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기동안 당시 300수를 잘 배웠습니다.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배웠으나 머리속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같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듣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그림도 정리하여 넣어는데 메일에서는 그림과 서예작품이 떠지 않았습니다. 그림이나 글씨가 들어있는 원본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윃하드에 올려 놓겠습니다. 이장우 선생님께 다시 고개숙여 감사드리며 여름방학동안 즐거운 방미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끝으로 같이 공부했던 당시300수 학생 여러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쓸을 전합니다. 좋은 여름휴가 보내시고 후학기도 다시 만날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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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교수: 이장우
장소: 동양고전연구원
정리: 芝山
2011. 3. 3. - 2011. 6. 9.
제1교시 20110303
222,송별(送別)-왕유(王維)
송별하며-왕유(王維)
送君南浦淚如絲(송군남포루여사) : 남포에서 그대 보내니 눈물 실처럼 흐르는데
君向東州使我悲(군향동주사아비) : 동쪽 고을로 간다니 내 마음 스글퍼지는구나
爲報故人顦顇盡(위보고인초췌진) : 알려주게나, 친구가 초췌해져
如今不似洛陽時(여금불사낙양시) : 지금은 낙양 시절만 못하다는 것을
223,죽리관(竹里館)-왕유(王維;?699-761?)
죽리관-왕유(王維;?699-761?)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나 홀로 그윽한 대숲에 앉아 篁=竹叢
彈琴復長嘯.(탄금복장소). 거문고를 타다가 다시 길게 휘파람을 불어본다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숲이 깊어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明月來相照.(명월내상조). 밝은 달이 찾아와 서로를 비춘다
224,잡시삼수2(雜詩三首2)-왕유(王維)
잡시-왕유(王維)
君自故鄕來,(군자고향내), 그대 고향에서 왔으니
應知故鄕事.(응지고향사). 응당 고향의 일 아리라
來日綺窗前,(내일기창전), 오던 날 깁 창 앞 窗=窓
寒梅著花未?(한매저화미)? 차가운 매화나무 꽃을 피웠는가 著(분명할저)=着(옷을 입다)
225. 녹시(鹿柴)-왕유(王維;?699-761?)
녹채-왕유(王維;?699-761?) 柴(섶 시, 산야에 나는 작은 나무)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 고요한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 말소리만 들린다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 저녁 햇빛 깊은 숲에 들어 返景=返影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 다시 푸른 이끼를 비춘다
226,상사(相思)-왕유(王維;?699-761?)
홍두=상사자(그리워라?)-왕유(王維;?699-761?)
紅豆生南國,(홍두생남국), 홍두나무 남쪽 지방에서 자라
春來發幾枝?(춘내발궤지)? 봄이 오니 몇 가지나 피었을까
愿君多采힐?,(원군다채힐), 원하노니, 그대여 많이 따두소서
此物最相思.(차물최상사). 이것이 가장 그리운 것이라오
232,춘효(春曉)-맹호연(孟浩然;689-740)
어느 봄날 아침에-맹호연(孟浩然;689-740)
曉(새벽 효, 밝다)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노곤한 봄잠에 날 새는 줄 몰랐더니(不覺)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여기저기 새우는 소리로고(覺)
夜來風雨聲,(야내풍우성), 간밤의 비바람 소리에(覺)
花落知多少?(화낙지다소)? 꽃잎 떨어짐이 그 얼마이리오(不覺)
237,등관작루(登鸛雀樓)-왕지환(王之渙)
관작루에 올라-왕지환(王之渙)
鸛 황세관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빍은 해는 산에 의지하여 넘어가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황하는 바다로 들어 흘러간다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천리 먼 곳을 다 바라보고파
更上一層樓.(갱상일층누). 다시 한 층 더 올라본다
239,신가낭(新嫁娘)-왕건(王建)
새색시-왕건(王建)
三日入廚下(삼일입주하) : 시집온지 사흘만에 부엌으로 들어가 廚(부엌주)
洗手作羹湯(세수작갱탕) : 손 씨소 죽을 끓인다 羹(죽갱)
未諳姑食性(미암고식성) : 시어머니 식성을 아직 알지 못해
先遣小姑嘗(선견소고상) : 먼저 시누이더러 먼저 맛보게 한다 嘗 맛볼상
姑(시어머니 고), 未諳(미암)모르다. 諳(욀 암, 암송하다)
241,강설(江雪)-유종원(柳宗元;773-819)
강에 내리는 눈-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 온 산에 새는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만경인종멸). 모든 길엔 사람 발길 끊어졌다 徑(지름길경)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에 삿갓 쓴 노인 蓑(도롱이 사)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눈 내려 차가운 강에 홀로 낚시질 한다
崔北 漢江釣魚圖 (25.8 x 38.8cm. 紙本談彩)
245,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가도(賈島;779-843)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가도(賈島;779-843)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采藥去.(언사채약거). 선사님은 약초 캐러 떠나서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 속에 있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 깊어 있는 곳을 모른다 하네
251,춘원(春怨)-김창서(金昌緖)봄날의 원망
打起黃鶯兒,(타기황앵아) ; 노란 꾀꼬리 쳐서 날려서
莫敎枝上啼.(막교지상제) ; 나무 가지에서 울음 울지 못하게 하오
啼時驚妾夢,(제시경첩몽) ; 꾀꼬리 울 때면, 내 꿈도 깨어
不得到遼西.(부득도료서) ; 요서 지방에 갈 수 없게 한다오
七步詩(칠보시) 20110305
조조 셋째아들 曺植이 첮째아들 曹丕
煮豆燃豆萁(저두연두기) 콩을 삶는데 콩대를 베어 때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솥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원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 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 데는가?
조식 작(조조의 셋째아들 첫째아들로 조조이 총애를 받았는데 첫째 아들 조비에게 심한 견제를 받고 항상 제거하려고 했다. 어느날 조비가 조식에게 일곱걸음을 걷는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하여 이시 를 짓자 감읍하여 풀어주었다.)
감상
삼국지에 나오는 위(魏)나라 조조왕 은 여러 아들을 두었으나 그중에도 시와 학문에 뛰어난 셋째 아들 동아왕(曺植)을 총애하여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여러신하의 반대로 그래도 왕을 이어받음은 맏아들인 문제왕 조비(曺丕)에게 물려줘야한다는 권고로 왕위를 물려주고 죽었다. 그 뒤로 왕이 된 맏아들 조비는 혈육을 나눈 형제들도 자기의 신변안전을 위해 왕권도전자의 대상이되는 형제를 죽이려 했다. 그 중에도 가장 강력 한 왕권도전 대상자인 셋째동생 조식을 어느 날 궁궐에 불러놓고 죽임을 암시했다 너는 원래 시문에 뛰어난 재주가 있으니 내가 제목을 형과 동생이라는 제목으로 정해줄테니 시를 지어보아라 맏兄자와 아우弟자를 넣지 말고 짓는데 내가 방안에서 일곱걸음을 걷는 동안 다지어야 죽임을 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하여 동생 조식은 형 문제왕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유명한 칠보시를 지어 쓸쓸히 읇으니 이를 들은 조비가 눈물을 흘리며 동생 조식을 방면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300수 20110303첫시간 반농 이장우교수
왕유 222 송별 送君南浦淚如絲(송군남포루여사) : 남포에서 그대 보내니 눈물 실처럼 흐르는데 君向東州使我悲(군향동주사아비) : 동쪽 고을로 간다니 내 마음 스글퍼지는구나 爲報故人顦顇盡(위보고인초췌진) : 알려주게나, 친구가 초췌해져 如今不似洛陽時(여금불사낙양시) : 지금은 낙양 시절만 못하다는 것을
산중에 상송파하고 일모엄시비라 명년에 춘초록이면 왕손이 귀불귀오
산중에서 그대를 송별하고 나서 날 저문데 사립문을 닫아거네. 봄풀이 내년에 푸르러 질 때 귀한 그대 돌아올지?
주석: 상(相)자는 여기서는 그대를, 당신을이란 뜻. 엄掩자는 여기서는 닫아걸다는 뜻. 왕손(王孫) :여기서는 귀한 그대란 뜻임.
223 죽리관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나 홀로 그윽한 대숲에 앉아 篁=竹叢 彈琴復長嘯.(탄금복장소). 거문고를 타다가 다시 길게 휘파람을 불어본다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숲이 깊어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明月來相照.(명월내상조). 밝은 달이 찾아와 서로를 비춘다
독좌유황리하야 탄금부장소라 심림을 인부지나,명월이래상조라
홀로 그윽한 대나무 떨기속에 앉아서 금을 뜯고 다시길게 휘파람부네. 깊은 숲을 남들은 알지못하나 밝은 달이와서 여기를 비추네.
주석: 篁대나무 떨기, 대나무 숲. 소嘯:휘파람, 길게 시를 읊조림. 상相: 여기를
224 이것 저것 느끼는대로(잡시) 君自故鄕來,(군자고향내), 그대 고향에서 왔으니 應知故鄕事.(응지고향사). 응당 고향의 일 아리라 來日綺窗前,(내일기창전), 오던 날 깁 창 앞 窗=窓 寒梅著花未?(한매저화미)? 차가운 매화나무 꽃을 피웠는가 著(분명할저)=着(옷을 입다) 군자고향래하니 응지고향사리라 내일기창전에 한매착화미아
그대고향에서 왔다하니 틀림없이 고향일을 알리라. 떠나오던 날 아름다운 창문 앞에 추위에 피는 매화가 이미피었던가?안 피었던가?
주석 잡시雜詩: 이런 저런 생각을 담은시,잡감雜感시. 응應: 여기서는 부사로 틀림없이. 내일來日: 고향을 떠나오던 날. 저著자를 여기서는 着자와 같이 사용하였음
왕유 225. 사슴 울짱 녹채鹿柴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 고요한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 말소리만 들린다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 저녁 햇빛 깊은 숲에 들어 返景=返影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 다시 푸른 이끼를 비춘다
공산앤 불견인하고, 단문인어향이라. 반영이 입심림하여 부조청태상이라
텅빈 산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데, 다만 사람 말 소리만 들리네. 지는 햇볕이 깊은 숲속에 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푸른 이끼 위에까지 비추어 주네.
주석: 1) 녹채鹿柴: 사슴을 기르는 울짱. 柴자의 발음은 나무의 뜻일 때는 “시”이고, 울타리의 뜻일 때는 “채”인데, 성채城砦의 “砦”자와 통용되기도 함. 왕유는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장안(서안)의 동남 쪽 진령산맥 중턱에 있는 옥생산지로 유명한 남전藍田 부근 망천輞川이라는 경치가 좋은 곳에 가서 매우 규모가 큰 별장을 마련하고 즐기면서 살았는데, 이 녹채와 223.번 시에 나오는 죽리관 등 26가지나 되는 시설과 경관이 그 중에 갖추어져 있었다고 함. 2) 반영返景: 여기서 이 영자는 본음은 “경”이나, 이 경우에는 그림자 影자와 통용함.
226 서로 그리워 함. 상사 相思 紅豆生南國,(홍두생남국), 홍두나무 남쪽 지방에서 자라 春來發幾枝?(춘내발궤지)? 봄이 오니 몇 가지나 피었을까 愿君多采힐?,(원군다채힐), 원하노니, 그대여 많이 따두소서 此物最相思.(차물최상사). 이것이 가장 그리운 것이라오 홍두가 생남국하여 춘래에 발기지오? 원군다채힐하노니 차물이 최상사라.
홍두가 남쪽 나라에서 나는데, 봄이 오니 몇몇 가지에나 열리었는가? 원하노니 그대 많이 옷섭에 따서 담게나, 이 물건이 가장 생각이 나는구려.
주석 1) 상사相思: 여기서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쌍관어雙關語로 사용하고 있다. 즉 “서로 그리워한다”는 의미와, “홍두”라는 애정을 표시하기 위하여 주는 나무 열매를 동시에 나타낸다. 홍두의 별명이 “상사자相思子”이기 때문이다. 2)홍두紅豆: 광동, 광서, 대만 등지에서 나는 나무의 열매. 짙은 붉은 빛깔에 편원扁圓 형으로 생겼는데 머리에 장식으롣 사용함. 일명 상사자. 3) 힐擷: 따서 옷섶에 담다.
맹호연 232 봄날이 밝다 春曉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노곤한 봄잠에 날 새는 줄 몰랐더니(不覺)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여기저기 새우는 소리로고(覺) 夜來風雨聲,(야내풍우성), 간밤의 비바람 소리에(覺) 花落知多少?(화낙지다소)? 꽃잎 떨어짐이 그 얼마이리오(不覺)
춘면을 불각효러니 처처에 문제조라 야래풍우성에 화락지다소오
봄날 밝아온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니, 처처에 새우는 소리 들리는 구나. 밤에 온 비 바람소리에, 꽃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왕지환王之渙 236. 관작루에 올라서 등관작루登鸛雀樓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밝은 해는 산에 의지하여 넘어가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황하는 바다로 들어 흘러간다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천리 먼 곳을 다 바라보고파 更上一層樓.(갱상일층누). 다시 한 층 더 올라본다 백일은 의산진하고 황하는 입해류라 욕궁천리목하야 갱상일층루라
흰 해는 산으로 지고, 누른 강물은 바다로 흐르네. 천리를 바라보는 눈길을 다 풀어 보고자하여, 다시 한층 씩 누각을 더 올라가네.
주석: 1)관작루鸛雀樓: 산서성 영제현永濟縣에 있는 3층 누각인데 앞으로는 중조산中條山을 쳐다볼 수 있고, 아래로는 황하수를 굽어볼 수 있어 경치가 훌륭하기 때문에, 황학루, 등왕각, 악양루와 더불어 중국 4대 누각의 하나로 꼽힘. 2)의산진依山盡, 입해류入海流: 여기서 의자나 입자는 둘 다 원래는 동사이지만, 그 뒤에 나오는 진자와 류자가 모두 주 동사의 역할을 하므로 부 동사로 바뀌어 전치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의지하다”, “들어가다”라는 뜻에서 ~로, ~로 정도로 변하였다.
왕건王建 239. 갓 시집온 새댁 신가랑사新嫁娘詞 三日入廚下(삼일입주하) : 시집온지 사흘만에 부엌으로 들어가 廚(부엌주) 洗手作羹湯(세수작갱탕) : 손 씨소 죽을 끓인다 羹(죽갱) 未諳姑食性(미암고식성) : 시어머니 식성을 아직 알지 못해 先遣小姑嘗(선견소고상) : 먼저 시누이더러 먼저 맛보게 한다 嘗 맛볼상 삼일입주하하여 세수작갱탕이라 미암고식성하여 선견소고상이라
사흘만에 부엌으로 내려가서, 손씻고 국을 끓이네. 시어머니의 식성을 잘 몰라서, 먼저 작은 시누이에게 맛보게 하네.
1) 갱탕羹湯: 고기와 나물을 섞어 끓이는 죽.
유종원 241. 강의 눈 경치 강설江雪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 온 산에 새는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만경인종멸). 모든 길엔 사람 발길 끊어졌다 徑(지름길경)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에 삿갓 쓴 노인 蓑(도롱이 사)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눈 내려 차가운 강에 홀로 낚시질 한다
천산엔 조비절이요 만경엔 인종멸이라 고주사입옹이 독조한강설이라
모든 산에는 날아다니는 새조차 끊어지고, 모든 길에는 사람들 발자취조차 끊어지었네. 외로운 배에 탄 도롱이 입은 늙은이만, 홀로 찬 강 눈 위에서 낚시질하고 있네.
주석: 1).사립簑笠: 비를 막기 위하여 착용하는 짚으로 만든 우의인 도롱이와 기름 종이로 만든 삿갓
이상은李商隱 244. 낙유원에 올라서 登樂遊原
향만하니 의부적하야 구거등고원이라 석양이 무한호나 지시근황혼이라.
저녁이 되니 마음에 맞는 일없어, 수레 몰아서 옛 언덕에 올라왔네. 지는 석양이 한없이 좋으나, 다만 황혼이 가까운 게 한스러울 뿐.
주석: 1) 낙유원樂遊原: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서안) 남쪽에 있는 장안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으로, 3월 3일과 9월 9일에 장안의 남녀들이 이 언덕에 올라가서 부근 경치를 감상하고, 액운을 쫓아내는 모임을 가졌다함. 이 시는 저자가 나이 많음을 한탄하여 지은 것임.
가도(賈島) 245. 은자를 찾아 갔으나 못 만남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采藥去.(언사채약거). 선사님은 약초 캐러 떠나서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 속에 있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 깊어 있는 곳을 모른다 하네
송하에 문동자하니 언“사채약거라 지재차산중이나 운심부지처라”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약을 캐러 가셨습니다. 다만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나, 구름이 깊어 어디쯤 계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더라.
김창서 金昌緖 247. 봄날 떠나가신 님을 원망함春怨 打起黃鶯兒,(타기황앵아) ; 노란 꾀꼬리 쳐서 날려서 莫敎枝上啼.(막교지상제) ; 나무 가지에서 울음 울지 못하게 하오 啼時驚妾夢,(제시경첩몽) ; 꾀꼬리 울 때면, 내 꿈도 깨어 不得到遼西.(부득도료서) ; 요서 지방에 갈 수 없게 한다오 타기황앵아하야 막교지상제하라 제시경첩몽하면 부득도요서라
누른 꾀꼬리를 두들겨 날아오르게 하여, 나무가지 위에 올라가서 울게하지 말라. 울 때에 제 꿈을 놀라 깨게한다면, 꿈속에서 조차도 요서 땅에 이를 수가 없어요.
주석: 1)춘원春怨: 제목에서 푼 것 같이, 전쟁판에 끌려나가서 소식이 없는 남편을 봄날 다시 생각하면서 원망에 차서 지은 시임. 흔히 이렇게 안방에서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를 “규정閨情 시”, 또는 “규원閨怨 시”라고 부름. 2)첩妾: 옛날 중국의 부녀자들이 자기를 낮추어 부르던 칭대사稱代詞. 부인이 남편 앞에서 자기를 말할 때 “소첩小妾”이라고 부르고, 왕후가 임금 앞에서 자기를 지칭할 때 “신첩臣妾”이라고 칭하는 예와 같음. 3)요서遼西: 요하遼河의 서쪽 지방, 지금의 만주 요녕성 서부(심양의 서남쪽) 지방으로 당나라때는 동북쪽으로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해당하였음. |
최 북(18세기)은 조선조 영조 때 전형적인 중인직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낫다
산수를 잘 그렸다고 하여 최산수(崔山水)라고 불리었고 호는 붓 한 자루에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호생관(毫生館)이라 지엇다 그는 이름인 북(北)자를 둘로 쪼개 칠칠(七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칠이는 못난이, 바보를 일컫는 속어이다 그는 아무 곳에도 매인 데가 없는 자유인이었다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그리고 싶지 않으면 죽어도 그리지 않았다 성질이 괴팍하고 오기 ,고집, 자만등으로 똘똘 뭉쳐잇던 최 북은 원칙에 벗어난 일을 당햇을 때는 상대방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앗다 화가에게 눈은 목숨과 같이 귀중한 것일 진데, 그는 스스로 눈을 찔러가면서도 기성의 권위와 강요에 굴하지 않는 기질을 보여주었다 고흐가 자기 내면의 감정으로 귀를 잘랐다면 최 북이 눈을 찌른 것은 외적 권위와 강요에 대한 대항이었다 한 세도가가 그에게 그림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 북은 그려주지 않았고 여러번 강요해도 끝까지 응하지 않자 세도가는 강압적으로 신체적인 위협을 하려 들었다 이에 최북이 불같이 화를 내며 “남이 나를 강압해 해를 입히지는 못한다 차라리 내가 나를 위해하마”라며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버렸다 한다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구룡연(九龍淵)에 이르러 그 경치에 탄성을 터트리다가 “천하의 명인이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못 속에 뛰어 들기도 했다 최 북은 전국 명승지에서 노닐며 경치에 취하고 술에 취했고 인정에 취했고 자기예술에 도취되어 숱한 명품을 남겼다. 그는 욕심이 없으면서도 광기의 기질이 있었다 예술가는 당당한 자유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표훈사도(表訓寺圖) 금강산의 표훈사와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내듯 뚜렷하게 넓은 폭으로 전개하여 묘사한 작품이다. 내산과 외산을 거의 동일선상에서 묘사하고 있어, 이것은 마치 산으로 들어갈수록 멀리 있는 높은 산들이 오히려 낮게 보이는 시각의 착각 현상을 그대로 나타냈다 힘차게 고개를 위로 쳐들고 물을 건너는 황소와 그 위에 채찍을 두 손으로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몸을 꾸부린 목동으로 전체를 채운 간결한 구도의 그림 종이에 채색 24.2*32.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왼쪽 위에는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제(題)가 있어, 그 구절대로 공산(空山)의 텅빈 초옥(草屋)이 보이고 그 옆에 선 두 그루의 나무가 근경을 채우고 있다. 나무 가지들도 실제의 모습과는 아랑곳없다는 듯 제멋대로 뻗었다 일반적 화법을 무시한 이 모든 점이 작가의 기이한 성격과 높은 예술적 감각을 잘 나타내 준다. 종이에 수묵 담채 31.*36.1cm 서울 개인 소장
조어산수는 광생(狂生)이라고도 불리었던 최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듯 대담하고 거친 필치, 빠른 속도로 그린 간일한 구성이 돋보인다 족자 종이에 담채 66.3*42.9cm 서울 개인 소장
화원임에도 불구하고 문인화에 방불한 격조와 의취가 담긴 수작은 남긴 최 북은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예인의 긍지를 지니고 그림에 임햇던 조선시대의 흔치 않은 화가 중 한 사람이엿다
산수화는 물론 화훼, 영모, 괴석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엿으며 책읽기와 시 짓기를 좋아한 시 .서. 화 삼절의 화가이기도 했던 조선의 화가 최 북 궁핍하고 가난했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간 그는 "표훈사도" "공산무인도" 등 80여점의 작품을 남겻다 |
제2교시 20110310
책소개
당시 300수 이원섭저(시인)
당시정해(任昌淳)저
唐詩全解 金達鎭 (당시800首)
중국시가선 (지영재) 저 당시 500수
중국명시선(명문당) 100수 해설서 (담당교수 퇴임기념으로 친구들이 같이 해설함)
중국한시번역. 신영복(성공회 신학대학교수)
249-250 樂府
253,장간항이수지일(長干行二首之一)-최호(崔顥)
顥(클호,머릿털 흰빛나는 모양)
樂府(음악을 관장하는 기관)
장간행-최호(崔顥)
君家何處住,(군가하처주), 그대의 집은 어느 곳입니까
妾住在橫塘.(첩주재횡당). 저의 사는 곳은 횡당 땅이랍니다
停船暫借問,(정선잠차문), 배를 멈추고 잠시 여쭈어봅니다. 借問(삼가묻다, 조심스럽게묻다)
或恐是同鄕.(혹공시동향). 혹시 고향사람인가 해서요.
