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충의단 충신의사단비(경상북도 기념물 제133호)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동 산140-2
외삼문인 충의문
숭의당
충의문을 들어서면 숭의당이 있고 숭의당 뒤로 가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인 경절문이 세워져 있다.
내삼문인 경절문
내삼문인 경절문을 들어서면 충의단이 있고
충의단 좌우에는 사졸단과 장사단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충의단
충의단에는 윤섬(尹暹), 이경류(李慶流,禮曹佐郞), 박호(朴箎, 校理), 의병장(義兵將)
김준신(金俊臣), 김일(金鎰) 등 상주전투에서 순절한 5충신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
사졸단(史卒壇)
장사단(將士壇)
어제비각(御製碑閣)
비각은 1986년 새로 건립되었으며, 정조의 비문이 새겨진 비가 보존되어 있다.
충신의사 단비(경상북도 기념물 제133호)
이 비는 1794년(정조 18년)에 건립된 것으로서, 상부가 반월형으로 된 장방형의 비석으로
크기는 높이 150cm, 너비 18cm, 두께 19.5cm로 석비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이며 왕이 내려준 교서를 바탕으로 5인의 공적을 논하고 있다.
조선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 때 상주지역에서 왜군을 막기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전사한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 校理)을 비롯 이경류(李慶流,禮曹佐郞),
박호(朴箎, 校理) 세사람과 이곳 출신의 의병장(義兵將) 김준신(金俊臣), 김일(金鎰)
두사람을 합쳐 모두 다섯사람의 공적을 포상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시 상주 전투에서 전사한 상주판관(尙州判官) 권길(權吉)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 김종무(金宗武),
호장(戶長) 박걸(朴傑) 등은 후일 나라에서 포상하였으나 위의 다섯사람들은 포상받지 못하였다.
1738년(영조 14년)에 상주 사람들이 앞의 네사람을 무양동에 증연사(甑淵祠)를 세워
제향하였으나 반대 의견이 있어 3년 후에 훼철되었다.
그 후 1790(정조 14년) 상주 사림들이 증연사의 터에 경절단(景節壇)을 세우고 이들을 제향하였다.
2년 후 정조가 충신의사단 이라는 단호를 내리면서 이들의 충절에 대한 제문을 지어 경상관찰사로
하여금 제를 올리게 하였다. 의병장 김일은 1793년(정조 17년)에 추가로 배향되었다.
다섯 분의 충신의사단비는 상주 임란북천 전적지에 세워져 있으며
주변의 건물들은 상주 지역에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들이다.
연원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상리, 신하리, 구서원리, 안양리, 오대리,
연정리 등을 통합하여 연원리가 되어 내서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1월 내서면 남장리, 외서면 남정리와 함께 상주시에 편입되어 상주시 연원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동을 리로 개칭할 때 상주시 연원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상주군과 상주시가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상주시가 됨에 따라 상주시 연원동이 되었다.
연원이란 지명은 연정리와 구서원리의 이름에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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