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래정(歸來亭)
귀래정은 고성이씨 입향조 이증(李增)의 둘째 아들인 낙포(洛蒲) 이굉(李汯, 1440~1516)의 정자이다. 이굉은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4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상주목사·개성유수 등을 지내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리지(擇里志)』에서 경상북도 안동의 수많은 정자 가운데 귀래정·임청각(臨淸閣)·군자정·하회(河回)의 옥연정(玉淵精)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1513년(중종 8) 벼슬에서 물러난 이굉은 경상북도 안동으로 낙향하여 부성(府城) 건너편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뜻을 취해 당호를 ‘귀래정’이라 하였다.
귀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丁’자형 건물로 팔작지붕집이다. 4칸통 대청과 온돌방 3칸, 마루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호에는 창틀 가운데 세운 작은 기둥인 가운데설주가 남아 있는데, 이런 창호 형식은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고식(古式)으로 귀래정의 연륜을 읽게 한다. 건물의 구조 양식은 막돌 쌓기를 한 기단 위에 방형(方形)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대청 주위에만 원기둥을 사용하고 나머지에는 모두 네모기둥을 세웠다. 대청 상부에는 큰 대들보와 작은 종보를 이중으로 걸치고 종보 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판재 대공을 세워 맨 위의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귀래정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고성이씨 문중이다. 지금은 귀래정 앞쪽의 도로 확장으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뒤쪽으로 조금 물러앉게 되어 다소 옛 풍치를 잃었다. 귀래정에는 이굉을 비롯해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송재(松齋) 이우(李堣)·택당(澤堂) 이식(李植)·백사(白沙) 윤훤(尹暄) 등 30여 명의 시판이 걸려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낙포 이굉(洛浦 李汯)
1440(세종 22)∼1516(중종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심원(深源), 호는 낙포(洛浦). 강(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의정 원(原)이고, 아버지는 현감 증(增)이며, 어머니는 이희(李暿)의 딸이다.
1464년(세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된 뒤 군위현감·세자시강원문학·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공조정랑·청도군수·사재감첨정·봉상시부정 등을 지냈다.
1500년(연산군 6)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예빈시정·승문원판교·상주목사를 역임한 뒤, 1504년 갑자사화에 김굉필(金宏弼)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8)에 나이가 많아 사직한 뒤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 귀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 곳에서 풍류생활을 하였다. 시문에 능하였다.
이굉신도비각
가선대부개성부유수낙포이공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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