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백두산이야기 5 - 아, 고구려

장안봉(微山) 2013. 11. 17. 21:01

드디어 고구려를 만나러 간다.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중국 땅에 살았던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치부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고 국가사업으로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감행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영 웅혼한 기상을 지녔던 우리의 조상

'고구려'를 빼앗기고 말 것이며  우리의 고대사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고구려의 두번 째 수도였던 지안[集安]

 시조 주몽(동명성왕)은 홀본성을 기반으로 기틀을 세우고 국력을 정비한 뒤

주변의 작은 국가들을 차례를 점령해 나가 세력을 확장한다.

영토의 확장으로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홀본성이 위치한 환런 지역은

통치하기에 마땅치 않게 된다.

 

그래서 2대 유리왕대에 집안에 있는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겨 와

고구려 역사 705년 중 424년을 이곳에서 강성하고 영화로웠던 시절을 보내게 된다.

 

국내성 동서편 성벽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논밭이 있고 주거지였던 곳을 긴급히 발굴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자세히보면 아랫부분에는 원래의 돌이 보이고 윗부분은 기계로 깍은듯

반듯반듯한 최근의 돌들로 쌓여있다.


 

국내성이 도읍을 감싸는 내성이라면 환도산성은 외벽을 방어하는 성이다.

산 아래 남쪽 성벽이 보이고 그 밑에 넓은 평야에는 많은 무덤들이 있다.

산성을 지키던 군사들의 무덤이리라...





 

 

집안에는 그 밖에도 많은 고구려의 유적들이 있다.

광개토대왕릉을 비롯하여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환도산성 그리고 많은 고분들...

 

 

정성길 경기도 화성평화공원 박물관장이  일본의 화집에서 발췌하여 2004년 공개한

 100여 년 전의 사진으로 주인공은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쓴 한복 차림의 조선인으로,

팔짱을 낀 채 눈 내린 산야를 배경으로 광개토대왕비 옆에 서 있다

 


자료관에 있는 1927년 광개토호태왕비.

 

광개토호태왕비는 그의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치적을  기려 세운 것으로

높이가 무려 6.4 미터에 이르는 넘는 거대한 4면의 석비.

이 문이 밝혀짐에 따라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비롯해서

대왕의 업적과 정복활동등이 자세히 적혀 있어서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서로의 입장에 따라 왜곡, 조작하기도 한다.

 

지금은 통유리로 보호하고 있는데
이 보호각 앞에서 같이 간 팀들이 'LG CNS 문화유산답사회'라는 프랜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중국 공안이 달려와 거칠게 빼앗아 갔다.

아마 그들은 글씨의 내용이 '고구려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 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광개토대왕릉.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19대 왕으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짧은 제위 기간 동안 크게 영토를 확장시켰고 내치에도 힘을 기울여

서양의 알렉산더대왕과 비교되기도 한다.

 

비문에 의하면 당대의 고구려인들은 대왕의 업적을 이렇게 칭송했다

"은혜로움은 하늘에 미쳤고, 그 위엄은 四海에 떨쳤다.

(나쁜 무리들을)쓸어 없애시니 백성들은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도다"

 

허나 거대한 이 왕릉은 도굴되기도 하고 방치된 채 수 백년을 잊혀져 있다가

최근해야 부근이 정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멀지않는 곳에 그의 아들 장수왕의 무덤이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39세에 세상을 일찍떠난 아버지와는 달리

장수왕은 98세까지 장수를 누렸으며 아버지의 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광개토대왕이 요동과 북방의 진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장수왕은 한반도 남쪽으로 진출에 주력했으며

당대 국제정세를 이용하여 고구려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아버지의 야망을 완성시켰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수왕릉은 밑변의 길이가 32미터요 높이가 12미터에 이른다니

요즘 아파트로 치면 5층 높이의 어마어마한 릉이다.

 

이 피라미드형의 거대한 무덤을 쌓을 정도로 힘이 강했을 고구려를 생각해 본다.


 

장수왕릉에서 내려다본 '딸린무덤(배총)'의 모습.

원래의 5기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이 곳 만 남아있는데

아끼는 애첩이나 부하들의 무덤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시내로 나와서 '집안박물관'을 본다.

글씨는 중국의 시인이자 유명한 사학자인 곽말약이 썼다며

우리를 안내한 조선족가이드는 거듭 강조한다.

 

내부는 촬영을 할 수가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광개토대왕비의 거대한 탁본이라든지 고분벽화 모사본,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와 청동기 유물 농기구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짧은 시간에 훑고 지나가고 말았다.












 
출처 : 나홀로 테마 여행
글쓴이 : 안개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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