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스크랩] 『노자』의 "玄" 분석

장안봉(微山) 2013. 12. 4. 06:04

.

 

 

철학논집 제27집 2011년 11월

Sogang Journal of Philosophy

 

 

『노자』의 "玄" 분석*

 

이임찬(서강대)

 

 

【주제분류】동양철학, 선진도가, 노자철학
【주제어】현(玄), 묘소(眇小), 유원(幽遠), 박(樸), 유무상생(有無相生)
【요약문】『노자』에서 "현(玄)"은 노자 철학 전체의 색깔이나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갖는 철학적 개념이다.

『노자』1장에 대한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현(玄)"의 기본 함의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다. 그러나 "현(玄)" 자의 문자적 함의, 노자 철학의 다양한 내용들, 『노자』에 출현여러 문자 자료 그리고 고대 신화의 상징을 토대로 『노자』의 "현(玄)"의 의미를 분석해보면, 그 안에 "묘소(眇小)", "유원(幽遠)" 그리고 "박(樸)"의 세 가지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玄)"과 연결된 다양한 개념들, 즉 "현빈(玄牝)", "현람(玄覽)", "현덕(玄德)", "현통(玄通)", "현동(玄同)" 등의 연구에 보다 진일보한 연구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본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 「老子"無爲 "思想硏究 」(북경대학교, 철학과,2011년)의 일부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투고일: 10월 25일, 심사완료일: 11월 20일, 게재확정일: 11월 26일

 

 

 

1. 들어가며

 

『노자』에서 "현(玄)"은 노자 철학 전체의 색깔이나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갖는 철학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왕보(王博)는 노자 철학과 하(夏)나라의 문화적 상관관계를 분석하며 하나라 문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1. 하나라 사람들은 검은색[黑]을 숭상하였다. 2. 하나라 사람들은 충신(忠信)을 숭상하였다. 3. 하나라 사람들은 자(慈)를 숭상하였다(형벌을 줄이고 조세를 적게 거둠). 4. 검(儉)을 숭상하였다. 5. 물[水]를 숭상하였다. 6. 우박(愚樸)을 숭상하였다."2)

이 중에 첫 번째 항목은 이하 다섯 가지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왕조가 건립되면 먼저 역법(曆法)과 복색(服色)을 정했는데3), 특히 복색은 하나라가 검은색[黑]을, 은(殷)나라는 흰색
[白]을, 주(周)나라는 붉은색[赤]을 숭상했던 것처럼 각각 그 왕조의 정치적, 문화적 특징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하나라 사람들이 숭상했던 검은색[黑]은 노자 철학에서 "현(玄)"으로 되살아났으며, 그 외 다섯 가지 특징 역시 노자 철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라 문명과 노자 철학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玄)"이 노자 철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상징적 의의를 갖는지 짐작케 한다.

 

『노자』에서 "현(玄)" 개념은 노자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장인 1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두 가지[此兩者]는 함께 나오지만 이름을 달리 한다. 함께 있다는 것을 현(玄)하다고 하는데, 현(玄)하고 또 현(玄)한 것이 온갖 미묘한 작용이 들락이는 문이다."4)

이 단락에서 "이 두 가지[此兩者]"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으나, 그것이 도(道)의 작용의 두 측면, 즉 "무(無)"와 "유(有)"의 두 측면을 대표하는 것임은 분명하다.5) 이렇게 볼 때, 1장의 "이 두 가지가 함께 나온다", "함께 있다는 것을 현(玄)이라 한다"는 것은 도(道)의 작용의 두 측면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 즉 2장에서 말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玄)"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을 한 글자로 표현한 개념이며, 이것을 노자의 "현(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함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자 철학에서 "현(玄)"은 다시 "현빈(玄牝)", "현람(玄覽)", "현덕(玄德)", "현통(玄通)", "현동(玄同)" 등으로 확장되어 보다 풍부한 함의들을 갖는다.

 

2) 王博, 「老子與夏族文化」,『哲學硏究』1989年第1期, 46쪽.
3) "改正朔, 易服色." (『禮記․大傳』) (清)孫希旦 撰: 『禮記集解』, 北京: 中華書局,2007년, 906쪽.
4)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眾妙之門." (1장) (魏)王弼 著, 樓宇烈 校釋: 『王弼集校釋』, 北京: 中華書局, 2009년, 2쪽. 이하 『노자』 원문은 이 책에서 인용하며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는다.
5) 이러한 관념은 왕보의 연구에서 계발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此兩者]"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를 검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견해들은 사실상 병존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욕(無欲 )'과 '유욕(有欲 )', '시(始)'와 '모(母)'이든 아니면 '무명(無名)'과 '유명(有名)', '묘(妙)'와 '요(徼)'이든 사용하는 말은 다르지만 표현하고 있는 의미는 모두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모두 도(道)가 왕복 운동하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두 가지 존재상태를 기술한 것이다. 노자가 '이 두 가지는 함께 나온다(此兩者同出 )'라고 말한 것은 그것들 모두 도(道 )에서 함께 나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들은 도(道 )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모습이다."王博 :『老子思想的史官特色』,臺北 :文津出版社, 1993년, 208-9쪽.

 

 

본 논문은 "현(玄)" 자의 문자적 함의, 노자 철학의 다양한 내용들, 『노자』에 출현하는 여러 문자 자료 그리고 고대 신화의 상징을 토대로 『노자』의 "현(玄)"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 따르면, "현(玄)"의 함의는 "묘소(眇小)", "유원(幽遠)" 그리고 "박(樸)"으로 세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것들은 다시 앞에서 말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념에 통합된다.

 

도(道)의 차원에서 보면, "현(玄)"은 도(道)의 작용이 무(無)와 유(有)의 두 측면의 상생과 통일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의 차원에서 보면, "현(玄)"은 도(道)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작용 방식을 파악하고 체득한 인간이 갖는 "현명(玄明)"한 정신 경지, 유무상생(有無相生)을 구현하는 행위 방식인 무위(無爲), 현덕(玄德)을 갖춘 이상적인 성인이나 군주가 만사만물에 현통(玄通)하여 실현하는 현동(玄同)의 이상 등과 연결된다.6) 그러나 본 논문은 "현(玄)"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현(玄)"과 연관된 여러 개념들까지 본격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개념들을 연구하기 위한 선행 연구의 성격을 갖는다.

 

6) 탁양현은 「『노자』에서 '玄'字 의미 연구」(『동양철학연구』제60집, 2009년)라는 논문에서 노자의 "현(玄)"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현(玄)"을 "하나의 언어적 개념"보다는 "일종의 사유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玄의 사유법"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논문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으나,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하나는 노자 철학에서 "현(玄)"은 분명히 하나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것이 다시 여러 개념들과 연결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한 개념적 분석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의 문제와 연결되어 "현(玄)"을 일종의 사유방식으로만 한정해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에서 "현(玄)"은 인간의 영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도(道)의 작용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인간의 영역에서 그것은 사유방식이기 전에 일종의 정신적 경지, 행위방식의 "무위(無爲)"적 특성 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현(玄)"이 사고방식으로 특화되어 이해된 것은 노자보다는 당(唐)대 중현학(重玄學)에 이르러 비로소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2. "묘소"

 

(1) "현" 자의 분석

 

"현(玄)" 자에 내포된 함의 중에서 먼저 "묘소(眇小)"를 살펴보자.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현(玄)" 자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玄,   , 幽遠也.象幽而覆之也. 黑而有赤色者爲玄."7) 여기서 "  "은 "현(玄)" 자의 소전체(小篆體)이며, "유원(幽遠)"은 그윽하여 잘 드러나지 않고 심원하다는 " 현(玄)" 자의 뜻풀이이고, "붉은색을 띤 검은색"은 유원한 것, 가령 높은 하늘[天]이나 깊은 물[水]을 대표하는 색이다. 두 번째 문장은 "현(玄)" 자의 자형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

 

단옥재(段玉裁)는 "상유(象幽)"에 대해 " 을 일컫는데, 소(小)하면 곧 은(隱)하다"8)라고 주하였다.

" "은 "요(幺)" 자의 소전체이다. 단옥재의 주를 근거로 보면, "현(玄)" 자와 "요(幺)" 자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용경(容庚)은 아예 "요(幺) 자와 현(玄) 자가 옛날에는 같은 글자였다"9)고 보았다.

 

7) "현(玄), , 유원(幽遠)하다는 뜻이다. 유[幽]하며 어떤 것으로 덮어 가린 것을 본뜬 것이다. 붉은색을 띤 검은색이 현(玄)이다." (漢)許慎 撰, (清)段玉裁 注:『說文解字注』,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9년, 159쪽.
8) "謂 也, 小則隱." (漢)許慎 撰, (清)段玉裁 注:『說文解字注』,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9년, 159쪽.

 

 

"현(玄)" 자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이것과 관계된 글자들을 조금 더 추적해 보자.『설문』은 "요(幺)는 작다[小]는 뜻이다. …… 요(幺)에 속하는 글자들은 모두 요(幺)의 작다는 뜻을 따른다"10)라고 하였고, 주준성(朱駿聲)은 "요(幺)" 자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생각건대, 이 자는 마땅히 멱(糸)을 반으로 나눈 뜻을 따라야 한다. 멱(糸)은 사(絲)의 절반이고, 요(幺)는 멱(糸)의 절반이다. 이는 매우 작고[細小] 그윽하여 잘 드러나지 않는다[幽隱]는 뜻이다. 현(玄)은 이것을 따라 실타래를 물들인다는 뜻을 갖는다."11)

주준성의 풀이에 따르면, 사(絲)와 멱(糸)은 모두 요(幺)를 최소 단위로 하는 글자이며, 요(幺)는 세소(細小)의 의미 이외에 유은(幽隱)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는 사실상 단옥재가 "상유(象幽)"를 풀이하며 말한 "소(小)하면 곧 은(隱)하다(小則隱)"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설문』에는 또 작다[小]는 뜻의 "요(幺)"를 중첩한 "유(幺幺)" 자가 나오는데, 허신(許愼)은 "유(幺幺)는 미(微)의 뜻이다. 두 개의 요(幺) 자로 만들어진 회의자이다"12)라고 하였다.

