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돌오돌 '뼈꼬시' 한 쌈에 여수의 봄맛이…
자글자글 끓인 정어리, 입에 퍼지는 바다香
- 당머리 하모거리. 하모가 잡히기 시작하는 5월 중순부터 손님을 받는다.
전국 '맛골목 투어' 2탄은 전남 여수에서 펼쳐집니다. 맛의 고장 전라도에서도 여수는 해산물을 이용한 별미와 별미 식당이 모인 골목이 많은 도시입니다. 속풀이 해장국으로 그만인 장어탕을 파는 장어 골목, 구수하고 짭조름한 생선조림을 각종 쌈채소에 싸 먹는 쌈밥집이 모여 있는 쌈밥 골목, 밥 도둑 게장 골목, 여수 사람들이 '뼈꼬시'라고 하는 뼈회(세꼬시) 잘하는 횟집이 모여 있는 돌산 계동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맛골목을 도는 사이사이 '샛서방고기' 금풍생이, 막걸리식초와 초고추장으로 매콤새콤달콤하게 무친 서대회 같은 여수의 봄맛도 보고 왔습니다. 당머리 하모(갯장어)거리는 오는 5월 중순 갯장어가 잡힐 때까지 문을 열지 않아 맛보지 못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 장어 골목
전남 여수 ‘장어골목’에서 장어탕을 한 그릇 비우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먹었다기보다 마셨다고 해야 할 듯하다. 전형적인 입에서 당기는 음식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건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일부러 술을 진탕 먹고 속을 쓰리게 한 다음 왔어야 이 장어탕의 진가를 만끽했을까’ 싶을 만큼 시원했다.
장어 골목은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맞은편 ‘여수돌산갓어물갓김치’ 가게와 ‘남면상회’ 사이에 있다. 골목을 따라 ‘명창식당’ ‘화태식당’ ‘명성식당’ ‘황금해장국’ 등이 있고, 다시 길을 건너 이어지는 골목에 ‘백제식당’ ‘이화장어구이요리전문점’ ‘7공주식당’이 있다. 골목 끝은 교동시장의 시작이다. 골목 터줏대감으로 “딸만 일곱을 낳았다”는 고정자(67)씨가 운영하는 ‘7공주식당’에서 장어탕을 먹었다.
기름이 적어 담백한 붕장어(아나고)로 끓인다. 구이용 장어를 다듬고 남은 등뼈와 대가리를 푹 끓인 국물을 쓴다. 여기에 콩나물과 양배추까지 더해졌으니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춧가루가 매콤한 개운함을, 들깨 가루가 구수한 맛을 더한다. 들깨 가루는 구수하지만 자칫 음식을 텁텁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고씨는 이 ‘양날의 검’을 능숙하게 다룬다.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경쾌하다.
밑반찬도 아주 좋다. 둥글납작 큼직하게 나오는 무김치는 좀 많이 익은 동치미 무처럼 시지만 시원하다. 손님이 가위로 알아서 썰어 먹어야 한다. 고춧가루와 참기름, 참깨로 버무린 쪽파와 여수 돌산에서 나는 갓으로 담가 톡 쏘는 갓김치는 장어탕 국물의 감칠맛을 기하학적으로 상승시킨다.
고정자씨와 이곳 장어골목 식당 주인들은 요즘 손님이 아니라 장어가 없어서 고민이다. 고정자씨는 “장어가 없어 갖고 아주 그냥…바다에서 뭐가 안 나뿔라서”라며 안타까워했다. “벌써 (장어 골목에 있는 식당 중) 두 집이 문 닫아부렀어. 장어만이 아니여. 요즘 바닷고기가 엄청 귀해부러. 여수가 큰일이여.”
그래서 7공주장어탕에서는 장어탕 가격을 최근 1만원에서 1만2000원으로, 장어구이도 1만6000원에서 2만원으로 올렸다. 식당에 오는 손님한테만 내주고 포장 판매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아쉬운 일이다.
■ 계동마을 뼈꼬시
뼈꼬시는 여수에서도 돌산 바닷가에 있는 계동마을이 이름났다. 해안을 따라 횟집 대여섯 곳이 늘어섰다. 어딜 들어가도 뼈꼬시를 먹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됐다는 ‘계동횟집’ 주인 이내화(68)씨를 가게 앞에서 만났다. “한 22년 됐나? 처음에야 먹을 게 없어서 하게 됐지. 우리 한 집 했어. 그러다 소문이 나면서 도로 포장도 안 된 여기까지 여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식당도 늘어났고. 숭어, 쥐치, 볼락, 도다리, ‘깔다구’라고 하는 새끼 농어 따위를 뼈꼬시로 주로 내요. 솜씨? 노하우가 있어야지.”