是不是(쓰브쓰)是(옳을 시) 그렇냐아니냐
南京=金陵 여운영(독립운동가) 금릉대출신, 長干=남경에 있는 동내이름
借問酒家 何處在?(삼가묻노니 술집이 어디에 있소?),
借光(잠깐실래합니다)(借 빌차 돕다, 가령, 빌리다) 조심스럽게 삼가
恐怕(공파) 아마도 (恐 두려워할 공; 怕 두려워할파, 아마도)
妾(여자가 남자앞에서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것)
<六朝> 樂府(민요수집 책이름>
六朝중국에서 한(漢)이 망하고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기까지의 과도기(220~589).
6조라는 용어는 이 시기에 중국 중부에 있는 도시 난징[南京]에 수도를 두고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여섯 왕조에서 유래되었다. 이 여섯 왕조는 오(吳:222~280)·동진(東晉:317~420)·유송(劉宋:420~479)·남제(南齊:479~502)·남량(南梁:502~557)·남진(南陳:557~589)을 말한다. 이와 같은 시기에 중국 북부에는 중앙 아시아에서 침입해온 유목민족이 세운 부족국가들이 있었다. 이들을 북조(北朝)라고 하는데, 중요한 국가를 들자면 뤄양[洛陽]에 도읍을 세웠던 북위(北魏:386~534/535), 안양[安陽]에 도읍을 세웠던 동위(東魏:534~550), 장안(長安)에 도읍을 세웠던 서위(西魏:535~556/557), 안양에 도읍을 세웠던 북제(北齊:550~577), 장안에 도읍을 세웠던 북주(北周:557~581)가 있었다. 이 시대의 명칭이 6조가 된 것은 중국 문명의 중심이 북부에서 남부로 서서히 이동해갔음을 반영하고 있다. 새로 중국 문명의 중심지가 된 남조(南朝)의 왕조들은 양쯔 강[揚子江]을 경계로 북쪽의 침략자들로부터 떨어진 곳에 도읍을 두고 있었으며,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사회가 해체되고 끊임없이 이민족이 침입하여 중국 북부 전역을 통치하면서 결과적으로 중국에 근본적인 변화가 많이 나타났다. 그때까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오던 유교이념이 쇠퇴한 반면, 도교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불교가 유입되면서 여러 곳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불교는 민중종교로서 크게 번성했다. 또한 북조의 유목민족국가 지배층도 불교를 수용했는데, 이는 왕권에 대한 불교관념이 이들 국가의 통치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경건함과 선행을 강조함으로써 중세 초기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미쳤던 영향력과 유사한 힘을 행사했다. 도교도 소수를 위한 신앙에서 벗어나 세력이 확산되어 마침내 대규모 민중종교가 되었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혼란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약학·천문학·식물학·화학에서 대단한 발전을 보였다. 외바퀴 손수레와 돛이 발명되었고, 석탄이 처음 연료로 사용되었다. 문벌귀족 가문이 형성된 것도 6조시대였다. 말기에는 문벌귀족의 지배가 확립되었으며, 당대(唐代:618~907) 중엽 내지 말기까지 이들의 지배가 계속되었다. 이 시대에 나타난 변화와 불확실성은 자연스럽게 예술에 반영되어 풍성하게 꽃을 피웠으며, 그 시대 정치사의 특징이었던 혼란을 넘어서게 되었다.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게 되면서 문학과 서예가 중시되었고, 시 작품이 많이 나와 어디서나 사랑의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잦은 전쟁을 겪었던 북조에서는 군사적인 영향이 문학작품에 반영되었는데 〈목란시 木蘭詩〉와 같은 작품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시의 내용은 남장 소녀가 전쟁터에서 전공을 세운다는 것이다. 조식(曹植:192~232)·도연명(陶淵明:365~427)과 같은 서정시인의 시가 널리 사랑받았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 주요저술가들이 옛 성현들을 모방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개성이 담긴 표현을 했고, 지적인 대화와 논쟁이 유행했다. 음률이 있는 염불을 듣게 되면서 청각이 섬세해졌고 중국어 음조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졌다. 예술은 세속적인 것에까지 침투했다. 양현지(楊衒之)가 지은 〈뤄양 가람기 洛陽伽藍記〉는 뤄양 지역의 사찰과 궁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 당시의 사건과 민속까지 생생하게 기록하여 걸작으로 꼽힌다. 한족과 북방의 침략자 간의 대립은 문화적인 경쟁의식과 더불어 전통문학과 기타 예술작품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고조시켰다. 북조에서는 타타르족의 침략을 알리기 위해 군사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던 나팔·북·퉁소 같은 것이 순수한 악기로 사용되었다.
한편 북조에서도 불교가 성행하여 북위에서 일찍부터 절을 지었다. 이로써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시각예술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자극은 남조에서 좀더 서서히 나타났지만, 4세기에 북조에서 피난온 사람들과 인도차이나에서 온 승려들이 예술의 발전을 촉진시켜 난징은 이미 중국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인 외에도 많은 위대한 화가와 서예가가 배출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예술비평까지 했다. 화가로서 예술비평가를 겸했던 사혁(謝赫)은 중국 회화의 '6법론'(六法論)을 제시했다. 초기의 화가들은 주로 불교와 도교를 주제로 다루었다. 시인·음악가·조각가로서 다재다능했던 대규(戴逵)와 고개지(顧愷之)는 문인화(文人畵)의 전통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사원이나 수도원의 건설과 더불어 건축예술이 발달했다(→ 중국건축). 사원이나 수도원은 4~5세기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북조에서는 485년 북위가 도읍을 뤄양으로 옮기면서 건축가들이 새 도읍에 화려한 도시를 건설했다. 남·북조에서 모두 벽돌과 돌을 층층으로 쌓은 탑이 만들어졌다. 북조의 탑은 인도 탑의 영향을 받아 장식적인 치장을 했고, 남조의 탑은 꼭대기가 곡선 모양인 지붕처럼 되어 있었다. 벽면에 채색한 벽화를 그렸고 사원의 벽에는 부조(浮彫)된 인물상이 있었는데, 때로 동굴에도 벽화나 인물의 부조상이 있었다(→ 북위조상). 동굴 속에 그린 북조의 불교 벽화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조각에서는 한대(漢代)에 유행했던 방대한 규모의 인물상 조각이 날개 달린 사자나 기타 기념비 같은 작품으로 이미 대체되었다. 6조시대 문학의 특징이 개성과 우아함에 있었듯이 시각예술에서도 모든 분야에 걸쳐 우아한 모습이 새로 유행했다. 6세기초 남조의 회화에서는 매우 우아한 형태가 발전했는데, 이는 늘어진 옷감과 고급 의상을 걸친 5세기의 궁중 인물화를 변형시킨 것이었다. 남조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양쯔 강 하류에서 껴묻거리[副葬品]용이나 기타 용품으로 도자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월요(越窯:저장 성[浙江省] 동부의 도요지)의 물병 등이 대표적이다. 허베이 성[河北省]과 후난 성[湖南省]에서는 '북방의 청자'가 개발되었으며, 여기에는 북조의 지배층이 북부와 서부에서 수입해온 예술양식의 이국적인 향취가 배어 있었다.
결국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놓은 것은 6조시대의 문화생활이었는데, 북조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유목민족의 왕조들이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중국어를 쓰고 중국화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에 흡수·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북위의 경우 중국에 침입해 들어온 지 1세기도 채 못 되어 완전히 중국에 동화되었으며, 자기 부족의 고유한 의상을 법으로 금하기까지 했다.
252 精夜思(樂府中新樂府) 李白
“這是卽景思鄕之作“ 這(이저 맞다,)
牀前 明月光(상전간월광) 평상 앞에 흐르는 밝은 달빛을 보고 看月=明月
疑是 地上霜(의시지상상) 서리가 내린줄로만 알았네
擧頭 望明月(거두망산월) 고개 들어 산의 달 바라보다가 山月=明月
低頭 思故鄕(저두사고향) 고향 생각에 고개 숙였네.
靜夜思 중의 擧頭望明月의 분위기를 느껴볼까 하여
김두량월하계류도(金斗樑, 1696년 ~1763년)의
그림을 올려 보았습니다.<촌사람>
254,장간항이수지이(長干行二首之二)-최호(崔顥)
長干行-최호(崔顥)
家臨九江水,(가림구강수), 내 집은 구강의 강물 가까이 있어 臨(내려다볼임)
來去九江側.(내거구강측). 구강 가를 넘나들지요
同是長干人,(동시장간인), 저도 장간 사람인데
生小不相識.(생소부상식). 우리가 너무 어려 알아보지 못했지요
261,회향우서(回鄕偶書)-하지장(賀知章;659-744)
고향에 돌아와서 우연히 적다- 84세에 귀향
少小離家老大回,(소소리가노대회),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鄕音無改鬢毛摧.(향음무개빈모최). 고향 사투리 그대론데 귀밑머리만 희어졌구나 摧=衰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부상식), 아이들은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相=我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내)? 웃으며 손님은 어디서 오셨냐고 묻네
회계산(會稽山): 우임금이 죽은 산으로 우혈 鬢 귀밑털 빈 摧꺽을 최 衰(쇠할쇠 최)
263,구월구일억산중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왕유(王維)
구월구일 산동의 형제를 생각하면서-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 : 홀로 타향에 나그네 되어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 명절을 만나면 고향 생각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라
徧揷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 산수유 꽂으며 놀 적에 한 사람 적음을 알겠지
徧=遍(두루편, 널리편)=普遍, 偏(치우칠편) 茱(수유수) 萸(수유유)
267,양주사(涼州詞)-왕한(王翰)
왕한:校書郞(도서관제일아래벼슬)
음악관장부서: 한무제(80명관원 樂府) 당현종(校房, 梨園 (제자 수만명)
葡萄美酒夜光杯 를,(포도미주야광배), 야광배 술잔에 맛 나는 포도주
欲飮琵琶馬上催 라.(욕음비파마상최). 마시려니 말위의 비파가 재촉한디
醉臥沙場君莫笑 하라,(취와사장군막소), 취하여 모랫벌에 누워도 그대는 비웃지 말라
古來征戰幾人回 오!(고래정전기인회)! 예부터 전쟁에 나아가 몇 사람이나 돌아왔던고
幾(위태할 기)
강의 정리 4(제2교시)20110310 20110314 반농 이장우교수
악부樂府: 본 뜻은 “음악을 관리하는 관청”이란 뜻으로, 한나라 무제 때에 세워졌던 것인데, 이 관청에서 수집한 민간 가요를 악부, 또는 악부시라고도 함. 후대에도 이러한 민가풍의 가사를 문인들이 모방하여 많이 지었는데, 이 역시 악부, 또는 악부시, 또는 신악부라고 불렀음. 처음에 수집된 악부시에는 시행의 글자 수가 일정하지 않은 장단구長短句가 많았으나, 두로 갈수록 5언, 또는 7언시 같이 글자 수가 가지런한 시가 많아졌음.
최호崔顥 249-50 장간 마을 노래長干曲
君家何處住,(군가하처주), 그대의 집은 어느 곳입니까 妾住在橫塘.(첩주재횡당). 저의 사는 곳은 횡당 땅이랍니다 停船暫借問,(정선잠차문), 배를 멈추고 잠시 여쭈어봅니다. 借問(삼가묻다) 或恐是同鄕.(혹공시동향). 혹시 고향사람인가 해서요. 군가하처주오 첩주재횡당이라 정선잠차문하노니 혹공시동향가 가림구강수하야 거래구강측이라 동시장간인이나 생소불상식이라
그대의 집은 어디쯤 인지요? 저는 횡당에 살고 있지요. 배를 세우고 잠시 삼가 여쭈어 보나니, 혹시 아마도 우리들은 동향 사람이 아닐까요? 제 집은 구강수 곁에 있기에, 구강수 곁을 오며 가며 하였지요. 다 같은 장간 사람이나, 어릴 때 모르고 지났네요.
1)장간곡長干曲: 장간은 남경의 진회하秦淮河 남쪽에 있는 서민들이 사는 마을 이름. 곡은 악곡이라는 뜻인데, 원래 장간곡이라는 곡조가 있는데, 그 곡조에 맞추어 노래 가사를 이 작가가 지어 넣은 것임. 이 당시300수 책에는 이태백이 지은 장간곡이라는 가사도(앞의 제 43-44번 시) 보이는데, 이 시보다는 길이가 길다.
이 최호의 시 2 수의 시를 모두 아가씨 혼자서 한 말로 풀이한 책도 있고, 앞의 것은 아가씨가 묻고, 뒤의 것은 총각이 답한 것으로 푼 해설도 있음.
2)횡당橫塘: 남경 부근에 흐르고 있는 양자강 어귀에서부터 진회하를 따라 가면서 쌓은 제방을 말하기도 하고, 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함.
3)구강九江: 강서성 구강현에 있는 지명.
이백 252. 고요한 밤에 고향을 생각하며 靜夜思
牀前 明月光(상전간월광) 평상 앞에 흐르는 밝은 달빛을 보고 看月=明月 疑是 地上霜(의시지상상) 서리가 내린줄로만 알았네 擧頭 望明月(거두망산월) 고개 들어 산의 달 바라보다가 山月=明月 低頭 思故鄕(저두사고향) 고향 생각에 고개 숙였네. 상전명월광이 의시지상상이라 거두망명월하고 저두사고향이라 침대 앞에 비치는 밝은 달빛이, 아마도 땅에 내린 서리인가 의심스럽구나.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쳐다보고, 고개를 낮추어 고향 땅을 생각하누나.
주석
1)정야사靜夜思: 악부시 중의 신악부(앞의 악부 해설 참고 요망)에 나오는 곡명임. 이태백의 이 시는 아무런 수식이나 어려운 전고를 사용하지 않은 이른바 “백묘직술白描直述” 시인데도 천고의 絶唱으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시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적절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칠언절구七言絶句: 근체시 중 일곱 자씩 4행, 즉 28자로 된 짧은 시
하지장賀知章: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인 회계會稽 사람인데, 호를 고향 가까이 있는 사명산四明山의 미친 사람이란 뜻으로 사명광객이라고 함. 국가도서관장 격인 비서감秘書監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하고 86세까지 장수를 하였는데, 평소에 시와 술을 좋아하고 농담을 잘 하였으며, 도사 풍을 좋아하였음. 이태백을 조정에 추천하고 후원하였으며, 두보가 지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중에서 그를 평하여 “하지장 어른께서는 말을 꼭 배 타듯이 흔들 흔들거리시는데, 눈이 어지러워 우물에 떨어져도 물밑에서 주무시지”라고 읊었다.
259. 고향에 돌아와서 回鄕偶書 少小離家老大回,(소소리가노대회),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鄕音無改鬢毛摧.(향음무개빈모최). 고향 사투리 그대론데 귀밑머리만 희어졌구나 摧=衰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부상식), 아이들은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相=我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내)? 웃으며 손님은 어디서 오셨냐고 묻네 소소이향노대회하니 향음무개빈모최라 아동은 상견불상식하고 소문객종하처래오하더라
젊을 때 고향을 떠났다가 늙어서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는 변하지 않았으나 머리만 벌서 새었구나. 아희들은 나를 보고도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서, 웃으며 묻네 “손님께서는 어디서 오시니껴?” 하고.
주석
1)회향우서回鄕偶書: 이 시는 그가 84 때 도사가 되고자 하여 조정에서 은퇴하여 고향에 돌아갔을 때 지은 시임.
2)최(摧): 어떤 판본에는 쇠(衰) 자로 되어 있는데, 摧는 재촉한다는 뜻인데, 衰자도 이 경우에는 상복과 같은 “흰 빛”이란 뜻의 최縗와 발음과 뜻이 상통하는 것으로 봄.
왕유 260. 9월 구일에 산동에 있는 형제들을 그리워하노라九月九日, 憶山東兄弟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 : 홀로 타향에 나그네 되어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 명절을 만나면 고향 생각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라 徧揷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 산수유 꽂으며 놀 적에 한 사람 적음을 알겠지 독재이향하니 위이객하야 매봉가절에 배사친이라 요지형제 등고처나 편삽수유소일인이라
홀로 타향에 머무니 나그네 몸 되어, 늘좋은 명절 만날 때마다 식구들 생각 더욱 간절하네. 멀리서 형제들 모두 높은 곳에 올라가서, 두루다 산수유를 따고 있는데 한사람만 빠졌구나.
주석
1)산동山東: 옛날 진秦 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지금의 섬서성으로 들어가는 함곡관이라는 높은 요새를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을 산서山西, 그 동쪽을 산동이라고 부르는데 산서는 함안(장안)이 중심이며, 산동의 중심은 낙양임. 전국시대 말기에 산서에 있던 진나라 한 나라가 산동에 있던 초나라, 제나라 등 6국과 대결하였음.
왕유는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사람인데, 이 시는 17세때 지은 것임. 그는 장남으로 네 명의 아우가 있었음.
2) 수유茱萸: 산山수유, 오吳수유, 식食수유 3종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산수유는 꽃은 누르고 열매는 붉은데, 봄 가을 두 번씩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를 한약재로로 사용한다. 중국 풍속에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이 나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나쁜 기운을 제거하고 첫 추위를 막을 수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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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교시 20110317
동양고전연구소-->카페이름
잔산 장윤기변호사 당시정리하여 올림.