단옥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하였다. "미(微)는<微 - 彳>로 써야 한다. 팔부(八部)에서 '<微 - 彳>는 묘(眇)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작은 것[小] 중에 더 작은 것을 <微 - 彳>라 한다.

요(幺) 자를 중첩한 것은 매우 작다[幺]는 것을 말한다."13) 즉, "유(幺幺)"는 지극히 작은 것[小]을 표현하기 위해 "요(幺)" 자를 두 번 쓴 것이며, 이는 "미(微,<微 - 彳>)"나 "묘(眇)"와 같은 뜻이다.

 

9) 嚴靈峰 編著: 『老列莊三子研究文集』, 中華叢書 『經子叢著』第九冊, 臺北: 출판자 및 출판년도 미상, 54쪽, 재인용.
10) "幺, 小也. ……凡幺之屬皆從幺." (漢)許慎 撰, (清)段玉裁 注: 『說文解字注』,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9년, 158쪽.
11) "按此字當從半糸. 糸者, 絲之半, 幺者, 糸之半. 細小幽隱之誼. 玄從此會染絲意." (清)朱駿聲 編著:『說文通訓定聲』, 北京: 中華書局, 1998년, 311쪽.
12) "(幺幺), 微也. 從二幺." (漢)許慎 撰, (清)段玉裁 注: 『說文解字注』,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9년, 158쪽.

 

 

『설문』팔부(八部)에 나오는 "<微 - 彳>는 묘(眇)의 뜻이다"에 대해 단옥재는 또 다음과 같이 주하였다. "묘(眇)는 여러 판본에 묘(妙)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 바로잡는다. 옛말의 <微 - 彳>眇는 곧 오늘날의 微妙이다. 묘(眇)는 작다[小]는 뜻인데, 모든 작고 가는 것[細]을 칭하는 것으로 파생되었다. 미(微)는 은밀하게 행하다[隱行]의 뜻이다. 미(微) 자가 유행하면서 <微 - 彳>자는 폐기되었다."14)

허신과 단옥재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미묘(微妙)"로 쓰고 있는 말은 사실상고어의 "<微 - 彳>眇"이고, "<微 - 彳>"와 "眇" 모두 작다[小]는 뜻을 그 기본 의미로 갖으며, "미(微)"는 또 "은행(隱行)"의 뜻도 갖는다.

 

이상의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현(玄)" 자는 그 자형에 이미 소(小)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요(幺)", "유(幺幺)","미(<微 - 彳>, 微)", "묘(眇, 妙)", "미묘(<微 - 彳>眇, 微妙)", "세(細)" 등 소(小)의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들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모두 "현(玄)"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현(玄)"이 "묘소(眇小)"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으나, "미묘(微妙)"가 『노자』15장에서 "현통(玄通)"과 연결되어 "미묘현통(微妙玄通)"으로 쓰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둘째, "소(小)"한 것은 가늘고 작아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玄)"은 또 "유은(幽隱)", "은(隱)", "은행(隱行)" 등의 의미와 연결된다. 이 두 번째 측면은 『노자』"현(玄)"의 "유원(幽遠)"의 의미와 다시 연결된다.

 

13) "微當作<微 - 彳>. 八部曰, '<微 - 彳>, 眇也.' 小之又小則曰<微 - 彳>. 二幺者, 幺之甚也." 위와 같음.
14) "眇, 各本作妙, 今正. 凡古言眇者, 即今之微妙. 眇者, 小也, 引申爲凡細之稱. 微者, 隱行也. 微行而廢矣." 위의 책, 376쪽.

 

 

(2) 『노자』"현"의 "묘소" 함의

 

『노자』에서 "소(小)"는 도(道)의 작용이나 특성, 이상적 군주의 행위방식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도(道)는 항상 무명(無名)하고 박(樸)하며, 그것의 작용은 비록 소(小)하지만 천하에 그 누구도 그것을 신하로 부릴 수 없다"(32장)15),

"대도(大道)는 흘러넘쳐 …… 만물을 양육하지만 주인 노릇하지 않고 항상 무욕(無欲)하기 때문에 소(小)하다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34장)16),

"소(小)를 볼 줄 아는 것[見小]을 명(明)이라 하고, 유(柔)를 잘 지키는 것[守柔]을 강하다[强]고 한다"(52장)17) 등이다.  32장과 34장의 "소(小)"는 기본적으로 도(道)의 작용과 그 특성을 말하는데, 이것을 본받은 군주 역시 "소(小)"를 자신의 행위방식으로 삼는다. 위의 52장은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다.

 

『문자(文子)·도덕(道德)』에 52장의 "견소(見小)", "수유(守柔)"와 연관된 내용이 나오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

"집일(執一)하여 무위(無爲)한다 …… 집일(執一)은 견소(見小)인데, 소(小)를 볼 줄 알기 때문에 그 큼[大]를 이룰 수 있다. 무위(無爲)는 수정(守靜)인데 고요함[靜]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천하의 모범[正]이 될 수 있다."18)

"집일(執一)"의 "일(一)"은 도(道)를 가리키는데, 이 도(道)는 물(物)의 세계에서 묘소(眇小)한 방식으로, 즉 아주 작고 미약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도(道)의 작용을 파악하는 것이 집일(執一)이고 견소(見小)이며, 이러한 사람만이 무위(無爲)를 실천하여 대(大)를 이루고 천하의 올바른 모범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小)"는 도(道)의 작용을 가리키고, "견소(見小)"는 군주가 도(道)의 작용을 인식하고 체현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 "道常無名, 樸, 雖小, 天下莫能臣也." (32장)
16) "大道氾兮 ……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34장)
17) "見小曰明, 守柔曰强." (52장)
18) "執一無爲, …… 執一者, 見小也, 見小故能成其大也. 無爲者, 守靜也, 守靜能爲天下正." 王利器 撰:『文子疏義』, 北京: 中華書局, 2000년, 231쪽.

 

노자는 이러한 "소(小)"의 이미지를 다시 현빈(玄牝)의 작용과 연결시켜 "현빈(玄牝)의 문(門)을 천지의 근원이라 한다. 면면히 이어져[綿綿] 겨우 존재하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끝이 없다"19)라고 말한다.

여기서 현빈(玄牝)은 도(道)를 상징하고, "면면(綿綿)"은 도(道)의 "소(小)"한 작용을 형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회남자(淮南子)·무칭훈(繆稱訓)』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복(福)이 싹틀 때는 면면(綿綿)하고 화(禍)가 발생할 때는 분분(分分)하다. 화복이 처음 싹트는 것은 미(微)하다."

왕념손(王念孫)은 이 구절에 대해 "'분분(分分)'은 개개(介介)로 써야 하는데, 글자를 잘못 쓴 것이다. 개개(介介)는 미(微)라는 뜻이다. …… 면면(綿綿)과 개개(介介)는 모두 미(微)의 의미이므로 '화복이 처음 싹트는 것은 미(微)하다'고 말하였다"20)라고 주석하였다.

천지의 근원인 현빈(玄牝)은 도(道)를 비유한 것인데, 노자는 그 작용을 "면면(綿綿)"하다고 하였다. 왕념손의 분석에서 보이듯이, 면면(綿綿)과 개개(介介)는 모두 미약함이나 미세함을 뜻하는 미(微)의 의미이고, 이것은 곧 "묘소(眇小)"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만일 군주가 "묘소(眇小)"한 현빈(玄牝)의 작용을 체현할 수 있다면, 그는 곧 "미묘현통(微妙玄通)"할 수 있다. 『노자』15장은 "옛날에 도(道)를 잘 실천하는 자는 미묘(微妙)하고 현통(玄通)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21)고 하였다. 앞에서 미(微)가 "소(小)"의 뜻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사실상 "미묘(微妙)"의 "묘(妙)" 역시 "소(小)"의 뜻이다.

장송루(張松如)는 "소(小)"와 『노자』1장에 나오는 "묘(妙, 즉 眇)"의 관계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견소왈명(見小曰明)'은 제 1장 '항상 무욕(無欲)을 가지고 그 묘(妙)를 본다(恒無欲以觀其妙)'는 말의 의미와 서로 통하는 것이다. '소(小)'와 '묘(妙)'는 모두 미(微)와 묘(渺)의 뜻을 갖고 있다."22)

 

19)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6장)
20) "福之萌也綿綿, 禍之生也分分. 禍福之始萌微."(『淮南子·繆稱訓』) "'分分'當爲介介, 字之誤也. 介介, 微也. …… 綿綿, 介介, 皆微也, 故曰'福禍之始萌微'."(王念孫注) 何寧 撰: 『淮南子集釋』, 北京: 中華書局, 1998년, 742쪽.
21)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15장)
22) 張松如: 『老子說解』, 濟南: 齊魯書社, 2003년, 296쪽.

 

 

정카이(鄭開) 역시 『노자』에 나오는 "묘(妙)" 자가 작다[小]는 뜻의 "묘(眇)"라는 것을 고증하였다. "통행본 중의 '묘(妙)'는 마왕퇴(馬王堆) 백서(帛書) 갑본과 을본에 모두 '묘(眇)'로 되어 있다. '以觀其妙'는 '以觀其眇'로 되어 있고, '衆妙之門'은 '衆眇之門'으로(이상 『노자』제 1장--인용자), '微妙'는 '微眇'로(『노자』제 15장), '要妙'는 '眇要'로(『노자』 제 27장) 되어 있다. 이는『노자』의 여러 판본들 가운데 '옛 문헌의 본모습[古誼]'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예이다."23)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단옥재의 "옛말의 <微 - 彳>眇는 곧 오늘날의 微妙이다"라는 주장에 부합하는 것이다.

 

앞에서 "현(玄)" 자를 분석할 때 살펴보았듯이, "<微 - 彳>"와 "眇"는 모두 "소(小)"를 기본 의미로 하는 것이며, "소(小)"는 또 "현(玄)" 자의 의미 가운데 하나이다.『노자』에서 "소(小)"는 미약함, 미세함, 유약함, 은미함 등의 뜻이며 도(道)의 작용방식과 그 특징, 그리고 도(道)를 본받은 군주의 행위방식과 그 특징을 가리킨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미묘현통(微妙玄通)"은 도(道)를 본받은 이상적 성인이나 군주가 "묘소(眇小)"한 방식, 즉 미세하고 미약하며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행위하여 만사만물에 "현(玄)"하게 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현(玄)"하게 통한다는 것은 간략히 말해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방식, 즉 시비선악의 구분을 해소하여 만물이 상생(相生)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만사만물에 두루 통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뒤에 "현(玄)"의 "유원(幽遠)"의 함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확인될 것으로 기대한다.

