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스크랩] 목은영정(牧隱影幀) 이야기

장안봉(微山) 2013. 10. 2. 23:34

우리는보통 목은선조영정(牧隱影幀)이라하고,  문화재청 쪽에선 이색초상 (李穡 肖像)이라 바꾸었다.

 

종 목 :  보물  제1215호 
명 칭 :  이색초상 (李穡 肖像) 
분 류 :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 :  5폭
지정(등록)일 : 1995.03.10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종로5길 76 (수송동)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한산이씨대종회
관리자(관리단체) : 한산이씨대종회,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대전역사박물관

 

.고려말 3은(三隱) 중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초상화이다.
 이색의 초상화는 원래 관복차림과 평상복차림의 두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복차림만 전해진다.
관복차림의 그림도 원본은 전하지 않고 원본을 보고 옮겨 그린 것으로 모두 4본 5점이 전해진다.

 

영정을 모셔 봅니다.  처음부터6장은 문화재청에서 모셔왔습니다.

명칭 : 이색영정 입니다.  

 

 

명칭 : 영모영당본 입니다.

가로 85.2㎝, 세로 150.7㎝ 크기의 문헌서원본(文獻書院本)은 목은영당본과 동일한 형식으로 1755년에 새로 옮겨 그린 것이다. 목은영당본에 비해 수염처리와 옷의 묘사 등의 표현기법이 떨어지는데 이는 화가의 기량 차이 때문인 것 같다.   

 

 

 

명칭 : 누산영당본 입니다.

1654년 허의와 김명국이 옮겨 그렸다고 전해지는 가로 85.2㎝, 세로 143㎝ 크기의 예산누산영당본(禮山樓山影堂本)은 관리들이 쓰는 사모를 쓰고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모에는 회색줄을 넣어 입체감을 표현했으며, 얼굴에는 옅게 붉은 기운을 넣어 당시의 화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초상화는 고려말 관복을 충실하게 표현하였고, 옮겨 그린 것이지만 당시 일류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명칭 : 대전영당본 입니다.

가로 78.7㎝, 세로 146.3㎝ 크기의 대전영당본(大田影堂本)은 헌종 10년(1844)에 옮겨 그린 것으로 누산영당본과 동일한 형태와 규모이며, 뛰어난 화가에 의해 옛 그림 화풍이 잘 표현된 초상화이다.   

 

 

 

명칭 : 목은영당(대본) 입니다.

목은영당본(牧隱影堂本)은 가로 25㎝, 세로 25.8㎝ 크기의 소본(小本)과 가로 81.6㎝, 세로 149.8㎝ 크기의 대본(大本)이 전해진다.

대본은 누산영당본과 동일한 형태와 크기로 1711년에 옮겨 그려 임강서원에 모셔 두었다.

 

 

 

명칭 : 목은영당(소본) 입니다.

소본은 누산영당본과 같은 시기인 1654년 그린 것으로 현재는 반신상이지만 잘려나간 곳을 감안하면 전신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9 목은영당과주성강당  목은영당지 편찬위원회/청주향교에 수록된,

명칭 : 목은영정 입니다.  

 

2009 목은영당과주성강당  목은영당지 편찬위원회/청주향교에 수록된,

현재 사용중인 영정 입니다.(1932년작) 

 

 

 

 

이것은 잘보세요....아쉽게도 2006년6월21일~6월24일사이에 도난당했다합니다.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2호 (하동군)
명     칭:목은이색선생영정(牧隱李穡先生影幀)
분     류: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1점
지정(등록)일:1983.08.06
소 재 지:경남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소유자(관리단체):금남사(경주김씨문중)  

 

 

 

이것은 안동의 목은영정 입니다.

종 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1호 
명 칭: 목은영정 (牧隱影幀)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정(등록)일: 1983.06.20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리 산9 
소유자(소유단체): 이장원
관리자(관리단체): 이장원
.고려 후기의 문신인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초상화이다.

이색은 공민왕 1년(1352) 세금제도의 개혁, 국방계획, 교육장려, 불교억제 등 여러 정책에 대해 건의문을 올렸다.
공양왕 1년(1389) 이성계 일파가 위화도 회군으로 세력을 잡자 장단지역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이후 이성계가 그를 조정으로 불러 들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이듬해 여강지역으로 가던 도중 생을 마치었다.

