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8대 명당인 순창 ‘천마등공’… 조용헌 박사가 말하는 말과 풍수지리
말은 인간에게 매우 특이한 동물이다. 지상에서 유일하게 공간을 단축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이라는 뜻이다. 공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시간의 단축을 가능하게 한다. 즉 말은 인간을 등에다가 태우고 달릴 수 있다. 다른 동물은 인간의 먹거리인 식용의 대상이지만 말은 사람을 태우고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동물이다. 바로 이 점이 전쟁에서 인간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말이라는 동물은 인간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무기였다. 말은 인간의 전쟁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핵심 변수였던 것이다. 좋은 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몽골이 대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힘도 말에서 나왔다. 불과 30만 명의 인구를 가졌던 여진족이 1억에 가까운 한족을 제압하고 청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도 역시 여진족이 보유하였던 기마군단이 있었다.
천마등공의 자리에 해당하는 순창의 천마산 지형. 조선 8대 명당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말은 동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되었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말을 숭배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유목민족의 신화에 보면 말이 대부분 등장한다. 여진족(女眞族)들도 상대방과 맹약을 할 때에는 말이 등장한다. 백마(白馬)와 청우(靑牛)를 놓고 적국과 맹약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조선조 정묘호란 때에도 여진족들은 조선 정부와 협약을 맺으면서 백마를 제물로 사용하였다. 이때는 백마의 피를 마시기도 하였다. 그만큼 말은 신성한 힘을 가진 동물로 여겨졌다.
그러다보니 말은 풍수에도 도입이 되었다. 산세의 모습을 동물이나 물건에다 비유해서 설명하는 물형풍수(物形風水)에서는 말이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천마가 하늘로 오르는 형국의 천마등공(天馬登空), 호마가 바람을 맞으며 우는 형상의 호마시풍(胡馬嘶風),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의 갈마음수(渴馬飮水)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마체(馬體) 봉우리도 있다. 말의 안장 같이 생긴 산 봉우리 모습을 가리킨다.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대마마을에 있는 조선 8대 명당에 해당하는 지형의 모습. 둥그런 봉우리가 2개 연속으로 이어져 하나는 낮고 다른 하나는 약간 높은 형국이다. 사진 순창군청 제공
천마등공, 갈마음수, 마체나 모두 공통적으로 말로 표현되는 산세는 둥그런 봉우리 2개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형국이다. 봉우리 하나는 약간 낮고, 다른 한 봉우리는 약간 높다. 이처럼 높고 낮은 봉우리 2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으면 이 봉우리 2개를 모두 가리켜 말의 형상으로 본다. 말 안장 형태로 보는 것이다. 마체가 집 앞에 있거나 묘 앞에 있으면 후손 중에 말 안장에 타는 인물이 나온다고 믿는다. 말 안장에 탄다는 것은 벼슬을 한다는 말이다. 마체(말안장) 봉우리가 보이면 과거급제를 하거나 벼술을 하는 후손이 나온다고 본다. 필자가 본 마체 가운데 생각나는 것은 대구의 화원에 있는 남평 문씨 종택 앞에 보이는 산 봉우리 있다. 봉우리 2개가 연달아 포진한 모습이 말 안장처럼 보였다. 영남에서는 ‘마체’를 가리켜 ‘벼슬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국에서 ‘말 명당’으로 가장 유명한 장소는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馬屹里)에 자리 잡은 김극뉴(金克忸,1436~1496)의 묘이다. 이 묘를 가리켜 천마등공(天馬登空) 명당이라고 부른다. 풍수를 공부하는 전국의 지관들이 반드시 답사하는 코스에 들어가는 명당이다. 왜 이 자리가 전국 8대 명당에 포함된단 말인가? 그 후손들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잘 되어야 명당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순창군 구미리의 전경.
이 묘를 쓰고 나서 광산 김씨가 국반(國班:전국구 양반)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소문이 났다. 바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 김극뉴의 현손이다. 현손은 고손자를 말한다. 사계의 아들이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이다. 사계와 신독재 부자지간은 조선조 문묘에 배향되었다. 문묘 배향은 유교에서 성인반열로 생각하는 위치이다. 부자지간에 문묘 배향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사계와 신독재가 배출한 제자들이 쟁쟁하다. 대표적으로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이 이 집안의 제자이다. 조선후기는 광산김씨와 이들 양송(兩宋)의 제자들이 정치를 주도하였다. 후손으로는 정승 5명, 대제학 7명, 왕비 1명(숙종비 인경왕후)이 배출되었으니, 광산 김씨는 이 천마등공의 명당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의 지형도 봉우리 두 개가 연이어 하나는 높고 낮은 지형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순창군청 제공
이 천마등공 자리 역시 두 개의 둥그런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약간 높은 봉우리를 큰 수리봉, 낮은 봉우리를 작은 수리봉이라 부른다. 둥그런 모양의 봉우리 하나 만을 놓고 보면 이는 독수리(매)의 머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수리봉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두 봉우리를 연달아 이어 놓고 보면 말 안장이 되는 것이다. 산경표(山徑表)로 설명하자면 호남정맥의 강천산(583m)에서, 무리산(557m)을 지나, 장덕산(368m) 까지 온 산맥이 다시 갈라져 마흘(馬屹)이라는 동네를 이루었다. ‘말 같이 우뚝 솟았다’는 이름이다. 이 마흘리의 뒷산 두 봉우리가 큰수리봉, 작은 수리봉이다. 작은 수리봉을 가리켜 따로 용마산(龍馬山)이라고 부른다. ‘용마’라는 것은 하늘을 날아 다닐 수 있는 말을 가리킨다. 이 용마산(작은 수리봉)의 남쪽 자락에 바로 김극뉴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순창군 대방~금방동으로 이어지는 황액탁목의 지형. 인근 혈바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었다. 사진 순창군청 제공
소는 뿔에 해당하는 자리가 명당이지만 말은 콧구멍에 해당하는 자리를 명당으로 본다. 김극뉴의 묘는 말의 콧구멍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누실명(陋室銘)에 나온다. ‘산부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有仙卽名)’이라고. ‘산은 높다고 장땡이 아니다.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라는 말이지만, 아 나지막한 용마산 자락이야말로 지령(地靈)이 감돌고 있는 산이니까 진짜 명산이다. 높은 산만 갈 일이 아니다. 낮은 산에도 지령이 뭉쳐 있는 지점들이 있다. 갑오년 새해에는 천마가 하늘로 올라가는 천마등공의 명당 기운이 어려 있는 곳이 바로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는 천마산도 들러볼 일이다.
순창에서 말의 모습 외에도 ‘사두혈’이라고 뱀 머리 닮은 형국의 지형도 있다.
순창 사두혈에 있는 묘.
'명당도(물형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朝鮮時代 官職과 品階(조선시대 관직과 품계) (0) | 2014.09.27 |
---|---|
[스크랩] 바람과 비에 대한 점서 (0) | 2014.09.23 |
[스크랩] 추석벌초 때 눈여겨봐야 할 조상묘의 이상징후 (0) | 2014.01.08 |
[스크랩] [단독] ‘대동역사’ 필사본 발견… 신채호 초기 역사학 ‘베일’ 벗다 (0) | 2013.12.04 |
[스크랩] 도선국사의 풍수철학 완성지 구례 사성암(四聖庵) (0) | 2013.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