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를 다는 현토(懸吐)에 관하여
한문 구절 아래에 토(조사나 어미)를 다는 것을 현토(懸吐)라고 한다. 이 현토는 한글(훈민정음)이 있기 전에도, 한자나 한자의 일부를 이용하여 토를 다는 구결(口訣)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a) 莊子曰, 一日不念善, 諸惡自皆起.
a-1) 莊子曰, 一日不念善이면, 諸惡自皆起니라.
b)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b-1) 太公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그런데 이 현토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위의 예문들은 명심보감에 서두 계선편에 있는 것들이다. 본래 a나 b문장처럼 현토하지 않는 것이 본래 한문 문장일 텐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토를 했을까. 예전에 한문 공부가 거의 문장을 통째로 암송하는 식이다 보니, 암송하기 편하게 어구 사이에 토를 단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a-1 문장에서 ‘이면’이라고 현토를 하여, 초학자라도 그냥 토만 보고고 不念善이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으로 그냥 해석하게 된다. 그러니까 현토 덕분에, 심하게 말하면 우리는 한문 문장의 의미의 절반 정도를 그냥 거저 힌트를 받은 셈이다. 바로 이런 점이 문제일 수 있다. 만약 a 문장처럼 현토가 없을 경우에, 초학자라면 不念善의 의미를 처음에는 ‘선을 생각하지 않고’로 다소 어색하게 해석하다가 이런 착오를 겪다가 나중에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으로 옳은 의미로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제대로 된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 한문 공부의 한 과정인데, 현토가 이런 것을 방해(?)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 不念善는 ‘선을 생각하지 않으니’로 해석해도 크게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 없는데, a-1처럼 토를 달아놓으면 그 토에 구애되어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아래 b-1 문장을 보면 이런 것을 더 느낄 것이다. 聞惡如聾을 ‘하라’라고 현토한 대로 ‘악을 듣기를 귀머거리처럼 하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聞惡如聾을 ‘악을 듣기를 귀머거리처럼 한다.’라고 해석해도 그다지 무방하지 않다.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을 배우는 생초보라면 현토를 하는 것이 암송에도 편하고, 너무 문장의 의미를 모르니까 어느 정도 의미의 암시를 준다는 차원에서 현토를 단 책을 보는 것이 괜찮을 듯도 하다. 그러나 맹자, 논어 정도를 배우는 중급 수준이라면 현토를 한 책을 보는 것은 개인적인 소견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 현토가 한문을 배우는 초기에는 지루한 한문 공부에 쓴 약에 섞는 사탕처럼 흥미를 줄 수 있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오히려 해(害)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겠다.
'한문문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려운 구절이나 문장에 매달리지 마라 (0) | 2013.11.23 |
---|---|
[스크랩] 왜 맹자를 완독(完讀)해도 한문을 모를까. (0) | 2013.11.23 |
[스크랩] 펌) 한문 해석을 위한 기초 지식 (0) | 2013.11.23 |
[스크랩] 한문 기초)「수식어 + 피수식어 」구조 (0) | 2013.11.23 |
[스크랩] 한문 공부함에 필수적으로 해야 할 것 (0) | 2013.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