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스크랩]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처사(處士)를 전송하는 서문〔送息山李處士序〕

장안봉(微山) 2015. 2. 27. 06:40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처사(處士)를 전송하는 서문〔送息山李處士序〕

                                                                                                                                                                         성호 이익

내가 젊어서 학문을 하지 못하여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고 살았다. 비록 선배들이 경고하여 이끌어 주었지만 혹한에 한 점 볕을 쏘이는 것과 같아서 별반 영향을 받지 못하여 결국 깨치지 못하였다. 얼마 뒤에 후회했을 때는 이미 총명이 줄어들었고 사우(師友)도 멀어졌다. 몽매함에 빠져 강명(剛明)한 자와 멀리 떨어져서 도움 받을 곳이 없게 되니, 오직 홀로 들어앉아 생각에 골몰할 뿐이었다.

내가 옛날 어린아이 때에 이만부(李萬敷)선생에게 서울 마포 서호에 가서 배웠는데, 중간에 왕래가 점점 뜸해져서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내가, 배우도록 해 주고 대번에 끊지 않으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한 채 영원히 잊지 못한다. 내가 올해 8월에 동쪽으로 강원도 원주(原州)에 들어가 선영(先塋)에 이르러 성묘한 다음 돌아오려 하다가 선생이 마침 영남 땅 상주에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속히 스승에 대한 예를 갖추어 가지고 찾아갔다. 자리를 함께하여 한참 대화를 나누었는데, 학문하는 방도에 대해 많이 배웠으므로 평생에 한 번 얻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되었다. 선생께서도 만족해하며 칭찬하셨으니, 치면 반드시 울리는 것이 마치 구하지 않아도 뜻이 절로 응한다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나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지금 동지들과 동쪽으로 금강산을 유람하고 아홉 고을을 둘러보아 뜻을 다 이룬 다음 파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대는 좋은 글로 나를 전송해 주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저는 지금 마음 쓰는 일 없이 자신만 보존하고 있으니 행여 어르신이 분부를 내리신다면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하직 인사를 할 때 또 말하기를 “내가 장차 그대를 서울 마포 서호(西湖)가에서 기다리고자 하는데 그대는 와 주겠는가?” 하여, 내가 공손히 수락하였다.

         

삼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생이 산수를 유람하는 것은 막연하게 다니는 것이 분명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산수가 있으면 바로 흔쾌한 마음으로 가기를 마치 길 떠났던 자가 집에 돌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마음에 맺힌 정리가 절실하여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같이 하였다. 그러므로 눈에 보는 것이 기쁘면 마음에 얻어지고 마음에 얻어지면 몸에 받아들이고 몸에 받아들이면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옮겨지니 순일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 성과가 어찌 다만 선생 자신만 빛나게 하고 말 뿐이겠는가. 후배들에게 감동을 주되, 실천으로 옮겨진 언행이 뚜렷하여 수레의 굴대에 기대어 있는 듯하니, 안색을 보거나 음성을 듣거나 모두 지극한 가르침 아닌 것이 없었다.

저 금강산은 내가 가 본 곳이다. 당시 식견이 고루하고 학식이 얕아서 보고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우뚝 솟은 곳이 봉우리이고 비스듬한 곳이 고개이고 파인 곳이 골짜기이고 물이 고인 곳이 못이고 급히 쏟아지는 곳이 폭포라는 것에 불과하였다. 이는 형체만 본 것이고 이치는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일 다녀도 여전히 떠나기 전의 나 그대로이다. 비유하자면, 시골 선비가 우연히 궁궐을 관광하게 되어 처음으로 마루와 복도의 아름다움과 집기들의 다채로움, 음식의 성대함을 보고는 어리둥절해서 뭐가 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반드시 혼미한 이들을 안내해 주는 이가 앞장서서 “여기는 기거하는 곳이고 이것은 생활용품이고 이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어야 비로소 제도와 등급을 분별하게 되어, 현능하고 지혜로운 이가 민생에 보탬을 준 것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더욱 어리둥절해지기만 할 뿐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무릇 내가 산수를 유람할 때는 선생이 관람한 곳을 가보지 않은 적이 없다. 다만 혼미한 자를 깨우쳐 주는 정문일침(頂門一鍼)을 한번 받지 못했으니, 어찌 몹시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다만 선생이 산을 내려올 날을 기다렸다가 공경히 문하에 나아가 학업을 받고 물러나서, 춘추 시대 노(魯)나라 공명선(公明宣)이 증자(曾子)의 집에 거처하며 배우던 것을 스스로 힘쓰고자 함이니,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출처 : 이택용의 e야기 - 晩濃
글쓴이 : 李澤容(이택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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