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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장관전서 제27~29권 > 사소절 4(士小節四). 교접(交接)

장안봉(微山) 2014. 5. 13.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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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 > 청장관전서 제27~29권 > 사소절 4(士小節四) - 사전 4

 

사소절 4(士小節四)

 

교접(交接)

 

 

뜻이 같은 사람이 만일 성의로써 먼저 와서 사귐을 청하거든 즉시 가서 사례하라. 문벌이나 재주가 비록 나만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을 내어 사례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선비가 굳센 기운이 없으면 자립할 수 없다. 비록 나의 품성이 약하다 하더라도 활달하고 위대한 사람을 만날 것 같으면 마땅히 격동하고 분발하여 나의 기운을 떨쳐야 한다. 굳센 기운이란 바로 바른 기운인 것이다.

 

내게 비록 백 가지의 장점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남의 한 가지 장점을 부지런히 구하여 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야 한다.

 

남의 조그마한 장점과 착한 점을 취하여 나의 몸과 마음에 이익되게 하지 않고 매양 인격이 완비한 사람을 보지 못하겠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매우 고독한 자이니, 슬픈 일이다.

 

경솔하고 천박한 사람에게는 학문을 권하라. 속된 사람이 보면 오활한 일인 듯하지만 궁구해 보면 뜻이 매우 충후(忠厚)하다. 만일 안정되고 욕심이 적으며 글을 읽어 몸을 닦고 명리(名利)에 뜻을 두지 않는 사람에게 과거를 보도록 굳이 권하는 자가 있다면, 참으로 오활하고도 사리에 밝지 못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비록 과거를 보려는 마음을 가졌더라도 만일 그 어버이의 뜻이 아니라면 과거 보는 일을 그만두도록 권하는 것이 좋다.

 

안정하게 있는 사람을 삼가 요동시키지 말라.

 

벼슬로 서로 유혹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권세와 이익으로 서로 의지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장기 바둑이나 놓고 술이나 마시고 해학하며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시문(詩文)ㆍ서화(書畫)ㆍ기예(技藝)로 서로 잘한다고 허여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다. 아! 오늘날의 이른바 우도(友道)란 것을 내가 매우 슬퍼하는 바이다.

겸손하고 공손하며 아담하고 조심하며 진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명절(名節)을 서로 부지하고 과실(過失)을 서로 경계하며, 담박하여 바라는 바가 없고 죽음에 임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거짓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교활해지고, 참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숙련해진다.

 

진중순(陳仲醇)001]은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대인(大人)을 두려워한다.002]’ 하였는데, 두려워하면 교만하지 않고, 맹자는 ‘대인을 경시한다.003]’ 하였는데, 경시하면 아첨하지 않을 것이니, 곧 중도(中道)다.”

 

영도(寧都)의 위희(魏禧)004]는 이렇게 말했다.

 

“벗을 사귀는 자는 이미 안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의심을 버리지 않아서는 안 되고, 조그마한 혐의를 없애 버리지 않아서는 안된다.”

또 이렇게 말했다.

 

“벗에 대하여 윤리를 손상하고 교화를 무너뜨린 자 외에는 차라리 그를 충분히 책망할지언정 조금이라도 박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그를 박하게 대할 뜻을 가지면 성의가 이미 쇠해져서 비록 바른 말을 한다 하더라도 능히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또한 원망을 초래하기 쉽다.”

 

《백호통의(白虎通義)》005]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벗을 사귀는 도리가 네 가지가 있는데 재물을 통용하는 일은 그 가운데 들지 않는다. 가까우면 그를 바로잡아 주고, 멀면 그를 칭찬해 주며,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를 생각하고, 환란이 있으면 그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친다.”

 

유영징(劉永澄)006]은 이렇게 말했다.

“물건이 들어오면 순응하라. 순응한다는 것은 천리에 순응하는 것이지 인정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다.”

 

동사장(董斯張)007]은 이렇게 말했다.

“가정에 있어서 형제간의 싸움을 면하지 못하면서 간담(肝膽) 두 글자로써 벗에게 교만스레 말하려 한다면 투아(偸兒)008]가 청렴의 이름을 얻는 격인데 내가 그 누구를 속이리요.”

 

신함광(申涵光)009]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덕이 없고 지극히 가난하면서도 아끼지 않는 이 두 종류의 사람은 더불어 계교할 수 없다.”

 

주자(朱子)는,

“자신도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유쾌하게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겠는가. 요컨대 겸허한 마음으로 착한 것을 따르는 데 달려 있다.” 하고,

 

여형공(呂滎公)은,

“자신의 악을 다스리고 남의 악은 다스리지 말라. 자신의 악을 다스리되 주야로 점검(點檢)010]하여 조금도 다하지 못하면 마음에 흐뭇하지 않은데 어찌 다른 사람의 악을 점검할 공부를 할 겨를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상 두 분의 말은 자신을 책망하고 남을 용서하는 데 지극한 말이다. 나는 일찍이 이를 명심하여 법식으로 삼는다.

 

《예기》에,

“남이 나에게 충성을 다 바치기를 바라지 말라.”011]

하고,

 

《시경》에,

“내 몸도 돌보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남을 돌보랴?” 012]

하였다.

 

남의 기색을 잘 살핀다고 하면서, 남의 잘못만 보고 남의 옳은 것을 보지 않는 자는 참으로 박정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남과 좋게 지낸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마음속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남을 농락하는 술책을 부리고서 ‘나는 남을 잘 농락한다.’고 생각하나, 농락하는 그 사람에게 지신이 이미 농락당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망령된 사람이 노여워하거든 온화함으로써 무마시키고, 편협한 사람이 의심하거든 정직함으로써 대하라.

 

일마다 미봉책을 써서 부딪는 곳마다 파탄이 생기게 하는 자는 곧 재주 없는 소인이다. 그는 새로 알게 되는 사람을 농락하기 때문에 몇 달도 사귀는 벗이 없다.

 

평생 친한 친구는 중간에 혹시 소식이 끊겼더라도 언제나 염두에 두었다가 서로 만나게 되면 반갑게 해야 하고 서먹서먹하며 무정한 듯해서는 안 된다.

 

어릴 때 친한 친구를 장성한 뒤에 혹 까닭 없이 서로 소원하게 되는 자가 있으니, 이 같은 자는 천박한 사람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들은 빈천할 때 서로 사귄 자를 부귀한 뒤에는 서로 버릴 것임을 반드시 알 수 있다.

