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승 조부 황균비(黃均庇 ) 묘
88고속도로 남원나들목에서 내려 남원에서 순창 가는 24번 국도로 갈아타고 비홍(飛鴻)재를 넘으면 풍계서원이 있는 전북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 산촌마을로 이 마을 뒷산 중턱에는 풍수를 하는 사람이면 한번쯤은 반드시 답사하는 명묘가 하나 있다. 황희(黃喜) 정승의 조부인 황균비(黃均庇)의 묘다. 이 묘가 유명하게 된 것은 조선왕조에서 대표적인 관료로 꼽히는 황희정승이 바로 이 묘의 발복에 의하여 배출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씨(黃氏) 중 황희정승의 본관인 장수황씨(長水黃氏)의 세계(世系)를 보면, 그의 증조부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여, 2세 황균비(黃均庇), 3세 황군서(黃君瑞), 황군서의 아들인 황희가 4세조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이름이 알려진 성씨가 아니었고, 현달한 인물도 없다. 그런 장수황씨가 황균비 묘를 쓰고 태어난 황희가 조선 태종 때부터 세종대에 걸쳐 6판서를 두루 거치고, 참찬과 찬성,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유명해지고, 또한 그의 맏아들 호안공(胡安公) 황치신(黃致身)은 아버지의 후광인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호조판서와 한성부윤을 거쳐 종1품의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고, 셋째인 열성공(烈成公) 황수신(黃守身) 역시 음보로 벼슬에 나가 세조 때 영의정에 올라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이 후대에서도 수많은 명신현관들이 배출되었으니 풍수가라면 누구나 장수황씨의 영광이 이 묘의 명당발복설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만하다.
황균비가 묻힌 이곳은 황희정승의 아버지 황군서가 어려움에 처한 나옹선사를 구해주고 그 보답으로 얻은 명당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전국을 유람하다가 친한 친구사이인 남원의 오부자 집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오부자는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를 잡아 달라며 많은 시줏돈을 나옹선사에게 주었고 자신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불편이 없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나옹선사는 오부자로부터 받은 시줏돈을 가난한 절에 주어 불사를 하는데 사용하도록 하고 자신은 오부자의 신후지지를 잡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황균비가 묻힌 명당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부자가 그 명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바로 그에게 명당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고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욕심 많은 오부자 아들이 그의 아버지가 나옹선사에게 너무 많은 시줏돈을 주고 잘 대해 주는 것이 항상 못 마땅한데다 자신이 보기에는 나옹선사가 그의 아버지 신후지지를 찾아 열심히 다니는 것 같지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오부자 아들은 그의 아버지가 출타한 틈을 이용하여 나옹선사를 묶고 많은 시줏돈만 받아가고 명당은 잡아 주지 않는다며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봉변을 주었다고 한다.
공인광주김씨묘(恭人光州金氏之墓)
절충장군 황정언/정부인남원양씨 묘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장수황공휘정언지묘/정부인남원양씨부좌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長水黃公諱廷彦之墓/貞夫人南原梁氏祔左
황균비 묘하에 있는 정경부인진주소씨 묘
정경부인진주소씨지묘(貞敬夫人晋州蘇氏之墓)
황희정승 조부 황균비 묘 전경
증의정부참찬황공지묘(贈議政府參贊黃公之墓)
묘비명은 황이장(黃爾章)이 짓고 황선(黃璿)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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