265, 황학루송맹호연지광능(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이백(李白;701-762)
매호연이 광릉에 감을 전송하다-이백(李白;701-762)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누), 황학루에서 친구를 서쪽으로 보내고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아지랑이 오르고 꽃 가득한 삼월에 양주로 간다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멀어지고
惟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오직 장강만 먼 하늘 끝으로 흘러간다
주석:
*故人=친구
* 양자강을 따라 南京->揚州->武漢->江陵(荊沙市)->洞庭湖->三峽(그중한곳 巫峽)->白帝城(유비가 죽은곳)->重慶->成都->
소동파(蘇東坡)의 녹균헌(綠筠軒)이라는 한시를 소개 한 적이 있는데 이 시가 학문을 하는 우리들의 직업관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전구를 적어 본다. 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傍人笑此言 似高還似癡 若對此君仍大嚼 世間那有揚州鶴 식사에 고기가 없을 수는 있어도 사는 곳에 대나무는 없을 수 없네 고기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 대나무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 다오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는 법 옆 사람 이 말을 비웃으면서 고상한 것 같으나 어리석다 말하지만 대나무 앞에 두고 고기 실컷 먹는다면 세상에 어찌 양주학(揚州鶴)이란 말 있었겠는가
이 시에 나오는 ‘양주학(揚州鶴)’이란 말의 유래는 옛날에 선비들이 각자 자신의 소원을 말했는데, 어떤 자는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어떤 자는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또 어떤 자는 학(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하였다. 관직과 많은 돈을 갖고, 학을 탄 신선까지? 다 누릴 순 없다. 라는 말이라고 한다. |
揚州 = 廣陵 그리고 光陵散이라는 독특한 노래 법이 있다.
西辭 = 장강이 서쪽으로 흘러감
煙 = 烟(연기 연) 煙花->안개가 가득 낌
碧空-> 푸른하늘
惟見-> 오직 보이는 것은 惟(생각할 유, 꾀하다, 도모하다)
天際流-> 하늘 끝으로 흐르네
李白의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266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백(李白;701-762)
백제성을 일찍 출발하며-李白(이백)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아침 일찍 구름 낀 백제성을 떠나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능일일환). 천리 먼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노라
兩岸猿聲啼不住,(량안원성제부주), 양편 강 언덕엔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고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내가 탄 빠른 배는 벌써 첩첩한 산을 지나왔네
辭 -> 떠나다,
江陵 = 荊州, 荊沙市
267, 저주서간(滁州西澗)-위응물(韋應物)
저주 서편 골짜기에서-위응물(韋應物)
獨憐幽草澗邊生(독련유초간변생) : 특별하구나, 계곡 가에 그윽한 풀
上有黃鸝深樹鳴(상유황리심수명) : 위에는 괴꼬리가 깊은 숲에서 운다
春潮帶雨晩來急(춘조대우만래급) : 비 실은 봄날 조수는 저녁에 급해지고
野渡無人舟自橫(야도무인주자횡) : 들판 나룻터에 사람은 없고 배만 떠있다
憐 (불쌍히 여길 련) 어여삐여기다.
鸝 꾀꼬리 리
268. 逢入京使(봉입경사)-岑參(잠참)
서울로 들어가는 사신을 만나-岑參(잠참)
故園東望路漫漫(고원동망로만만) : 동으로 고향 땅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한데
雙袖龍鐘淚不乾(쌍수용종루불건) : 양소매가 흥건해도 눈물은 마르지 않네.
馬上相逢無紙筆(마상상봉무지필) : 말 위에 그대 만나니 종이와 붓이 없어
憑君傳語報平安(빙군전어보평안) : 부탁하노니, 평안하다는 안부 좀 전해주오
憑 (기대 빙, 의지하다)
269,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두보(杜甫;712-770)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두보(杜甫;712-770)
岐王宅里尋常見,(기왕댁리심상견), 기왕의 집안에서 늘 만나보았는데
崔九堂前幾度聞.(최구당전궤도문). 최구의 집 앞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가
正是江南好風景,(정시강남호풍경), 지금은 강남의 좋은 풍광
落花時節又逢君.(낙화시절우봉군).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나다니
* 莫不: 하지않을 수없다. 莫(없을 막, 고요하다 말하다)
* 掩(가릴 엄) 掩泣: 얼굴을 가리고 울다
* 崔九: 최씨의 아홉 번재 사람(아홉번째로 높은 사람)
* 張三李四: 장씨댁세번째 이씨댁네번째사람
* 行第: 가문에서 몇 번째 사람인가?
*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 梨園, 太樂署(당나라), 樂府(한나라)
* 少陵= 杜甫는 안록산 난이후 성도에 살다가 50대 중반이 넘어 삼협아래 동정호 근방에서 “崔九”를 만나다.
구영(仇英)은 明代의 화가로서 색채를 화려하게 사용하는 화가입니다.
강남의 호풍경을 나타낸다 싶어서 두보의 시에서 正是江南好風景을
두보의 江南逢李龜年에 부친다(촌사람)
270,풍교야박(楓橋夜泊)-장계(張繼;?-778-?)
풍교에서 밤을 지새며-張繼(장계)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 달 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에는 서리가 가득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 강가의 단풍 숲 어화는 나의 근심스런 잠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 깊은 밤 종소리 나그네 탄 배에 은은히 들린다
* 對愁眠的我; 對我愁眠 과 같이 我자가 빠진 것으로 본다.
* 사부-> 예부 밑에 있는 기관명
* 員外: 임시직
* 分掌: 나누어 하다.
* 掌書記: 지방정부 벼슬을 하면 중앙정부에서 직을 하나씩 붙여줌(연금 때문에)
277. 오의항(烏衣巷)-유우석(劉禹錫;772-842)
오의항-유우석(劉禹錫;772-842)
朱雀橋邊野草花,(주작교변야초화), 주작교 주변에는 들꽃 피고
烏衣巷口夕陽斜.(오의항구석양사). 오의항구에 석양이 진다
舊時王謝堂前燕,(구시왕사당전연), 그 옛날 왕과 사의 집 앞 제비
飛入尋常百姓家.(비입심상백성가). 지금은 일반 백성 집으로 날아든다
* 烏衣: 검은 옷
* ----花, ---斜 다 같이 동사로 사용
* 당나라시대 행정기구 省->縣->鄕-->鎭>->街->巷
* 常 보잘것없는 서민
반농 이장우교수 정리 20110317
이백 265. 황학루에서 맹호연이 광릉으로 감에 송별하며 黃鶴樓, 送孟浩然, 之廣陵.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누), 황학루에서 친구를 서쪽으로 보내고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아지랑이 오르고 꽃 가득한 삼월에 양주로 간다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멀어지고 惟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오직 장강만 먼 하늘 끝으로 흘러간다 고인서사 황학루한데 연화삼월에 하양주라 고범원영은 벽공진한데 유견장강 천제류라 정든 친구 서쪽으로부터 황학루를 떠나가서, 안개 가득한 3월 달에 양주 땅으로 내려가네. 그대 탄 외로운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 밖으로 사라지고, 오직 긴 양자강 줄기 하늘 끝과 맞닿아 흐르는 것만 보이네.
1) 황학루黃鶴樓: 호북성 무창에 있는 중국 4대 누각 중의 하나. 2) 광릉廣陵: 본문에 나오는 양주揚州의 다른 이름.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 양자강과 대운하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물이 풍부하며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수나라가 도읍으로 삼기도 하였으며, 소금의 집산지로서 상업 경제가 발달하고 문화 수준이 높은 곳으로 이름이 높음. 3)지之: 여기서는 동사로서 “간다”는 뜻. 4)고인故人: 작고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오랜 친구”라는 뜻임. 5)서사西辭: 서쪽으로부터 떠나가다. 황학루가 양주보다는 서쪽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였음. 6)연화煙花: “연”자는 안개, “화”자는 이 경우에는 별 뜻이 없는 접 미사로 사용되고 있으니, 이 두 글자의 의미도 역시 “안개”라는 뜻이지만, 흔히 “아름다운 봄 경치”를 뜻하기도 함. *보통 송별시는 송별하면서 지어주는 것이므로, 여기를 앞으로 나아갈 여정에 대하여서는 앞으로 이러 저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여 적어놓는 게 일반적인 관례 같은데, 여기서도 3,4구는 예측을 하고 쓴 것으로 보아야 할는지? 한시에는 시제를 분명하게 밝히는 말이 없고, 몇 가지 주석이나 백화문 번역서를 보아도 이점은 분명하게 밝혀놓은 게 없으니 좀 답답하다. 이 번역은 오직 작자가 배가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하여 지키고 서 있는 것으로 보고 옮긴 것이나, 꼭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266. 아침에 백제성을 떠나서 早發白帝城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아침 일찍 구름 낀 백제성을 떠나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능일일환). 천리 먼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노라 兩岸猿聲啼不住,(량안원성제부주), 양편 강 언덕엔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고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내가 탄 빠른 배는 벌써 첩첩한 산을 지나왔네 조사백제 채운간하야 천리강릉을 일일환이라 양안원성 제부주한데 경주이과 만중산이라 아침에 백제성을 아롱진 구름사이에서 떠나서, 천릿길 강릉 땅을 하루 사이에 돌아왔네. 양쪽 연안에 원숭이 소리 울어 그치지 않는데, 가벼운 배 이미 만 겹 산을 지나왔네.
1) 백제성白帝城: 사천성 봉절현奉節縣 동쪽의 백제산 아래 양자강곁에 있는 고성인데, 유비가 오나라를 치러 갔다가 패하여 후퇴하는 길에 이 성에서 죽었음. 2)강릉江陵: 지금의 호북성 강릉현. 옛날 초나라의 도읍지인 영郢과, 삼국시대에 관우가 주둔하던 형주성이 모두 이 일대임. 양자강 중류의 교통의 요지임. 백제성에서 강릉까지의 거리는 1,200리라고함. 이 거리를 양자강의 물살이 빠르다고 하여도 하루 만에 내려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이시 주석가들의 의견이 분분함.
위응물韋應物 267. 저주의 서쪽 골짜기 물 滁州西澗 獨憐幽草澗邊生(독련유초간변생) : 특별하구나, 계곡 가에 그윽한 풀 上有黃鸝深樹鳴(상유황리심수명) : 위에는 꾀꼬리가 깊은 숲에서 운다 春潮帶雨晩來急(춘조대우만래급) : 비 실은 봄날 조수는 저녁에 급해지고 野渡無人舟自橫(야도무인주자횡) : 들판 나룻터에 사람은 없고 배만 떠있다 독련유초 간변생한데 상유황려 심수명이라 춘조는 대우 만래급한데 야도무인 주자행이라 유독 어여쁘구나! 그윽한 풀 골짜기에 피어났는데, 위에는 누른 꾀꼬리 깊은 숲에서 우네. 봄 물결 비 뿌리니 저녁 무렵에 더욱 급한데, 황막한 나루터에는 건너는 사람도 없어 배만 절로 흔들거리는구나.
1)저주滁州: 안휘성 저현. 첩첩 산중에 위치함. 서간西澗: 저주성 서쪽에 있는 상마하上馬河.
잠삼岑參 268. 서울로 들어가는 사절을 만나다 逢入京使 故園東望路漫漫(고원동망로만만) : 동으로 고향 땅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한데 雙袖龍鐘淚不乾(쌍수용종루불건) : 양소매가 흥건해도 눈물은 마르지 않네. 馬上相逢無紙筆(마상상봉무지필) : 말 위에 그대 만나니 종이와 붓이 없어 憑君傳語報平安(빙군전어보평안) : 부탁하노니, 평안하다는 안부 좀 전해주오 고원동망 노만만한데 쌍수용종 누불건이라 마상상봉 무지필하야 빙군전어 보평안이라 고향 산천 동쪽으로 바라보니 길은 멀고도 먼데, 두 소매에 눈물 흥건 마를 날 없네. 마상에서 그대를 만났으나 좋이와 붓이 없어, 그대에게 말로만 전하노니 평안하다고만 알려주게나.
1)입경사入京使: 서역 땅으로 사신으로 나옸다가 사명을 마치고 서울인 장안으로 되돌아 가는 사신의 행차. 2)고원故園: 옛 뜰, 고향. 잠삼의 고향은 하남의 남양南陽이었음. 3)용종龍鐘: 의태어로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데, 여기서는 눈물이 흥건하다는 뜻이 있음.
두보 269.강남땅에서 이귀년을 만나다江南逢李龜年 岐王宅里尋常見,(기왕댁리심상견), 기왕의 집안에서 늘 만나보았는데 崔九堂前幾度聞.(최구당전궤도문). 최구의 집 앞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가 正是江南好風景,(정시강남호풍경), 지금은 강남의 좋은 풍광 落花時節又逢君.(낙화시절우봉군).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나다니 기왕택리에 심상견하고 최구당전에 기도문고? 정시강남 호풍경한데 낙화시설에 우봉군이라. 기왕님의 저택에서 늘 만났고, 최구님의 마루 앞에서 몇 번이나 그대의 노래를 들었던가? 바야흐로 강남 땅에 풍경이 좋은 데, 꽃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
1)이구년李龜年: 당 현종의 임기 말년의 연호인 천보天寶 년간에 세워진 음악담당 기관인 이원梨園에 속했던 명가수로 황제의 사랑을 받아 장안에서 부귀공명을 누렸으나, 안록산의 난리 뒤에는 강남 땅을 처량하게 전전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함. 2) 기왕岐王: 예종의 제4자 李隆範, 선비들을 좋아하여 지위의 고하를 묻지 않고 극진하게 대접하였다고 함. 3) 최구崔九: 최씨댁의 같은 항렬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아홉 번째라는 뜻. 이름은 척滌인데 현종의 지우를 받아 비서감, 전중감 같은 높은 벼슬을 하였다고 함. *실제로 이 두 사람은 현 종의 재위 전반의 년호인 개원 14년에 죽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기왕님의 저택과 최구님의 마루는 두보가 천보 10년 이후에 드나들던 그들의 자손들의 집들을 말한다함. 장계 張繼 자字는 의손懿孫, 호북성 양주襄州 사람. 천보 12년(753)에 진사, 강남의 홍주洪州에서 소금과 쇠의 전매업을 담당하는 염철판관을 지내고, 만년에 중앙정부에 들어가서는 예부에 속한 국가의 제례 담당 국장급인 검교(檢校: 임시직, 또는 대리의 뜻)사부랑중을 지냄.
270. 풍교에 야박하다 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 달 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에는 서리가 가득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 강가의 단풍 숲 어화는 나의 근심스런 잠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 깊은 밤 종소리 나그네 탄 배에 은은히 들린다 월락오제 상만천한데 강풍어화는 대수면이라 고소성외 한산사에 야반종성이 도객선이라 달 떨어지자 가마귀 울고 서리는 하늘 가득한데, 강가의 단풍 고기잡이 뱃불 시름에 겨운 나를 마주하고 있네.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한 밤중에 종소리 객선에 이르네.
1)풍교楓橋: 강소성 소주시에 풍관楓關에 있는데, 본명은 봉교封橋였으나, 이 시 때문에 풍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고함. 2)한산사寒山寺: 고소성姑蘇城은 소주성을 말하는데, 경내에 고소산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도 부름. 당나라 때 한산寒山이라는 이름 높은 스님이 이절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한산사라고 하였다함. 풍교와 더불어 지금 소주의 관광 명소의 하나.
유우석劉禹錫 277. 검은 의관 골목 烏衣巷 朱雀橋邊野草花,(주작교변야초화), 주작교 주변에는 들꽃 피고 烏衣巷口夕陽斜.(오의항구석양사). 오의항구에 석양이 진다 舊時王謝堂前燕,(구시왕사당전연), 그 옛날 왕과 사의 집 앞 제비 飛入尋常百姓家.(비입심상백성가). 지금은 일반 백성 집으로 날아든다 주작교변엔 야초화요 오의항구엔 석양사라 구시왕사 당전연이 비입십상백성가라 주작교 주변에는 들풀이 피었고, 오의항 어귀에는 석양이 기울었더라. 옛 시절 왕씨 사씨댁 마루 앞에 날던 재비가, 오늘은 일반 백성들 집으로 날아드는 구나.
1)오의항烏衣巷: 검은 의관을 착용한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 남경 시내 주작교 근처에 있는 골목이름인데 동진 시대 명문인 왕씨와 사씨의 자제들이 검은 옷을 착용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2)주작교朱雀橋: 동진의 수도였던 남경의 남쪽 대문인 주작문 바깥에 놓여진 다리 이름. 3)화花: 여기서는 다음 구절에 나오는 “기울다” 는 뜻의 사斜 자와 대가 되어 “꽃피다”는 뜻의 동사로 사용되었음. 3)왕사당王謝堂: 동진의 명재상인 왕도王導와 사안謝安의 가족들이사는 오의항 안에 “재비가 찾아온다”는 뜻의 “내연당來燕堂”이 있었다고함. 4)심상백성가尋常百姓家: 일반 서민의 집, 서민으로 몰락한 왕씨, 사씨의 후손들의 집으로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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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교시 20110324 목요일 10시-12시 동양고전연구소 이장우교수
杜牧(杜甫의 孫子)
淸明時節 雨粉粉한데 路上行人 欲斷魂이라
借間酒家 何處在요 牧童遙指 杏花村이라
286. 박진회(泊秦淮)-두목(杜牧;803-853)
진회에 정박하며-두목(杜牧;803-853)
煙籠寒水月籠沙,(연농한수월농사),
안개는 차가운 물을 감싸고 달빛은 모래밭을 덮는데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근주가).
밤이 되어 진회에 배를 대니 주막촌이 가까워라
商女不知亡國恨,(상녀부지망국한),
장사치의 계집들은 망국의 한도 모르고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후정화).
강 건너 쪽에서는 여전히 후정화 노래를 부르는구나
煙=烟 煙花 花 접미사
南史(南朝: 宋, 齊, 梁, 陳, 吳, 晉 六朝)
北史(北朝: 北矮, 北周, 北齊)
陳後主(진나라의 마지막 왕)
陶淵明(송진나라)남조시대사람
왕휘지(동진사람)
공예지(화가)동진송사람 송나라 진나라 남조때 예술가들이 많이 나옴, 예술문화시대
亡國之音: 나라가 망하는 노래
艶情詩(염정시) 아름다운 여자를 빗대어 쓴 시
염정시를 모아놓은 책-->玉臺新詠
294,金谷園(금곡원)-無名氏(무명씨)
금곡원-無名氏(무명씨)
當時歌舞地(당시가무지) : 그 당시 춤추고 노래하며 놀던 곳
不說草離離(불설초이이) : 풀이 무성해지리라 말하지 않았지
今日歌舞盡(금일가무진) : 지금은 노래와 춤 간 곳 없어
滿園秋露垂(만원추로수) : 동산 가득 가을 이슬만 내리네
(294) 금곡원
繁華事散逐香塵하고 逐(쫒을 축, 뒤쫒다)
流水無情草自春이라
日暮東風怨啼鳥한데
落花猶似墜樓人이라
晉書 石崇傳
崇有妓曰 綠珠 美而艶 孫秀 使人求之 不得矯沼牧崇正 宴於樓上, 謂綠珠曰 [我今爲爾得罪] 綠珠泣曰 [當效死於君前] 因自投於樓下而死
298, 야우기북(夜雨寄北)-이상은(李商隱)
밤비 속에 북으로 부치다-이상은(李商隱)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 (현재형)
그대는 돌아올 날을 묻지만 아직 기약은 없소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창추지). (현재형)
파산은 밤비로 가을 연못에 물 불어나요
何當共剪西窓燭,(하당공전서창촉), (미래형)
어찌해야 함께 서쪽 창에서 촛불심지 자르며
却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미래형)
파산의 밤비 내리던 이 시간을 이야기할까
何當 :어찌하여 능히
중복구의 사용 巴山夜雨 “
剪 자를전
却話; 오히려 말하다
영어번역시
SOUVENIRS; Horbert A. Giles(1900년대 중국문학자 영국사람)
You ask when I'm coming: alas not just yet...
How the rain filled the pooks on that might when we met!
Ah, when shall we ever snuff candles again,
And recall the glad hours of that evening of rain?
A NOTE ON A RAINY NIGHT TO A FRIEND IN THE NORTH
: Witter Bynner(당시300수영어제작자)
You ask me when I am coming, I do not know.
I dream of your mountains and autumn pooks brimming all night with the rain.
Oh, when shall we be rtimming wicks again, together in your western window?
When shall I be hearing your voice again, all night in the rain?
309. 樂府; 위성곡(渭城曲)-왕유(王維;?699-761?)
위성곡-왕유(王維;?699-761?)
