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스크랩]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의 서문

장안봉(微山) 2013. 10. 2. 23:26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의 서문

                                                                                                                                                                             表沿沫

 하루는 내가 사가정(四佳亭)에서 달성(達城) 서거정(徐巨正) 상공(相公)을 뵈오니, 저술한 《필원잡기》를 내어 보이고 인하여 서문을 명하였다. 나는 공의 문인이며, 또 공이《동국통감》을 편찬할 때에 내가 관속(官屬)으로 있으면서 편찬에 참여하여 공의 장려하고 인정하심이 실로 깊었으니, 의리상 문장이 졸렬하다 하여 사양할 수 없기에 삼가 명을 받고 돌아왔으나, 내가 사무에 복잡하여 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여가 있는 날에 고요히 앉아 두세 번을 읽어보니, 그 저술한 것이 모두 우리나라의 일을 찾아 모아서 위로는 조종(祖宗)의 신묘한 생각과 밝은 지혜로 창업하신 대덕(大德)을 찬술하였고, 아래로는 공경(公卿)과 어진 대부(大夫)들의 도덕ㆍ언행ㆍ문장ㆍ정사 등 모범이 될 만한 일에 미쳤으며, 국가의 전고(典故)와 촌락의 풍속에 이르기까지 세상 교화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국사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을 갖추어 기록해서 빠짐이 없었다. 비유하건대 여산(驪山)의 진시황(秦始皇) 무덤을 발굴하자 진귀한 보물이 다 나왔고 우저(牛渚)에서 서각(犀角)을 태우자 괴이한 광채가 도망하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 읽어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가 나서 권태감을 잊게 한다.

    

 필담(筆談)은 산림에서 듣고 본 것을 말한 것이요, 언행록(言行錄)은 명신(名臣)의 실적(實跡)을 기록한 것인데, 이 책은 이 둘을 겸한 것이니, 어찌《수신기(搜神記)》나《오잡조(五雜俎)》등의 책과 같이 기괴(奇怪)한 일을 들추어서 본 것이 많고 넓음을 자랑하고, 이야기꾼의 희극을 제공하는 것과 같을 뿐이겠는가.

 내가 보건대, 옛날에 글을 지어 의논을 세운 이는 모두 그 말한 바가 현세(現世)에서는 실행하지 못하고 후세에 실행하고자 한 것이었으니, 만약 때를 만나 도(道)를 행하였더라면 굳이 저서(著書)를 일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직 공은 문장과 도덕으로 밝은 세대를 만나서 국가의 성대함을 크게 울려 일시의 외교문서가 다 공의 손에서 나왔고, 임금을 보좌하고 간책(簡策)을 빛나게 하여 현재에 행한 것이 이미 밝고 아름다웠는데, 또 다시 저술에 유념하여 붓을 들면 문장이 이루어졌다. 공이 지은 바《동국통감》ㆍ《여지승람》ㆍ《역대연표》ㆍ《동인시화》및 시편은 다 세도(世道)를 붙들고 명교(名敎)를 전하는 것을 중시하여 하나하나 모두 후세에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가장 훌륭한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은 공(功)을 세우는 것이며, 그 다음은 말을 세우는 것이니, 이를 불후(不朽)라 이른다.” 하였으니, 공(公)을 두고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1486년(성종 17) 11월 어느 날에 문인 통선랑 장예원사의(通善郞掌隷院司議) 표연말(表沿沫)은 서한다.



출처 : 이택용의 e야기
글쓴이 : 李澤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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