- 여수 돌섬 계동마을 ‘수평선횟집’의 뼈꼬시. 뼈째 잘게 썬 잡어회에 통들깨와 된장, 파 등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얹어 먹는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없는 계동마을만의 독특한 양념장이다.
이 양념장을 뼈꼬시와 함께 먹는다. 상추나 깻잎, 봄에는 배춧잎에 뼈꼬시회 몇 점을 놓고 양념장을 얹어 쌈을 싸서 입에 넣는다. 씹으면 통들깨가 깨지면서 들깨 특유의 짙고 구수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으깨진 들깨가 된장과 더해지면서 자연산 뼈꼬시회 맛과 부드럽게 융합된다.
서너 가지 생선 뼈꼬시회가 한 접시에 나온다. 수평선횟집에는 5만·6만·7만·8만·10만원짜리가 있다. 주인은 “둘이서 5만원짜리 정도면 알맞다”고 했다. 언뜻 양이 적어 보이지만, 밑에 무채 따위가 깔리지 않아 보기보단 푸짐하다. 뼈꼬시회가 나오기 앞서 전복·멍게·개불·소라숙회·부침개·갓으로 담근 물김치 따위 반찬이 푸짐하게 깔린다. 뼈꼬시회를 먹고 나면 식사로 굴을 넣고 끓인 떡국을 준다.
여수 시내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자동차로 20분쯤 달리면 계동마을이다. 돌산대교에서 무술목해수욕장 방향으로 17번 국도를 따라 10분쯤 달리다가 무술목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간다. 잠시 후 해안길을 만난다. 왼쪽 차창으로 펼쳐지는 서로 다른 톤의 푸른빛을 가진 바다와 하늘 사이에 작은 섬들이 둥둥 떠 있다. 이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여정이다. ‘계동’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다시 좌회전해 들어가면 나타나는 포구가 계동마을이다.
■ 여서동 쌈밥골목
- 여수 여서동 ‘미소쌈밥’의 정어리쌈밥.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납작한 냄비에 우거지와 고구마줄기 따위를 깔고 그 위에 정어리를 얹는다.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양념해 바글바글 끓여낸다. 구수하면서도 칼칼하다. 살이 일반 정어리보다 보드랍다. 뼈는 굳이 발라내지 않아도 될 만큼 연하다. 대접에 나온 밥에 넣고 썩썩 비벼서 각종 쌈채소에 크게 싸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호쾌하게 먹어야 맛있다. 고등어쌈밥·정어리쌈밥 1인분 7000원, 제육쌈밥 8000원.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 봉산동 게장골목
- 여수 봉산동 ‘두꺼비게장’의 양념게장.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간장게장이나 양념게장이나 전체적으로 아주 달다. 특히 양념게장은 떡볶이 같다. 식당 여기저기서 밥 더 달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게장이 맛있어서라기보다는, 달고 매워서인 듯하다.
■ 당머리 하모거리
장어라고 통칭하지만 네 가지 정도로 크게 나뉜다. 흔히 구이로 먹는 장어는 민물장어다. 일본말로는 ‘우나기’라고 한다. ‘꼼장어’라고 맵게 볶아서 술안주로 주로 먹는 건 먹장어, 가늘게 회 떠 먹는 ‘아나고’는 붕장어, 일본 사람들이 여름 별미로 치는 ‘하모’는 갯장어이다. 여수에서는 이 모든 장어를 맛볼 수 있다.
당머리 장어거리에서 다루는 건 갯장어다. 당머리에선 갯장어라고 하지 않고 듣기 좋게 ‘참장어’라고 부른다. ‘유비키’와 회 두 가지로 먹는다. 갯장어에는 잔뼈가 많다. 이걸 뼈회를 뜰 때보다 더 촘촘하게 칼집을 넣어서 씹을 수 있도록 해서 회로 먹는다. 이 갯장어회를 샤부샤부식으로 팔팔 끓인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게 유비키다. 육수는 장어 뼈와 대가리, 인삼이나 감초 따위 한약재를 넣고 끓여 만든다. 포실포실 부드럽고 담백한 갯장어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요리법이다. 간장 달인 양념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아쉽게도 지금은 갯장어를 맛볼 수 없다. 모든 가게가 문에 자물쇠를 채워 잠겼다. 햇볕 잘 드는 골목 벤치에서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던 ‘선창가횟집’ 주인은 “하모가 나오는 5월 말부터 여름철에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