渭城朝雨裛(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에 아침 비 내려 먼지를 적시고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객사는 푸르러 버들빛 새로워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게 권하노니, 다시 쭉 한잔 마시게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구 없으리니
陽關: 함숙성 돈황현 서남 130리 [當河之西]
난주(蘭州)->嘉峪關(峪 골욕, 산꼴짜기 욕) 만리장성이 끝나는 서쪽 끝->敦皇, 月牙川, 鳴沙山->陽關->安西(고구려고선지장군이 갔던곳)
裛(행내날 읍 적시다 업다)
故人=친구
중국의 송별시중 유명한 시중에 하나
[陽關 三疊詞]양관부분을 3번 부른다.
316,청평조삼수지일(淸平調三首之一)-이백(李白;701-762)
청평조-이백(李白;701-762)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구름 보면 옷 생각, 꽃 보면 얼굴 생각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봄바람이 창을 스치니 이슬이 꽃을 피운다
若非群玉山頭見,(야비군옥산두견), 만약 군옥산 머리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태월하봉). 반드시 전에 신선 요대의 달 아래서 만나리라.
會: 틀림없이
317,청평조삼수지이(淸平調三首之二)-이백(李白;701-762)
청평조-이백(李白;701-762)
一枝紅艶露凝香,(일지홍염노응향), 한 가지 붉고 요염한 꽃, 향기 어리는데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무산 운우는 한갓 단장의 옛 이야기일 뿐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묻노니 한나라 궁궐엔 누가 이와 같을까
可憐飛燕倚新似.(가련비연의신장). 가련한 조비연이 새 단장함과 같아라
삼협 = 巫山 선녀
借問: 삼가묻다.
318,청평조삼수지삼(淸平調三首之三)-이백(李白;701-762)
청평조-이백(李白;701-762)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량상환), 아름다운 꽃과 경국지색이 다 좋으니
常得君王帶笑看.(상득군왕대소간). 항상 임금은 웃음 띠며 바라보네
解識(釋)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봄바람의 무한한 한 알고 있지만
沈香亭北倚闌干.(심향정배의란간).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있네
春風無限恨 봄바람조차 한을 다할 수없다.
傾國之色 너무 예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것
解: 이해한다. 識: 알다.
無限恨: 가장높은 행복
三不朽: 立德, 立功, 立言
不易猜解(아리송하고 확실하게 알수없다) 猜(원망할시 의심할 시 싫어하다)
강의 정리 4(제4교시) 201103242 반농 이장우교수 두목 288 진회하에 정박하다 煙籠寒水月籠沙(연롱한수 월롱사)한데,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하니 근주가)라 商女不知亡國恨(상여는 부지망국한)하고,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 후정화)라
안개는 찬 물을 감싸고 달은 흰 모레를 감쌌는데, 밤에 진회하에 정박하니 술파는 집이 가깝구나. 술파는 아가씨는 망국의 원한도 모르는지, 강을 격하여 오히려 <후정화>를 부르고 있네.
1. 진회하: 지금 남경성의 진회하. 진시황이 남경 북쪽에 있는 종산을 뚫어 회수를 소통하게 하였기 때문에 진회라는 이름이 붙었음. 2. 후정화. 옥수후정화라는 노래, 수나라에게 망한 진陳나라의 마지막 임금 후주後主가 향락을 위하여 지어 부르게 한 달콤한 노래로, 중국에서 대표적인 “나라망치는 노래亡國之音”로 알려짐.
이상은 294. 금곡원 繁華事散逐香塵(번화는 사산축향진)한데 流水無情草自春(유수무정 초자춘)이라 日暮東風怨啼鳥(일모동풍 원재조)하고 落花猶似墜樓人(낙화유사 추루인)이라
번성하고 화려하였던 일은 향불 재가루 따라서 깡그리 사라졌는데, 흐르는 물 아무른 감정도 없고 풀은 저절로 봄빛 띄웠구나. 날은 지는데 동쪽 바람은 지저귀는 새를 하는 듯, 지는 꽃은 오히려 누각에서 떨어지는 시녀와 비슷하구나.
1. 금곡원: 진晉 나라의 대신 석숭이 낙양 서북쪽에 마련하였던 호화별장. 여기서 연회를 베풀 때, 벌주삼배罰酒三盃를 먹인 것으로 유명함. 2. 추루인: 석숭에게는 녹주라는 노래 잘하고 아름다운 기녀 첩이 있었는데, 손수라는 사람이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으나 주지 않자, 임금의 조칙을 위조하여 석숭의 금곡원을 몰수하려고 하자 녹주가 절개를 보이기 위하여 누각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고 함.
298 밤에 비 내리는 데 북쪽으로 띄움 야우기북夜雨寄北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나미유기)한데,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가 창추지)라 何當共剪西窓燭(하당공전 서창촉)하고, 却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 야우시)오
그대 “언제쯤 돌아오세요?” 물었으나 기약할 수 없는데, 대파산, 소파산에 밤 비 내리니 가을 연못 불어나네요. 아 언제나 그런 날이 올 것인가? 그대와 함께 서쪽 창문 아래서 촛불 심지를 자르면서, 도리어 대파산, 소파산에 밤비 내리던 때를 이야기하게 될 날이.
1. 야우기북夜雨寄北: 어떤 책에는 이 시의 제목을 “밤에 비 내리는데 아내에게 띄움夜雨寄內”라고 되어 있음. 이때 작자인 이상은의 집은 하남성의 북부인 하내河內에 있었는데, 이상은은 사천성에 남강현南江縣에 있는 파산(대파산, 소파산) 아래까지 와서, 어떤 지방장관의 막료로 근무하다가 그 장관이 딴 곳으로 옮겨갔지만 그는 당분간 이곳에 머물고 있으면서 이시를 쓴 것으로 보임. 어떤 사람은 이 시가 친구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서창야우”라는 말이 “친구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근거가 별로 없음. 2. 공전서창촉共剪西窓燭: 초불이 타고 있을 때, 초물이 빨리 흘러 내려 심지만 길면 초불이 꺼지기도 하므로 자주 그런 심지를 끊어 주어야 함.
악부 왕유 309 위성곡渭城曲 渭城朝雨裛(浥)輕塵(위성조우는읍경진)한데,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 유색신)이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 일배주)하노니,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 무고인)이라
위성의 아침 비는 가벼운 먼지를 적시는데, 객사는 푸르고 푸르게 버드나무 빛깔이 푸르네. 그대에게 이 한잔 술을 다시 권하노니, 서쪽으로 양관을 나가고 보면 다시는 아는 사람 없으려니.
1. 위성곡渭城曲: 위성은 지금의 섬서성 함양현 동쪽에 있는 지명인데,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서안)의 서북쪽에 위치하여, 여기서 서북쪽에 있는 변방지대로 멀리 나가는 사람들을 송별하였다함. 이 시도 바로 서쪽으로 나가는 사람을 위하여 지은 이별곡의 가사이다. 어떤 책에는 이 시의 제목이 《원씨 댁 둘째 어른이 안서도호부로 사명을 띄고 나가심을 송별하며送元二使安西》로 된 책도 있다. 2. 양관陽關: 옛날 요새의 이름인데 감숙성 돈황의 서쪽에 있음. 이 노래를 “양관곡”이라고도 부르는데, 흔히 “양관삼첩三疊”이라고 하여, 이별곡으로 이 노래 가사를 세 차례나 중복하여 부르는 것으로 유명함.
왕창령 311. 요새를 나서서出塞 秦時明月漢時關(진시명월 한시관)이나 萬里長征人未還(만리장정에 인미환)이라 但使龍城飛將在(다사용성 비장재)면 不敎胡馬渡陰山!(불교호마 도음산)이라
진나라 때 떴던 밝은 달이요 한나라 때부터 있었던 관문이나, 만리 장정 길에서는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 없었구나. 오직 용성 땅에서 이름 날렸던 날아다니시던 장군님께서 살아계시기만 한다면, 오랑캐 말이 음산산맥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셨을 텐데.
1. 용성비장龍城飛將: 한나라 초기에 몽고와 요동 지방에서 용맹을 떨쳤던 한나라의 장군 이광李廣. 여기서 용성은 당시 몽고에 살던 흉노족의 수도. 흉노족들이 이광을 두려워하여 “한나라의 날아다니는 장군”이라고 부렀다함.
李白 313-315 청평조 淸平調 3수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 화상용)하고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 노화농)이라.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 산두견)이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 월하봉)이라.
一枝紅艶露凝香(일지홍염 노응향)하니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 왕단장)이라.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 수득사)오 可憐飛燕倚新似(가련비연 의신장)이라.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이 양상환)하야 常得君王帶笑看(장득군왕 대소간)이라. 解識(釋)春風無限恨(해식춘풍무한한)하여 沈香亭北倚闌干(침향정북에 의난간)이라.
구름을 보면 그 의상 생각나고 꽃을 보면 그 모습 생각나는데, 봄 바람 헌함에 스치니 아름다운 이슬방울 꽃처럼 진하구나. 만약 이러한 미인을 군옥산 위에서 만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요대의 달 아래에서나 만날 수 있으리.
한 가지 붉은 아름다움 이슬이 향으로 뭉쳐진 듯, 무산의 구름과 비 사람의 간장을 부질없이 끊어 놓기만 하였구나. 잠간 묻노니 한나라 궁전의 누구와 같은가? 어여쁘구나! 조비연이 새롭게 화장하고 나온 것 같구나.
아름다운 꽃과 절세의 미인 둘 다 황제님께서 좋아하시어, 길이길이 황제님의 웃음 띠고 돌아보심을 얻었구나. 봄 바람의 무한한 한을 알아내시고자 하여, 침향정 북쪽의 난간에 의지하고 계시는 구나.
1. 청평조淸平調: 옛날 음악에서 성률의 고하에 따라서 청조, 평조, 측조 3조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청조와 평조만 사용하여 지은 노래란 뜻임. 이 시는 봄날 궁중에 목작약 꽃이 만개하였을 때 당명황이 양귀비를 데리고 놀다가 흥에 겨워, 이태백을 불러다가 청조와 평조로 부를 새로운 노래 가락을 지어라고 하여 지었다고 함. 2. 군옥산群玉山: 전설에 서왕모가 산다는 곳, 이 산에 옥이 많이 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줄여서 옥산이라고 하기도 함. 주나라 때 여행을 즐겼다는 임금 목왕穆王이 북쪽으로 멀리 나갔다가 동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흑수黑水를 감돌아 이 산에 들어간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음. 3.회향요대會向瑤臺: 여기서 회자는 “틀림없이”라는 뜻의 부사임. 요대 유아有娥씨의 딸이라는 역시 선녀가 사는 곳. 3. 운우무산雲雨巫山: 옛날 전국시대 초나라의 양왕이 꿈에 무산의 신녀神女를 만나서 즐겁게 남녀의 정을 나누었는데, 그 신녀는 낮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로 변하였다. 무산은 지금 의 삼협의 무당협 부근에 있는 산. 이 이야기에서 남녀 사이에 육체적인 정을 나눔을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함. 이 시에서는, 이러한 현실 세계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남녀 간의 꿈같은 사랑이, 양귀비를 만나서는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함. 4. 비연飛燕: 후한 성제의 황후. 원래는 양아陽阿 공주의 시녀였지만 가무를 배우고 “나는 재비”와 같이 춤을 잘 추어 “비연”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성제가 좋아하게 되어 황후까지 됨. 그녀의 머리, 눈썹, 볼 화장술은 매우 독특하였다 함. 그러나 이 여자 때문에 황제가 나라를 망치게 되었기 때문에, 이태백이 양귀를 조비연에 비유한 것은 양귀비를 모독한 것이라는 모함을 받아서 이태백이 조정에서 쫏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함. 5. 경국傾國: 경국지색傾國之色, 즉 “한 나라를 기우려서 반할만한 미인”이란 뜻. 여기서는 양구비를 말함. 6. 무한한無限恨: 봄바람이 스침이 고르지 않음, 아름다운 꽃이 시들어 떨어짐. 미인을 늦게 만남 등등의 뜻이 담겨있음. 7. 침향정枕香亭: 장안궁長安宮안의 흥경지興慶池 곁에 있던 정자.
왕지환王之渙 316. 출새 黃沙直上白雲間(황사는 직상 백운간)하고 一片孤城萬仞山(일편고성은 만인산)이라 羌笛何須怨楊柳(강적은 하수 원양류)오 春風不度玉門關(춘풍부도 옥문관)을
황하는 곧바로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가고, 한 조각 외로운 성은 만 길 가파른 산 속에 숨어있네. 오랑캐 피리는 어떻게 반드시 양류곡을 원망해야만 하는가? 봄바람은 본래 옥문관을 건너지 못하는 것을.
1. 황사黃沙: 어떤 판본에는 황하黃河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좀 더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신비롭게 보일 것 같다. 2. 양류楊柳: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을 담은 절양류折楊柳라는 옛 악곡명. 3. 옥문관玉門關: 감숙성과 신강성 사이를 가로막는 요새. 이 일대에서는 춘하추동의 구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봄이 온다고 하여도 버드나무도 보이지 않으니 봄이라고 느낄만한 변화는 별로 없는데, 오직 버드나무를 노래하는 양류곡만 듣는다한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오직 이별의 슬픔만 늘지 라는 내용을 이 시에는 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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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교시 2011. 3. 31. 이장우교수
311,출새(出塞)-왕창령(王昌齡;698-755?)
秦時明月漢時關,(진시명월한시관), 진나라 때 뜨든 달이요, 한나라 시대의 변방이라
萬里長征人未還.(만리장정인미환). 만 리 긴 장정에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네
但使龍城飛將在,(단사룡성비장재), 다만 용성에 비장군 이 광이 지금도 살아 있었다면
不敎胡馬渡陰山!(부교호마도음산)! 오랑캐 말들이 음산을 넘어올 수 없을 텐데
征 칠정, 바르게 가다, 취하다. 멀리간다
* 역시책의 제목, 史, 書, 誌, 傳, 匈奴列傳, 朝鮮列傳
龍城: 변방부족들이 옮겨다니던 수도
李廣 장군(전쟁에 져서 사형당하고)의 손자 李陵(흉노족에 항복하여 흉노여인과 살다가 죽음) 밤에 범이 와서 활로 쏘았는데 법이 활에 맞고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위에 활촉이 꽂혀있었다는 이야길 가지고 있는 장군
* 사마천이 이릉의 일을 변호하다가 고환을 도려내는 형을 당하고 스스로 사기를 작성함.
316. 王之渙의 出塞
渙(흩어질 환, 어질다. 괘이름)
黃沙直上白雲間하고 (황사가 흰구름사이로 올라가고)
一片孤城萬仞山이라 (한조각 외로운 성에 만인산이라)
羌笛何須怨楊柳이고 (만리길 멀리 나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春風不度玉門關을 (봄바람은 원래 옥문관을 넘어오지 못하는 것을)
매청(1623-1697)의 그림입니다.
청초 四王 중의 왕휘의 산수화입니다.
梅淸은 청초의 화가로서 승려화가 석도와 가깝게 지냈다. 안휘성이 고향으로서 황산을 많이 그린 문인화가이다.
王之渙 涼州詞: 黃河遠上白雲間,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春風不度玉門關
出塞=邊塞詩=유情詩
仞: 길인 재다
羌 종족이름강, 굳세다, 강하다.
羌笛: 피리
8尺-> 尋常, 仞, 丈(단위의 길이)
楊柳曲=이별의 노래
玉門關: 돈황보다 훨씬 서쪽에 있는 성문
是; 옳을 시, 또한
317. 금루의(金縷衣) -두추낭(杜 秋娘)->여자시인
勸君莫惜金縷衣(권군막석김루의) 비단 옷 쯤이야 아끼질 마오
勸君惜取少年時(권군석취소년시) 차라리 그대 청춘을 아낄 것이
花開堪折直須折(화개감절직수절) 꽃이피어서 꺽고프면 곧 꺽어버리지
莫待無花空折枝(막대무화공절지) 꽃 지면 빈 가지만 남는 것을 기다리지마라
金縷衣: 금실로 지은 옷: [衣之華貴者]
金陵=南京
伏誅: 죽이다
[少壯不努力老大徒傷悲]
直須(모름지기)곧바로
<퇴계의 매화>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어서니 밤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끝엔 둥근달이 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 (구태어 부르지 않아도 산들 바람이 들어오니)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뜰악에 가득하네)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도입니다.
전기는 19세기 중엽의 화가로서 추사파로 분류되는 문인화가입니다.
서른에 죽었다. 그러나 한국미술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화가이다.
퇴계 선생의 시 분의기를 잘 나타낸 그림이라 싶어서 올렸습니다.
<부록>
詩韻易檢(시운이검)
수나라의 육법(본명은 사) 등이 옛날과 지금의 발음을 짐작하고 남쪽과 북쪽 발음을 통하게 하여 함께 韻目을 정해서 정운이라는 책을 편찬하다. 당나라사람은 절운체계에 따라 시를 지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운체계라는 것이 너무 가혹하게 되어 있엇 당나라 고종(태종의 아들)대에 孫愐(인변에 면자)이 당음을 다시 만들었다. 송나라 진종때 진팽년은 廣韻을 편찬하여 206개 운을 193개로 변형 시켰다. 뒤에 가서 韻略하여 예부운락을 만들었다. 남송의 송유연은 평수운 206개를 107운으로 변경시켰다. 원나라 음시부는 운부?옥만들었으며 이것은 [丞 (손수변)]운자에 [迴]운을 넣어 106운으로 만들어 곧 현제하는 운부를 만들었다. 명나라 홍무는 홍무정운을 만들어 76음으로 그리고 끝에 가서 106음으로 만들어 [佩文韻府을 만들어 지금도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06운목
우리나라 권문해(예천사람) [大東韻府群玉]을 만들었다. 이퇴계제자로 선조때 사람
정조 [奎章全韻] 자매편으로 全韻玉篇, 新玉篇
1950년 북한에서 새옥편은 규장전운에서 나온 것을 기초로 만듬
발음-> 높낮이, 장단, 억양 등이 주요소
그림설명
奉和圣制从蓬莱向兴庆阁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应制
王维
渭水自縈秦塞曲,黃山舊繞漢宮斜。
鑾輿迥出千門柳,閣道回看上苑花。
雲裏帝城雙鳳闕,雨中春樹萬人家。
為乘陽氣行時令,不是宸遊玩物華。
제 6교시(2011. 4. 7.)
聲韻 詩: 언어로 된 예술
漢字의 언어를 아야야 됨.
漢字(意, 形, 聲)
意->訓話學; 形->文字學; 聲->성문학
표시하는 것-> 분절적요소와 표시하지 않는것-> 비분절적요소
聲(초성, 자음) initial
韻(모음, 중성)->(모음+받침+성조) 받침->韻尾
* 시에서 운을 마차는 것은 모음, 받침, 성조가 일치해야한다.
* 운을 모아놓은 것이 106훈이 되었다.
(上平. 下平)->단음
上,->자음 去->단장음, 入,->받침(ㅂ, ㄹ, ㄱ)
律詩: 당나라시대의 근대시
上睿는 청초의 승려 화가로 왕휘에게 산수화를 배웠다. 청의 벼슬을 병을 핑계로 거절하고 낙향하여 승려가 되었다.
동양화에는 四時圖를 많이 그렸다. 사시도 중에 봄에 해당하는 春遊晩歸이다.
이번 주에 배운 오언율시의 봄 분위기와 조금 어울릴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杜審言의 오언율시 입니다.
獨有宦遊人 偏驚物候新
雲霞出海曙 梅柳渡江春
淑氣催黃鳥 晴光轉綠蘋
忽聞歌古調 歸思欲霑襟
(촌사람)
131페이지
91번 五言律詩 杜審言
화진능노승조춘유망(和晉陵路丞早春游望)-두심언(杜審言)
진릉 육승상의‘조춘유망’시에 화답하여-두심언(杜審言)
獨有宦游人(독유환유인) : 홀로 타관에서 벼슬하는 사람
偏驚物候新(편경물후신) : 경물과 기후에 특별히 놀라노라
雲霞出海曙(운하출해서) : 구름과 노을이 바다에서 피어나는 아침
梅柳渡江春(매류도강춘) : 매화와 버들꽃잎 강 건너는 봄이로구나
淑氣催黃鳥(숙기최황조) : 맑은 봄기운 꾀고리 재촉하고
晴光轉綠蘋(청광전녹빈) : 개인 햇볕은 푸른 개구리밥으로 옮아간다
忽聞歌古調(홀문가고조) : 홀연히 들리는 노래는 옛노래
歸思欲沾襟(巾)(귀사욕첨건) : 고향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杜審言(말의 뜻을 꽨다) 자는 必簡 시인 杜甫의 할아버지
* 학사들의 모임-> 內閣[詩是吾家事] 시는 우리집의 일이다.