 

앞의 인용에서 단옥재는 또 "미(微)는 은밀하게 행한다[隱行]는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묘소(眇小)"한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 "은행(隱行)"의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은행(隱行)"이란 단어가 노자에 출현하지는 않지만, 노자가 말한 도(道) 또는 군주의 "묘소(眇小)"한 작용이나 역할을 표현하는 데 매우 적합한 개념이다. 아마도 이런 내적 연관성 때문에 노자의 후학인 문자(文子)는 "은행(隱行)"과 "음덕(陰德)"을 제기한 듯하다. "음덕(陰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현세에서의 보답을 받고, 은행(隱行)이 있는 자는 반
드시 빛나는 명성을 얻는다."24
) 문자가 말한 "은행(隱行)"과 "음덕(陰德)"을 노자의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미약함이나 유약함 또는 드러나지 않음[眇小]을 특징으로 하는 무위(無爲)와 현덕(玄德)일 것이다.

 

종합하면, "현(玄)" 자가 내포하고 있는 "묘소(眇小)"의 의미는 노자 철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또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玄)"의 "묘소(眇小)"라는 측면에서 말하면, 노자의 현덕(玄德)은 도(道)의 작고[小] 드러나지 않으며[隱]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방식과 그 특징, 즉 무위(無爲)를 말한다.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군주가 도(道)를 본받아 행하는 무위(無爲)와 그가 갖추고 있는 현덕(玄德)을 말한다. 노자는 그것을 군주의 현덕(玄德), 무위(無爲)라고 칭하였고, 문자는 그것을 음덕(陰德), 은행(隱行)이라 칭하였다. 비록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사실상 모두 군주의 작고[小] 드러나지 않으며[隱] 간접적으로 행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23) 鄭開:「『老子』第一章劄記: 兩個語文學疏證及哲學闡釋」,『清華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8년 第1期(第23卷), 85-86쪽.

24) "夫有陰德者必有陽報, 有隱行者必有昭名." (『文子·上德』) 王利器 撰:『文子疏義』, 北京: 中華書局, 2000년, 302쪽.

 

 

3. "유원"

 

(1) "현" 자의 풀이

 

위의 인용문 중에서 허신은 "현(玄)" 자를 직접적으로 "유원(幽遠)"이라고 풀이했는데, 아마도 이것은 당시에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의미였을 것이다.『설문』은 "유(幽)"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유(幽)는 은(隱)이라는 뜻이다. 산(山) 자와 유(幺幺) 자로 만들어진 회의자이며, 또한 유(幺幺)의 음을 따르는 형성자이다." 이에 대해 단옥재는 "유(幺幺)를 따르는 것은 미(微)하여 은(隱)하다"라고 주하였다.25)

주준성은 여러 문헌들에서 "유(幽)" 자에 관한 풀이들을 다음과 같이 모아 놓았다.

"『이아(爾雅)·석고(釋詁)』: '유(幽)는 미(微)라는 뜻이다.'

『석언(釋言)』: '유(幽)는 심(深)이라는 뜻이다.' '예(瘞)는 유(幽)라는 뜻이다.'

『소이아(小爾雅)·광고(廣詁)』: '유(幽)는 명(冥)이라는 뜻이다.'

『대대(大戴)·고지(誥志)』: '유명(幽明)은 자웅(雌雄)을 뜻한다.'"26)

 

여기서 "심(深)"은 물의 표면에서 밑바닥까지의 거리가 멀다, 위에서 아래 또는 안에서 밖까지의 거리가 멀다는 심원(深遠)의 의미와 심오(深奧)함 등의 의미를 갖는다.

"예(瘞)"는 땅에 묻고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와 매장하다, 숨기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명(冥)"은 밤[夜], 어두움, 우매함, 저승, 유심(幽深)함, 감추다, 오묘한 이치 등의 의미를 갖는다.

"유명(幽明)"은 각각 어두움의 이미지와 밝음의 이미지를 대표하는데, 각기 형태가 없는 것과 형태가 있는 것, 밤과 낮, 사(死)와 생(生), 귀신과 인간 등등을 상징한다. "자웅(雌雄)"은 각각 암컷과 수컷을 가리킨다.

 

이상의 자료에서 "유(幽)" 자 역시 "유(幺幺)"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글자로서 미(微)와 소(小)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원(深遠), 심오(深奧), 현명(玄冥), 은폐(隱蔽), 은미(隱微) 등의 의미를 갖고, 또한 여성성[雌] 등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신이 "현(玄)" 자를 "유원(幽遠)"으로 풀이할 때, 그 "유원(幽遠)"에는 위에 제시된 함의들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허신이 풀이한 "현(玄)" 자의 "유원(幽遠)"의 의미를 기초로, 이것이『노자』에서 어떤 함의들을 갖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5) "幽, 隱也. 從山(幺幺), (幺幺)亦聲." (『說文解字』) "從(幺幺)者, 微則隱也." (段玉裁注) (漢)
許慎 撰, (清)段玉裁 注:『說文解字注』,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9년,158-9쪽.

26) "『爾雅·釋詁』: '幽, 微也.'『釋言』: '幽, 深也.' '瘞, 幽也.'『小爾雅·廣詁』: '幽,冥也.' 『大戴·誥志』: '幽明, 雌雄也.'" (清)朱駿聲 編著:『說文通訓定聲』, 北京: 中華書局, 1998년, 237쪽.

 

 

(2)『노자』 "현"의 "유원" 함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玄)" 자는 "묘소(眇小)"나 "미묘(微妙)"의 의미뿐만 아니라, "유원(幽遠)"이나 유암(幽暗)의 의미도 갖는다. 이 두 의미가 연결되는 데에는 잘 드러나지 않고 가리워져 있음을 뜻하는 "은(隱)"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노자』1장에서 "묘(妙, 즉 眇)"와 "요(徼, 즉 曒)"가 서로 대응되고 있는 듯하다.

1장의 "항상 무욕(無欲)을 가지고 그 묘(妙)를 보고, 항상 유욕(有欲)을 가지고 그 요(徼)를 본다"27)에 대해 주겸지(朱謙之)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하였다.

"'요(徼)'는 부혁(傅奕)본, 범응원(范應元)본 그리고 경룡비(景龍碑)본이 이와 같이 되어있으나, 마땅히 돈황(敦煌)본에 근거하여 '교(曒)'로 고쳐야 한다. 14장의 '其上不皦'가 경룡비본에도 '교(曒)'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맞다. …… '常無觀其妙'의 '묘(妙)'는 미묘(微眇)의 뜻이고, …… '常有觀其曒'의 '교(曒)'는 광명
(光明)의 뜻으로서 '묘(妙)'와 대응을 이루는데, 이는 리(理)가 드러난 것[理顯]을 일러 교(曒)라고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28)

주겸지는 1장의 "묘(妙, 즉 眇)"와 "요(徼, 즉 曒)"가 서로 대응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였으나, 작다[小]는 의미를 강조하는 "미묘(微眇)"와 밝게 빛나는 의미를 강조하는 "광명(光明)"이 왜 서로 대응 관계에 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27)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1장)
28) 朱謙之:『老子校釋』, 北京: 中華書局, 2006년, 6-7쪽.

 

위의 인용 자료들을 근거로 보면, "현(玄)"의 "유원(幽遠)"의 의미 속에는 "미(微, 혹 小)"의 의미뿐만 아니라 "은(隱)"과 "명(冥)" 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잘 드러나지 않음이나 어두움 등의 함의를 나타낸다. 이 때문에 1장에서 노자는 "묘(妙, 즉 眇)"를 이용하여 밝음의 이미지를 갖는 "요(徼, 즉曒)"와 대응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묘(眇)"는 "미(微)"하여 감추어지거나 어두운 "은(隱)" 혹은 "명(冥)"한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고, "교(曒)"는 "명(明)"하여 드러난 "현(顯)"의 특징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1장의 "묘(妙, 즉 眇)"와 "요(徼, 즉 曒)"는 서로 대응된다.

 

그러나 노자 철학에서 "명(冥, 혹 幽)"과 "명(明)"의 이미지는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고 통일된 것이다.『노자』1장 "무(無)와 유(有) 이 두 가지 작용은 함께 나오지만 이름을 달리한다. 함께 있다는 것을 현(玄)하다고 하는데, 현(玄)하고 또 현(玄)한 것이 온갖 미묘한 작용이 들락이는 문이다"29)에 대한 소철(蘇轍)과 범응원의 해석에 이 점이 잘 나타나 있다.

소철은 "무(無)는 운행하여 유(有)가 되고 유(有)는 되돌아와 무(無)가 되니, 일찍이 하나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그 근본은 하나이니, 근본의 하나 임을 알면 곧 현(玄)하다. 무릇 멀리 있어 끝이 없는 것은 그 색깔이 반드시 검[玄]기 때문에, 노자는 항상 현(玄)을 이용해서 지극함을 표현하였다"30)라고 하였다. 범응원은 "현(玄)은 심원(深遠)하여 분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無)가 아니면 유(有)를 드러낼 수 없고, 유(有)가 아니면 무(無)를 드러낼 수 없으니, 무(無)와 유(有)는 함께 나오지만 이름을 달리하는 것이다"31)라고 하였다.

 

소철과 범응원의 해석을 근거로 보면, "현(玄)"은 무(無)와 유(有)의 상생(相生)과 통일, 감추어짐[隱]과 드러남[明], 어둠[冥]과 밝음[明]의 상생과 통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현(玄)"은 무(無)와 유(有)로 대표되는 상반된 작용이나 이미지들이 공존하여 분별할 수 없고, 그래서 또 심원하고 까마득하며 거뭇하다는 의미를 한 글자로 나타낸 것이다. 이 때문에 소철은 "멀리 있어 끝이 없는 것은 그 색깔이 반드시 검다(凡遠而無所至極者, 其色必玄)"고 하였고, 범응원은 "심원하여 분별할 수 없다(深遠而不可分別)"고 말하는 것이다.

