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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의 동학사·선암사
동학사 三隱閣 충남도 문화재 자료 59호
선암사 降仙樓 문재·꼿꼿함 엿뵈는 수작
◇동학사 삼은각 편액
◇선암사 누각 편액
석촌 윤용구(石村, 石邨 尹用求·1853∼1937)는 부사를 지낸 윤회선(尹會善)의 아들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서화가이다. 그는 15세에 돈령부(敦寧府) 직장을 지내고, 19세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또한 그는 후에 규장각에 들어가 상대(常帶), 한림(翰林), 대교(待敎), 직각(直閣), 사인부제학(舍人副提學), 이조참의(吏曹參議), 대사성, 도승지 등의 벼슬을 지내기도 했다.
석촌은 글씨와 그림에 두루 능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난죽(蘭竹)과 구양순(歐陽詢) 풍의 해서, 행서, 그리고 금석문(金石文)을 즐겨 썼다. 석촌은 대한제국 수립 후에도 법부, 탁지부, 내무대신 등으로 10여 차례 임명되었으나, 이를 모두 거절하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獐位山) 아래에 기거하면서 시, 서, 화로 여생을 보냈다. 현재 명승고적과 사당, 재실 등에 많이 전하는 그의 글씨는 대부분 벼슬에서 물러나 필묵으로 소일하던 때에 쓴 것인데, 사찰에 남긴 것으로는 공주 동학사 <삼은각>, <인재문>, 순천 선암사 <강선루> 편액 등이 대표적이다.
공주 동학사 삼은각 편액에는 액판 좌측에 ‘윤용구(尹用求)’라는 관지와 도서가 하나 찍혀 있다. 삼은각은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길재(吉再) 등 고려 고려유신의 위패를 봉안한 전각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로 지정돼 있다. 좁은 변죽으로 장식한 편액은 액판 바닥을 흰색으로 칠했는데, 이러한 형태로 보아 일제강점기쯤에 조성된 것이 지금까지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편액의 글씨는 석촌이 쓴 대부분의 글씨와 마찬가지로 수경(瘦勁)한 행서이다.
순천 선암사 일주문 밖의 계곡 옆에 있는 누각에 걸린 <강선루> 편액에는 ‘석촌 윤용구(石邨 尹用求)’라는 관지와 두 개의 도서가 찍혀 있다. 이 편액은 가로 두 개의 쪽판에 새긴 것으로, 1930년 6월 전각을 중수할 때쯤에 석촌의 글씨를 받아 건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역시 석촌의 문기(文氣)어린 수경(瘦勁)한 해행(楷行)으로 그의 꼿꼿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글씨이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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