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묘지를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한 곳에 택해서 영혼과 유골의 편안함을 구하고, 주택을 길지에 지어서 지력(地力)에 의해 건강과 행복을 꾀하고, 마을과 도시가 들어선 부지를 선택하거나 혹 부지 내에 생기(生氣)가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바꾸고자 하는 것 역시 풍수 지리학이 일상에 쓰인 방법들이다.
묘지를 생기 왕성한 곳에 잡는 방법과 과정을 산, 물, 방향, 사람 등에 맞추어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음택(陰宅) 풍수론이고, 주택의 구성 요소 중 사람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주는 대문, 안방, 부엌의 방위별 배치를 조합하여 주택 내에 생기가 극대화되도록 이론화시킨 것이 양택(陽宅) 풍수론이다. 마을과 도시의 부지를 선택하는 양기(陽基) 풍수론은 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를 찾되, 가급적이면 외부와 차단되면서 내부 공간이 넓은 곳을 선호하였다.
효도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道理) 중에서 으뜸이라 생각했던 조상들은, 묘지를 '죽은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란 뜻에서 '유택(幽宅)'이라 부르고, 산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과 마찬가지로 가꾸고 보살펴야 할 시설물로 중요시하였다. 또 묘지를 좋은 땅에 잡아야 조상의 영혼이 편안하고, 영혼이 편안해야 후손도 복을 받아 행복해 진하다고 믿었다. 여기에는 유교 사상이 한 몫을 하였다. 만약 땅이 불길하여 물이 고이거나, 개미 등 벌레가 시신을 해치면 시신이 불안하여 자손에게 화가 미치어 사망하거나 자손이 끊어진다고 하였다.
주택 역시 땅에 기반을 두고 짖는데, 터와 주위 환경이 사람 살기에 조화로워야 집안에 신령한 기운이 들어와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보았다. 특히 주택 내에서 안방과 대문 그리고 부엌의 위치가 방위적으로 서로 상생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풍수지리학은 사람이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지리적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거주 환경(주택, 묘지)을 선택하자는 실용 학문이지 결코 발복만을 기대하는 사상이 전부는 아니다.
또 우리 조상들은 사는 터의 기가 허하거나 결함이 있으면 풍수적 비보(裨補)를 기울여 살기좋은 터로 만들었다. 동수비보(洞藪裨補)는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바람을 막았으며, 화기비보(火氣裨補)는 앞 산의 강한 화기를 누르기 위해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하고, 산천비보(山川裨補)는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 불상, 탑을 세우고, 지명비보(地名裨補)는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두려 하였다.
예천에는 금당 숲을 조성하고,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영천의 비봉산은 봉황을 붙들어두기 위해 봉황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서 조산을 조방산(竹防山)이라 불렀다. 또한 길을 내고, 문을 만들고, 때론 길을 막기 위하여 소나무를 심는 것 외에도 궁성 내에 연못을 파는 일, 심지어 담을 쌓을 때도 풍수학에 따라 좋음을 쫓으려고 하였다. 이렇듯 풍수학는 역사적으로 실생활에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또 생활 규법으로 자리잡았으니, 우리 조상들은 오늘의 과학만큼이나 믿고 따른 사상임에 분명하다.
<사진 : 명당에 위치한 고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