 

29)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眾妙之門." (1장)
30) "無運而爲有, 有復而爲無, 未嘗不一哉. 其名雖異, 其本則一, 知本之一也, 則玄矣. 凡遠而無所至極者, 其色必玄, 故老子常以玄寄極也." (北宋)蘇轍:『道德真經注』, 陸國强 責任編輯: 『正統道藏』(影印本)第12冊, 上海書店 · 文物出版社 ·天津古籍出版社, 1996년, 292쪽.
31) "玄者, 深遠而不可分別之義. 蓋非無不能顯有, 非有不能顯無, 無與有同出而異名也." (南宋)范應元:『老子道德經古本集注』, 龔鵬程, 陳廖安 主編: 『中華續道藏』初輯第7冊, 臺北: 新文豊出版股份有限公司, 1999년, 576쪽.

 

 

앞에서 허신이 "현(玄)" 자의 뜻을 "유원(幽遠)"으로 풀이하였으며, 그 속에는 밝음[明]과 상대되는 "명(冥)", 드러남[顯]과 상대되는 "은(隱)" 등의 함의와 심원함, 심오함 등의 함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노자 철학에서 "현(玄)"이 심원함, 심오함, 현묘함, 유원함 등의 함의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명(明)"이나 "현(顯)"과 대립되기 때문이 아니라, 밝음과 어둠, 드러남과 감추어짐 등등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玄)"에 대한 허신의 풀이, 즉 "유원(幽遠)"이란
말을 빌려 노자 철학 속에서 "현(玄)"이 갖는 이와 같은 함의를 표현하고자 한다.

 

『노자』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21장은 "도(道)라는 것은 황(恍)하고도 홀(惚)하다. 홀(惚)하구나 황(恍)하구나! 그 안에 상(象)이 있다. 황(恍)하구나 홀(惚)하구나! 그 안에 물(物)이 있다. 요(窈)하구나 명(冥)하구나! 그 안에 정(精)이 있다"32)라고 하였다.

도(道)는 황(恍)과 홀(惚)의 통일로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다. 때문에 노자는 도(道)에 대해 "요(窈)하고도 명(冥)하구나"라고 감탄할 뿐이다. "요명(窈冥)"은 심원(深遠)하여 까마득하고 어두컴컴하여 잘 드러나지 않는[昏暗] 것을 말한다. 이것은 홀(惚)과 황(恍)의 통일이라는 "현(玄)"의 "유원(幽遠)"의 함의와 상통한다.

 

『장자(莊子)·재유(在宥)』에 "요요명명(窈窈冥冥)", "요명(窈冥)" 등의 표현이 나온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에게 지도(至道)에 대해 말해주마. 지도(至道)의 정수[精]는 심원하며 어두컴컴하고[窈窈冥冥], 지도(至道)의 극한[極]은 흐리멍덩하고 고요하다[昏昏黙黙]. …… 내가 너를 도와 대명(大明)의 위까지 올라가 저 지양(至陽)의 근원에 도달하게 하고, 너를 도와 요명(窈冥)의 문에 들어가 저 지음(至陰)의 근원에 도달하게 하겠다."33)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도(至道)는 "요요명명(窈窈冥冥)"하고 "혼혼묵묵(昏昏黙黙)"한 것, 즉 "유원(幽遠)"한 것이다. 그러나 굳이 나누어서 말하자면, 그것은 다시 밝음의 "대명(大明)"과 어둠의 "요명(窈冥)"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재유」에서도 도(道)는 여전히 밝음[明, 陽]과 어둠[冥, 幽, 陰]의 통일이다. 따라서 그 것은 언어로 규정할 수 없고, 다만 "요요명명(窈窈冥冥)"하고 "혼혼묵묵(昏昏黙黙)"하다고 감탄하는 것이다.

 

32)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21장)
33) "來! 吾語女至道. 至道之精, 窈窈冥冥. 至道之極, 昏昏默默. …… 我爲女遂於大明之上矣, 至彼至陽之原也. 爲女入於窈冥之門矣, 至彼至陰之原也." (『莊子·在宥』) (清)郭慶藩 撰: 『莊子集釋』, 北京: 中華書局, 1997년, 381쪽.

 

 

도(道) 자체뿐만 아니라 물(物)의 세계에서 발현되는 도(道)의 작용과 그것을 본받아 실천하는 인간의 행위방식 역시 밝음과 드러남[明, 顯]과 어둠과 감추어짐[冥, 幽]이 통일된 특징을 보여준다. 『노자』36장은 "장차 수축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확장시켜야 하고, 장차 약화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강화시켜야 하며, 장차 폐지하려 한다면 반드시 일으켜야 하고, 장차 취하려 한다면 반드시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미명(微明)이라 한다"34)고 하였다. 이것에 대해 범응원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천하의 이치는 확장이 있으면 반드시 수축이 있고, 강화가 있으면 반드시 약화가 있으며 …… 따라서 확장시키고 강화시키고 일으키고 줄 때에 이미 접고 약화시키고 폐지하고 취하는 기미[幾]가 그 속에 잠복해 있는 것이다. 기미는 어슴푸레하고 미약하지만[幽微] 사건[事]은 이미 밝게 드러난[顯明]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미명(微明)이라 한다'고 말하였다."35)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微)"는 "묘(眇)"과 "유(幽, 즉 隱)"의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범응원은 "기(幾)"의 "유미(幽微)"와 "사(事)"의 "현명(顯明)"이라는 두 측면에서 "미명(微明)"을 풀이하였다. 즉, "미명(微明)"의 "미(微)"는 어슴푸레하고 미약하며 감추어진 측면[幽微]를 가리키고, "미명(微明)"의 "명(明)"은 밝게 드러난 측면[顯明]을 가리키며, 이것들을 함께 쓴 "미명(微明)"은 양자의 통일을 말한 것이다. 이는 도(道)가 물(物)의 세계에서 어슴푸레하여 드러나지 않음[微, 幽, 冥]과 밝게 드러남[明, 顯] 두 가지가 통일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는 도(道)의 작용이 유(有)와 무(無), 감추어짐이나 어두움[幽]과 드러남과 밝음[明]의 상생과 통일이라는 특징, 즉 "현(玄)"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4) "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強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36장)
35) "天下之理, 有張必有歙, 有強必有弱, …… 然則張之強之興之與之之時, 已有歙之弱之廢之取之之幾, 伏在其中矣. 幾雖幽微, 而事已顯明也. 故曰'是謂微明'."
(南宋)范應元:『老子道德經古本集注』, 龔鵬程, 陳廖安 主編:『中華續道藏』初輯第7冊, 臺北: 新文豊出版股份有限公司, 1999년, 610쪽.

 

 

41장 역시 도(道)의 이러한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선비[上士]가 도(道)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하는데,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밝은[明] 길은 마치 어두운[昧]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進] 길은 마치 뒤로 물러나는[退] 것 같으며, 평평한[夷] 길은 마치 울퉁불퉁한[纇] 것 같다."36)

이 부분은 인간의 눈앞에 나타난 도(道)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의 특징, 즉 밝음[明]과 어두움[昧], 나아감[進]과 물러남[退], 평평함[夷]과 울퉁불퉁함[纇]의 상생과 통일을 말하고 있다.

 

만일 사람들이 도(道)의 "미명(微明)"(36장), "명매(明昧)", "진퇴(進退)", "이뢰(夷纇)"(이상 41장)의 통일성을 체득할 수 있다면, 내적 지혜인 "명(明)"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내적 지혜로서의 "명(明)"은 앞에서 논의한 밝음이나 드러남으로서의 "명(明)"과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러므로 16장은 "이러한 통일성[常]을 아는 것을 명(明)하다고 한다"37)고 하였다. 또한 만일 사람들이 이러한 도(道)의 통일성을 체현할 수 있다면, 공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22장은 "따라서 성인은 이러한 통일성[一]을 끌어안고 천하의 모범이 된다. 자신을 내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고[明],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빛나며[彰], 자기의 공적을 뽐내지 않기 때문에 공이 있고[有功], 자기를 높이지 않기 때문에 장구할[長] 수 있다"38)고 하였다.

여기서 "자신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등 네 가지(즉, 不自見, 不自是, 不自伐,不自矜)는 "명도약매(明道若昧)"의 "매(昧)"에 상당하고, "명(明)"39), "창(彰)","유공(有功)", "장(長)" 등 네 가지는 "명도약매(明道若昧)"의 "명(明)"에 상당한다. 그러나 이 "명도약매(明道若昧)"의 도리를 아는 것이 내적인 지혜로서의 "명(明)"이다.

 

36) "上士聞道, 勤而行之. ……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41장)
37) "知常曰明." (16장)
38)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22장)39) 천구잉(陳鼓應)의 주장처럼 이 "명(明)"은 일반적인 용법으로 쓰인 것이다. 천구잉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6장의 '知常曰明'과 52장의 '見小曰明'의 ' 명(明)' 자는『노자』의 특수한 용어이다. 여기의 '명(明)' 자는 단지 일반적 용법으로 보아야 한다." 陳鼓應 譯注:『老子注譯及評介』, 北京: 中華書局, 1996년, 155쪽.

 

 

이상적인 성인이나 군주가 도(道)의 통일성을 체현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정신적 경지가 이미 "현(玄)"의 통일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노자』10장은 인간 차원의 현덕(玄德)을 논의하면서 "현람(玄覽)을 깨끗이 닦는다[滌除玄覽]"고 하였다. 이에 대해 까오헝(高亨)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람(覽)과 감(鑒)은 옛날에 통용되었다. …… 현감(玄鑒)은 내심(內心)의 광명(光明)이다. 그것은 형이상적 거울로서 사물들을 비추어 알 수 있으므로 현감(玄鑒)이라 하였다."40)

『회남자(淮南子)·숙진훈(俶眞訓)』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거울이 밝고 깨끗하면(明) 먼지와 때가 그것을 더럽힐 수 없고, 정신이 맑고 고요하면[淸] 감각적 욕망이 그것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 그 정신의 원광(元光, 즉 玄光--인용자)을 덮어 가려버리고 귀와 눈과 같은 감각 기관에서 사물을 인식하려 하는 것은 내적인 광명을 버리고 암흑으로 이끌려 가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도(道)를 잃었다고 한다."

