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 --- 인터넷 논문 (펌)
■ 한국의 사주 명리학
한국의 사주 명리학은 ‘운명 해석학으로서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 명리학은 한 개인 혹은 한 사회집단의 문명을 예측하고자 하는 시도와 노력은 여러 가지로 있어왔다. 흔히 길거리에 ‘동양철학’이라는 간판으로 많이 알려진 사주 명리학도 그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사주이론은 그 근원지인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조차도 수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에는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과 전화를 이용한 ‘온라인 사주’와 ‘오프라인 사주’ 시장을 잠식하는 추세이다.
사주 명리학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 역시 옛날부터 다양하였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한 미신’이라는 사주 부정론과 ‘인간은 결코 자기에게 주어진 사주팔자로부터 절대 벗어 날 수 없다’는 사주 맹신론이 그 양단에서 서있는가 하면 ‘좋은 것은 믿고 나쁜 것은 믿지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등의 선택적 절충론 등이 대표적인 것 들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존재론적으로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운명의 전개에 대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제득하면서 그 ‘보이지 않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사주이론은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숱한 규명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 최초의 유물론적 철학자로서 평가 받고 있는 후한의 지식인 왕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시대의 천재라고 불리었는데 배경이 없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였다. 그런 그는 사주이론의 기본 범주인 음양, 오행, 십간, 십이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상징 부여를 거부했다. 그는 현대사주이론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냉소하는 지식인들, 특히 서구 학문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의 선구자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왕충 조차도 알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서 맥없이 굴복하여 독백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 어떤 것인지 혹은 그것이 어떻게 전개 될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방법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주류를 이루어 왔던 것이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 명리학의 체계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사주 명리학이란 인간이 태어난 해(年)와 달(月)과 날(日)과 때(侍)가 어떤 기운을 갖는 야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시간을 한자문화권에서는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육십갑자로 표기하는 데, 이것을 세로로 쓰기 때문에 글자들이 마치 기둥처럼 보인다. 이때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d육십갑자로 표기하면 4개의 기둥이 되기 때문에 사주(四柱)라고 말한다. 동시에 사주에 사용된 글자 수가 여덟 글자이기 때문에 팔자(八字)라고도 한다, 따라서 ‘사주’와 ‘팔자’는 같은 개념이다.
사주 명리학이란 이 사주팔자 속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추단하는 체계를 말한다. 사주 명리학은 맨 먼저 사람의 년, 월, 일, 시를 간지로 표기한다. 이렇게 육십갑자로 표기된 사주팔자에서 곧바로 인간의 운명이 도출되지 않는다.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십간과 십이지를 음양 및 오행으로 환원하다. 음양과 오행으로 환원시킨 다음, 음양의 조화 여부 및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 등을 살펴서 인간의 운명을 추리한다.
태어난 날짜(자연적 사실)를 음양오행으로 환원시킨 후 그것을 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나다는 것(가치 판단)이 서구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의 오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인간, 이 세가지가 셋이 아닌 하나라는 천지인 합일사상, 즉 유기체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는 사주 명리학에서는 이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사주 명리학 말고도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에는 주역, 별점, 육임점, 자미두수, 기문, 풍수, 관상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 데, 역사적으로 사주 명리학과 풍수학이 그 주류를 이루어 왔다. 따라서 사주 명리학은 ‘시간의 논리’에 관심을 갖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던져진 개개인들의 길흉화복을 점쳐보려 한 것이다.
사주 명리학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사주이론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이 한반도에 수입 되면서 나름대로 변용되었다. 사주 명리학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는 현재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 조차 전무한 상황인 데 현재 부분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신뢰하기가 어렵다.
사주이론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중국의 정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주이론의 기원을 전국시대의 인물에서 찾고 있는 데 현재의 사주이론 체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선구자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수나라, 당나라 때 사주이론 체계가 이미 나름대로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음을 보면, 그것이 수당대에 갑자기 형성된 이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주이론의 기본개념들이 이미 수당시대에 완성되었음은 수서에 수록된 소길 이 쓴 ‘오행대의 5권’이라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소길에 의해 집대성된 사주이론의 기본 개념들은 당대에 이르러 사주이론으로 나타났고 당나라 때 이 사주 명리학의 틀을 만들어 낸 사람은 이허중이다. 이허중이 사주학 발달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허중은 현재 사주학의 기본원리를 이루고 있는 생극제화와 왕상휴수사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허중의 사주 명리학은 현대 사주학과 전체적인 틀은 같으나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현대까지 통용되고 있는 사주학은 이허중보다는 서자평에서 완성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서자평은 년주가 아닌 일주를 기준으로 하고 또, 그 가운데에서 특히 일간의 글자를 중심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글자들은 보조자료로 삼아 팔자를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적중률이 탁월하다.
서자평은 사주팔자를 해독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 수 있으며, 생월, 생일, 생시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으면 인간이 귀천과 수명의 장단 역시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하여 사주와 인간의 귀천이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주 명리학을 ’자평‘이라고도 했다.
