확인할 수 없었다. 큰 고방, 작은 고방채는 수장 전용 공간이고 작은 고방 한 쪽 끝에 디딜방아를 설치했으며 큰 고방 북쪽 끝에 내측(內厠)이 있다.
또 남쪽 끝에 뒤주를 설비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간 반통으로 앞퇴가 열린 맞배지붕의 통상적 구조다. 원래 큰사랑 뒤쪽의 광과 사당 동쪽에 행랑채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이런 규모는 저들의 경제적인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서 궁궐에서 터득한 지식을 통해 조촐하지만 격조 있는 집을 짓고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누대로 세거하고 있었다는 점과 배치 구성에서 여러 가지 배려가 있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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