하녕(何寧)은 "원광(元光)"의 "원(元)"에 대해, "원(元)은 다른 여러 판본에 현(玄)으로 되어 있다. 장규길(莊逵吉)본은 휘를 피하기 위해 고친 것이다"라고 하였고, 고유(高誘)는 "원광(元光)은 내적인 광명[內明]이다"라고 하였다.41) 사실상 노자는 "명(明)"의 이미지를 결코 배척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내적인 광명[內明]"으로 다시 규정하고 "현람(玄覽, 즉 玄鑒)"이라 불렀을 뿐이다.

우리는 「숙진훈」의 "현광(玄光)"이란 표현과 이것에 대한 고유의 풀이, 즉 "내명(內明)"을 빌려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의 정신적 경지를 "현명(玄明)"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현명(玄明)은 노자가 말한 "지상왈명(知常曰明)"(16장), "견소왈명(見小曰明)"(52장)의 "명(明)"과 "현람(玄覽, 즉 玄鑒)"을 합쳐서 부른 개념으로서 내적 지혜인 "명(明)"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개념으로 보인다.

 

40) 高亨: 『老子正詁』(影印本), 上海: 開明書店, 民國37[1948]년, 24쪽.
41) "夫鑒明者, 塵垢弗能薶. 神清者, 嗜欲弗能亂. …… 弊其元光, 而求知之於耳目, 是釋其炤炤而道其冥冥也, 是之謂失道."(『淮南子·俶眞訓』) "元, 諸本作玄, 莊本避諱改." (何寧案) "元光, 內明也." (高誘注) 何寧 撰: 『淮南子集釋』, 北京: 中華書局, 1998년, 146-7쪽.

 

 

여기서 우리는『노자』에 나오는 "광(光)"과 "명(明)"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6장에 "그 광(光)을 조화시킨다(和其光)"는 말이 나온다. 주겸지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노자』라는 책에서 '광(光)'과 '명(明)'은 다른 뜻이다.(大田晴軒의 견해) …… '명(明)'은 모두 내재적인 지혜를 말한 것이다. 58장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光而不耀)', 4장과 56장의 '그 광(光)을 조화시킨다(和其光)', 52장의 '그 광(光)을 사용하지만 그 명(明)으로 다시 돌아간다(用其光, 復歸其明)'에서 말하는 '광(光)'은 모두 외적인 지혜를 말한 것이다."42)

 

노자 철학에서 "광(光)"의 이미지가 완전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결국 최고의 경지가 아니고 반드시 "조화[和]"의 과정을 거쳐 내적인 지혜인 "명(明)"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외곬으로 "광(光)"의 측면만을 추구한다면 좋지 않은 후과를 낳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가 흐리멍덩하면[悶悶] 그 백성들은 순박해지고[淳淳], 정치가 세세하게 따지면[察察] 그 백성들은 교활해진다[缺缺]. …… 따라서 성인은 반듯하지만 칼로 자르듯 하지 않고, 예리하지만 상처를 내지 않으며, 솔직하지만 멋대로 하지않고,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43)

 

여기서 "찰찰(察察)"은 "광(光)"에 대한 일방적인 추구를 대표하고, "민민(悶悶)"은 밝음과 어둠이 조화되어 흐리멍덩하고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를 대표한다. 이상적 군주는 내적 지혜로서의 "명(明)"에 도달하여 "민민(悶悶)"의 정치를 행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반듯하지만 칼로 자르듯 하지 않고, ……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등이다. 이 내용들은 사실상 "미명(微明)", "명매(明昧)", "진퇴(進退)", "이뢰(夷纇)" 등의 통일성을 아는 "명(明)"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실상 "현(玄)", "박(樸)", "화(和)", "유무상생(有無相生)", "곡즉전(曲則全)"(22장) 등은 "명매(明昧)", "진퇴(進退)" 등의 조화와 통일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성인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도(道)를 체득하고 "현(玄)"한 "명(明)"을 갖추고 있으므로 흐리멍덩한[悶悶] 정치를 통해 백성들을 순박하게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도(道)를 체득하지 못한 채 외곬으로 "광(光)"의 측면만을 추구하는 군주는 세세하게 따지고 백성을 통제하는 "찰찰(察察)"의 정치를 행하지만 오히려 백성들을 교할하게 만들 뿐이다. 이 "찰찰(察察)"은 "민민(悶悶)", "혼혼(昏昏)"(이상 20장)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희희(熙熙)", "소소(昭昭)"(이상 20장)와 같은 행위방식이다. 이러한 행위방식은 모두 "광(光)"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현(玄)"의 "유원(幽遠)"의 함의와 대립되는 것이다.

 

42) 朱謙之:『老子校釋』, 北京: 中華書局, 2006년, 208-9쪽.
43)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耀." (58장)

 

도(道)를 체득하고 현람(玄覽)을 깨끗이 닦아서 현명(玄明)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노자는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으로 보는데44), 이러한 사람만이 현동(玄同)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그 감각기관을 막고 그 욕망의 문을 닫으며,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분쟁을 해소하며, 그 광(光)을 조화롭게 하고 만물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현동(玄同)이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친할 것도 소원할 것도 없고, 이롭게 할 것도 해롭게 할 것도 없으며, 귀할 것도 없고 천할 것도 없으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하게 된다."(56장)45)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도(道)를 체득하고 밝음과 어둠이 조화된 "현명(玄明)"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친소(親疎), 이해(利害), 귀천(貴賤)을 구분하지 않고 항상 흐리멍덩하고[悶悶] 어수룩한[昏昏] 태도, 즉 "현(玄)"의 특성을 견지한다. 또한 그는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오히려 구분을 해소하며 만물을 동등하게 대하기 때문에, 군주와 백성,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물이 서로 다투지 않고 평등하게 공존하며 상생하는 "현(玄)"한 "동(同)"의 세계, 즉 현동(玄同)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고, 또한 그 시야를 멀리까지 두고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노자는 "현덕(玄德)은 깊고[深]도 까마득하다[遠].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은 만물과 함께 박(樸)으로 돌아가기에 비로소 대순(大順)에 이른다"46)고 하였다.

현덕(玄德)이 "심원(深遠)"하다는 것은 "현(玄)"의 "유원(幽遠)"의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대순(大順)"은 친소, 이해, 귀천 등의 구분이 해소되어 만물이 공존하며 상생하는 현동(玄同)의 이상과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玄)"의 "유원(幽遠)"의 함의가 노자 철학의 이상인 현덕(玄德)과 현동(玄同)에도 상감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4) 노자는 종종 "덕(德)" 자의 앞뒤에 다른 글자를 붙여 그것을 수식한다. 예를 들면, "공덕(孔德)"(21장), "상덕(上德)"(38, 41장), "하덕(下德)"(38장), "광덕(廣德)", "건덕(建德)"(이상 41장), "현덕(玄德)"(10, 51, 65장), "함덕지후(含德之厚)"(55장), "부쟁지덕(不爭之德)"(68장) 등이다. 필자는 이 가운데 현덕(玄德)
개념이 노자의 덕(德)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45)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56장)
46) "玄德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65장)

 

 

4. "박"

 

(1) 고대 신화에서 "박"의 상징 의미

 

『노자』에서 "현(玄)"은 또한 "박(樸)" 개념과 연결된다. 엄밀하게 말해서, "현(玄)"과 "박(樸)"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노자 철학의 내용, 고대의 신화와 그 상징에 근거해서 본다면, 그것들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6장에서는 곡신(谷神), 현빈(玄牝), 천지근(天地根) 등의 비유를 통해 도(道)를 묘사하고 있다.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데, 이것을 현빈(玄牝)이라 한다. 현빈(玄牝)의 문을 천지의 근원이라 하는데, 면면히 이어져 겨우 존재하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끝이 없다."47)

여기서 골짜기[谷]는 가운데가 텅비어 있는 모습을 갖고 있고, 곡신(谷神)은 "현(玄)"의 "유원(幽遠)"한 이미지, 즉 까마득하고 그윽한 이미지를 대표한다. 빈(牝)은 여성적 특성[雌性]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모(母)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에 있고, 현빈의 문[玄牝之門]과 천지근(天地根)은 모두 천지만물 생성의 근원을 상징한다. 또한 곡신(谷神)으로서의 현빈(玄牝)의 작용이 "면면히 이어져 겨우 존재하는 듯하다[綿綿若存]"는 "현(玄)"의 "묘소(眇小)"와 "유원(幽遠)"의 의미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도(道)가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형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들은 모두 "현(玄)"의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들은 또 "박(樸)"이 대표하는 신화적 의미, 상징체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박(樸)"은 곧 "조롱박[葫蘆]"이다. 시아오빙(蕭兵)과 예슈시엔(葉舒憲)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박(樸)'과 '포(匏)'는 음이 통하고 박(樸)은 박[匏]이라는 뜻이다. 포(匏)는 박[匏瓜], 포호(匏瓠, 즉 조롱박)이다. '박(樸)'은 이후에 또 '표주박[瓢]'의 뜻으로도 쓰였는데, 조롱박을 반으로 갈라서 안이 움푹 파
인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뒤에 나온 표현법이고, 본래의 '박(樸)'(즉 匏)은 완전한 조롱박[葫蘆], 즉 이른바 '대박(大樸)'이다."48)

 

뤼웨이(呂微)는 호로(葫蘆)와 곤륜(昆侖)을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곤륜(昆侖) 또는 곤륜(崑崙)은 동한(東漢)의 경학(經學) 대가 정현(鄭玄)의『주례(周禮)』에 대한 주석에 따르면, 혼륜(混淪)이나 혼돈(渾沌)으로 쓸 수 있으며, 빙빙 회전하는 물의 흐름을 형용한 것이고, 그 본의는 둥글다[圓]이다."

"따라서 중국어에서 모든 둥근 것들은 대부분 곤륜(昆侖)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조롱박[葫蘆]은 둥근 모양이기 때문에 조롱박 역시 곤륜(昆侖)이라 칭할 수 있으며, 호로(葫蘆) 역시 곤륜(昆侖)의 음이 전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홍수 신화에서 복희(伏羲)와 여왜(女媧)(이 두 이름의 본의는 모두 조롱박[葫蘆] 혹은 박[瓜]이다) 남매는 조롱박 안으로 피난을 가거나 혹은 곤륜산(昆侖山) 위로 피난을 간다. 따라서 곤륜산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조롱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호로(葫蘆)는 박과에 속한다.