 

세도 있는 사람은 아무리 수백 리 밖에 있을지라도 조금 아프다는 소식만 들어도 반드시 찾아가 문병하나, 세도 없는 사람은 비록 이웃에 있으나 위독한 병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도 간접적으로나마 한 번쯤 문병하지도 않게 된다. 이 같은 일에는 마땅히 의(義)ㆍ리(利)의 구분을 크게 살펴서 몰인정한 처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전에 한 번 만나서 대화했던 사람을 여러 사람 속에서 갑자기 만났을 때 기억이 어렴풋하여 인사를 청하고 싶어도 의심이 날 경우에는 반드시 그의 거동을 자세히 살피고 혹은 옆 사람에게 물어서, 전에 알던 사람임을 분명히 알고 나서야 먼저 인사를 청한 뒤 곧바로 자신의 민첩하지 못함을 사과하여 교만하다는 비방을 자초하지 말아야 옳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너나들이해서는 안 된다. 어릴 때 사귄 처지라도 각기 장성한 뒤에는 그대로 아명(兒名)을 불러서는 안 된다. 지금 세상에는 어릴 때의 친구 사이에 너나들이를 하지 않으면 소랭(疎冷)하다고 생각하니 나는 그것을 의심스럽게 여긴다.

 

오늘날의 이른바 벗들은 걸핏하면 서로 욕설을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다. 아들이니 손자니 사위니 조카니 하고 부르고, 또는 말이니 소니 개니 돼지니 하고 부르며, 성명을 파자(破字)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침범하기도 한다. 추하고 패악한 말을 마구 주고받음으로써 인륜 도덕을 전연 무시하는데, 그것을 예사로 들어 해괴하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않으면 친밀한 벗이 될 수 없다.’한다.

 

아!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막연히 알지 못하는데 다만 집안에 불초한 자손을 둠으로써 날마다 경박한 자들의 추한 욕을 받게 된다. 이것은 또한 자손을 잘 가르치지 못한 때문이니,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군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없겠는가?

내가 만약 저 사람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침범하면 저 사람도 즉시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욕할 것이라는 것을 밝게 안다면 어찌 차마 욕할 수 있겠는가?

인륜의 패멸이 말 한마디에 달려 있으니, 이 얼마나 불인(不仁)한 일인가?

이와 같은 사람은 비록 날마다 삼생(三牲)013]을 잡아서 봉양한다 하더라도 집안의 패자(悖子)요, 나라의 난민(亂民)이요, 명교(名敎)의 죄인인 것이다.

 

몸가짐을 엄중히 하고, 단정한 벗을 사귀면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니, 남들이 감히 희롱하고 업신여기는 말로 나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그리고 나의 몸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은, 처음에 남과 사귈 때 그 사람이 만일 함부로 대하거든 모름지기 세속에서 침욕(侵辱)하는 버릇을 범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하고, 후일에 그 사람이 먼저 잘못을 범하면 따라서 보답하지 말고 마땅히 정색하고 그에게 이와 같이 무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런 뒤에도 고치지 않고 두번 세번 반복하면 단연코 좋은 말로 조금도 용서하지 말고, 또한 제삼자가 속이 좁다고 기롱하는 것도 돌보지 말고서 그 행동의 경중에 따라 소원하게 하거나 절교하거나 하는 것이 옳다.

가장 못된 것은 그런 것을 예사로 생각하고 신기한 욕설을 짜내기를 힘써 물흐르듯 주고받아 서로 압도(壓倒)하고서 조금도 뉘우쳐 깨닫지 않고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모욕을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끼치는고.’ 한다.

아! 저 사람이 비록 무례하나 내가 만일 대꾸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스스로 그만둘 것인데, 이렇게 하지 않고서 도리어 건드리니, 어찌 그리도 어리석은가?

증자(曾子)는,

“네게서 나온 것은 네게로 되돌아간다.” 014]

하고 정자(程子)는,

 

“자신이 잘못하면 상대편이 거역하고, 나가는 것이 어긋나면 들어오는 것도 어긋난다" 015] 

하였다.

 

어떤 사람이 모르고 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휘(名諱)016]를 그릇 범하면 발끈 성을 내는 자도 있고, 혹은 휘(諱)하지 않을 것을 일부러 휘하는 자도 있는데, 어찌 그리도 고루한가? 그러나 남을 대할 때 자세히 살펴 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람의 심정은 누구나 남이 자기를 떠받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맨 처음 사귈 때 친애(親愛)하지 않음이 없음은 서로가 떠받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귄 지 오래되어 각기 상대방의 과실을 알고 혹시 규잠(規箴)하면 크게 비위를 거스려 사귐이 비로소 등진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겸허함을 귀중히 여기고 시종을 삼간다.

《시경(詩經)》에 이렇게 말했다.

“시작은 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이는 적다.”017]

 

지금 사람은 존장을 뵐 때는 절을 하고 물러 나올 때는 절을 않는 자도 있는데, 그것은 예(禮)가 아니다. 열 살이 더 많아 노형(老兄)이라 칭하는 자를 볼 때에는 반드시 절을 하는 것이 옳다.

 

우계(牛溪) 성(成) 선생018]은 일찍이 어릴 때 서로 알고 어릴 때부터 어른으로 섬기던 사람이라면, 비록 나이가 10년이 넘지 않았더라도 역시 어른으로 불렀고, 매부(妹夫)는 비록 동고조(同高祖)의 먼 촌수라도 반드시 형으로 불러 공경히 섬겼다.

 

혼인 관계가 있는 집안은 형제의 의의가 있는 것이니, 비록 과실이 있다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비해 더욱 너그러이 대하여 화목한 정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가 먼저 과실을 범하더라도 의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거든 서로 보복할 마음을 갖지 말아야 옳다.

 

아우의 장인과 여동생의 시아버지는 나이가 나와 서로 같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서로 대등하게 대하던 예로써 대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존경하는 마음을 더하여 볼 때에는 반드시 절을 하고 존장으로 칭해야 한다. 아내의 숙부는 나이가 나와 같다 하더라도 역시 존경하는 마음을 더해야 한다.

 

몽학(蒙學) 선생이 비록 도학(道學)을 전수하는 선생과는 다르나, 몽학 선생이 아니면 어떻게 지혜가 열려서 도학을 전수하는 선생에게 배우러 가겠는가? 더구나 몽학 선생은 도학을 전수하는 선생에 비해 그 노고가 특히 많다. 그러므로 그 공로를 논한다면 몽학 선생은 평생을 변함없이 공경해야 한다. 자신이 두각을 나타냈다 해서 옛날 나를 가르치던 선생을 전연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리석을 뿐더러 불행하게도 어릴 때부터 선생이 없었다.