서자평의 이론을 계승한 이가 서대승이다. 서대승은 사주 여덟 글자 가운데 인간을 그 사람의 주체로 삼고서 인간의 운명을 해독해야 정확하다는 서자평의 주장을 증명했다. 송대에 현대 사주 명리학이 완성 된 이후도 이론의 발전은 계속되어 원대, 명대, 청대를 거치면서 사주 명리학 내에서 다양한 유파가 경쟁적으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사주 명리학은 수나라, 당나라 때 그 이론의 토대가 갖추어지고 송나라 때 현 사주학의 원형이 형성되었으며, 원나라 이후 청나라 사이에서는 사주이론의 다양한 발전을 보게 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에서 사주 수용은 고려이전, 조선왕조, 해방이후로 나눌 수 있다. 고려이전의 사주 명리학은 중국에서 이미 당나라 때부터 사주 명리학이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충분히 사주 명리학이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으나 기록이 없다.
고려왕조에서는 인간과 한 집안 혹은 사회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학과로서 복학이 잡과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때 복업에 종사하는 관리는 여러가지 관찰에 따라 임금이나 왕실의 운명을 점치었다. 고려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운명예언가는 13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던 오윤부이다. 고려왕조시대에는 오윤부를 통해서 사주 명리학보다는 별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으로 중국에서는 사주 명리학의 체계가 완성되어 다른 그 어느 운명 예측술 보다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고려에서는 사주 명리학이 유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 사주 명리학은 다른 학문들과 함께 고려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에서의 사주 수용이다. 조선 정사에서 사주를 맨 처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태종편에서 당시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비록 고려의 무장이긴 하였지만 그 당시 고려 핵심 실세가 아니었다는 점과 개경이 아닌 변방 함흥에서 살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사주이론이 이미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의 유력자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조선조 잡과시험에 사주 명리학 서적들이 정식 고시과목으로도 채택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왕실에서 ‘사주’가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왕조가 바뀌면서 갑자기 조선왕조의 명과학 고시과목으로 ‘사주 명리학’이 채택 되 수 있었던 것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고려왕조로서는 너무 무력했고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제도와 이념에서 새로운 것들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어서 새로운 과목으로 대체한 조선왕조의 새로운 ‘이념정책’이기도 했다.
또 조선 초기부터 한문과 음양오행설에 정통해야 했던 만큼 관상감 신하 명과학 소속의 전문 기술진뿐만 아니라 당시 학식이 높았던 대신들이 사주 명리학을 수용했다. 그리고 세종임금은 세자의 배필을 정하는 데 사주를 활용했고 정조임금은 세자빈을 정하는 데 사주를 결정근거로 삼았다.
사주는 단순히 한 개인의 운명이나 배필을 구하는 데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 장악의 도구로서 활용된다. 그리고 조선왕조에서는 이 밖에도 사주가 역모사건에 자주 언급되는 데 실제로 역모나 반정을 도모할 때 내세우게 될 주동인물의 사주가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서 고려왕조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으로 주로 별점이 활용되었다면, 조선왕조에서는 사주 명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왕실과 사대부에 국한되었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당사주와 토정비결이다. 이 두 가지는 사주전문가들은 무시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게 심심풀이로 자주 애용되는 방법이다.
해방이후의 사주 명리학은 조선의 멸망과 더불어 공식적인 관학으로서 사주 명리학은 사라지고 사술로 타락되었다. 그 이유는 해방이후 1980년 이전까지 사주학이나 풍수학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적응에 실패한 ‘좌절된 인생’들의 호구지책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주 명리학은 조선조 명과학 관리들처럼 체계적인 교육기관을 통해 습득한 것도 아니었기에 사주 명리학의 수준 역시 지극히 조잡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이들은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한학을 배웠다’느니 ‘큰 뜻을 품고 입산수도 하여 크게 도를 깨쳤다’느니, ‘이인을 만나 사주의 비결을 전수 받았다.’느니 하면서 지신들의 책이나 광고에서 자신들을 소개한 해방이후 우리나라 사회여건상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근에 대학사회교육원과 각종 문화센터에서 인기 있는 강좌 가운데 하나가 ‘사주학’이다. 갑자기 나온 많은 강사들은 특별한 공인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권 교육기관이 배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없어서 사주학의 올바른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강사들이 대학교수라는 명함으로 광고성 책들을 출간하여 현재 일반인들의 사주에 대한 객관적수용을 흐리게 하고 있다.
사이비 술사들과 서술화의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박재완, 박재현, 이석영 등 극소수가 나름대로 해방이후 사주학의 명맥을 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 이후에는 이미 해방이후 합리주의 교육을 받은 이들에 의해 사주가 다시 쓰여 지기 시작한다. 이후 중국서적들이 번역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세대가 ‘전통사상’으로 사주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주 명리학은 또 다른 전개과정을 겪고 있다.