박[瓜]을 호로(葫蘆)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박[瓜]을 궁륭(穹隆)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모두 그 둥근 특성 때문이다. 신화에서 곤륜산이 서북쪽에 있기 때문에, 고대에 서북쪽은 또 과주(瓜州)라고 불리기도 했다."49)

 

원이뚸(聞一多) 역시 "복희(伏羲)와 여왜(女媧)는 모두 호로(葫蘆)의 화신"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복(伏)", "희(羲)", "왜(媧)" 자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포희(包戲)와 포왜(㚿媧), 포호(匏瓠)와 포과(匏瓜)는 모두 하나의 말이 전화된 것이다(包戲는 伏希로 전화되었고, 女媧는 女希로 전화되었으니, 戲와 媧 두 음도 서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복희(伏羲)와 여왜(女媧)는 이름은 비록 두 가지이지만, 의미는 사실상 하나일 뿐이다. 두 사람은 본래 모두 호로(葫蘆)의 화신이다."50)

 

47)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6장)
48) 蕭兵, 葉舒憲:『老子的文化解讀——性與神話學之研究』,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1994년, 371쪽.

49) 呂微, 「"昆侖"語義釋源」, 游琪, 劉錫誠 主編:『葫蘆與象徵』, 北京: 商務印書館, 2001년, 191쪽, 192쪽, 193쪽.
50) 聞一多 撰, 田兆元 導讀:『伏羲考』,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6년, 58-9쪽.

 

 

뤼웨이는 곤륜(昆侖)에서 파생된 의미들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내용은『노자』의 "박(樸)"이 갖는 상징 의미와 매우 유사하다. 그의 연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곤륜(昆侖)의 본의는 원(圓), 단(團), 환(環)이다."

이로부터 우선 "어떤 사물이 완정하거나 완전한 것을 형용하는"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가령 호로계(葫蘆鷄), 홀륜계(囫圇鷄), 혼돈(餛飩)이 있다. "또 분리할 수 없다는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예를 들면『장자(莊子)·응제왕(應帝王)』에 나오는 얼굴도 없고 구멍도 없는 "혼돈(渾敦)"이 그것이다. 위의 두 가지 파생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선진(先秦) 철학가들은 혼돈(混沌)이란 말로 우주가 아직 열리지 않았을 때의 원초의 자연 상태를 묘사하였다." 예를 들어, 반고(盤固)가 천지를 열었다고 하는데, "반고의 본의 역시 호로(葫蘆)이며, 반고가 천지를 열었다는 것은 바로 조롱박[葫蘆]이 깨져 갈라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원초, 분리할 수 없음이란 의미에서 다시 개화되지 않았다[不開通], 깨어 있지 않다[不開明], 사리에 밝지 못하다는 의미가 파생되었고", "혼돈(渾沌) 역시 홀륜(囫圇), 호도(糊塗), 골돌(鶻突), 호로(葫蘆) 등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끝으로 "사리에 밝지 못하다, 깨어있지 않다는 것에서 '흑(黑)'의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가령 "당(唐)나라 때 남해(南海) 지역의 흑인종을 곤륜(昆侖)이라 불렀고", "곤륜산 역시 흑산(黑山)이라 불렸다."51)

 

곤륜(昆侖)의 "흑(黑)"의 이미지에 대해, 시아오빙과 예슈시엔도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혼돈(混沌)', '혼륜(渾淪)'은 '혼명(混冥)'(『淮南子·俶眞訓』)이나 '혼명(混溟)'(『文子·下德篇』)으로도 쓸 수 있으며, 중복해서 '혼혼명명(混混冥冥)'이라고도 말한다.『사기(史記)』태사공(太史公)의 「자서(自序)」에서 '이에 대도(大道)에 합하여 혼혼명명하다(乃合大道, 混混冥冥)'고 하였고, 정의(正義)에는 '혼혼(混混)은 원기(元氣, 즉 神)의 모습이다'라고 주 하였다. '혼혼명명(混混冥冥)'은 바로 '혼혼돈돈(渾渾沌沌)'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대락편(大樂篇)』은 '음양(陰陽)의 변화는 오르고 내리며 합하여서 형체를 이룬다. 혼혼돈돈(渾渾沌沌)하여 나뉘면 다시 합쳐지고 합쳐지면 다시 나뉘는 것을 일러 천상(天常)이라 한다(陰陽變化, 一上一下, 合而成章. 渾渾沌沌, 離則復合, 合則復離, 是謂天常)'고 하였다. 여기서 '혼명(混冥)'은 이미
비교적 분명하게 '혼암(昏暗)', '현명(玄冥)'의 의미를 갖고 있다."52)

 

51) 呂微, 「"昆侖"語義釋源」, 游琪, 劉錫誠 主編:『葫蘆與象徵』, 北京: 商務印書館, 2001년, 194-6쪽.
52) 蕭兵, 葉舒憲: 『老子的文化解讀——性與神話學之研究』, 武漢: 湖北人民出版社,1994년, 358-9쪽.

 

만일 곤륜(昆侖)의 파생 의미에 대한 뤼웨이의 연구가 주로 "박(樸, 즉 조롱박)"의 속이 텅 비고 어두우며 그 밖이 원형인 것에 집중되었다면, 고대의 홍수 신화는 조롱박[葫蘆]에 씨앗이 많고 물에 뜨는 것의 상징적 의미에 집중되어 있다. 원이뚸는 49개의 홍수 신화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조롱박[葫蘆]과 두 군데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홍수를 피하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창조라는 소재이다."

"왜 시조(始祖, 즉 복희와 여왜--인용자)를 호로(葫蘆)의 화신으로 삼았는가에 대해서, 나는 박이 씨앗이 많아서 자손 번창의 가장 적절한 상징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비유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대아(大雅)·면편(緜篇)」은 '면면히 이어지는 박의 덩굴(綿綿瓜瓞)'을 '백성이 처음 생겨나

……(民之初生……)' 번성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의도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53)

 

뤼웨이 역시 홍수 신화의 각종 상징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인류의 시조 복희(伏羲)와 여왜(女媧) 남매 역시 곤륜(昆侖)에서 탄생하였다. 홍수 신화에서 호로(葫蘆)와 곤륜산은 복희(伏羲)와 여왜(女媧)가 홍수를 피하는 도구이자 피난의 장소인데, '홍수를 피하는 것' 또는 '피난'은 태아가 모체(母體)에 잉태되는 것을 은유하는 말이고, 호로(葫蘆)를 뚫고 나온다거나 곤륜산을 걸어 내려온다는 것은 모체가 출산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 재난을 거친 후에 겨우 생존한 한 쌍의 남녀는 두말 할 것 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난 간난 아이를 상징한다."54) 시아오빙과 예슈시엔의 홍수 신화에 대한 분석 역시 참고할 만하다.

"호로(葫蘆)는 여기서 세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혹은 재정비되는) 때의 '혼돈(混沌)'을 상징하거나, 혹은 인류 초기의 몽매함과 어두움[幽暗]을 대표한다. 호로(葫蘆) 또는 포(匏, 즉 樸)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가운데가 텅 비고 외형이 둥근 것이다.

…… 가운데가 텅 비고 외형이 둥근 호로(葫蘆)는 세계의 부모 혹은 원부모(原父母, 예를 들어 伏羲와 女媧)의 화신일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해서 '지모(地母)의 자궁'이다. 따라서 그것은 '혼연일체의 어떤 것(混成之物, 즉 混沌)'처럼 '천지의 어미가 될 수 있으며(可以爲天地母)', 만물을 창생하는 '도(道)'의 번식 기능을 상징하는데. 이는 '현빈(玄牝), 즉 곡신(谷神)'과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55)

 

53) 聞一多 撰, 田兆元 導讀:『伏羲考』,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6년, 58-9쪽.
54) 呂微, 「"昆侖"語義釋源」, 游琪, 劉錫誠 主編: 『葫蘆與象徵』, 北京: 商務印書館, 2001년, 197쪽.

55) 蕭兵, 葉舒憲: 『老子的文化解讀——性與神話學之研究』,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1994년, 376쪽.

 

 

(2)『노자』의 "현"과 "박"

 

이상의 연구 성과를 근거로 보면, 호로(葫蘆, 즉 樸) 및 그것과 관련된 신화가 내포한 상징들은 노자의 "박(樸)" 및 그것과 관련된 곡신(谷神), 현빈(玄牝), 천지근(天地根), 현덕(玄德)의 상징에 부합한다.

우선, 호로(葫蘆)는 원형이다. 곤륜(昆侖)의 파생 의미에 대한 뤼웨이의 연구를 근거로 보면, 그것이 내포한 "완정함, 완전", "분리할 수 없음", "우주가 아직 열리기 전의 원초적 자연 상태" 그리고 "호로(葫蘆)의 파열" 등의 함의는 우리로 하여금『노자』의 "항상 덕(德)이 충족되어 박(樸)으로 되돌아간다. 박(樸)이 흩어지면 기(器)가 된다(樸散則爲器)"56)(28장)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노자 철학에서 "박(樸)"은 덕(德)이 충만한 일종의 무지무욕의 상태, 어떤 구분[分]이 진행되기 전의 원초적 자연성 등을 대표한다.

 

둘째, 호로(葫蘆)는 또 속이 텅 빈 것인데, 이는『노자』에서 "곡(谷)"으로 형상화된다. 예를 들면,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데, 이것을 현빈(玄牝)이라 한다", "상덕(上德)은 마치 골[谷]과 같다", "천하의 골[谷]이 되면 항상 덕(德)이 충족되어 박(樸)으로 되돌아간다"57) 등이다.