그림의 작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의 대학자였던 권근의 찬하는 글이 있고, ‘영락갑신9월’이라는 기록이 함께 있어, 조선 태종 4년(1404)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은거한 뒤 야인 차림의 초상화가 따로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한편 이 초상화는 임진왜란 당시 분실되었다가 일본에 갔던 사신에 의해 되찾게 되었다는 설도 함께 전해오고 있다. 이 영정은 고려 삼은(三隱) 중 한분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선생의 초상이다. 작자는 미상이나 조선초의 대학자인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선생의 찬문이 있고 영락(永樂) 갑신(甲申) 구월(九月)이란 연대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1404년(태종 4년) 이전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해오는 바로는 영정은 당초 은거한 뒤 야복(野服) 차림의 별본(別本)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서산서원 서재(西齋)에는 미완성 모사본이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문화재청-  

 

 

현재 이색영정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시대 일류화가에 의해 새로 옮겨 그려진 4본 5점 모두 수준이 높고 보존 상태 역시 양호하며, 역사상 중요 인물을 그린 것으로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여말삼은(麗末三隱) 가운데 1인이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影幀) 허목(許穆)의 "목은화상기(牧隱畵像記)"에 의하면,
원래 관복과 평상복의 초상화 2본(本)이 있었는데 원본은 전하지 않고 동형동규(同形同規)의 초상화가 서천 영모영당(永慕影堂)과 예산 문정공영당(文靖公影堂)(누산영당(樓山影堂))에 모셔왔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기간 보관과정에서 초(초)가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이 심해 효종(孝宗) 5년(年)(1654) 후손들이 2본(本)을 모사하여 영당에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예산(禮山) 누산영당소장본(樓山影堂所藏本)은 1654년 사대부화가였던 허의(許懿)(1601~?)와 유명한 화사(畵士) 김명국(金明國)이 그렸다고 전해지며 사모(紗帽)를 쓴 우안구분면(右顔九分面)의 자세에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공신도상형식(功臣圖像形式)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목은영당소장(牧隱影堂所藏)의 소본(小本)은 비록 사방이 잘려나가 본래의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반신상(半身像)이지만 필세(筆勢)에 골격(骨格)이 감지되고 안면처리(顔面處理) 역시 섬세하여 누산영당본(樓山影堂本)과 같은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여겨지며 전체적으로 고격(古格)을 견지하고 있다.
대본(大本)은 누산영당본(樓山影堂本) 동형동규(同形同規)의 것으로 화폭(畵幅) 우측상단(右側上端)에 추근(椎近)의 찬문(讚文)이 적혀 있는데 1526년 김희수(金希壽)(1475~1527)가 제기(題記)를 썼던 영정을 1711년에 다시 개형(改模)하여 임강서원(臨江書院)에 봉안(奉安)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며 고식(古式)을 충분히 따르되 약간씩 내비치는 선양기(渲梁氣)가 이 초상화의 이모년대(移模年代)를 말해준다. 영모영당(永模影堂)의 영정(影幀) 역시 동일(同一)한 상용형식(相容形式)인데 화폭 우측상단에 추근(椎근)의 목은선생화상찬(牧隱先生畵像讚)과 제기(題記)가 적혀있어 이 초상화가 1755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본(本)은 목은영당본(牧隱影堂本)에 비해 수염처리나 창의(창衣)의 묘사 등 표현 기법면에서 뒤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는 이모(移模)을 거듭한 이유 외에 화사(畵師)의 기량이 못미친 때문으로 보인다. 대전영당본(大田影堂本)은 화기(畵記)에 의해 조선 헌종 10년(1844)에 이모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예산 누산영당본과 동형동규(同形同規)의 본(本)으로 서대(犀帶) 및 족좌대(足座臺) 위의 문양표현이나 연폭(聯幅)를 사용하지 않은 점에서만 차이를 보일 뿐 양식적으로 고식을 띠고 있으며 공교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어 뛰어난 화사에 의해 이모되었음을 시사해준다.

이상에서와 같이 이색영정은 재세시(在世時)의 본(本)은 전하지 않지만 조선중기(朝鮮中期) 일류화가의 솜씨가 노정(露呈)된 원본(原本)에 충실한 반신상(半身像)과 전신상(全身像) 역시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초상화 양식을 갖추고 있고 연대(年代)가 올라가는 원본에는 거듭 중모(重模)한 것으로 3본(本) 모두 작품의 수준이 높고 비교적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피상인물(被寫人物)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므로 회화사연구(繪畵史硏究)에 귀중한 자료(資料)로 평가(評價)된다.

 

그리고 영정에 대한 동영상(예전에 서울육백년사 홈피에서 발취한것 입니다. )

 

 

출처 : 바람에 띄우는 엽서한장
글쓴이 : 옥광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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