[靑凉山乃吾家山] 이퇴계
[화진릉릉승조춘유망]和晉陵路丞早春游望
이름은 元方 자는 希仲
육승이라는 사람이 진능에 봄에 놀면서 지은시에 화답한 시
* 책 소개
唐詩槪說(이회(以會)출판사)
* 일본경도대학 小川環樹著 심경호교수(고대)역
소천의 큰형 貝塚茂樹(중국고고학자)
소천의 형 湯川秀樹(노벨상수상자 중성자이론 물리학자)
소천의 아버지 小川純?治(독일 유학후 광물학자)
吉川幸차郞著 新唐詩선(당시읽기로 번역됨 창작과비평사)
今體詩(금문=병문)댓구를 많이 써서 글을 우아하게 만듬
古體詩
△ 운
인(人), 신(新), 츈(春), 빈(蘋), 금(襟)
ㄴ ㄴ ㄴ ㄴ ㅁ
ㄴ=ㅁ(協韻=叶韻) 그래서 운이 맞는 것으로 본다.
● 장음(3성, 4성), ○ 단음(1성, 2성)
* 을유문화사간행-> 주영제역주 中國詩歌選
詩經=窈窕淑女
淑女의 4요소 幽(그윽하고), 閑(익숙하고, 한가롭다), 貞(곧고), 莊(기품, 품위, 권위)
[江南二月春, 東風轉綠蘋]빈(개구리밥 빈)
* 6조시대(宋, 齋, 梁, 陳, 吳, 晉)
* 就是(나아갈취, 옳을시) 곧, 바로
* 古(예고) 좋은 뜻, 古調(훌륭하고 우아한 시)
* 旧(예구) 나쁜 뜻, 旧調(낡아 빠진시)
* 遞擊式(갈체, 부딪칠격)-> 바꾸어 연결해 나가는 구조
偏驚(物候新)(편경물후신) : 사물과 세월이 새로워진 것을 보고 놀란다.
v (o,s)
梅柳渡江春(매류도강춘) : 매화와 버들꽃잎 강 건너는 봄이로구나
v( v)
* 實字(명사, 동사 등)
* 허자(전치사, 부사)
20110408(孔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歸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여 不踰矩니라(방형구)
立은 能自立於斯道也오 (斯이것사, 사물을 가르키는 대명사)
不惑은 則無所疑矣요 (矣 어조사의)
知天命은 窮理盡性也요
耳順은 所聞皆通也오
從心所欲不踰矩는 則不勉而中矣라
입(立)은 능히 스스로 도(道)에 섬이요, 불혹은 곧 의심하는 바가 없음이요, ‘지천명’은 이치를 궁구하여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성품을 다함이요. 이순은 듣는 바가 다 통함이요, 종심소욕불유구는 힘쓰지 아니해도(자연스럽게) 중용을 취함이라.
제7교시 2011. 4.14. 목요일
목차 중 중점을 두고 읽어볼 곳
제2장 왕조의 변천과 시대구분
1. 왕조의 변천
2. 중국사의 시대구분
3. 역대지리연혁
제7장 중국의 호칭과 피휘
1. 호칭
2. 나이에 대한 호칭
3. 성시명자
4. 휘자와 그것을 피하는 습관
제8장 중국인의 음식문화
1. 중국의 요리
2. 중국의 술
3. 중국의 차
제9장 중국의 언어문자
1. 언어
2. 문자
제11장 ,사고전서>의 경, 사, 자,집
1. 경부
2. 사부
3. 자부
4. 접부
5. 그밖의 책들
제20장 문학
1. 중국의 문학의 기원
2. 중국문학의 장르
3. 현대문학
4. 중국 전통문학의 특징
제23장 중국의 근대화
1. 서구문화의 접촉
2. 중국문화가 서구문화에 끼친 영향
3. 중국의 문호개방
4. 중국의 근대화
5. 최근세의 중국
부록 1. 중국의 문화유전의 이해
1. 중국의 4대 고도와 화북지구
2. 동북지구
3. 황하중하류지구
4. 장강 하류지구
5. 천한(川漢)지구
6. 화남지구
7. 선남지구
8. 서북지구 실크로드관광구
9. 북강새외 관광구
10. 청장고우너유목구
李東哲(용인대교수) 40대 김용욱교수 제자(한국인문사회분야 최고수준학자)
金忠烈(고대명예교수) 중국철학산고
李相殷(고대철학과교수)유학과 동양문화->중국에 조선의 철학자 10명중(원효, 다산, 퇴계 수준에 이상은교수 마지막에 들어있음)
李鴻鎭(기억력이 비상) 경북대 중문과교수 皮錫瑞저 중국경학사 번역
李章佑교수 劉若愚著 <中國詩學>번역 서울 동아출판사->중국시의 특징은 “모호함“그것이 시에 중요요소임. 스탠포드대학교수 ”The Art of Chinese Poetry"
8. 예술
중국미술사(Michael Sullivan저) 송정숙영(정희재교수부인)
屠 隆(도융) 著 <考槃餘事-생활과취미) 權德周역 (숙명여대 중문과 교수)-> 考槃在澗 碩人之寬(악기를 타며 골자기에 살고있으나 대인의 마음이 넓고 큼이여!)
기타
94. Joseph Needham 외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4. Vols. 7. <중국과학사> 토인비의 <역사연구>와 비교될 만큼 크게 평가받은 책. 을유문화사에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 으로 3권이 출판됨.
5월 5일 목요일 덕천서원 유람(남계서원->암안-> 덕천서원) 산청 이병주문학관 7시30분출발
서예를 하고 글을 쓰는데 중국에서는 예부터 <書卷氣 文字香>이라고 했다. 문인의 체취 글속의 향기
金漢洪(이조말 영덕 선비) 1900초 한양으로 과거보러 갔다가 과거가 없어져 보지못하고 하와이 사탕수수밭일군으로 선발 하와이 영사관에 일하닥 보토로 가서 오하이오주에서 장사를 하다가 7년후 영덕으로 돌아옴. 그가 지은 시가 영덕 정자에 걸려 있음
吳化門六曹거리 雜(秋)草가 菲菲하고 원본에는 잡초가 아니고 추초로 됨 비석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음. 秋는 마음심이 붙어 愁가 되어 더욱 의미가 있는데 잘못인용된 것이 책에 까지 나옴.
p131 91번 五言律詩 杜審言
화진능노승조춘유망(和晉陵路丞早春游望)-두심언(杜審言)
진릉 육승상의‘조춘유망’시에 화답하여-두심언(杜審言)
獨有宦游人(독유환유인) : 홀로 타관에서 벼슬하는 사람
偏驚物候新(편경물후신) : 경물과 기후에 특별히 놀라노라
雲霞出海曙(운하출해서) : 구름과 노을이 바다에서 피어나는 아침
梅柳渡江春(매류도강춘) : 매화와 버들꽃잎 강 건너는 봄이로구나
淑氣催黃鳥(숙기최황조) : 맑은 봄기운 꾀고리 재촉하고
晴光轉綠蘋(청광전녹빈) : 개인 햇볕은 푸른 개구리밥으로 옮아간다
忽聞歌古調(홀문가고조) : 홀연히 들리는 노래는 옛노래
歸思欲沾襟(巾)(귀사욕첨수(건) : 고향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7언절구 1234567구를 1 2를 연결하고 잠시쉬고 3 4를 연결하고 오래쉬고 5 6을 연결하고나 6 7을 연결하는 것을 구를 보면서 정한다.
5언절구 12345구를 1 2구붙이고 수고 3 4구 붙이고 오래쉬고 5구를 읽는다.
p 136 92 당태종 (성은 이 이름은 융기, 제위 43년)
經魯祭孔子而嘆之
魯나라 산동반도 수도 曲阜
封禪(태산에 천신제를 지냄) 중국 4명의 황제가 곡부에 다녀감
공자9BC551~479) 8월 27일 졸(음력)
공자 3000명 그중 육례(사. 서. 예. 악. 춘추. 주역)에 능한 사람이 72명
유교: 에를 중시하고 책으로 공부함
공자을 높여 [大成至聖先師文宣王}으로 부름
92. 경추노제공자이탄지(經鄒魯祭孔子而嘆之)-당현종(唐玄宗)
추노를 지나며 공자를 제사하고 탄식하다-당현종(唐玄宗)
夫子何爲者,(부자하위자), 공자는 무엇 하는 분이기에
棲棲一代中.(서서일대중). 일생 동안 바쁘게만 살았나
地猶鄹氏邑,(지유추씨읍), 땅은 여전히 추씨 고을인데
宅卽魯王宮.(댁즉노왕궁). 집은 노나라 궁궐이 되었구나
嘆鳳嗟身否?(탄봉차신부)? 봉황을 탄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는가
傷麟怨道窮.(상린원도궁). 기린의 죽음에 상처받고 도가 다함을 원망하였네
今看兩楹奠,(금간량영전), 이제 두 기둥 사이에서 제사지내니
當與夢時同.(당여몽시동). 꿈꾸던 그 때와 같아야하리
제8교시 당시 300수 20110421
鶴籠開處 見君子
書卷展時 逢古人
自靜其心 延壽命
無求於物 長精神
(백낙천 불출문 仲石 孫永鎬) 2011년 국전입선작 )
92. 경추노제공자이탄지(經鄒魯祭孔子而嘆之)-당현종(唐玄宗)
추노를 지나며 공자를 제사하고 탄식하다-당현종(唐玄宗)
夫子何爲者요 (부자하위자), 공자는 무엇 하는 분이기에
棲棲一代中이라 (서서일대중). 일생 동안 바쁘게만 살았나
地猶鄹氏邑요 (지유추씨읍), 땅은 여전히 추씨 고을인데
宅卽魯王宮이라 (댁즉노왕궁). 집은 노나라 궁궐이 되었구나
嘆鳳嗟身否?와 (탄봉차신부)? 봉황을 탄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는가
傷麟怨道窮을 (상린원도궁). 기린의 죽음에 상처받고 도가 다함을 원망하였네
今看兩楹奠하니 (금간량영전), 이제 두 기둥 사이에서 제사지내니
當與夢時同이라(당여몽시동). 꿈꾸던 그 때와 같아야하리
(河道落圖) 주자, 주역
公子 孔丘 仲尼 (논어서설이 공자일생을 축조해놓음)
p214
172 黃鶴樓-崔顥(최호)
황학루에서-崔顥(최호)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곳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빈 하늘엔 흰구름만 유유히 떠도는구나.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력한양수) 맑은 냇물 사이로 한양의 나무만 무성하고
芳草처처鸚鵡州(芳草처처앵무주) 앵무주에는 향기로운 봄풀만 우거졌구나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 어귀는 어디쯤인가
煙波江下使人愁(연파강하사인수) 강 아래 안개는 나를 수심에 잠기게 하네
(觀魚臺有感) 이장우교수 (고래봉해주욕장에서 학생엠티에서 1990년대)
森森鐵柵 連海岸
風波未靜 使人愁
황학루 시와 연관이 있는 그림을 찾아 보았으나.
시와 꼭 들어맞는 것이 없어서---
명대의 장로라는 화가가 그린 것으로, 제목대로 누대에 앉아서 달을 감상하는 그림입니다.
시에 일모라고 하였으니, 저녁 분위기와 달밤 분위기가 아울릴 수도 있다 싶어서
(장로는 절파의 후기에 속하는 화가로 오파들로부터 폄하를 당한 화가입니다.)
역시 명대의 주한(周翰)이라는 화가로서 生卒年月이 불명한 화가로 대체로 홍치-가정 년간에 활동하였으니라 한다.원대의 왕몽(동기창의 외손으로 원4대가 중의 한명이며, 항주 북쪽 황학산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함)의 기법과 유사하다고 한다.아득히 안개 피어오르는 강을 바라보고, 누도 있고 하여, 분위기에 어울릴까 싶어서(동양고전 이동민 촌사람올림 201104 27)
宋代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서 -- 고궁박물관 도록을 뒤적이다가 이 그림이 나오므로, 혹시 송나라 때의 진짜 황학루가 아닐까 싶어서 여기에 올려 보았습니다. 청나라의 여러 황제가 이 그림을 감상하고 찍어둔 낙관도 있다고 하였습니다.(20110428촌사람올림)
p140 95. 王勃 勃(씩씩할 발) 왕씨집안 문장가집안(曾祖父 王通송나라 호 文中子), 祖父 王王 酒經을 지음(술을 많이 먹어 호가 술다섯되을 먹는다고하여 五斗先生)
城關輔三秦(성관보삼진) 장안성(성관)을 삼진에서 많이 도와주고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 안개자욱한 5개 진을
與君離別意(여군이별의) 서로 이별하는 뜻을
同是官遊人(동시관유인) 같은 벼슬하는 사람으로 같은 마음인데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온세상 안에 자기를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天涯若比鄰(천애약비인) 하늘의 뜻이라도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無爲在歧路(무위재기로) 하지말아라 갈때가지 이마당에
兒女共沾巾(아여공첨건) 여자애처럼눈물을흘려수건을적시지말았으면
鄰(이웃 인)
백주(황하강가에있는 작은 국가)
交趾(베트남 북족지역 옛중국의 지배)
6조(宋, 齋, 梁, 陳, 吳, 東晉) 남경(양자강변)에 도읍했던 나라->호족국가로써 호화롭게 살고 예술 활동이 활발함)
三奏(아룁주) = 三秦(삼진)으로 정정
서예작가 志松堂 이순임?
오언율시 4.27. 이장우교수
두심언杜審言 91. 진릉의 육승님의 ‘이른 봄에 놀러 나와서 바라보다’는 시에 화답하여和晉陵陸丞早春遊望 獨有宦游人(독유환유인)이 : 홀로 타관에서 벼슬하는 사람 偏驚物候新(편경물후신)이라 : 경물과 기후에 특별히 놀라노라 雲霞出海曙(운하출해서)하고 : 구름과 노을이 바다에서 피어나는 아침 梅柳渡江春(매류도강춘)이라 : 매화와 버들꽃잎 강 건너는 봄이로구나 淑氣催黃鳥(숙기최황조)하고 : 맑은 봄기운 꾀고리 재촉하고 晴光轉綠蘋(청광전녹빈)이라 : 개인 햇볕은 푸른 개구리밥으로 옮아간다 忽聞歌古調(홀문가고조)하니 : 홀연히 들리는 노래는 옛노래 歸思欲沾巾(귀사욕첨건)이라 : 고향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혼자서 벼슬길에 나서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뜻밖에 경치와 계절 바뀐 것 놀랐다네. 구름과 너울은 바다에서 나오며 밝아지고, 매화와 버들은 강 건너 봄을 알리네. 온화한 기운은 꾀꼬리를 재촉하고, 밝은 빛깔은 푸른 마름위에 감도네. 홀연히 옛 격조 넘치는 노래 듣게 되니, 돌아가고 싶은 생각 옷깃을 적시려 하네.
1. 두심언杜審言: 호북성 양양襄陽 사람으로 진사에 급제한 뒤에 낙양현승 저작랑, 수문관 직학사 등을 역임함. 두보의 할아버지로 문집 10권이 전하며, 시에도 이름이 높아서 두보는 “시는 바로 우리 집의 가업이다(詩是吾家事)”라고 자랑하였음. 2. 진릉육승晉陵陸丞: 진릉은 지금의 강소성 무진현武進縣, “육승”은 어떤 책에서는 “육승상”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무후 때에 재상을 지낸 육원방陸元方이라는 사람임.
왕발王勃 95.두소부님께서 촉주로 부임해 가심을 송별하며送杜少府之任蜀州 城關輔三秦(성관보삼진)한데: 장안성(성관)을 삼진에서 많이 도와주고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이라: 안개자욱한 5개 진을 與君離別意(여군이별의)는: 서로 이별하는 뜻을 同是官遊人(동시관유인)이라: 같은 벼슬하는 사람으로 같은 마음인데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하니: 온 세상 안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天涯若比鄰(천애약비인)이라: 하늘의 뜻이라도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鄰(이웃 인) 無爲在歧路(무위재기로)에: 하지말아라 갈때가지 이마당에 兒女共沾巾(아여공첨건)하라: 여자애처럼 눈물을 흘려 수건을 적시지 말았으면
장안의 성과 궐문은 온 삼진 땅을 둘러싸고 있는데, 바람과 안개 속에서 촉 땅의 다섯 나루를 바라보네. 그대와 더불어 이별하는 나의 마음 유별남은, 우리들 똑 같이 벼슬살이 돌아다니는 나그네이기 때문일세. 사해 안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 살고 있다면, 하늘 끝 어디라도 가까운 이웃과 같으리. 서로 흩어지는 길 위에서, 아녀자들 같이 서로 수건에 눈물 적시지 말자구나.
1. 왕발王勃650-675: 산서성의 강주絳州 용문龍門(하진현 서쪽) 사람으로 수나라 말기의 큰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이며, 술로 유명한 문인 왕적王績의 종손자.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났으며, 20세 이전에 벌써 과거에 붙어 벼슬을 하고 문명을 날렸으나, 행실은 경박하여 자주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뒤에 그의 아버지가 지금의 월남 북부 지방의 교지령交趾令으로 좌천되어 나갈 때 수행하여 가다가 바다에 빠졌다가 놀라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었다. 초당시기에 가장 뛰어난 시인初唐四傑의 하나로 치며, 유명한 등왕각서藤王閣序는 8세 때 썼다는 전설이 있지만, 27세 때 교지로 가는 길에 쓴 것으로 밝혀짐. 2. 소부少府: 여기서는 현위縣尉라는 한 현의 수령인 현령縣令 밑에 근무하는 벼슬(지금의 경찰서장, 세무서장 정도)로 보아야 한다는 주석이 있음. 그 사람의 성은 두杜 씨 이지만, 이름과 이력은 잘 알 수 없음. 3. 촉주蜀州: 지금의 사천성 숭덕현崇德縣 일대. 당나라 때의 행정 구역으로 말하면 검남도劍南道 아래 촉주가 있고, 그 중심지는 진원현晉原縣인데, 곧 지금의 숭덕현임. 4. 궐闕: 본래의 뜻은 “지붕이 있는 높은 대문”이라는 뜻이니 여기서 성궐은 성곽과 성문임. 5. 삼진三秦: 장안을 둘러싸고 있는 옛날 진나라의 터전, 곧 지금의 섬서성 일대. 항우가 쳐들어가서 이 일대를 3등분하여 통치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6. 오진五津: 촉 땅에 있는 다섯 개의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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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 4. 28. 목요일 제 9교시
野塘(들판에 있는 연못)퇴계 作(18세)
露草夭夭繞水涯(碧波) 물가에 있는 풀은 생기가 발랄하고
小塘淸活淨無沙 작은 연못 물을 맑고활기넘쳐 모래도없이 깨끗하고
雲飛鳥過元相管 구름흘러가고 새가 지나가는 것은 모두 상관이있는 것
只恐時時燕蹴波 지금 때때 걱정스러운 것은 잡된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 朱子詩: 독서를 연못에 비유함 (觀書有感) 活생기가 돌다.
주희(朱熹)의 관서유감(觀書有感) 2수 가운데 제1수
半畝方塘一鑑開 반 이랑 네모진 못에 거울 하나 열리니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는구나
問渠那得淸如許 묻노니 그것은 어찌 그렇게 맑을 수 있는가
謂有源頭活水來 근원에 활발한 물 솟아나고 있기 때문이네
(朱熹, 『朱子大全』 卷1, 「觀書有感」)* 活(주자시에서 따옴)
주희(朱熹)의 관서유감(觀書有感) 2수 가운데 제2수
昨夜邊江春水生 지난 밤 강가에 봄물이 불어나니
艨艟巨艦一毛輕 적과 싸우는 큰 배도 터럭처럼 가볍구나
向來枉費推移力 예전에 배 옮기려 무지하게 힘을 썼는데
此日中流自在行 지금 흐름을 이용하니 자유자재로 움직이네
(朱熹, 『晦庵集』 卷39, 「觀書有感」)
畝(이랑무), 鑑(거울 감), 渠(도랑거), 那(어찌나 어찌하랴), 謂(이를위, 알리다), 艨(싸울배 몽), 艟(싸울배 동), 艦(싸울배 함), 枉(굽을 왕) 굽히다, 蘆(갈대 노)
詠懷(마음속을 읊다) 퇴계작(19세)
獨愛林蘆萬卷書 홀로 초가집 만권서를 사랑했네
一般心事十餘年 보편적마음으로 십년을 지넸네.