예문에서 보이듯이,『노자』에서 "곡(谷)"의 형상은 다시 현빈(玄牝), 상덕(上德, 즉 玄德), "박(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셋째, 호로(葫蘆)의 안쪽은 텅 비고 어두울 뿐만 아니라 또한 씨앗이 많은데, 이는 혼돈(混沌)과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기에 적절하다. 노자 역시 종종 "혼(混)"이나 "돈(沌)"을 언급하는데, 이것들은 "박(樸)", 모(母), 현빈(玄牝), "현(玄)"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즉 호로(葫蘆)의 혼돈(混沌) 상징은『노자』에서 "현(玄)"이 내포하고 있는 "박(樸)"의 상징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도탑구나[敦, 백서을본에는 '沌'으로 되어있다]! 마치 박(樸)같다. …… 뒤죽박죽하구나[混]! 마치 흐린 물[濁] 같다", "몽매하고 어두운 듯하구나[沌沌兮]! 세상 사람들은 밝고 분명한데, 나만 홀로 어둑어둑하다[昏昏]. 세상 사람들은 세세하게 살피는데, 나만 홀로 흐리멍덩하다.

…… 나만 홀로 세상 사람들과 달라서 식모(食母)를 귀하게 여긴다", "어떤 것이 혼돈스럽게 이루어져[混成]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는데,

…… 천하의 어미[天下母]가 될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지 않은가? 텅 비었지만[虛] 그 작용은 고갈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배출한다."58)

 

56)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28장)
57) "谷神不死, 是謂玄牝." (6장) "上德若谷." (41장)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28장)

58) "敦兮其若樸, …… 混兮其若濁." (15장)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20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可以爲天下母." (25장)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5장)

 

 

이상 예문에 나오는 "혼(混)", "돈(沌)", "탁(濁)", "돈돈(沌沌)", "혼혼(昏昏)", "혼성(混成)" 등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현(玄)"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박(樸)", 모(母), 천지근(天地根) 등 현빈(玄牝)의 비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현빈(玄牝)의 "면면히 이어져 겨우 존재하는 듯 하지만 그 작용은 끝이 없고(綿綿若存, 用之不勤)", "텅 비었지만[虛] 그 작용은 고갈되지 않으며, 움직일수록 더욱 배출하는(虛而不屈,動而愈出)" 작용은 "면면히 이어지는 박의 덩굴(綿綿瓜瓞)"을 백성의 삶[民之初生]과 연결시켰던 『시경(詩經)·면(緜)』의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바로 고대의 홍수 신화에서 호로(葫蘆, 즉 樸)가 담고있는 혼돈(混沌)과 만물 생육(生育)의 상징이다. 시아오빙과 예슈시엔의 주장처럼 호로(葫蘆)의 혼돈(混沌) 상징은 "현빈(玄牝), 즉 곡신(谷神)'과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이외에『노자』38장에서 말한 상덕(上德, 즉 玄德)을 갖춘 사람이 "돈후하게 행하고(處其厚)", "실하게 행동한다(處其實)"의 "후(厚)"와 "실(實)", 55장에서 말한 "덕(德)을 두텁게[厚] 품은 사람은 갓난아이[赤子]에 비견된다"59)의 "후(厚)"와 "적자(赤子)" 등도 모두 현덕(玄德)과 "박(樸)"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 곤륜(昆侖), 호로(葫蘆) 등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들이다. 즉 호로(葫蘆)의 파생 의미 중에서 원초적 자연 상태, 완정함, 우매함, 장자가 말한 "혼돈(渾敦)" 등은 노자의 "후(厚)", "실(實)", "적자(赤子)", "돈돈(沌沌)", "혼혼(昏昏)" 등의 내함에 매우 가깝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노자는 비록 명확하게 "현(玄)"과 "박(樸)"을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말하지는 않았지만, 현빈(玄牝), 현덕(玄德) 그리고 "박(樸)"의 함의 및 그 상징적 의미를 근거로 볼 때, 노자가 말한 "현(玄)"은 "박(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9) "含德之厚, 比於赤子." (55장)

 

 

5. "현"의 통일성: "유무상생"

 

"현(玄)"이 내포하고 있는 "묘소(眇小)", "유원(幽遠)" 그리고 "박(樸)"의 함의와 상징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노자는 때로 이 함의와 상징을 하나에 집중적으로 담아내고, 때로는 이 함의와 상징을 병렬해 놓기도 한다. 전자의 전형적인 예는 현빈(玄牝), 현덕(玄德)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는 "도(道)는 항상 무명(無名)하고 박(樸)하며, 그것의 작용은 비록 소(小)하지만 ……"60)이란 구절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무명(無名)", "박(樸)", "소(小)"는 모두 "현(玄)"의 세 가지 함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현(玄)"의 세 가지 함의가 현빈(玄牝)이나 현덕(玄德)에 담겨있는 것은 위의 토론 과정에서 이미 언급되었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만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노자』의 도(道)가 무명(無名)한 이유를 크게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도(道)를 감각적으로 인식하여 개념화 할 수 없다는 측면이다. 예를 들면,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미(微)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며,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한다. 이 세 가지는 따져 물을 수 없으니, 본래 뒤섞여서 하나[一]인 것이다. 그것의 위는 밝지[皦]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昧] 않다. …… 이를 일러 홀황(惚恍)하다고 한다"61),

"어떤 것이 혼돈스럽게[混] 이루어져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는데, 그것은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모양도 없어서, …… 나는 그 것의 이름을 모른다"62) 등이다. 도(道)는 "홀(惚)"과 "황(恍)", "교(皦)"와 "매(昧)", "유(有)"와 "무(無)" 등 상반된 것들이 통일된 것으로서 고정된 본질이나 본성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언어를 통해 그것을 파악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도(道)를 무명(無名)하다고 한다.

 

둘째, 도(道)는 물(物)의 세계에서 부단히 작용하며 무수한 성과들 이루지만, "공적이 이루어져도 그것에 눌러앉지 않기"63) 때문에 또 무명(無名)하다.
"대도(大道)의 작용은 흘러넘쳐 좌우 어디로든 흐를 수 있다. 만물이 그것에 의지하여 살지만 물리치지 않고, 공적이 이루어져도 이름을 갖지 않는다[不名有]"64)거나 "도(道)의 작용은 감추어져서[隱] 무명(無名)하다"65) 등을 참고할 수 있다. 도(道)의 작용이 "은(隱)"하다는 것은 그 작용을 뽐내거나 드러내지 않고 성과를 점유하지 않는 "불명유(不名有)", 즉 무명(無名)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도(道)의 작고[小] 드러나지 않으며[隱] 간접적인 작용방식을 말한다.

 

60) "道常無名, 樸雖小, ……" (32장)

61) "視之不見名曰夷, 聽之不聞名曰希, 搏之不得名曰微. 此三者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皦, 其下不昧, …… 是謂惚恍." (14장) 62)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 吾不知其名." (25) 63) "功成而弗居." (2장) 64)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34장) 65) "道隱無名." (41장)

 

 

"현(玄)"의 관점에서 말하면, 첫 번째 측면의 개념화할 수 없는[不可名] 무명(無名)은 주로 "현(玄)"의 "유원(幽遠)"의 의미, 즉 "홀(惚)"과 "황(恍)", "유(幽)"와 "명(明)", "무(無)"와 "유(有)"의 통일성을 표현하고, 두 번째 측면의 이름을 갖지 않는[不名有] 무명(無名)은 주로 "현(玄)"의 "묘소(眇小)"의 의미와 관련된다.

이를 근거로 볼 때, 32장의 "도(道)는 항상 무명(無名)하고 박(樸)하며, 그것의 작용은 비록 소(小)하지만 ……" 이란 구절에 "현(玄)"의 "유원(幽遠)", "박(樸)" 그리고 "묘소(眇小)"의 세 가지 함의가 모두 병렬되어 있으며, 이것들을 가지고 도(道)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남자(淮南子)·제속훈(齊俗訓)』에도 유사한 예가 나온다.

"소(素)를 끌어 안고 진(眞)으로 돌아가서 현묘(玄眇)에서 노닐고 위로 높은 하늘에 통한다.

…… 박(樸)은 지극히 큰[至大] 것으로서 형상이 없고, 도(道)의 작용은 지극히 작은[至眇] 것으로서 헤아릴 수 없다", "깊고 어두컴컴한[冥冥] 묘(眇)에 들어간다."66)

『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의 "바탕이 참되고[眞] 소박(素樸)하다"67)는 말을 근거로 보면, 「제속훈」의 "소(素)를 끌어안다[抱素]"의 "소(素)"는 "박(樸)"과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제속훈」에서 우리는 "소(素, 즉樸)", "묘(眇, 즉 眇小)", "명(冥, 즉 幽遠)"과 "현(玄)"이 동시에 출현하고 있으며, 함께 하나의 개념의 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들은 "현(玄)"의 세 가지 의미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현(玄)"의 세 가지 의미 안에 녹아있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함의, 즉 "현(玄)"의 통일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먼저 "현(玄)"의 "묘소(眇小)"의 의미에 대해 말하면, 이는 주로 도(道) 또는 군주의 작고[小] 드러나지 않으며[隱]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방식과 그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는『노자』1장의 "묘(妙, 즉 眇)"와 "시(始)"가 대표하는 "무(無)"의 "용(用)"이다. 그러나 "묘(妙, 즉 眇)"와 "시(始)"는 각각 "요(徼, 즉 曒)", "모(母)"와 상생하는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서, "무(無)"의 "용(用)"은 "유(有)"의 "리(利)"가 없으면, 그 작용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유(有)"의 "리(利)" 역시 "무(無)"의 "용(用)"이 없으면 그 작용을 발휘할 수 없다.68)

 

66) "抱素反真, 以游玄眇, 上通雲天. …… 樸至大者無形狀, 道至眇者無度量." "入於冥冥之眇." (『淮南子·齊俗訓』) 何寧 撰: 『淮南子集釋』, 北京: 中華書局, 1998년, 797쪽, 803쪽.
67) "質真而素樸."(『淮南子·本經訓』) 위의 책, 555쪽.

68) "유(有)"의 "리(利)"와 "무(無)"의 "용(用)"의 관계는『노자』11장에 잘 나타나있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11장의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빈 공간을 당해서 수레의 기능이 있게 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빈 공간을 당해서 그릇의 기능이 있게 된다. 문과 창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빈 공간을 당해서 방의 기능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유(有)는 리(利)로 드러나고, 무(無)는 용(用)으로 기능한다."

 

 

이를 근거로 보면, "현(玄)"의 "묘소(眇小)"의 의미가 비록 "무(無)"의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유(有)"의 측면을 그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유무상생(有無相生) 관념을 기초로 한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줄곧 "유(有)"의 "리(利)"만을 추구하고 "무(無)"의 "용(用)"을 도외시하여 인문세계의 균형과 안정을 파괴했기 때문에, 노자는 상대적으로 "무(無)"의 측면을 강조하여 사람들에게 "무(無)"의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함으로써 인문세계의 균형과 안정을 회복하려 했을 뿐이다.