그러나 10여 세 때 《논어(論語)》의 ‘염구왈비불열자지도야(冉求曰非不說子之道也)’019] 장을 삼주(三洲) 홍우열(洪禹烈) 020]선생에게서 배울 때 호씨(胡氏)021]의 주(註) 가운데 있는 ‘추환(芻豢)’022]이란 두 글자의 뜻을 그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신 것을 듣고 매우 감열(感悅)하던 일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어제와 같은데, 삼주 선생이 세상을 여의신 지 벌써 15, 16년이 되었다. 생각할 때마다 몹시 슬프기만 하다.

 

도학을 전수받은 스승은 말할 것도 없이 존경해야 하거니와 다만 한 가지의 일, 한 가지의 재주를 받았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을 사도(師道)로써 대접할 것은 아니지만 그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한 가지의 일, 한 가지의 재주를 내가 익혀서 그 사람보다 도리어 낫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능멸하거나 조소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것은 그 근본을 잊는 일이다. 근본을 잊는 사람보다 더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 있겠는가?

 

나이 많은 사람, 학문 있는 사람, 엄정하고 바른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거나 피하지 말라.

 

존장 앞에서는 망건을 고쳐 쓰지 말고 옷을 고쳐 입지 말라. 머리털이나 살을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존장이 나이를 묻거든 스무 살이면 스무 살, 서른 살이면 서른 살이라고 똑바로 대답해야 하고, 갑자생(甲子生)이니 을축생(乙丑生)이니 해서는 안 된다. 존장이 쉽게 계산하지 못할까 싶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시회(詩會)에서 자신이 먼저 시를 지었다 하더라도 감히 어른들 앞에 써서는 안 된다. 어른이 먼저 쓰라고 명한 뒤에 써야 한다. 그리고 배운(倍韻)023]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랑하는 혐의를 피하려는 때문이다.

 

어른에게 과실이 있거든, 어른이 노여워할 때 간해서는 안 된다.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과실만 더해지기 때문이다. 노기가 가라앉아 마음이 화평할 때를 기다려서 조용히 말하는 것이 좋다.

 

자신은 남을 잘 풍자한다고 해서 하는 말이나 그 폐단은 남을 거북스럽게 만들어 도리어 해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언어나 행동이 항시 남의 비위를 거스르는 자는 십분 삼가서 대해야 한다.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공경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자기 시문(詩文)을 보이거든 재삼 자세히 읽고 나서 그 좋고 나쁜 점을 말해야 하고, 싫어하는 기색이나 비웃는 기색을 조금도 보여서는 안 된다. 스스로 부박(浮薄)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 아니라, 만일 편협한 사람을 만나면 해(害)가 또한 이로 해서 일어난다.

 

남의 재예(才藝)를 칭찬할 때 반드시 천하에 제일이니, 고래로 둘도 없느니 하며 극도로 칭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유식한 자에게 비웃음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일부러 남에게 아첨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반면에 이런 칭찬 듣기를 갈망하다가 이미 듣고 나서는 단연코 자부하는 자는 반드시 어두운 사람일 것이다.

 

지나친 칭찬은 아첨에 가깝고, 지나친 비방은 헐뜯음에 가까우며, 칭찬할 때 칭찬하지 않으면 인색하고, 비방할 때 비방하지 않으면 나약하다. 그러므로 먼저 식견을 확립해야 이 같은 네 가지 허물이 없을 것이다.

 

남과 처음 사귈 때 비록 마음에 든다 해도 얼른 지기(知己)라고 칭해서는 안 되고, 사귄 지 약간 오래된 사이엔 마음에 조금 거슬린다 해서 갑자기 절교를 논해서도 안 된다.

 

남이 글 읽을 때 음의(音義)를 그릇 읽는다고 성급하게 비웃지 말라.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만일 참된 식견을 가졌거든 그에게 제시하여 바로잡게 하는 것이 옳다.

 

예사로 말할 때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을 공연히 기롱하거나 꾸짖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원래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죄를 딱 결정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되겠는가? 이것은 심술의 병통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손님과 마주 앉아 은근히 이야기하다가, 그 손님이 작별하고 겨우 문을 나가자 마자, 한자리에 있는 다른 손님과 더불어 떠난 손님의 평생 숨긴 비밀을 이야기 하는 것은 충후(忠厚)한 풍속이 아니다. 어찌 아까 그 손님과 은근히 이야기하던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겠는가?

 

남을 몸둘 바 없을 정도로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

 

별명을 지어 남을 지목하는 것은 대단히 부박(浮薄)한 풍속이다. 이를테면 정헐후(鄭歇後)024]ㆍ진야파(陳也罷)025]라든지, 또는 최정수(崔呈秀)026]가 동림 제현(東林諸賢)027]을 지목하여 《점장록(點將錄)》028]을 지은 따위와 같은 것이다.

 

과묵한 사람에게 경솔히 사납다고 지목하지 말고, 온순한 사람에게 경솔히 아첨한다고 지칭하지 말라.

 

학식도 없으면서 스스로 강개(慷慨)하다고 말하며, 기운을 뽐내고 과격한 말을 하여 지체할 바를 모르는 자는 친할 사람이 못 된다. 행동이 이러하고서 죄벽(罪辟)에 빠지지 않을 자가 없다.

 

악한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없고,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불쌍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은 모두 그가 인류의 숫자에 들어 있음을 탄식하는 것이다.

 

사람의 심정은, 남에게 착한 점이 있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만약 일종의 질투하는 사람을 만나면 비록 자기가 애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앞에서 극구 칭찬하여 그의 꺼리는 마음을 도발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남의 가진 것을 투기하는 자는 나의 없는 것을 혐의하는 사람이요, 남의 없는 것을 비웃는 자는 나의 있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남의 말 한마디, 일 한 가지를 선뜻 보고서 그 사람의 평생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사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권하지 말라.

 

한 가지 일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해서 일마다 남을 의심한다면, 어찌 양우(良友)며 길사(吉士)이겠는가?

 

송(宋) 나라 위섬지(魏掞之)029]는 남과 사귈 때 그 사람의 좋은 점은 아름답게 여기고 잘못된 점은 구제해 주었다. 그리고 후진 중에 예절을 갖추어 오는 자가 있을 때 그에게 조그마한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이끌어 성취시켰다. 어떤 사람이 위섬지더러 명예를 좋아한다고 비방하자, 위섬지는 두려워하는 태도로 말하기를,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혐의를 피하게 하면 착한 행동을 하는 길이 끊어질 것이다.”

하였다.