爾來以與源頭會 그때부터 근원적인 문제를 이해한것같기도 하여
都把吾心看太虛 오로지 내마음을 가지고 태극을 관찰하였네.
邇來(그때부터)
太虛=太極, 無極(근본적인 문제)
* 퇴계선생의 성리학(주자학)->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는 일치한다.
* 氣韻生動(그림평가에서 쓰는 말 그림에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 氣運; 韻致에서 氣韻*
* 책소개
初唐詩 張世厚역 “Stephen Owen"하바드대교수 저(영시)
*한학의 3대중심지(2차전쟁전): 북경, 교또, 파리
21C에는 한학의 중심지: 미국하바드대학
p144 97. 雜詩(沈佺期 作)
聞道黃龍戍(문도황룡수), 소문 들으니, 황룡 땅에 수자리(황룡수: 황룡을지키는 병막)
頻年不解兵(빈년부해병). 해 넘겨도 병사들 제대 못 한다네
可憐閨裏月(가련규리월), 가련하다, 규방 속 저 달
長在漢家營(장재한가영). 한나라 군사의 병영에도 오랫동안 있으리니
少婦今春意(소부금춘의), 젊은 아내는 지금 봄날의 그리움에 젖고
良人昨夜情(량인작야정). 낭군은 저제 밤 아내를 그리는 마음에 젖어있다네
誰能將旗鼓(수능장기고), 누가 능히 군사들 거느리고
一爲取龍城?(일위취룡성)? 단번에 용성을 빼앗을 수 있을까
* 進士: 중국에서 작문시험을 봐 관원을 뽑는 것으로 가문이 없는 집안 사람들의 등용
99. 망천한거증배수재적(輞川閑居贈裴秀才迪)-왕유(王維;?699-761?)
망천에서 한가하게 살면서 배수재에게 드립니다-왕유(王維;?699-761?)
寒山轉蒼翠,(한산전창취),차가운 가을 산이 검푸르게 변하고
秋水日潺湲.(추수일잔원),가을 물은 날마다 졸졸 흐른다
倚杖柴門外,(의장시문외),지팡이 짚고 사립문 밖에 나아가
臨風聽暮蟬.(림풍청모선).바람 쏘이며 저문 매미소리를 듣는다
渡頭餘落日,(도두여낙일),나룻머리에 지는 햇살은 남아있고
墟里上孤煙.(허리상고연).작은 마을에는 외로운 연기만 피어오른다
復値接輿醉,(복치접여취),다시 접여처럼 술이 취하여
狂歌五柳前.(광가오류전).오류선생 집 앞에서 미친 듯 노래부른다
* 迪(아아갈 적, 이끌다)
* 왕유시집 번역완본(박삼주교수)
* 왕유시집 약본번역(류승준교수)
* 五柳=도연명의 집앞에 버드나무가 5나무있어 도연명의 호로 붙여짐
* 楚狂接輿(미친듯이노래하고춤춤)?
왕휘의 산수화로 지팡 이 짚고 가는 사람도
보이고
물흐르는 소리도 졸졸
들리는 것 같습니다.
왕감의 산수화로 길나간 사람도 보이고 -----
100. 수장소부(酬張少府)-왕유(王維)
장소부에게 지어 응답하다-왕유(王維) 少府(벼슬이름)
晩年唯好靜(만년유호정) : 늙으니 고요함이 좋아져서
萬事不關心(만사부관심) : 일마다 마음이 가지 않는다.
自顧無長策(자고무장책) : 스스로 돌아봐도 좋은 대책 없어
空知返舊林(공지반구림) : 옛 고향 숲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다.
松風吹解帶(송풍취해대) : 솔바람 불어와 허리띠를 풀어헤치고
山月照彈琴(산월조탄금) : 산에 뜬 달은 거문고 치는 이를 비춘다.
君問窮通理(군문궁통리) : 궁하고 통하는 이치를 묻노니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 어부의 노래가 포구 깊은 곳으로 들린다.
101. 송재주리사군(送梓州李使君)-왕유(王維;?699-761?)
재주로 이 사군을 보내며-왕유(王維;?699-761?)
萬壑樹參天,(만학수삼천),골짜기마다 나무들은 하늘을 찌르고
千山響杜鵑.(천산향두견).산마다 두견새 울음소리
山中一夜雨,(산중일야우),산중에 내리는 밤비에
樹杪百重泉.(수초백중천).나무 끝은 온통 작은 샘이 되었네
漢女輸橦布,(한녀수동포),한나라 여자들은 동포를 나르는데
巴人訟芋田.(파인송우전).파촉의 남자들은 토란밭을 다툰다
文翁翻敎授,(문옹번교수),문옹은 교육정책을 바꾸었으니
不敢倚先賢.(부감의선현).감히 선현에 의지하는 말게나
* 壑(골짜기 학)
다산연구소 박석무0501 [春日游白蓮寺] 茶山作(1801~) 片片晴雲拭瘴天 薺田蝴蝶白翩翩 偶從屋後樵蘇路 遂過原頭穬麥田 窮海逢春知老至 荒村無友覺僧賢 且尋陶令流觀意 與說山經一二篇 * 瘴 (장기 장, 풍토병), 蝴(나비 호), 蝶(나비 접), 翩(빨리날 편, 나부끼다), 樵(땔나무 초), 蘇(차조기 소), 穬(꺼럭조 광), 且(또 차, 잠시, 잠깐)
조각 구름 맑아서 궂은 하늘 씻어내고 냉이밭 나비들 훨훨 나는데 허옇구나 집 뒤의 나무꾼 다니는 길 우연히 따라가니 들머리 보리밭까지 지나오고 말았네 땅끝 바다에서 봄이 되니 늙어감 알아지고 황량한 시골 벗 없자 중이 좋음 깨달았네 먼 산만 바라보고 도연명의 뜻 알만해서 한두 편 산경(山經)을 놓고 중과 함께 얘기했네 (20110501)다선연구소 박석무에서 |
20110505 제 10교시
2011. 5. 5. 목요일 맑음
<함양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을 거쳐 一蠹 정여창 탄생지(함양개평지곡마을) 함양 상림 입구 늘봄식당에서 식사한 후 상림 함양을 빛낸 사람들의 흉상을 모신 곳에 갔다가 전구형왕능묘 (前仇衡王陵: 산청군 금서면 화개리)를 거처 남명선생 덕천서원을 둘러보고 산천재 남명의 서당과 남명박물관을 구경하고 대구로 돌아왔다. 전체 35명 정도가 한 버스에 타고 즐거운 나들이였다. >
동양고전연구소 2011봄나들이
함양 濫(넘칠남)溪서원 一蠹(일두) 鄭汝昌(중국사신이 지어주었다는 이름: 1450~1504)과함께 김굉필(1454~1504), 조광조(1482~1519), 이언적(1491~1553), 이황(1501~1570) 동방오현을 모심, 바로 곁에 있는 청계(淸溪)서원(탁영(濯纓)김일손선생 배향서원)
탁영이라는 호는 초나라시인 屈原의 어부사에 나오는 데 맹자에도 보인다)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에서 따왔다고한다.
남계서원사적비 퇴계선생작 남계서원 一蠹 정여창생가(좀두는 책을 갈가먹는벌레)
남계서원(퇴계 선생시)
堂堂天嶺鄭公鄕 百世傳風永慕芳
廟(사당묘)院尊崇眞不忝 豈(어찌기)無豪傑應文王
그곳에서 2~3km로 떨어진 정여창 본가가 있는 함양 지곡 개평마을로 갔다. 함양에서 두 번째로 풍수지리가 좋다는 곳이다(첫번째가 아까 다녀온 남계서원이고 이곳이 두 번째로 좋은 곳이라고 했다) 마을 전체가 기와집으로 고풍스럽게 가꾸어져있고 이종택도 3000평에 달한다고 했다. 마을 위쪽에 언덕에 정일품농원이 있어 농촌체험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와서 상림으로 가서 늘봄식당에서 오곡밥을 먹고 상림 숲을 거닐고 함양을 빛낸사람들 흉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하였다. 최치원 및 김종직, 그리고 박지원흉상을 보고 돌아왔다.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사적 214호 돌로 층단을 이루는 방형으로 서쪽에서 동족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체 높이 7.17m이며 駕洛國護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31 산음현 산천조와 洪儀泳(1750-1845)의 왕산실릉기(王山尋陵記)에서 이것이 왕릉임이 밝혀졌고 이 산 아래에는 그 서쪽에 있던 왕산사에서 옮겨 왔다는 구형왕과 왕비 의 초상이 있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
다시 차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인 덕천서원으로 향했다. 南冥 曹植(1501-1572)선생 호 남명은 스스로 지은 것으로 대붕이 두 달을 날아 다다른다는 남쪽바다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덕천서원을 보고 그곳에서 남명서원 이사장의 이야길 듣고 단체사진을 찍고 난후 앞에 있는 洗心亭(덕천강가)를 보았다. 세심정 옆에 큰 돌비에 욕천(浴川)이라는 시비가 서있다.
(浴川 己酉八月初)南冥先生集卷之一 (七言絶句)
全身四十年前累 千斛淸淵洗塵休 塵土倘能生五內 直令刳腹付歸流
* 倘(혹시당, 갑자기 멈추는 모양, 어정거리다)
* 刳(도릴고, 깍을 고)
(이 몸에 쌓인 사십년간의 허물 천 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버리네
만약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
그리고 덕천강 다리를 건너 자동차로 2,3분 거리에 있는 산천재(61세에 지리산이 보이는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며 산천재라 간판을 붙였다)로 갔다. 山天齋의 이름은 주역의 山川大畜卦에서 따온 것으로 “산속에 있는 하늘의 형상을 본받아 군자가 강건하고 독실하게 스스로를 빛냄으로써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天在山中 大畜君子以多識前言柱行 以畜其德)“
그 산천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산천재 기둥에 쓰인 글씨는 남명선생의 시
<德山卜居>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有餘
봄 산 어느 곳 엔들 방초 없으랴만
다만 천왕봉이하늘나라에 가까운 걸 사랑하서라네.
백수로 돌아와서 무얼 먹을 건가? 은하수 맑은 물을 내 언제 다 마실까?
들어가는 입구에 돌비에 지리산을 써놓은 시도 있다.
<題德山溪亭>
請看千石鐘 非大扣(두드릴구)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여보게 천석들이 종을 보게나
큰 힘주어 두들기지 않으면 참 소리 듣지 못 하오
정녕 두류산을 닮으려나,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길 건너 남명선생 기념관을 돌아보고 돌아 나왔다.
남명의 칼과 같은 기계와 선비 기상이 마음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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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제11교시
瓊苑梨花杜宇諦한데(瓊 옥경, 구술경)
滿庭첨影은 更凄凄라(첨 벌레충변詹=月)
相思欲夢還無寢하야(還 아직, 돌아올환, 부사로 도리어)
起倚梅窓聽五鷄라
(志松堂)
杜宇 = 杜鵑
詹(벌레충변)=月, 日=烏 凄(쓸쓸할 처)
相=그대로
還=아직, 돌아올 황. 부사로 -> (도리어)
倚=依
五更=새벽 3시~5시
책소개
<왕유시 전집> 2008 서남사간 박삼수 저
<당시> 이원석, 서남사
<이태갭시전> 이원석, 서남사
<두보시> 이원석, 서남사
p148
120. 과향적사(過香積寺)-왕유(王維)
향적사를 지나며-왕유(王維)
不知香積寺(부지향적사) :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數里入雲峰(수이입운봉) : 멸 리를 걸어서 구름 낀 봉우리에 들어왔다.
古木無人逕(고목무인경) : 고목이 울창한데 사람 다니는 길도 없고
深山何處鐘(심산하처종) : 깊은 산 어느 곳에선가 종소리 들려온다.
泉聲咽危石(천성열위석) : 샘물은 흐르는 소리 높은 바위에 부딪히고
日色冷靑松(일색냉청송) : 햇빛은 푸른 소나무에 차가워라.
薄暮空潭曲(박모공담곡) : 저문 저녁 못은 조용한데
安禪制靑龍(안선제청룡) : 편히 앉아 좌선하며 내 마음의 청룡을 제압한다
(일체 망상을 풀어 버린다.)
103. 산거추명(山居秋暝)-왕유(王維)
산채에 가을이 어두워지네-왕유(王維)
空山新雨後(공산신우후) : 빈 산에 갓 비 내린 뒤
天氣晩來秋(천기만래추) : 날씨는 저녁 무렵의 가을이로다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를 비추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 맑은 샘물은 바위 위를 흐른다
竹喧歸浣女(죽훤귀완녀) : 대숲 소란더니 빨래하는 여인들 돌아가고
蓮動下漁舟(연동하어주) : 연잎이 흔들리니 고깃배 지나 간다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 : 마음에 맞는 봄꽃이 없다 해도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 왕손은 혼자서 산중에 머무를 만 하도다
浣女: 빨래하는 여자
隨意(쉐이) 적당히, 되는 대로, 歇(쉴 헐, 시들을 헐)
王孫: 선비의 존칭,
自可留: 스스로 머물러도 될것같다. ~머물 만 하겠지.)
104. 종남별업(終南別業)-왕유(王維;?699-761?)
종남산 별장에서-왕유(王維;?699-761?)
中歲頗好道,(중세파호도),중년의 나이에 자못 도를 좋아하여
晩家南山陲.(만가남산수).만년에 종남산 기슭에 집을 지었소
興來美獨往,(흥내미독왕),흥이 나면 좋아서 혼자 다녀와
勝事空自知.(승사공자지).그 중의 좋은 일은 조용히 나만이 안 다네
行到水窮處,(항도수궁처),걷다가 물 다하는 곳에 이르러
坐看雲起時.(좌간운기시).조용히 앉아 구름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偶然値林叟,(우연치림수),우녕히 숲 속 늙은이를 만나
談笑無還期.(담소무환기).웃으며 이야기하다 돌아갈 줄은 모른다네
別業=別墅(별서) 별장
頗(자못 파)
南山=終南山
每(매양 매, 늘상 매)
勝事=快意(즐거운 마음)
空(부질없이, 공연히, 특별한 이유없이)
~處, ~時 싯구의 끝에 처나 시가 나올 때 특별한 뜻이 없음. 뜻 없이 쓰는 경우
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中國의 五嶽= 東嶽(산동성의 泰山 1524m) 西嶽(섬서성의 華山 1997m), 中嶽(하남성의 嵩山 1440m), 南嶽(호남성의 衡山 1,290m), 北嶽(산서성의 恒産 2017m)
중국의 왕조들은 泰山을 가장 중시하여 그곳에 제사를 올렸다.
四川
종남산
진령산맥 하남
105. 귀숭산작(歸嵩山作)-왕유(王維;?699-761?)
숭산에 돌아가며 시를 짓다-왕유(王維;?699-761?)
淸川帶長薄,(청천대장박), 맑은 개울 긴 숲 끼고
車馬去閑閑.(거마거한한). 수레 타고 한가히 간다
流水如有意,(류수여유의), 흐르는 물은 무슨 마음 있는 듯 하고
暮禽相與還.(모금상여환). 나는 저녁 새와 함께 돌아온다
荒城臨古渡,(황성림고도), 황폐한 성은 옛 나루에 접해있고 (옛나루를 내려다보고앉아있고)*
落日滿秋山.(낙일만추산). 지는 햇빛 가을 산에 가득하다
迢遞嵩高下,(초체숭고하), 멀리 숭산 아래로 찾아들어
歸來且閉關.(귀내차폐관). 내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다
* 이장우교수 번역
迢遞(소췌) 높고 아득한 정상 높은 곳 아래
且(또 차, 잠간 차) 잠시
* 이시의 뜻은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돌아온 감정을 썼다.
* 情과 景이 잘 어울리는 詩
이장우교수 唐代文人列傳 류정님 선생
140. 등악양루(登岳陽樓)-두보(杜甫;712-770)
악양루에 올라-두보(杜甫;712-770)
昔聞洞庭水,(석문동정수), 지난 날 동정호에 대해 듣다가
今上岳陽樓.(금상악양누).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다
吳楚東南坼,(오초동남탁), 오나라와 촉나라가 동남으로 나눠 있고
乾坤日夜浮.(건곤일야부).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동정호수에 떠있구나
親朋無一字,(친붕무일자), 친한 친구로부터는 한 글자 소식도 없고
老病有孤舟.(노병유고주). 늙고 병들은 나는 외로운 배에 남아있네
戎馬關山北,(융마관산북), 관산의 북쪽 중원 땅에는 아직도 전쟁이라
憑軒涕泗流.(빙헌체사류). 난간에 기대서니 눈물이 흘러내린다
곽충서가 그린 악양루이다. 곽충서는 계화를 그린 화가임을 생각하면 이 그림은 당시(950년 전후)의 사실적인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至正9년은 1349년으로서, 원나라입니다.
제12교시 당시0110519
春山底處 無芳草
只愛天王 近帝居
白手歸來 何物食
銀河十里 喫猶餘
글 志松堂
조식(曺植, 曹植) 曺(조)(성 조) 曹(조)(마을조, 관아, 때)
이장우. 우재호엮음
21 영남대중국문학연구실총서 當代文人列傳 한권씩 선물로 받음
王維열전(p138) 新唐書 卷 202<列傳>제127<文學.中>
왕유는 자가 미힐(摩詰 갈마 물을 힐)이고, 9세에 능히 문장을 지었다. 아우 왕진과 더불어 나란히 이름을 떨쳤다. 천성적으로 효심이 깊었으며 형제간 우애도 극진했다. 개원 초에 진사시험에 급제하자 태악승으로 발탁되었고, 자리를 여러 번 옮겨 제주사창참군이 되었다. 장구령이 재상이 되어 정권을 잡자 뽑혀서 우습유가 되었고 감찰어사직을 역임하였다. 모친이 돌아가자 지나친 슬픔으로 하마터면 회복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상기가 끝나자,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급사증이 되었다.
안록산이 모반하여 난을 일으키자 현종은 서쪽으로 피난하였으나, 왕유는 반적들에 잡히게 되었는데, 약을 먹고 설사를 하며 벙어리가 된 듯 가장했다. 안록산은 평소에 그 재주를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낙양으로 맞이해 오게 해서 가두어 놓고 급사증의 직책을 맡도록 강요했다. 알록산이 응벽지에서 크게 연회를 열었는데, 이원의 악공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집하여 음악을 합주하게 하니, 여러 악공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자, 왕유가 그것을 듣고 심히 슬퍼서 시를 지어 애통해 했다. 반란이 평정되자 적군에 부역한 사람들은 모조리 하옥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왕유의 응벽시를 황제가 피난가 있는 행재소에 알려 주었으며, 당시 이미 직위가 높았던 아우 왕진이 자신의 관직을 삭탈하고 형 왕유의 죄를 깍아 달라고 사정하자 숙종 역시 스스로 왕유를 좋아하고 있던 터라 벼슬을 깍아 태자증윤이 되게 하였다. 오래지 않아 태자중서자로 자리를 옮겼고, 다시 상서우승으로 승진 되었다.
왕진이 촉주지사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아니하자, 왕유는 스스로 표를 올렸는데 “저 자신에게는 다섯가지 단점이 있고 왕진에게는 다섯가지 장점이 있는데, 신은 대궐에서 근무를 하고, 왕진은 먼 지방의 관리가 되어 있사 온 즉, 원하옵건대 신을 시골로 내치시어 그곳에서 임관시켜 주시고, 왕진으로 하여금 서울로 돌아올 수 있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다. 의논한 결과 왕진이 죄를 지은 게 아니어서, 오래지 않아 왕진은 소환되어 좌산기상시가 되었다. 상원 초(760)에 왕유가 세상을 뜨니, 향년 61세였다. 병이 심해졌을 때, 왕진은 봉상땅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글을 지어 더불어 이별하였고, 또 가까이 친한 벗들에게도 몇 폭의 글을 남기고는 붓을 멈추고 죽었다. 죽은뒤 비서감으로 벼슬이 추종되었다.