 

"현(玄)"의 "유원(幽遠)"의 의미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홀(惚)"과 "황(恍)", "무(無)"와 "유(有)", "소(小)"와 "대(大)", "유(有)"와 "명(明)", "매(昧)"와 "명(明)", "퇴(退)"와 "진(進)", "이(夷)"와 "뢰(纇)" 등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이 "현(玄)"의 통일성을 체득하여 현명(玄明)의 정신 경지에 도달한 것도 함께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두말 할 것 없이 이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념을 기초로 한 것이다.

 

"현(玄)"의 "박(樸)"의 의미에 대해 말하면, 도(道)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작용방식으로 만물을 낳고 품어준다. 따라서 노자는 "무(無)는 천지의 시(始)를 말하고, 유(有)는 만물의 모(母)를 말한다"69)고 하였다. 여기서 "시(始)"와 "모(母)"는 각각 도(道)의 "무(無)"와 "유(有)"의 작용을 대표한다.

"시(始)"는 도(道)가 천지만물을 낳는 시작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고, "모(母)"는 도(道)가 천지만물을 품어주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포용과 유지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도(道)의 "무(無)"와 "유(有)"의 작용이 상생적으로 기능하면서, "박(樸)"이 흩어져 "만물[器]"이 되고, 만물은 자신의 생명 과정을 거쳐 다시 "박(樸)"으로 돌아갈 수 있다.70)

 

또한 이러한 도(道)를 본받은 이상적인 성인이나 군주는 항상 천하의 가장 낮은 곳에 처하며 덕(德)을 충족시키고 마침내 "박(樸)"으로 되돌아간다.71)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성인이나 군주를 노자는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으로 보았는데, 그는 "박(樸)"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이치도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선불선(善不善), 신불신(信 不信)72), 친소, 이해, 귀천을 나누지 않고 항상 "혼혼(昏昏)", "민민(悶悶)"한 태도, 즉 "박(樸)"을 유지하며 만물이 공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노자가 추구하는 현동(玄同)의 이상은 군주와 백성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박(樸)"을 회복한 사회인데, 이 이상 사회에서 선악미추의 구분은 해소되고, 만물은 다양성 속에서 공생하며, 군주와 백성은 상생(相生)하게 된다. 이 를 통해 "박(樸)"을 기초로 한 현동(玄同)의 이상에도 여전히 유무상생(有無 相生)의 관념이 상감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근거로, 우리는 "현(玄)"의 세 가지 함의가 모두 유무상생(有無相生)의 통일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69)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1장)
70) "萬物並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16장) 이 구절의 한글 번역은다음과 같다.

"만물이 다 함께 번성하는데, 나는 그것을 통해 되돌아가는 것[復]을 본다. 만물이 무성하지만 각기 자신의 뿌리[根]로 돌아간다[復]." 만물이 세계에서 번성하다가 되돌아가는 뿌리는 바로 "박(樸)"이다.
71)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28장)
72) "善者, 吾善之, 不善者, 吾亦善之, 德善. 信者, 吾信之, 不信者, 吾亦信之, 德信." (49장)

이 구절의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선(善)한 이를 나는 선하게 대하고, 선(善)하지 않은 이도 나는 선하게 대하니, 덕(德)은 선(善)하다.
미더운[信] 이를 나는 믿음으로 대하고, 미덥지 않은 이도 나는 믿음으로 대하니, 덕(德)은 미덥다."

 

 

6. 나오며

 

노자의 입장에서 볼 때, 도(道)의 작용은 크게 "무(無)"와 "유(有)"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두 측면은 상생하는 관계에 있다. 이를 가장 형상적으로 그려낸 것이 11장이다.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빈 공간을 당해서 수레의 기능이 있게 된다. …… 그러므로 유(有)는 리(利)로 드러나고, 무(無)는 용(用)으로 기능한다."73)

"유(有)"의 "리(利)"는 가령 바퀴통처럼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편익이나 효과를 제공하는 작용을 말하고, "무(無)"의 "용(用)"은 가령 바퀴통의 빈 공간처럼 "유(有)"의 배후에서 그것이 작용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기능하는 작용을 말하는데, 어느 한쪽이 없어도 수레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도(道)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작용은 물(物)의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며 운동하고 있는가 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2장에서 이 세계가 존재하는 모습을 "유(有)와 무(無)는 상생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어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되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어지고, 음(音)과 소리는 서로 조화되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74)고 하였고, 77장에서는 "천도(天道)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과 같지 않은가? 높은 것은 눌러주고 낮은 것은 들어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준다"75)고 하였다.

 

이처럼 유무상생(有無相生)은 도(道)의 측면에서 보면 도(道)의 작용의 통일성을 나타나내고,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세계의 존재 형식76)과 운동방식을 나타내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노자가 생각하는 세계의 참 모습이다. 노자는 사람들에게 도(道)의 작용방식을 본받아서, 다시 말해 세계의 참모습을 정확히 파악하여 무위(無爲)를 실천할 것을 권한다. 따라서 2장의 "유(有)와 무(無)는 상생하고, ……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말에 바로 이어서 "이것을 근거로 성인은 무위(無爲)하는 일에 자리하고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한다"77)고 하였다.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현(玄)"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다른 표현이다.
즉, "현(玄)"은 도(道)의 작용의 통일성과 세계의 참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현(玄)"의 함의는 다시 확장되어 현명(玄明), 현덕(玄德), 현통(玄通), 현동(玄同) 등의 개념과 연결된다.

간략히 말해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현(玄)"을 정확히 인식하여 체화한 지혜가 내적 지혜인 현명(玄明)이고, 현명(玄明)의 정신 경지에 도달할 사람이 갖추고 있는 무심(無心), 무위(無爲)을 덕(德)을 현덕(玄德)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덕(玄德)을 갖춘 사람이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참모습에 두로 통달하여 만사만물에 "현(玄)"하게 "통(通)"하는 것이 현통(玄通)이며, 만물이 다양성의 통일[玄]이란 방식으로 "동(同)"한 세계가 바로 현동(玄同)의 이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73)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11장)
74)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2장)
75)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舉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77장)
76) 최진석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세계의 존재 형식으로 이해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노자는 이 세계를 반대되는 것들이 꼬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즉 이 세계는 대립쌍들(有/無, 高/低, 長/短, 上/下)이 서로 꼬여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이 우주의 존재 원칙[恒]이자 법칙[常]이고, 이런 존재 형식 내지는 원칙에 도라는 기호를 붙인 것이다."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서울: 소나무, 2001년, 40쪽.

77)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教." (2장) 최진석은 이 구절에 쓰인 "시이(是以)"의 철학적 함축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자는 앞 구절에서 자연의 존재 형식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是以로 연결된 다음 구절에서는 인간이 해야 할 바람직한 행위의 모습에 대해서 말한다. …… 인간의 행위 원칙을 자연의 존재 형식으로부터 연역해 내는 노자의 전략이 숨어 있는 표현법이 바로 이 '시이'이다." 위의 책, 41-2쪽.

 

 

 

참고문헌

 

(漢)許慎 撰, (清)段玉裁 注: 『說文解字注』,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9년.
(清)朱駿聲 編著:『說文通訓定聲』, 北京: 中華書局, 1998년.
(魏)王弼 著, 樓宇烈 校釋: 『王弼集校釋』, 北京: 中華書局, 2009년.
(北宋)蘇轍:『道德真經注』, 陸國强 責任編輯:『正統道藏』(影印本)第12冊, 上海書店 · 文物出版社 · 天津古籍出版社, 1996년.
(南宋)范應元: 『老子道德經古本集注』, 龔鵬程, 陳廖安 主編:『中華續道藏』初輯第7冊, 臺北: 新文豊出版股份有限公司, 1999년.
朱謙之: 『老子校釋』, 北京: 中華書局, 2006년.
高亨: 『老子正詁』(影印本), 上海: 開明書店, 民國37[1948]년.
陳鼓應 譯注: 『老子注譯及評介』, 北京: 中華書局, 1996년.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서울: 소나무, 2001년.
(清)郭慶藩 撰: 『莊子集釋』, 北京: 中華書局, 1997년.
王利器 撰: 『文子疏義』, 北京: 中華書局, 2000년.
何寧 撰: 『淮南子集釋』, 北京: 中華書局, 1998년.
蕭兵, 葉舒憲: 『老子的文化解讀——性與神話學之研究』,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1994년.
王博:『老子思想的史官特色』, 臺北: 文津出版社, 1993년.
聞一多 撰, 田兆元 導讀: 『伏羲考』,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6년.
王博, 「老子與夏族文化」,『哲學硏究』1989年第1期.
呂微, 「"昆侖"語義釋源」, 游琪, 劉錫誠 主編:『葫蘆與象徵』, 北京: 商務印書館, 2001년.
鄭開: 「『老子』第一章劄記: 兩個語文學疏證及哲學闡釋」,清華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8년 第1期(第23卷).
탁양현, 「『노자』에서 '玄'字 의미 연구」,『 동양철학연구』제60집, 2009년.

 

 

<摘要>

 

《老子》中的“玄”分析

 

李壬燦
(西江大學)

 

在《老子》一書中,“玄”不僅是一個代表老子哲學之色彩或形象的象徵,而且是一個具有重要哲學意義的哲學概念。通過對《老子》第一章的分析,可以知道“有無相生”就是“玄”的最基本含義。根據“玄”字本身的意義、老子哲學的各種內涵、《老子》一書中的文字資料以及“玄”的象徵意義來分析《老子》中的“玄”,我們可以分析出“眇小”、“幽遠”和“樸”等三層意義。本文提供了研究與“玄”相關的各種概念,如“玄牝”、“玄覽”、“玄德”、“玄通”和“玄同”等概念的基礎性資料。

 

關鍵詞: 玄、眇小、幽遠、樸、有無相生

 

 

....

 

 

 

본문중 아래 字가 입력되지 않아 아래와 같이 사용하였음.

 

 

  字는 <微 - 彳>로 표기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字는 幺幺 로 표기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