원(元) 나라 정사렴(程思廉)030]은 남과 사귈 때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이 없었다. 혹시 벗이 아프거나 죽어서 문병하고 부조하게 될 때에는 가고 오는 거리가 수백 리가 되어도 그 노고를 꺼리지 않고 벗의 가사를 돌보고 자손과 가족을 보살피는데 더욱 은의(恩義)를 다하였다. 그리고 그는 인물 추천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명예를 좋아한다고 하자 정사렴은 말하기를,

 

“만일 명예를 좋아한다는 기롱을 피한다면 사람들은 감히 착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동나석(董羅石)031]은 이렇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남을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불경(不敬)이다. 조금만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남이 먼저 나를 싫어한다.”

 

추여해(鄒汝海)032]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너무 속되게 보니 이는 학자의 병통이다.”

 

이 두 사람의 말은 남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크게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저 남을 만나서 말할 때에는 먼저 본인의 안후를 묻고, 그 다음 그 부모의 안부를 묻고, 그 다음 근래 하는 일을 묻고, 그 다음 생활 상태를 물으라. 또는 사람에 따라서 차서로 물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젊은이나 낮은 자를 만나면 인사를 전폐하고 한 가지도 물어 보지 않으니, 교만이 아니면 몰인정한 사람이다.

 

당일암(唐一庵)033]이 여러 벗들과 밤에 이야기하다가 자려고 할 때 묻기를,

 

“이때에 해야 할 일이 있는가 없는가?”

하니, 여러 벗들은 ‘없다’고 하자, 일암이 말하기를,

 

“밤은 차가운데, 우리들은 매우 즐겁게 술을 마셨지만, 수종인(隨從人)들은 아직도 잘 곳이 없는데, 어찌 할 일이 없단 말인가?”

하였다.

 

문각공(文恪公) 노탁(魯鐸)034]이 거인(擧人)이 되어 먼 길을 가다가 눈비를 만났다. 밤에 여관에서 쉬는데, 마부가 추위에 시달리는 것을 가엾게 여겨 곧 그를 이불 속에 들어와 자게 하고 따라서 이렇게 시를 지었다.

 

반쯤 해진 푸른 적삼 입은 어린아이 / 半破靑衫弱穉兒

말 앞에서 어떻게 말을 몰거나 / 馬前怎得浪驅馳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다 자식인데 / 凡由父母皆言子

여염집 사람과는 좀 다르나 난들 뭐 대단하랴 / 小異閭閻我却誰

일은 세정에 매인 거라 모두 가소로우나 / 事在世情皆可笑

은혜는 내아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베풀기 어렵지 않네 / 恩從吾幼未難推

진흙길이라 다시 내일 힘을 빌려야 하니 / 泥塗還藉來朝力

너그럽게 대함을 부질없이 의심치 말라 / 伸縮相加莫漫疑

 

만일 남의 윗사람된 자가 이상 두 가지 일을 체험한다면 아랫사람을 부릴 때 포악하지 않을 것이다.

 

시골 사람이 혹 곡식이나 포목으로 무엇을 바꾸는 등 자질구레한 일을 번거롭게 나더러 주선해달라고 부탁하거든, 내가 비록 부귀하다 하더라도 싫어하여 거절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힘에 따라 주선하여 그 일을 구제하는 것이 군자로서 당연히 할 일이다.

 

남이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거든 할만한 일인가를 깊이 생각해서 승낙해야 한다. 만일 남의 부탁을 듣자 마자, 우선 나중에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에 대한 미봉책부터 생각해 놓고서 차마 떼지 못하여 경솔히 승낙하기를 ‘그 일은 내가 하지’ 하고는 뒤에 가서 과연 말을 꾸며대어 하지 못한 데 대한 미봉책을 쓴다면, 애당초부터 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상대방은 깊이 믿게 되고 그 일은 결국 낭패가 되는 것이니, 이것은 심술의 큰 병통이다. 혹시 이런 일을 저지를까 싶으니 깊이 경계하라.

 

가장 두려운 것은 얼굴이 두툼하고 말을 간략하게 하는 소인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남을 너무 의심하면 참소하는 말이 따라 들어오게 되므로 마음이 그로 해서 편하지 못하게 되니, 조금 너그럽게 생각해 보는 것만 못하다.

 

험악한 사람의 심리는 남의 우호(友好)를 미리 시기하여 반드시 이간해서 서로 떨어지게 하려 한다.

 

선비는 자기 의견과 다른 의견을 만났을 때 기를 쓰며 다투어서는 안 된다. 나의 체모만 손상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따르지 않는 것이 옳을 뿐이다.

대저 뜻이 맞지 않는 자를 자기의 지력(智力)으로 제재할 수 없을 경우 부득불 당세의 유명하고 세력 있는 사람을 끌어서 공갈하기를,

 

“모(某)의 아무 일은 모공(某公)이 몹시 비난하더군, 내가 직접 들었는데 매우 위험한 일이구려. 내가 그대를 위해 해명해 주리라.”

 

하기 마련인데, 그가 말한 모공은 일찍이 비난한 적도 없고 설사 비난한다 하더라도 아예 해명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무함할 자다. 이러므로 한 문공(韓文公)035]이 〈석언(釋言)〉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행위를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동시에 그런 무리와는 사귀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의 쟁송(爭訟)을 잘 참견하거나 남의 은밀한 일을 들을 때 가까이 대해서 달콤하게 듣고서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것은 소인의 기상 중에서도 심한 것이다. 대저 사람의 심정이란 남의 허물 듣기를 좋아한다. 이런 죄과(罪科)를 범하기 쉬우니, 더욱 성찰(省察)하라.

 

희롱 삼아 남을 속이지 말라. 농하기 위해서 남을 속이는 자는 여기저기서 해를 막심하게 당하고, 놀려주기 위해서 남을 속이는 경우 상대방이 죽기도 하고 자신이 도리어 피살당하게 되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무릇 남에게 요구할 일이 있어서, 은근한 언사로 대접하여 평소보다 배나 친절을 베푸는 것은 참으로 시정(市井)의 야박한 풍속이니, 이른바 언사로 대접하는 것에는 진실도 거짓도 있기 때문이다.

 

귀에 소근거리고 눈을 깜빡거리는 어떤 손님이 자리에 있고 주인이 자주 들락날락하거든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런 집에 자주 가도 안 된다. 그 주인은 필시 시정배(市井輩)036]일 것이다.

 

대저 남의 집에 갔을 때 그 주인이 바쁜 기색이 있거나 수심에 잠겨 말하지 않거나, 바쁜 기색으로 안에 드나들거든 즉시 물러나와야지, 오래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손[客]이 주인을 볼 때 주인이 병을 앓고 누웠다가 억지로 일어나서 손을 대면하나 얼굴을 찌푸려 아픔을 참는 기색이 있거든 손은 반드시 눕기를 권하고 곧 물러나와야 한다.

