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대구] 하동정씨(河東鄭氏) 시조 정응(鄭膺) 단소

장안봉(微山) 2015. 6. 5. 10:35

하동정씨(河東鄭氏)

 

하동()은 경상남도 최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한다사군()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하동군()으로 개칭하였고, 악양현() · 합포현( : ) 등 4개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1018년(현종 9) 진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남해현과 합해 하남현()이라고 하였다가 1415년(태종 15)에 다시 분리하여 하동현이 되었다. 1461년(세조 7) 섬진강변으로 읍의 중심지를 옮겼고 1704년(숙종 27)에는 하동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하동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는 경상남도 하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관할 19개 면이 12개 면으로 분면되었고, 1939년에 하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하동정씨()는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연원을 알 수 없는 여섯 계통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하동정씨의 후손들은 본관을 같이 하면서 계통을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첫째 계통의 시조 정도정()은 신라 진성왕 때 하동지방의 호족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호장()이 되어 향병()을 단련하여 하동성()을 지켰다. 그 뒤 고려로 통합될 때는 경순왕을 개성까지 호위하여 내의성상시()에 제수되었고 이어 광평성평장사()에 올랐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가 없다.

다만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정석숭()을 일세조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둘째 계통의 시조 정응()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祿) 도첨의좌정승()을 지냈으며 한때 태자관()의 첨사()를 맡기도 했다. 셋째 계통의 시조 정손위()는 고려 숙종(), 예종(), 인종(), 의종(), 명종() 등 5왕조에서 벼슬을 하였다. 정헌대부() 지예부사(), 응양대장군(),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하동백()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하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들 정세유()는 명종 때 서북면병마사(西使)를 거쳐 형부상서()에 이르렀다.

 

파명()을 살펴보면, 정도정() 후손 분파는 9세손인 정난()의 후손이 산원공파(), 정침()의 후손이 흥의공파()이고, 하성부원군 정흥인()의 아들 정인지()의 후손이 문성공파()이다.

이 파는 그 아들 대에서 다시 익위공파(), 하성위공파(), 장정공파(), 대사헌공파(), 찬성공파()로 나누어진다. 정흥안()의 후손이 진사공파(), 정흥도()의 후손이 현감공파()로 나누어졌다. 8세손 정을진()의 후손이 소윤공파()로 나누어졌다. 정난연()의 후손은 증손 정지()와 정전(㙉)의 대에 경열공파()와 병사공파(使)로 나누어졌다. 또한 정국교()의 후손은 진사공파()로 분리되었다.

정응()의 후손 분파는 6세손 정희()까지 단일 계통으로 내려오다가 그의 증손을 파조로 하여 분리가 되었다. 정서생()의 후손이 한임공파(), 정형()의 후손이 별제공파(), 정맹손()의 후손이 주부공파(簿), 정운()의 후손이 현령공파(), 정송()의 후손이 의주공파(), 정직()의 후손이 판관공파(), 정온의 후손이 직장공파(), 정목()의 후손이 유수공파(), 정적()의 후손이 장령공파(), 정육()의 후손이 사직공파(), 정조()의 아들이 선무랑공파(), 정세()의 후손이 생원공파()로 나누어졌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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