왕유는 초서와 예서에 두루 능숙했으며 그림에도 뛰어나, 개원. 천보년 사이에 크게 명성을 떨쳤는데, 권문세가의 귀인들이 상석을 비워 놓고 영접하였고, 영왕. 설왕 등 여러 왕들은 스승이나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림의 구상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산수의 경치가 평탄하여 시야가 멀리까지 확 트이고 산봉우리처럼 피어오르는 구름과 바위의 색깔 같은 것은, 그리는 기술이 천지조화의 신비한 비밀에 도달한 것과 같이 절묘하여, 일반 그림 그린다는 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었다. 한 손님이 있어서 음악을 연주하는 그림을 한폭 내 보이는데, 아무도 그 제목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자 왕유가 천천히 “이 그림은 <예상우의곡> 제3첩 최초의 박자를 연주하는 것을 그린 것이요”라고 말했다. 손님이 미심쩍어 하며 악공들을 불러 그 곳을 연주 시켜 본 뒤에야, 비로소 믿게 되었다.
형제가 모두 돈독한 마음으로 불교를 받들면서, 생선이나 육류, 냄새나는 채소는 먹지 않았고 무늬가 있는 옷은 입지 않았다. 망천에 있는 별장에는 땅이 기이하고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화자강, 의호, 줄기관, 유랑, 수유반, 신이오 등이 있었는데, 친구 배적과 더불어 그 가운데서 놀며,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으면서 즐겼다. 아내가 죽자 다시는 재혼하지 않고, 외로이 30년 동안을 살았다. 모친이 세상을 떴을 때는 황제에게 표를 올려 망천의 집을 절로 만들었고, 마침내 그 서쪽에 장사지냈다.
보응 중(762)에, 대종이왕진에게 말하였다. “짐은 일찍이 여러 왕들이 계신 좌석에서 왕유의 악장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얼마나 되오?” 내관 왕승화를 보내 가져오게 하니 왕진은 수백 편을 수집하여 황제께 올렸다.
106. 종남산(終南山)-왕유(王維;?699-761?)
종남산-왕유(王維;?699-761?)
太乙近天都(태을근천도), 태을산은 왕도에 가까워
連山到(接)海隅(련산접해우). 산이 연이어 바닷가에 닿는다
白雲回望合(백운회망합), 고개 돌려보니 흰 구름 모여들고
靑靄入看無(청애입간무). 푸른 안개 모였다가 사라진다 靄(아지랑이 애)
分野中峰變(분야중봉변), 들의 경계는 가운데 봉우리에 따라 변하고
陰晴衆壑殊(음청중학수). 흐리고 개임은 골짜기에 따라 달라진다 壑(골짜기 학)
欲投人處宿(욕투인처숙), 인가에 투숙하고파
隔水問樵夫(격수문초부). 물 건너 나무꾼에게 물어 본다
靄(아지랑이 애)壑(골짜기 학)
太乙山 = 終南山 = 南山
分野(별자리 28좌를 따라 동서남북을 구분해 놓은것)
107. 한강림조(漢江臨眺)-왕유(王維;?699-761?)
한강에 배를 띄워-왕유(王維;?699-761?)
楚塞三湘接.(초새삼상접),초나라 국경은 삼상에 닿아 있고
荊門九派通.(형문구파통).형문산엔 구파의 물이 모여든다
江流天地外.(강류천지외),강물은 하늘 밖으로 흘러가는데
山色有無中.(산색유무중).산빛은 강 가운데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郡邑浮前浦.(군읍부전포),도읍은 눈앞의 포구에 떠 있고
波瀾動遠空.(파란동원공).물결은 먼 공중에서 출령인다
襄陽好風日.(양양호풍일),양양 땅의 좋은 바람과 날씨에
留醉與山翁.(류취여산옹).머물러 산골 늙은이와 취하여 볼이거나
(留山翁與醉) 留 더불어
楚塞(호북성), 三湘(호남성) 湘(강이름 상: 廣西省 興安縣에서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
襄陽 (호북성) 우리나라 예천도 옛이름이 양양, 강원도에도 양양
2011. 5. 26. 제13교시
花下醉 李商隱 作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眼日己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글쓴이 志松堂 李純福)
꽃을 찾아 나섰다가 류하술에 취해 알지못하고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어 벌써 해가 석양이네
객들이 돌아간 후 밤이 깊어 술이 깨어
다시 홍촉을 들고 남은 꽃을 감상하네.
流霞 (류하) 신선들이 마시는 술
更(고칠경 다시경 새로울 경) (다시 갱 ->부사)
覺(느낄 각, 깨달을 각)(꿈깰 교)
斜(동사, 기울 사)
제13교시 李白 列傳
이백은 자가 태백이며 흉성황제의 구세손이다. 그 선조는수나라 말에 죄를 얻어 서역으로 유배되었고, 신룡 초에 몰래 돌아와 파서에서 객으로 떠돌며 살았다. 이백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장경성을 꿈꾸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태백이라 이름하였다. 십세 때 시서에 통달했고, 조금 자라서는 미산에 은거하였다. 주(州)에서 도(道)가 있다고 천거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소정이 익주의 장사였을 때, 이갭을 보고서는 기이하게 여겨 “이 사람은 하늘이 준 재주가 영특하여 조금만 더 배운다면 가히 사마상여와 비교할 만하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종횡술과 검 쓰는 것을 좋아하며, 협객이 되었는데, 재물을 가벼이여기고 베푸는 것을 중히 여겼다. 다시 임성을 떠돌아 다니면서 공소보, 한준, 배정, 장숙명, 도면 등과 더불어 조래산에 은거하며 날마나 음주에 빠져있었으니, 이것을 “죽계육일”이라 불렀다.
천보 초에 남쪽 지방 회계에 와서 오균과 친하게 되었는데, 오균이 왕의 부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이백도 함께 장안에 왔다. 하지장을 가 뵈었는데, 하지장이 그의 문장을 보고 감탄하여 “그대는 구ㅣ양온 신선인가!”라고 하였다. 하지장이 현종에게 말하여 금란전으로 불려졌고, 현종과 함께 당시 세상일을 논하였으며, 송(頌) 한편을 상주하였다. 현종이 움식을 하사하면서 친히 국의 간을 맛추었으며, 한림원에 근무하라는 조서를 내려주었다. 그러나 이백은 술친구들과 함께 술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현종은 침향자정에 앉아 마음으로 느끼는 바 있어 이백이 지은 악장(樂章)을 얻고자 하였으나, 불러 왔을 때는 이백이 이미 크게 취해 있었다. 좌우의 시종들이 물로 세수를 시켜 조금 깨어난 후에 붓을 주어 문장을 짓게하였는데, 그 문장이 우아하고 아름답고 정밀하고 절실하여 생각이 남음이 없었다. 현종은 그 재능을 좋아하여 자주 잔치를 열어 그를 만나 보았다. 이백이 일찍이 현종을 모시고 있을 때, 취하여 고력사로 하여금 신발을 벗기게 하였다. 고력사는 원래 귀한 사람인지라그것을 수치로 여겼으며, 이 때문에 이백의 시를 가려 뽑아 양귀비를 격분시켰고, 현종이 이백에게 벼슬을 주려하자 양귀비가 문득 이를 저지하였다. 이백은 현종 가까이서 용납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알고서는 더욱 교만 방자하여 스스로를 닦지 아니하였으니, 하지장, 이적지, 여양왕진, 최종지, 소지, 장욱, 초수와 함께 “주팔선인”이라 불리어졌다. 산으로 돌아가기를 간구하자 현종은 금을 하사하여 돌려 보냈다. 이백은 사방을 떠돌아 다녔는데, 일찍이 배를 타고 최종지와 함께 채석에서 금릉으로 갈 때에는 궁중에서 입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배에 앉아서는 마치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거리낌 없이 행동하였다.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킴에 숙송과 광려 사이를 전전하다가 영왕 린이 불러 부(府)의 속관이 되었다. 린이 군사를 일으키자 피하여 팽택으로 돌아왔으나, 린이 패하자 마땅히 주살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당초에 이백이 병주에서 유람할 때, 곽자의를 보고 그를 기이하게 여겼고, 곽자의가 일찍이 법을 범했을 때, 이백이 도와주어 액을 면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곽자의는 자신의 관직을 내걸고 이백의 죄를 사하여 주도록 청하니, 이백을 멀리 야랑으로 유배하라는 조서를 얻게 되었다. 때마침 사면되어 심양(지금의 湖北省 黃梅縣 북쪽)으로 돌아왔으나 일에 연좌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송약사가 오지방 병사 삼천을 거느리고 하남으로 가는 길에 심양에 잠시 주둔하면서, 죄수들을 석방하여 이백을 참모로 삼았으나, 이백은 오래지 않아 사직하였다. 이양빙이 당도의 현령이 되자 이백은 그에게 의지하였다. 대종이 즉위하자, 좌습유라는 별슬로 이백을 불러 들였으나, 일백은 이미 죽은 후였으니 나이가 60여 세였다.
이백은 만년에 황노(黃老d을 좋아하였는데, d의 집이 있었던 청산을 좋아하여 여기에서 일생을 미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죽게 되지 동쪽 산기슭에 장사지냈다. 원화 말에 선흡 관찰사 범전정이 그의 무덤에 제사지내고서는 여기에서 땔나무를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이백의 후손을 찾아보니 오직 두 손녀가 시비가서 서민의 처가 되어 있었지만, 행동거지는 여전히 기풍과 규범이 있었다. 범전정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선조의 뜻은 청산에 있었으나 동쪽 산기슭에 황급히 장사를 지냈으니, 이는 본래의 뜻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범정전은 다시 장사지내고 (원 장지와 개장한 곳에) 두 개의 비를 세워 주었다. 두 손녀에게 장차 사족에게 개가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곤궁하고 정조를 잃은 것도 운명이라고 사절하며 개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범전정은 이를 가상히 여기고 감탄하여 그 남편을 요역에서 면제하였다.
문종때 이백의 시가와 배민(裵旻)의 칼춤과 장욱(張旭)의 초서를 삼절(三絶)이라 부르라는 조서를 내렸다. (李章佑.禹在鎬. 中文社 唐代文人列傳에서(166-176) |
春夜宴 桃李園序 -李白-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부천지자 만물지역려(여)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광음자 백대지과객)
而浮生이 若夢하니 爲歡이 幾何오(이부생 약몽 위한 기하)
古人秉燭夜遊가 良有以也라.(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숙소요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라.
인생이란 한바탕 꿈처럼 덧없으니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린들 얼마나 계속되리.
옛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밤에도 노닌 것은 참으로 그 까닭이 있음이로다.
況陽春은 召我以煙景하고(황양춘 소아이연경)
大塊는 假我以文章이라.(대괴 가아이문장)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락사)
群季俊秀하여 皆爲惠連이어늘(군계준수 개위혜련)
吾人詠歌는 獨慙康樂이라.(오인영가 독참강락)
하물며 화장한 봄날이 아지랑이 황홀한 경치로 우릴 부르고
대자연은 아름다운 문장을 우리에게 빌려주었음에랴.
복사꽃과 오얏꽃 핀 아름다운 동산에 모여 천륜의 즐거운 일을 글로 적으니
준수한 여러 아우들은 모두 혜련처럼 문장이 뛰어나거늘
내가 읊은 노래는 홀로 강락에 부끄럽구나.
幽賞이 未已에 高談이 轉淸이라.(유상미이 고담전청)
開瓊筵以坐花하여 飛羽觴而醉月하니(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요.(불유가작 하신아회)
如詩不成이면 罰依金谷酒數하리라.(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
그윽한 감상은 그치지 않고 고고한 얘기는 갈수록 맑아지네.
화려한 연회를 열고 꽃 사이에 앉아 새 깃 모양 술잔을 날리며 달빛에 취하니
아름다운 문장이 있지 않다면 어찌 고상한 회포를 펴겠는가.
만일 시를 짓지 못할진댄 벌주는 금곡의 술잔 수를 따르리라.
詩卷, 詩軸, 詩筒 (시를 지어 가지고 다니는 법)
夫(물어)
逆(거스르다, 맞이하다)
秉(잡을 병)
大塊: 천지자연
假(거짓 가, 임시 가, 빌릴 가)
惠連(송나라때 시인)
康樂(도연명과 버금가는 시인)
己 = 止
瓊莚(옥 경, 풀이름 연, 대자리 연)
金谷醉(남북조시대 스님, 시를 못지으면 술 3말을 마시게함)
雅(우아할 아) = 몸신변에 ?
如(만약 여) =若
羣季(무리군 끝계, 막내)
以(써이,부터, 까닭)=而(말이을 이, 접속사)=於(어조사어 보다 비교적)
羽觴(깃털우, 잔상 술잔의 총칭)->귀가 달린 가벼운 술잔
詩不成-> 시가 시같지 않다면
p163 118 留別王維 孟浩然(131,유별왕시어유(留別王侍御維)-맹호연(孟浩然;689-740)
시어 왕유를 두고 이별하다-맹호연(孟浩然;689-740)
寂寂竟何待,(적적경하대),적적한 나날 무엇을 더 기다리랴
朝朝空自歸.(조조공자귀).아침마다 허전하게 혼자서 돌아온다
欲尋芳草去,(욕심방초거),꽃다운 풀 찾아 떠나려하니
惜與故人違.(석여고인위).친구와 헤어짐이 너무 아쉬워라
當路誰相假,(당노수상가),권세 잡은 사람 누가 힘을 빌려줄까
知音世所稀.(지음세소희).진정한친구(자기마음을알아주는친구)는세상에두물다네
祇因(只應)守寂寞,(지응수적막),다만 응당 적적함을 지켜
還掩故園扉.(환엄고원비).고향집 돌아가 사립문 닫으리라
更(고칠경, 새로워지다) 끝내 (부사)
空(빌 공, 모자라다) 볼일 없이 스스로 돌아올 뿐이다.
與(줄여 베풀여) 더불어
當路=當軸(권세의 줄)
假(거짓 가, 빌다)=借(빌 차)
祇(토지의 신기, 마침, 다만) = 只(다만 지, 어조사 지)
北闕休上書 南山歸敝廬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疎
(궁궐에 상소올리는 것을 그만두고 남산 내고향으로 돌아간다.
재주가 없다고 임금이 버린몸 병많은 몸이라 옛 친구도 멀어지는구나)
“吾未嘗棄卿何誣之甚也”(임금이 “말하기를 내 너를 시험해 본 적이 없는데 벼슬을 주지않았다고 무고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고 맹호연을 귀향 보냈다.
北闕(임금이있는 궁궐)
敝(부서질 폐)
嘗(맛보다, 시험삼아 해보다)
誣(무고할 무)
疎(트일소, 친구와 친해지지않다)
甚(심할심, 정도에 지나치다)
“陽讓” 제갈량의 고향 현 호북성과 하남성 중간지역으로 서로 제갈량의 고향이라고 주장“
詩可以興, 詩可以觀, 詩可以群, 詩可以怨(公子의 論語에 나오는 말)
맹호연은 시를 원한을 읊은데 이용했다.
p166 122.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맹호연(孟浩然)
한해가 다가는 때 남산으로 돌아가다-맹호연(孟浩然)(40세때)
北闕休上書,(배궐휴상서),조정에 글 올일 일 없어
南山歸敝廬.(남산귀폐려).남산으로 오두막 나의 집에 돌아왔소
不才明主棄,(부재명주기),재주 없어 임금님에 버림받고
多病故人疏.(다병고인소).병 많은 몸이라 친구도 멀리하네
白髮(發)催年老,(백발최년노),흰 머리는 나이를 재촉하고
靑陽逼歲除.(청양핍세제).따뜻한 몸은 세밑에 다가온다
(가까이오는 봄은 삶의 끝을핍박하는 구나) 이장우교수역
永懷愁不寐,(영회수부매),끊없는 시름으로 잠 못이루는데
松月夜窗墟.(송월야창허).이 밤 창에 소나무 사이로 달만 보인다
逼(닥칠 핍, 가까이 오다, 위협하다)
不才明主棄(부재명주기) “많이 쓰는 말“
懷(품을 회, 마음 생각)
p167 123. 증맹호연(贈孟浩然)-이백(李白;701-762)
맹호연에게 드립니다-이백(李白;701-762)
吾愛孟夫子,(오애맹부자),나는 맹 선생님을 좋아하지요
風流天下聞.(풍류천하문).그의 풍류는 세상이 다 알지요
紅顔棄軒冕,(홍안기헌면),젊어서 벼슬 버리고
白首臥松雲.(백수와송운).늙어서는 소나무와 구름 사이에 노니시네
醉月頻中聖,(취월빈중성),달에 취하여 자주 술 취하고
迷花不事君.(미화부사군).꽃에 미쳐서 나라님도 섬기지 못하셨네
高山安可仰,(고산안가앙),그 높은 산을 어찌 가히 쳐다볼 수 있을까요
徒此挹淸芬.(도차읍청분).다만 이렇게 맑은 향기를 떠 올 뿐이랍니다
* 酒(淸酒=聖人, 濁酒=賢人) 중국 선비들은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이 허가되지 않아서 술에 취하면 성인과 만나고 왔다하고 현인과 만나고 왔다고 하였다.
* 愛(사랑하다, 친밀이대하다, 아끼다)
* 헌면(軒冕: 수례와 면류관)
* 中(zho-ng 짧게발음하면 명사 가운데, zho'ng 길게발음하면 동사로 쏘다, 걸려들다), 中聖(맑은 술에 걸려 듬), 中傷(상처를 받다)
* 迷花=桃花源記에서 인용함.
* 淸芬; 맑은 향기
* 挹淸軒(끌어댕길 읍)
* 淸芬室 (李仁榮교수 6.25전 서울대국사과 교수의 서재명; 그당시 책이 가장 많았음, 이북으로 끌려가 숙청됨)
* 金庠基(庠 학교상)교수의 동빈서재
* 金斗鍾교수(서울의대)
* 남권희교수(경북대) 이상에 선생들이 한문서적을 많이 가지고 있음.
제14과 20110602
水光瀲灩 晴方好(수광염염 청방호)
山色空濛 雨亦奇(산색공몽 우역시)
欲把西湖 比西子(욕파서호 비서자)
淡妝濃抹 總相宜(담장농말 총상의)
반짝반짝하는 물결은 맑을때 바야흐로 아름답고
산색이 비가 와서 가린 모습 더욱 기묘 하구나
서호를 가지고 서씨에게 비한다면
담담하게 화장하거나 짙게 화장하거나 모두 어울리 더라
글쓴이 志松堂
* 方(모방, 바야흐로, 또한)
* 空濛(안개나 비에 가려서 아직 그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
* 妝(화장할 장, 꾸미다)
* 把(가질파, 쥘파) 把字句->동사가 전치사로 바뀜.
* 海上, 江上, 川上= 곁, 바다곁, 강가, 천가 등
* 소동파(사천성 출신이지만 절강성 사람이라고 절강성에서는 위긴다.)초년, 중년 별슬함 서호에 3차례방문 많은 시를 남김.
* 백거이=서호에 제방을 쌓음
* 초청후우=처음 맑다가 다음에 비가내림
* 瀲灩(염염) 물이 번쩍번쩍 출렁거리다.
花間(下)一壺酒(화간일호주) 꽃나무 사이에서, 한 동이 술을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친구 없이, 혼자 술을 마신다.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맞고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를 마주하니 셋이 친구 되었네
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 달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니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만 부질없이 나를 따라 다니네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잠시 달을 친구하고 그림자 거느리고
行樂須及春(항낙수급춘) 즐거움을 누리는 이 일 봄에야 가능하리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도 따라다니고
我舞影零亂(아무영령난)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덩실덩실 춤을춘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깨어서는 함께 서로 기뻐하고
醉后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각자 나누어 흩어진다.
永結無情游(영결무정유) 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귐을 영원히 맺어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저멀리은하수에서만나기를서로기약하자.
소동파의 飮湖上初晴後雨 (촌사람 제공)
水光瀲灩 晴方好(수광염염 청방호) 山色空濛 雨亦奇(산색공몽 우역시)
欲把西湖 比西子(욕파서호 비서자) 淡妝濃抹 總相宜(담장농말 총상의)
이 그림은 왕원기가 그린 서호 10경 중의 몇 장면입니다.
왕원기는 청초에 복고풍 회화를 그린 四王 중의 마지막 인물로서
왕시민의 손자이고, 전통화풍의 그림을 그린 화단의 우두머리 입니다
서호의 아름다운 경치를 잘 표현하였으나
비온 뒤의 산색이 안개 구름에 쌓인 모습이 없어서 ---
당시 300수도 다음 시간이 종강이라고 하여
이번 시간에 배운 시와 그림을 올려 보았습니다.