 

매우 추울 때나 더울 때 남의 집에 조상(弔喪)을 가 오래 머물러 긴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 주인에게 손상됨이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상가(喪家)에 갔을 때에는 시끄럽게 웃거나 농담해서는 안 되니, 상사(喪事) 이외의 일은 말하지 말고 항시 측은(惻隱)한 기색을 가져라. 만일 맡은 일이 있거든 마음을 기울여 행하며, 주인이 예(禮)를 좋아하거든 예서(禮書)를 상고하여 실례되는 일이 없게 하고, 주인이 야속(野俗)하여 예를 좋아하지 않아 나의 말을 듣지 않거든 번거롭게 굳이 변론해서는 안 된다.

 

친지가 상을 당했을 경우, 거리가 멀면 위문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거리가 가까우면 직접가서 조문하라. 친소간을 막론하고 특별한 까닭이 없을 경우에는 조금도 지체 없이 시행해야 한다. 세상에는 혹 위문하는 글을 쓰지 않고 조문하지 않는 것을 고아(高雅)한 지취(旨趣)로 아는 자도 있는데, 내가 볼 때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볼일이 있어서 남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이 우연히 집에 없더라도 ‘내가 왔는데 왜 집에 없을까?’라고 투덜거려서는 안 된다.

 

먼 곳에서 가난한 친척을 찾아갔을 때 그 집에서 만일 호의를 베풀어 음식을 준비하고 만류하거든 마땅히 억지로라도 머물러서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 폐 끼치는 것만을 염려하여 그 호의를 무시하고 훌쩍 떠나 버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비록 남을 생각해 주는 좋은 뜻에서 취하는 처사이나 결국 박정한 일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처사다.

 

절에 가서 중에게 토식(討食)하지 말고, 사나운 중을 건들여 호기 부리며 돌로 귀를 문지르게 하지 말며, 여색(女色)을 음설(淫媟)하는 등의 말로 여승을 희롱하지 말라.

 

남과 함께 모였을 때 어떤 사람이 혹시 술이나 반찬을 마구 먹어서, 내가 먹을 것이 매우 적더라도 속으로 꾸짖어 노기를 얼굴빛에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좋은 시절이나 명절 때에 벗들이 즐겁게 놀기 위하여 주식대를 추렴하자고 하거든 인색하거나 피하거나 억지로 응락하거나 하지 말라. 만일 가난해서 제공할 것이 없더라도 부끄러워 하지 말고 구차하게 마련하여 가난을 숨기려고 하지도 말며, 나는 준비됐다고 해서 준비 못한 사람을 조소하지도 말라.

 

남과 유람할 때에는 동반(同伴)과 행동을 같이해야지, 따로 의의를 제기하여 남을 여겨서는 안 된다. 만일 앞서 가거나 뒤에 당도하거나 혹은 혼자 딴 곳에 앉거나 또는 동반을 바삐 재촉하는 행동은 모두가 함께 유람하는 의의를 잃은 일이다.

 

서로 모이기로 약속했을 때 혹 어떤 사람이 때가 지나도 오지 않거든 왜 그가 약속을 실천하지 않는지를 서서히 생각해 볼 것이지, 조급하게 책망해서는 안 된다. 대저 서로 약속하고 시기를 어기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결함되는 일이다.

 

대저 남과 함께 글을 볼 경우 나는 비록 다 이해했더라도 얼른 책장을 넘겨서는 안 되니, 조금 지체하고 또 상대방에게 다 보았는지를 물으라.

 

무릇 시장(試場)에 들어갔을 때, 내가 비록 글을 다 지어 일찍 제출하였더라도 함께 시험보는 사람이 아직 제출하지 못했거든 비록 해가 저물 때에 이르더라도 먹을 갈아 주고 식사를 권해 주고 글자를 점검해 줄 것이요, 재촉해서 글이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되며, 또 일산[傘]037]을 접고 자리를 걷는 등 급박하게 소란을 피우며 그를 버리고 가지 말아야 한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손에 책을 쥐고 말없이 외따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만에 가깝기 때문이다. 남이 혹시 그럴 때에는 ‘그대는 왜 말을 않는가? 책을 꼭 보아야 하는가?’ 하면서 그 사람의 책을 빼앗아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추솔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릇 남의 집에 갔을 때, 자리 주변에 찢어진 편지가 있거든 주워서 자세히 보아서는 안 되고, 책상에 책력이 있거든 뒤져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장부처럼 사사로운 기록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천장이나 사면 벽과 그리고 방구들에 붙은 종이에 은은히 비치는 글자를 눈여겨 보아서는 안 된다.

 

평소 사랑하고 존경하는 벗의 편지는 찢거나 더럽히거나 휴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삼가 날자를 적어 깊이 간직했다가, 떨어져 있을 때 보고 싶거나 죽은 뒤에 감회가 있거든 수시로 그 편지를 펼쳐 읽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집안 식구가 죽을 병이 났을 때 만약 의원의 치료로 살아났거든, 그 의원을 평생 공경하여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고, 그에게 혹시 조그마한 하자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 옳다.

 

어떤 사람이 혹시 취중에 실수를 하고 망언을 하거든 크게 괴상히 여기지 말고 마땅히 마음속으로, ‘술이 사람을 미치게 하기 때문에 저 사람이 저렇다. 일찍이 보건대 저 사람이 술이 깨면 본래 그렇지 않더라.’고 생각해야 하며, 술이 깨거든 취했을 때 실수한 일을 조용히 대략 말하면 그가 반드시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취할 때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취해서 주정하는 것은 용서할지언정, 자기가 취해서 주정하는 것은 용서해서는 아니 된다.

《논어(論語)》에,

 

“자신은 무겁게 책망하고 남은 가벼이 책망한다.”038]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혹시 병으로 원기가 부쳐서 수응(酬應)을 잘 못하거든, 인정 없는 사람이라고 책망해서는 안 된다. 평일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이 지금 이런 것은 병이 있기 때문이니, 용서해야 한다. 나는 몸이 약해서 병을 곧잘 앓아 담소(談笑)할 때 자연 무뚝뚝하므로 남들이 혹 나무라기도 하는데 부끄럽고 황공하다.

 

환자를 볼 때는 병세가 아무리 위독해도 위독하다는 말을 하지 말고 안심해 조리하라고만 위안할 뿐이며 방약(方藥)039]을 망령되이 권하지 말라.

 

남의 밥을 먹고 토사곽란병을 앓게 되었거나 혹은 옴 오른 사람을 가까이 해서 전염되었거나 대범 남으로 인하여 병을 얻은 따위가 비록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말끝마다 그 사람을 나무라서는 안 되며, 집안사람이 설령 나무라더라도 금지시키는 것이 화후(和厚)한 도리이다.

