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세종대왕 자태실(사적 444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가야 고분 답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해가 지기 바로 전에 세종대왕 자태실을 가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삼릉에 일제 강점기에 전국의 명산에 있었던 태실을 모아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만, 원래의 자리에 이렇게 많은 태실이 보존되어 있는 줄은 몰랐었습니다. 19기의 태실이 2열 종대로 놓여 있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
▲ 세종대왕 자태실 입구 전경(계단으로 한 100여미터 올라가면 됩니다.) |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 자태실은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9기로써, 그 조성시기는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엽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 |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1977년 태실에 대한 정비사업과정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분청인화문개 2점, 분청인화문완 1점, 평저호 1점, 지석 3점 등이 있다. |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저경 102㎝, 고 42㎝), 구형의 중동석(고 26㎝, 하경 80㎝, 상경 75㎝), 방형의 연엽대석(변 125.5㎝. 고 60㎝), 석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비문에 ‘ㅇㅇ(대)군명태장 황명연호연월일입석(ㅇㅇ(大)君名胎藏 皇明年號年月日立石)’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세조가봉비 비문은 멸실(『실록』에 비문 수록됨)되었다. |
▲ 계단을 다 오르면 좌우 일렬로 조성된 태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
우리나라에 있어 태를 봉안한 최초의 기록은『삼국사기』의 김유신의 장태(藏胎)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고려의 왕실에서 태봉안 양식(胎奉安 樣式)이 성립된 후 조선시대까지 그 맥락이 이어진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태봉(胎峰)에 태를 봉안하기 위한 석물구성은 우리나라에서만 행해졌던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라 할 수 있으며, 세종대왕 자태실은 왕과 태장에 대한 태실만을 조성하던 고려시대의 태봉안 양식이 변화하여 왕과 왕비 및 그 자녀의 태실을 조성하기 시작한 조선시대 최초의 왕자태실로 그 의미가 높다 할 것이다. |
▲ 세조의 가봉비(加封碑) - 정면과 측면 모습 |
▲ 수양대군(세조) 태실 |
▲ 안평대군 태실(인위적 훼손으로 받침돌만 남음) |
▲ 임영대군 태실 |
▲ 광평대군 태실 |
▲ 1단의 수양대군부터 광평대군까지의 태실 전경 |
태실의 조성 및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찾아지는 태실 관련 기록에서 언급된 산맥이 연결된 높은 봉우리가 아닌 들판에 홀로 우뚝 솟은 반구형의 형태를 한 최적의 입지조건인 곳에 자리잡고 있다. |
▲ 금성대군 태실(인위적 훼손으로 받침돌만 남음) |
▲ 평원대군 태실 |
▲ 영응대군 태실 |
▲ 단종 태실 |
▲ 1단의 수양대군부터 영응대군까지의 태실 모습 |
▲ 단종의 태실은 1단에서 멀리 떨어져서 구석에 놓여 있습니다. |
한편 세종대왕 자태실이 자리잡은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의 묘가 있던 곳으로,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이를 이장하도록 하고 태를 안치하였는데, 여기에 관련된 전설이 현재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보면 실제 사정과는 합치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
▲ 태실 입구 반대편에서 바라 본 태실 전경(단종 태실만 좌측 구석에 있어서 안 보입니다.) |
▲ 2단 첫 번째부터 화의군 태실(인위적 훼손으로 받침돌만 남음) |
▲ 계양군 태실 |
▲ 의창군 태실 |
▲ 한남군 태실(인위적 훼손으로 받침돌만 남음) |
▲ 밀성군 태실 |
▲ 수춘군 태실 |
▲ 익현군 태실 |
▲ 영풍군 태실(인위적 훼손으로 받침돌만 남음) |
▲ 영해군 태실 |
▲ 담양군 태실 |
▲ 군호 없이 이름만 당으로 되어 있음. |
▲ 2단에 설치된 11기의 태실 전경(맨 끝에서 촬영) |
세종대왕자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세종대왕 자태실 위치도 |
소재지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 화살표 ↓ 부근에 태실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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