염염은 어려운 한자라서 찾지 못하였습니다.
햇빛이 물결에 부딛혀 반짝반짝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沙月 11.06.04. 13:19
飮湖上初晴後雨二首其一朝曦迎客豔重岡, 晩雨留人入醉鄕.此意自佳君不會, 一杯當屬水仙王.其二水光瀲豔晴方好, 山色空濛雨亦奇.欲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宜.
* 邀(맞을요, 기다릴요)
* 旣(이미기, 원래기) ~이미 ~할뿐만 아니라 ~하다.
* 徒(걸을 도, 부질없이, 헛되이)
* 伴(짝반) 伴農, 半農(이장우교수 호) 伴侶(짝)
* 將(장차장, 마땅히 ~해야 한다, 데리고서)
* 無情(감정을 초월한 상태), 無心(좋고 나쁜 마음을 초월한 마음), 無爲(無爲而爲의 약자;거짓된 공리됨이 없이 하는것)
* 形影神->장자, 도연명, 이백으로 이어진 사상
* 雨雨(앞은 명사 뒤는 동사; 비가 내리다)
* 酒(술병모양에서 유래된 글자)
* 眀(밝게 볼 명) 서북쪽 창문으로 달이 비친 모습에서 만든 글자
* 旣(이미 기, 그러는 동안, 이윽고)
* 旣----不----宜(終) 이미~하고, 또한 ~하다.
1.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많은 인생살이 꿈 같이 갔네
2.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봄버들 하늘하늘 춤을 추노니 꽃다운 이강산에 봄맞이 가세 <단소로 낙화유수를 유정임씨가 연주하고 같이 시를 읊다.>
3.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청춘은 언제 또 피나 |
p167 123. 증맹호연(贈孟浩然)-이백(李白;701-762)
吾愛孟夫子,(오애맹부자),나는 맹 선생님을 좋아하지요
風流天下聞.(풍류천하문).그의 풍류는 세상이 다 알지요
紅顔棄軒冕,(홍안기헌면),젊어서 벼슬 버리고
白首臥松雲.(백수와송운).늙어서는 소나무와 구름 사이에 노니시네
醉月頻中聖,(취월빈중성),달에 취하여 자주 술 취하고
迷花不事君.(미화부사군).꽃에 미쳐서 나라님도 섬기지 못하셨네
高山安可仰,(고산안가앙),그 높은 산을 어찌 가히 쳐다볼 수 있을까요
徒此挹淸芬.(도차읍청분).다만 이렇게 맑은 향기를 떠 올 뿐이랍니다
* 酒(淸酒=聖人, 濁酒=賢人) 중국 선비들은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이 허가되지 않아서 술에 취하면 성인과 만나고 왔다하고 현인과 만나고 왔다고 하였다.
* 愛(사랑하다, 친밀이대하다, 아끼다)
* 헌면(軒冕: 수례와 면류관)
* 中(zho-ng 짧게발음하면 명사 가운데, zho'ng 길게발음하면 동사로 쏘다, 걸려들다), 中聖(맑은 술에 걸려 듬), 中傷(상처를 받다)
* 迷花=桃花源記에서 인용함.
* 淸芬; 맑은 향기
* 挹淸軒(끌어댕길 읍)
* 淸芬室 (李仁榮교수 6.25전 서울대국사과 교수의 서재명; 그당시 책이 가장 많았음, 이북으로 끌려가 숙청됨)
* 金庠基(庠 학교상)교수의 동빈서재
* 金斗鍾교수(서울의대)
* 남권희교수(경북대) 이상에 선생들이 한문서적을 많이 가지고 있음.
* 安(어찌, 편안할 안)
* 徒(다만, 한갓)
* 揖(읍 읍, 상대방에게 공경을 나타냄)
124. 도형문송별(渡荊門送別)-이백(李白;701-762)
渡遠荊門外,(도원형문외), 먼 형문 밖 건너와
來從楚國游.(내종초국유). 초나라에 노닌다
山隨平野盡,(산수평야진), 산은 넓은 들판을 따라 펼쳐지고 (적색글자 동사)
江入大荒流.(강입대황류). 강은 큰 땅을 따라 흘러간다 (적색글자 동사)
月下飛天鏡,(월하비천경), 달은 내려와 하늘 날아다니는 거울이 되고
雲生結海樓.(운생결해누). 구름은 생겨나 바다를 잇는 누각이 되었네
仍憐故鄕水,(잉련고향수), 고향 산천 아름다워라
萬里送行舟.(만리송항주). 만 리 먼 곳, 고향으로 배를 보낸다
* 荊門山 -> 장강 남쪽 ▲虎牙山
* 虎牙山 -> 장강 북쪽 蜀땅 -- 三狹-- 嘉陵狹--▲荊門山--洞庭湖--上海
* 仍(잉할 잉, 거듭하다)
* 故鄕(이태백의 고향)
* 憐(불쌍히어길련, 사랑하다)
125. 송우인(送友人)-이백(李白;701-762)
靑山橫北郭,(청산횡배곽),푸른 산들은 북쪽 성곽 위로 가로 솟고
白水繞東城.(백수요동성).희고 밝은 물은 동쪽 성을 감싸며 흘러간다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이곳에서 우리 한번 이별하면
孤蓬萬里征.(고봉만리정).외로운 쑥처럼 만리타향을 떠돌겠네
浮雲游子意,(부운유자의),떠다니는 구름은 떠나는 나그네 마음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지는 해는 떠나보내는 친구의 심정
揮手自茲去,(휘수자자거),손을 흔들며 이제 떠나가니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쓸쓸하구나, 떠나는 말의 울음 소리마저도
* 橫(가로지르다. 옆으로 누이다)
* 繞(두를요, 둘러싸다, 감싸다)
* 孤蓬(외로울 쑥봉)
* 征(칠정, 멀리나가다, 취하다, 자기손에 넣다)
* 北征(멀리간다. 두보시의 제목)
* 遊子(나그네)
* 意(뜻의, 마음씨)
* 故人(옛친구)
* 조선의 병자호란 이전에는 여자들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 “사상칠정”퇴계선생의 첩은 창원의 관기였으며 “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하나있다.
* 천민이라도 부모가 70이 넘으면 관청에서 관기라도 적에서 빠진다.(관청에 관기에서 빼줄 것을 아들에게 한 편지에서 밝혔다고 함->이장우교수)
* 1처2첩은 이조 선비의 기본
* 장씨부인 아버지 장경란씨-> 자기 철학을 설명해서 잘 알아듣기 어린 딸을 보고 이놈이 남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 가? 라고 했다함
* 蕭蕭(마을 대쑥, 바람이 부는 소리, 비가오는 소리, 말이 우는 소리: 뺑, 호호호->이교수)
* 襯出(솟옷친, 가깝다) -> 간접적으로 그려냄 -->이와 같은 소리 글자를 사용
* 旁敲(방고, 곁에서 두드리다)
장씨부인이 지은시
窓外雨蕭蕭하니 蕭蕭聲自然이라
我聞自然聲하니 我心亦自然이라
葛庵先生文集卷之二十七(行狀:先妣贈貞夫人張氏行實記 a_128_330c ) 嘗有詩曰。窓外雨蕭蕭。蕭蕭聲自然。我聞自然聲。我心亦自然。又有一絶云。身是父母身。敢不敬此身。此身如可辱。乃是辱親身。出語蕭爽端嚴。皆此類。然此皆十歲左右時事。稍長及笄。以爲作詩若書字。皆非女子所宜。遂絶不爲。故佳章妙蹟不多傳。權夫人中罹疾恙。積歲沈苦。夫人涕泣晝夜侍。飮食供養。無不躬親。年十九。 (한국고전번역원 참고) |
제15교시 2011.6. 9. 마지막시간
2011. 6. 9. KBS 아침마당 오전 8시30-9시30분까지 이장우교수 형님인 이용태(80세) 현 퇴계학연구원][전 삼보콤퓨터사장]출연
(이용태박사 소개를 2008.7.25.계간 종합문예지“작가시선“에 올려 진 글을 여기에 올린다. 삼보그룹 이용태 박사 /시골 학교 검정고시 출신이지만 서울대 수석 입학| ▦ ▶ 자유 게시판▦(2008.07.25. 13:40) 작가시선(계간 종합 문예지)
이용태 전 삼보 컴 회장을 어떤 사석에서 만난 일이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용태 회장(전 삼보 컴퓨터 회장)이 우리나라 IT 산업을 이만큼이나마 키워 온 개척자 정신은 기억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을 건넸더니...."우리나라에서 실패한 기업인/경영인은 아주 빨리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다....."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우리 나이 올해 77세....(2008년현재) 경북 영덕 산골에서 독학으로 검정고시 패스하여 당시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에 수석 입학(서울대 전체 차석 합격), 대학 2학년 때부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우려 당시 장안 최고의 영수학원이었던 EMI 학원의 최고 인기 수학강사가 된다. 물리학과 동기생들은 대학 졸업 후 조기 유학을 떠나는데 그는 나이 30이 넘어서야 미국 유타대학원 이태규 박사(물리화학 전공, 일본 쿄토대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가 교환교수로 가 있던 유타대에서 미국 과학재단 후원으로 신규 연구 프로젝트를 따 낸 연구 사업에 분자간 운동역학의 수학/물리학 모델 방정식 수립하기 위해 연구 조교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이태규 박사로부터 수학/물리학에 뛰어난 연구 조교 한 사람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 한양대 대학원장 한상준 박사가 추천한 인물이 바로 이용태 전 삼보 회장이었고 당시 물리학과 출신으로 수학에 가장 뛰어났던 사람이 이용태 였다. 그는 결국 그로부터 6개월 후 미국을 방문한 한상준 박사가 보는 앞에서 이태규 박사를 모시고 당시 화학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멋지게 분자간 운동역학 방정식 수립을 수학/물리학 모델의 방정식을 이용하여 해명하므로써 명 프레젠테이션을 하여 추천자인 한상준 원장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용태는 학부시절 학원 수학강사 강의 부담 때문에 서울대 물리학과 강의 출석 기준 요건에 다소 미달 된 면이 있었고 한상준이 그를 이태규 박사 연구 조교로 추천하였지만 이 점이 다소 마음에 께림직 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물론 그는 물리학과 졸업시험에 거뜬히 패스하므로써 이 핸디캡을 극복하였다. 후에 그가 서울공대 강사로 나서 역학 강의를 할 땐 워낙이 뛰어난 수학 실력(주로 미분방정식?)으로 명강의를 펼치는 바람에 당시 대학원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학계로 나갔더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파인만(Feynman, QED(Quantum Electrodynamics) 이론 정치화로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이론 물리학 교수 중 한 사람, 칼텍 교수)이 되지 않았을까 나 나름대로 생각 해 본다. ----------------- 이용태가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 했을 때는 전 포항공대 학장이었던 김호길 학장등 쟁쟁한 당시의 물리학도가 같은 과에 있었고 이용태는 결국 미국 유학 가서 이태규박사 밑에서 통계역학(물리학)쪽의 박사 학위를 받게된다. 그가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조차 태동기에 있었던 컴퓨터 사이언스를 부전공으로 택한 것도 이 때였다고 한다. 귀국하여 KIST로 와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 발전 계획에 참여하고 성기수 전 KIST 컴퓨터 전산 연구실장과 함께 쌍두마차로 초기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 발전 모형으로 성기수 박사(공사/서울공대 출신, 하버드에서 당시 동교 최단시간 내 석사/박사 학위 취득 기록)는 소프트웨어 일변도를 주장, 이용태 박사는 소프트/하드 웨어 동시 추진 전략이 팽팽히 맞서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다소 성기수 박사 쪽으로 기울어 지는 면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 보기론 성/이 두 박사가 어떤 의견합일의 일치점을 도출 해 냈더라면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의 보다 소프트웨어 중심/하드웨어 병행 전략이 더욱 탄력을 받으며 발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말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용태는 그 후 데이타 통신 초대 사장, 전자연구소 부소장등을 거치며 삼보 컴퓨터(주)를 창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고 90년대가 시작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망 사업인 두루넷을 창업한다. 그러나 그 사업이 사업주체인 한전과 마찰이 생기면서 그는 결국 경쟁사와의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면서 두루넷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모기업인 삼보 컴에도 주름살을 주게 된다. 삼보 컴이 미국 휴렛 패커드등과 사업 협력을 모색하고 주로 중국 심양 공장에서 대규모로 HP 미국 시장 물량을 만들어 내는 세계 최대의 주문자 생산 표시 방식의 컴 생산 능력을 운영하다가 소형 고성능 노트북 브랜드의 미국 시장 진출로 HP와 알력이 생기자 HP가 괘씸죄를 적용, 주문선을 대만업체로 일거에 바꿔 버리게 되자 공장 가동률이 급격히 하강하며 경영난에 빠지게 되고 대규모 중국 제조 공장을 운영하던 대만업체와 가격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두루넷 경영난이 모기업에 까지 미치면서 가격 인하 경쟁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도 위험에 처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된다. --------------------------- 그의 지난 근 30년에 이르는 기업가/경영자 인생은 바로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의 태동, 이륙,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치열한 벤쳐 정신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루넷을 창업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일본 소프트방크의 손정의 등을 끌어들인 최초의 사람도 이용태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며칠 전 우리나라에 와서 향후 수년간 1억 7천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도 바로 이용태 전 삼보 회장과의 비지네스 연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 것이다. 일부에서 이런 이용태를 그가 준 재벌에 못 미치는 사업규모를 갖고 재벌을 꿈꿔 온 잘못이 있었다고 폄훼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일견 타당한 비판의 일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삼성, LG, SK등 재벌기업과 맞서서 그래도 컴퓨터 제품 하나로 고속 인터넷 망으로 사업을 벌이며 근 수십년간을 버티어 온 사업가는 이용태 전 삼보 회장이 유일하다 할 것이며 삼보의 전문 컴 제조 기술을 결코 폄훼 해선 안될 줄 안다. 그의 두루넷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초고속 인터넷의 만개가 우리 나라에 도래 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될 줄 안다. 이용태는 우리나라 각 부문 천재 열전에 끼일 수 있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시골 고교 2학년 수료 실력으로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영재가 모인다고 하는 서울대 물리학과에 수석입학 한 것이라든지, 후일 개인 형편상 대학 물리학 수업 출석일수가 다소 부족했음에도 이를 극복 이태규 박사 연구조교로 발탁되어 불과 수개월만에 이태규 박사의 미국 정부 후원 화학 연구 프로젝트에 동참, 멋지게 분자간 운동역학 방정식을 도출 해 낸 실력이라든지..... 그는 경영, 교육(숙명여대 재단 이사장), 과학, 공학, 인문학(퇴계 도산학 국제 연구원장)분야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범한 재능을 떨쳐보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물리학 박사 출신의 기업인/경영인이었다. 바라건데 그의 남은 여생이 행복하게 영위 되고 우리나라 경제가 재도약 하며 IT 산업도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공히 다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는 날이 온다면 그의 우리나라 IT 산업 초기 개척자 정신의 높은 뜻이 죽지 않고 사는 훌륭한 결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 * 1932년생 (할아버지 회갑때 태어나 나이 13에 4살위 인 부인을 맞아장가를 가고 17살 때 첫딸을 얻었다고 함. 아버지는 99세까지 장수한 집안임. 당시300수 강의 이장우교수 친형 형과는 7살 차이로 현재 (74살임) * 젊어서 간, 고혈압, 당뇨등이 있었으나 관리를 잘하여 건강을 유지, 지금도 한 달에 하나씩의 습관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함. * 오늘의 강의 우리의 생활을 남(仁), 나(敬), 일(忠)으로 해야 한다고 말함. * 할아버지에게서 어릴적에 많은 한학에 대한 사사를 받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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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야보) 作
千尺絲綸 直下垂(천척사륜 직하수)
一波纔動 萬波隨(일파재동 만파수)
夜靜水寒 魚不食(야정수한 어불식)
萬船空載 月明歸(만선공재 월명귀)
(글씨 지송당, 이순복)
* 甫=父 송나라 승려 호는 道川, 甫는 氏보다
아랫사람에게 붙임.(홍보, 놀보), 어보(魚父=甫)
甫(겨우 보, 남자의 미칭, 사나이)
* 성삼문(成三問)의 호 謹甫(조심해서 묻는다)
* 冶甫는 金剛經 五家解 중 한사람으로 시에능함.
* 絲綸: 낚시줄
* 재(纔; 겨우재) =才
* 밀양 천황사 주련에 쓰진 글씨를 志松堂이 글로 씀.
日照香爐 生紫煙(일조향로 생자연)
遙看瀑布 捀長川(요간폭포 봉장천)
飛流直下 三千尺(비류직하 삼천척)
疑是銀河 落九天(의시은하 낙구천)
해는 향로봉을 비추는데 자주빛안개 생겨나네
멀리서 폭포를 바라보니 장천을 걸어놓은듯
날라서 흐르기가 삼천자가 되겠네
마치 구천에서 은하가 떨어지는 것같네
126(104) 야박우저회고(夜泊牛渚懷古)-이백(李白;701-762) p170
밤에 우저에 정박하며 옛일을 회고함
牛渚西江夜,(우저서강야),우저산 서편 장강의 밤
靑天無片雲.(청천무편운).푸른 하늘엔 조각구름 하나 없구나
登舟望秋月,(등주망추월),배에 올라 가을 달을 보니
空憶謝將軍.(공억사장군).부질없이 여기 놀던 사 장군이 생각 난다
余亦能高詠,(여역능고영),나 역시 시를 잘 읊지만
斯人不可聞.(사인부가문).이런 분을 찾을 수 없구나
明朝挂帆席,(명조괘범석),내일 아침 돛을 달고 떠나면
楓葉落紛紛,(풍엽낙분분), 단풍잎이 분분하게 떨어지겠지.
* 晋書 文苑傳,
* 諷詠:풍영(풍자해서 읊다),
* 絻才(문제, 상복문)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재주, 남모른 재주
* 산단불매(申旦不寐): 잠자는 것도 잃어버리고 새벽끼지 시간을 연장함.
* 신(申): 두손을 가지고 넓히다.
* 作意: 自傷不遇知音之意(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다)
131(105). 월야(月夜)-두보(杜甫;712-770)
달밤-두보(杜甫;712-770)
今夜鄜州月,(금야부주월),오늘 밤 부주 하늘의 달을
閨中只獨看.(규중지독간).아내 홀로 바라보리
遙憐小兒女,(요련소아녀),멀리서 어린 딸을 가여워하나니
未解憶長安.(미해억장안).장안의 나를 그리는 어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을
香霧雲鬟濕,(향무운환습),자욱한 안개구름에 머리카락 젖고
淸輝玉臂寒.(청휘옥비한).맑은 달빛에 옥 같은 팔 차겠소
何時倚虛幌,(하시의허황),그 어느 때라야 엷은 휘장에 기대어
雙照淚痕干?(쌍조누흔간)?서로 얼굴 비춰보며 눈물 자국 막아볼까
* 환(鬟:쪽진머리 환)
* 倚(의지할 기; 依=倚)
* 未聯以 [雙照]應[獨看], 是寫希望相思願償, 能句多聚首相倚一同看月 那兩人的 淚就可乾了精深一往至於如此
132(106) 春望(춘망)-杜甫(두보)
봄의 소망-杜甫(두보)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 조정은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 성안은 봄이 되어 초목이 무성하네
感時花淺淚(감시화천루) : 시대를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 한 맺힌 이별에 나는 새도 놀라는구나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 봉화불은 석 달이나 계속 오르고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 집에서 온 편지 너무나 소중하여라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 흰 머리를 긁으니 자꾸 짧아져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 이제는 아무리 애써도 비녀도 못 꼽겠네
*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한시 임.
* 앞에서 본 이백시와 두보의 시는 약간 차이가 있다.
* 簪: 비녀잠
<唐詩: 이원석지음(현남사출판) 이책이 비교적 잘되어있음.>
*** 이번 학기 강의가 마무리되고 2011년 9월 1일 목요일 10시 후학기 강의가 시작된다고 함.
이장우교수 열강 류정님선생 시조창
2011년 전반기 6개월을 즐겁고 재미있고 뜻있게 보낼 수 있게 해준 “당시300수” 이장우 교수님과 같이 공부했던 동기생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특히 방학기간 중 이장우교수님의 카나다의 런던, 토론토 그리고 미국의 센루이스 여행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9월 1일 목요일에 다시 뵈올 때까지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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