 

마침 남의 집에 가 있을 때 집안사람이 와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하거든, 비록 하는 일이 있더라도 버려두고 곧 일어나서 집에 돌아가 손님을 볼 것이다.

 

자제와 노비들에게 손님이 오거든 즉시 통지하고 주인이 집에 없다고 속이지 말도록 항시 경계시켜야 한다. 〈대저 집에 편안히 붙어 있지 못하고 분분하게 밖에 나가는 자는 이미 마음이 방일한 사람이다.〉

 

만일 안에 들어갔을 때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거든 일이 있더라도 팽개치고 곧 나가야 하고, 식사 중 미처 반도 안 먹었을 때에는 남은 밥을 가지고 나가야 하며, 지체하여 손님으로 하여금 방황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손님이 오래 앉아 있어도 찌푸리는 기색을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을 하려 한다면 솔직하게 알리면 그 손님이 당연히 물러갈 것이다.

 

명사(名士)나 귀객(貴客)이 우연히 방문했거나 혹은 서찰(書札)로 물어 온 일이 있을지라도 남에게 그것을 자랑하며 영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집에 사나운 개를 기르는 것은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가 아니다. 손님이 막 문에 들어오려 하다가 개가 마구 짖어대며 물려고 하므로 두려워하며 물러서거든, 주인은 뜰 아래에 내려가서 친히 개를 꾸짖어 멀리 쫓아야 하지 ‘그 개는 사람을 물지 않으니 두려 하지 마시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몹시 춥거나 더울 때에 어떤 손님이 먼 곳에서 왔거든 피곤하기 그지없을 터이니, 반드시 경우에 따라 따스한 곳이나 서늘한 곳을 택해서 잘 모시고 밤에는 그와 얘기를 많이 나누지 말며, 또한 그를 위해서 일찍 자야 할 것이요, 손님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주인이 일찍 취침했으면 하고 바라게 해서는 안 된다.

 

밤중에 혹 손님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거든 반드시 종을 불러서 맞이하게 할 것이요, 종이 혹 깊은 잠이 들었거든,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급히 나아가 맞이할 것이다.

 

손님을 위해서 식사를 마련해야 할 때 혹 노비(奴婢)가 유고하여 집에 없거든 반드시 몸소 밥을 지어 드려야 한다.

 

내가 손님을 기분 좋게 대접하기 위해 주식(酒食)을 준비할 때 집사람이 잘 장만하지 못하거나 너무 지연되면 소리치거나 얼굴빛을 변하지 말고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서 잘 처리해야 하고, 비복(婢僕)을 때리거나 나무라서는 안 된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것이 비록 손님을 잘 대접하기 위한 열성에서 빚어진 일이라 하나, 손님의 마음이 매우 불안해 할 것을 도리어 모르는 결과가 되고 만다.

 

막 식사할 때 손님이 오면, 반드시 손님에게 식사를 권하되 손님이 굳이 사양하거든 그만두라. 또한 괴롭게 권해서는 안 되니, 번거로운 일이 될까 싶어서다.

 

나는 비록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연구(煙具)를 갖추어 두었다가 손님이 오거든 반드시 권해야 하고, 높은 손님일 경우에는 모름지기 손수 담배를 담아 불을 붙여 드려야 한다.

 

원유진(元有鎭)040]은 현천(玄川)의 아들이다. 일찍이 보건대, 뭇 손님들이 술에 취하여 자리에 토하매, 그것을 손수 치우며 조금도 난처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니, 아름다운 자제로서 손색이 없었다. 나는 그를 매우 훌륭하게 여겨 본받으려 생각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노성(老成)한 말을 하거든 반드시 공손하게 들으라. 고리타분한 말이라고 조소(嘲笑)해서는 안 된다.

 

거짓으로 친절한 체하는 것은 진심으로 불친절한 것만 못하다.

한 번 오가고 나서 벗을 책망하는 사람은 그 벗삼는 도리를 알 만하다.

 

무릇 내가 우환이 있거나 곤궁할 때에 힘을 쓰고 재물을 내어 도와준 사람은 마땅히 기록해 잘 간직하고서 종신토록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갚기를 생각해야 한다.

 

 《시경》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으니, 어느 날인들 잊겠는가?” 041] 

하였고, 수곡(壽谷) 김주신(金柱臣)042]은 이렇게 말했다.

 

“여형공(呂滎公)043]이 ‘은혜와 원수를 분명히 하라[恩讐分明]는 네 글자는 도덕자의 말이 아니다.’ 하였다. 그러나 남이 나에게 덕을 베풀 때 그 경중에 따라 갚지 않는다면 어찌 충신(忠信)의 도리이겠는가?

사마공(司馬公)044]은 ‘남의 은혜를 받고 차마 저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효도이고 신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충성이다.’ 하였다. 그 차마 저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나에게 원한이 있는 자에게 꼭 보복할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충후(忠厚)한 자로서는 마땅히 할 바가 아니다. 여형공은, 아마 원수를 꼭 갚는 자를 미워해서 말하면서 은혜와 원수를 섞어서 말한 것이리라.”

 

이웃간에는 도의상 그릇이나 책 따위를 반드시 서로 빌기도 빌려 주기도 해야 한다. 굶주리는 집이 있으면 돈이나 곡식으로 돕고 아픈 집이 있으면 약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경사(慶事)나 애사(哀事)를 당했으면 물질로도 돕고 인력으로도 도우며, 만일 물질이나 인력이 없을 경우에는 몸소 가서 보살펴 주고 혹은 서신으로 열심히 위로하거나 경하해야 하고 먼 데 사람 보듯이 무관하게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대저 경성은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순박한 옛 풍속이 있는 시골만 못하다.

 

가난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는 속세 사람을 깊이 책망하는 자는 역시 시대의 시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어찌 학자가 지키는 지조를 속세 사람에게 바랄 수 있겠는가?

 

걸인(乞人)이 와서 구걸할 때에는 먼저 멸시하는 마음을 억제하고 불쌍히 여겨 도와주어야 하고, 만약 도와줄 물건이 없거든 부드러운 말씨로 타일러서 보내야 한다. 걸인은 원래가 흔히 본심을 잃은 자들이니, 혹 멸시하다가 도리어 성을 내어 나에게 욕할지도 모른다.

 

스스로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한다 하면서 완급(緩急)ㆍ경중(輕重)ㆍ친소(親疏)ㆍ후박(厚薄)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명예는 도리어 헛된 것이 되고 원망도 또한 깊이 쌓일 것이니, 패망을 자초할 뿐이다.

장괴(張壞)045]는 이렇게 말했다.

 

“두기공(杜祁公)046]이 남을 도와주던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가 망령되이 도와주지 않은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자에게 대차를 요구하여 그가 혹시 대차해 주지 않더라도 그의 인색함을 굳이 비난하며 원망하거나 성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인데, 그가 아무리 부라 해도 어떻게 일일이 도와줄 수 있겠는가 하고 서서히 생각하면 마음이 자연 화평해질 것이다.

 

가난한 집 사람들은 기한(飢寒)으로 인해 서로 꾸짖고 원망하여 온통 화열(和悅)하는 기색이 없으니, 이 어찌 길상(吉祥)한 일이겠는가? 모름지기 완곡히 생각하여 각자 측은하게 여긴다면 원한(怨恨)이 사라지고 은애(恩愛)가 이를 것이니, 비록 술지게미를 먹고 나물을 씹는다 하더라도 더욱 맛이 나게 되고 화기가 애애할 것이다.

 

내가 부유하고 학문도 꽤 좋아하는데, 평소 절친한 친구 중에 비록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나에게 빌려 달라고 입을 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인간이 아니고 다만 인(吝)이란 한 글자에 묻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은 진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친절하다는 것도 진짜 친절한 것이 아니니,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

사대부(士大夫)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흉중에 항시 안평중(晏平仲)047]이 70호(戶)를 살리던 일과 범희문(范希文)048]이 의전(義田)을 두어 친족을 도움으로써 조상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았던 일을 간직한 뒤에야 부귀가 쓸모가 있는 것이다.

 

옛사람이,

“가난한 친구를 때때로 생각하여 자기에겐 쌀이 없으면서도 아침을 못 짖는 남을 돕는다.”

하였으니, 이 말이 매우 좋다.

 

착한 일을 보거든 드러내기를 생각하고 곤궁한 자를 보거든 돕기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천지의 원기를 부지(扶持)할 것이다.

 

 

 

 

[주D-001]진중순(陳仲醇) : 이름은 계유(繼儒), 별도의 자는 미공(眉公)으로 명 나라 화정(華亭) 사람인데, 시화(詩畫)를 잘하였고, 숭정(崇禎) 연간에 나라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두주]
[주D-002]대인(大人)을 두려워한다 : 이 말은《논어》계씨(季氏)에 보인다.[역주]
[주D-003]대인을 경시한다 : 이 말은《맹자》진심 하(盡心下)에 보인다.[역주]
[주D-004]위희(魏禧) : 자는 빙숙(氷叔)으로 명 나라 영도(寧都) 사람인데, 금정(金精)의 취미봉(翠微峯)에 집을 짓고 살았다. 청 나라 강희(康熙) 때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되었으나 병 때문에 사양했더니 군현(郡縣)에서 나가기를 독촉하자, 남창(南昌)에 이르렀다가 병이 위독하여 돌아와버렸다. 저서는 시문집과《좌전경세서(左傳經世書)》가 있다.[두주]
[주D-005]《백호통의(白虎通義)》 : 한 나라 반고(班固)가 지은 것인데,《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천자가 제유(諸儒)를 백호관(白虎觀)에 모아 오경(五經)을 강론케 하고, 반고에게 명하여 그 일을 찬집하게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백호통의》라 한다.[두주]
[주D-006]유영징(劉永澄) : 자는 정지(靜之)로 명 나라 보응(寶應) 사람인데, 만력 때의 진사로 벼슬이 직방주사(職方主事)에 이르렀고, 동림 제현(東林諸賢)과 교의가 두터웠다.[두주]
[주D-007]동사장(董斯張) : 초명은 사장(嗣暲), 자는 하주(遐周)ㆍ원명(原明)으로 명 나라 절강(浙江) 오정(烏程) 사람이다. 저서에《취경집(吹景集)》이 있다.[두주]
[주D-008]투아(偸兒) : 도둑을 가리킨다.[두주]
[주D-009]신함광(申涵光) : 자는 부맹(鳧盟)으로 명 나라 말기 사람인데, 박학다식하고, 시에 능하였으며, 저술에 청산시(聽山詩)와《형원소어(荊園小語)》가 있다.[두주]
[주D-010]점검(點檢) : 《어록해(語錄解)》에 의하면 고찰(考察)의 뜻이라 한다.[두주]
[주D-011]남이 …… 말라 : 이 말은《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보인다.[두주]
[주D-012]내 몸도 …… 돌보랴 : 이 말은《시경》 패풍(邶風) 곡풍(谷風) 장에 보인다.[두주]
[주D-013]삼생(三牲) : 소ㆍ양ㆍ돼지이다.[두주]
[주D-014]네게서 …… 되돌아간다 : 이 말은《맹자》양혜왕에 보인다.
[주D-015]자신이 …… 어긋난다 : 이 말은《논어》안연의 주에 있는 언잠(言箴)에 보인다.[두주]
[주D-016]명휘(名諱) : 산 사람의 이름은 명(名)이라 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은 휘(諱)라 한다. 휘는 이름을 피한다는 뜻인데,《예기》단궁 하(檀弓下)에 “졸곡(卒哭)하고 휘한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사람은 산 사람의 이름도 휘라고 하는데, 그것은 예가 아니다.[두주]
[주D-017]시작은 …… 적다 : 이 말은《시경》대아(大雅) 탕(蕩) 장에 보인다.[두주]
[주D-018]우계(牛溪) 성(成) 선생 : 휘는 혼(渾), 자는 (浩源), 본관은 창녕(昌寧), 청송(聽松) 수침(守琛)의 아들이다. 중종조에서 은일로 벼슬이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며, 문묘(文廟)에 종사되고, 서원과 문집이 있다.[두주]
[주D-019]염구왈비불열자지도야(冉求曰非不說子之道也) : 이 말은《논어》옹야(雍也)에 보인다. 염구(冉求)는 공자의 제자로 자는 자유(子有)인데, 노(魯) 나라 사람이다.[두주]
[주D-020]홍우열(洪禹烈) : 자는 성보(盛甫), 본관은 남양(南陽)인데, 영종조에 진사를 하였다.
[주D-021]호씨(胡氏) : 이름은 인(寅), 자는 명중(明仲), 호는 치당(致堂)으로 건안(建安) 사람이다.[두주]
[주D-022]추환(芻豢) : 《예기》월령(月令)에 “마소 기르는 것을 추(芻), 큰 돼지를 환(豢)이라 한다.” 하였다.
[주D-023]배운(倍韻) : 어른이 명령한 운(韻)을 거듭 화답하는 것이다.[두주]
[주D-024]정헐후(鄭歇後) : 정계(鄭綮)는 자가 총무(總武)로 당 나라 형양(滎陽) 사람인데, 소종(昭宗) 때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이르고 시를 잘하였는데, 시에 해담(諧談)이 많았으므로 당시 그 시체(詩體)를 정철후체(鄭歇後體)라 칭하였다.[두주]
[주D-025]진야파(陳也罷) : 진음(陳音)은 호가 괴재(槐齋)로 명 나라 보전(莆田) 사람인데, 성품이 매우 너그러워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진야파라 불렀다. 까닭인즉 진음이 차(茶)를 요구하니, 부인이 “다리지 않았습니다.” 하자, “그만두오" 하였다. 하고, 건다(乾茶)를 요구하니, 부인이 “사오지 못했습니다.” 하자, 역시 “그만두오.” 하였다. 그래서 진야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두주]
[주D-026]최정수(崔呈秀) : 명 나라 계주(薊州) 사람이다.[두주]
[주D-027]동림 제현(東林諸賢) : 동림 서원(東林書院)에서 강학(講學)하던 사람들이다. 송 나라 양시(楊時)가 동림 서원을 무석(無錫)에 세웠는데, 명 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고헌성(顧憲成) 등이 그 서원을 중수하고, 고반룡(高攀龍) 무리와 함께 그 속에서 강학하면서 정치를 평가하고 인물을 품평하였다.
[주D-028]《점장록(點將錄)》 : 《명사강목(明史綱目)》에는 “최정수(崔呈秀)가 지었는데, 동림 제현을 배격한 것이다.” 하였다.《명사(明史)》에는 “왕소휘(王紹徽)가 지은 것이다.” 하였다.[두주]
[주D-029]위섬지(魏掞之) : 자는 자실(子實), 처음 자는 원리(元履)로 건양(建陽) 사람인데, 효종(孝宗) 때 유일(遺逸)에서 발탁되어 태학록(太學錄)에 오르고, 직비각(直秘閣)에 증직되었다.[두주]
[주D-030]정사렴(程思廉) : 동승(東勝) 사람인데, 벼슬이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이르고, 시호는 경숙(敬肅)이다.
[주D-031]동나석(董蘿石) : 이름은 운(澐), 자는 복종(復宗), 만년의 호는 종오도인(從吾道人)으로 명 나라 해염(海鹽) 사람인데, 시에 능하였다.[두주]
[주D-032]추여해(鄒汝海) : 이름은 덕함(德涵), 호는 취서(聚所)로 명 나라 융경(隆慶) 사람인데 진사로 벼슬이 하남첨사(河南僉事)에 이르렀다.[두주]
[주D-033]당일암(唐一庵) : 이름은 추(樞), 자는 유중(惟中)으로 명 나라 귀안(歸安) 사람인데, 가정(嘉靖) 때의 진사로 벼슬이 형부 주사(刑部主事)에 이르렀다.[두주]
[주D-034]노탁(魯鐸) : 자는 진지(振之)로 명 나라 경릉(景陵) 사람인데 홍치(弘治)의 회시(會試)에서 제1위로 합격하여 벼슬이 좨주(祭酒)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각(文恪)이다.
[주D-035]한 문공(韓文公) : 이름은 유(愈), 자는 퇴지(退之)로 당(唐) 나라 창려(昌黎) 사람인데, 헌종(憲宗) 때 벼슬이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이르고,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文)이다. 그는 일찍이 부처를 배격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다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고, 또 참소를 당하자 석언(釋言)을 지었다.[두주]
[주D-036]시정배(市井輩) : 저자[市]는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고, 우물[井]은 공동으로 물긷는 장소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옛날에는 저자가 없었고, 우물가에서 물건을 서로 사고 팔았으므로 물건을 매매하는 곳을 시정(市井)이라 한다.” 하였다.
[주D-037]일산[傘] : 비를 막고 해를 가리는 물건으로 폈다 오므렸다 하게 되었는데, 큰 것은 과거장에서 쓴다.[두주]
[주D-038]자신은 …… 책망한다 : 이 말은 《논어》위령공(衛靈公)에 보인다.[두주]
[주D-039]방약(方藥) : 방(方)은 방술(方術), 약(藥)은 잡약(雜藥)이다.[두주]
[주D-040]원유진(元有鎭) : 자는 약허(若虛), 본관은 원주(原州)인데, 곧 공(公 : 아정(雅亭))의 계매서(季妹婿)며, 벼슬은 내각 검서(內閣檢書)였다.[두주]
[주D-041]마음속에 …… 잊겠는가 : 이 말은《시경》 소아(小雅) 습상(隰桑)장에 보인다.[두주]
[주D-042]김주신(金柱臣) : 자는 이경(履卿), 본관은 경주(慶州)로 경은 부원군(慶恩府院君)에 봉군되었으며 영의정에 증직되고, 시호는 효간(孝簡)이며, 문집이 있다. 숙종왕비 인원왕후(仁元王后)의 아버지이다.[두주]
[주D-043]여형공(呂滎公) : 이름은 희철(希哲), 자는 원명(原明)으로 송철종(宋哲宗) 때 사람인데, 벼슬이 숭정전 설서(崇政殿說書)였다.[두주]
[주D-044]사마공(司馬公) : 이름은 광(光), 자는 군실(君實)로 합주(陜州) 하현(夏縣) 사람인데, 송 철종 때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에 이르고, 온국공(溫國公)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두주]
[주D-045]장괴(張瓌) : 자는 당경(唐卿)으로 송 나라 전초(全椒) 사람인데, 진사로 발탁되어 비각교리(秘閣校理)에 제배되었다가, 회남전운사(淮南轉運使)로 옮겼다.[두주]
[주D-046]두기공(杜祁公) : 이름은 연(衍), 자는 세창(世昌)으로 송 나라 월주(越州) 사람인데, 인종(仁宗) 때 진사로 뽑히고 태자소사(太子少師)로 치사(致仕)하였다. 기국공(祁國公)에 봉해지고 시호는 정헌(正獻)이다.[두주]
[주D-047]안평중(晏平仲) : 이름은 영(嬰)으로 춘추시대 내(萊) 땅 사람인데, 제 경공(齊景公) 때 대부(大夫) 벼슬을 지냈다. 그 당시 안평중의 구호를 받아 살아가는 집이 70여 호였다.[두주]
[주D-048]범희문(范希文) : 이름은 중엄(仲淹)으로 송 나라 소주(蘇州) 오현(吳縣) 사람인데, 인종(仁宗)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그는 의전(義田)을 두어서 종족(宗族)을 구제한 일이 있다.[두주]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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