인터넷 시대와 더불어 사주업계도 역시 ‘온라인 사주’와 ‘오프라인 사주’로 나뉘어 지면서 전자가 점차 그 수를 더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사주 관련 사이트는 100여개, 취미 수준의 사주 홈페이지까지 포함하면 10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익명성과 신속성이 있는 ‘온라인 사주’의 수요가 늘기는 하나, 개인이나 한 집단의 중대한 결정을 하려는 이들은 은밀하게 실력 있는 사주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일대일 상담을 하기 때문에, 현재 ‘한국 사주 시장’의 큰돈은 ‘오프라인 사주 전문가’들에게 흘러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주 명리학에 대한 올바른 자리 매김과 학술적 평가, 혹은 이에 대한 비판적 수용 등은 제도권 학계에서 진지한 관심을 보여야 가능하다고 본다.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 혹은 동양철학 등의 학제간의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 한국의 사주 명리학
한국의 사주 명리학은 ‘운명 해석학으로서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 명리학은 한 개인 혹은 한 사회집단의 문명을 예측하고자 하는 시도와 노력은 여러 가지로 있어왔다. 흔히 길거리에 ‘동양철학’이라는 간판으로 많이 알려진 사주 명리학도 그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사주이론은 그 근원지인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조차도 수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에는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과 전화를 이용한 ‘온라인 사주’와 ‘오프라인 사주’ 시장을 잠식하는 추세이다.
사주 명리학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 역시 옛날부터 다양하였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한 미신’이라는 사주 부정론과 ‘인간은 결코 자기에게 주어진 사주팔자로부터 절대 벗어 날 수 없다’는 사주 맹신론이 그 양단에서 서있는가 하면 ‘좋은 것은 믿고 나쁜 것은 믿지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등의 선택적 절충론 등이 대표적인 것 들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존재론적으로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운명의 전개에 대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제득하면서 그 ‘보이지 않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사주이론은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숱한 규명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 최초의 유물론적 철학자로서 평가 받고 있는 후한의 지식인 왕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시대의 천재라고 불리었는데 배경이 없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였다. 그런 그는 사주이론의 기본 범주인 음양, 오행, 십간, 십이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상징 부여를 거부했다. 그는 현대사주이론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냉소하는 지식인들, 특히 서구 학문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의 선구자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왕충 조차도 알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서 맥없이 굴복하여 독백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 어떤 것인지 혹은 그것이 어떻게 전개 될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방법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주류를 이루어 왔던 것이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 명리학의 체계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사주 명리학이란 인간이 태어난 해(年)와 달(月)과 날(日)과 때(侍)가 어떤 기운을 갖는 야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시간을 한자문화권에서는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육십갑자로 표기하는 데, 이것을 세로로 쓰기 때문에 글자들이 마치 기둥처럼 보인다. 이때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d육십갑자로 표기하면 4개의 기둥이 되기 때문에 사주(四柱)라고 말한다. 동시에 사주에 사용된 글자 수가 여덟 글자이기 때문에 팔자(八字)라고도 한다, 따라서 ‘사주’와 ‘팔자’는 같은 개념이다.
사주 명리학이란 이 사주팔자 속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추단하는 체계를 말한다. 사주 명리학은 맨 먼저 사람의 년, 월, 일, 시를 간지로 표기한다. 이렇게 육십갑자로 표기된 사주팔자에서 곧바로 인간의 운명이 도출되지 않는다.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십간과 십이지를 음양 및 오행으로 환원하다. 음양과 오행으로 환원시킨 다음, 음양의 조화 여부 및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 등을 살펴서 인간의 운명을 추리한다.
태어난 날짜(자연적 사실)를 음양오행으로 환원시킨 후 그것을 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나다는 것(가치 판단)이 서구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의 오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인간, 이 세가지가 셋이 아닌 하나라는 천지인 합일사상, 즉 유기체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는 사주 명리학에서는 이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사주 명리학 말고도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에는 주역, 별점, 육임점, 자미두수, 기문, 풍수, 관상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 데, 역사적으로 사주 명리학과 풍수학이 그 주류를 이루어 왔다. 따라서 사주 명리학은 ‘시간의 논리’에 관심을 갖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던져진 개개인들의 길흉화복을 점쳐보려 한 것이다.
사주 명리학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사주이론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이 한반도에 수입 되면서 나름대로 변용되었다. 사주 명리학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는 현재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 조차 전무한 상황인 데 현재 부분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신뢰하기가 어렵다.
사주이론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중국의 정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주이론의 기원을 전국시대의 인물에서 찾고 있는 데 현재의 사주이론 체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선구자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수나라, 당나라 때 사주이론 체계가 이미 나름대로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음을 보면, 그것이 수당대에 갑자기 형성된 이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주이론의 기본개념들이 이미 수당시대에 완성되었음은 수서에 수록된 소길 이 쓴 ‘오행대의 5권’이라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소길에 의해 집대성된 사주이론의 기본 개념들은 당대에 이르러 사주이론으로 나타났고 당나라 때 이 사주 명리학의 틀을 만들어 낸 사람은 이허중이다. 이허중이 사주학 발달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허중은 현재 사주학의 기본원리를 이루고 있는 생극제화와 왕상휴수사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허중의 사주 명리학은 현대 사주학과 전체적인 틀은 같으나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현대까지 통용되고 있는 사주학은 이허중보다는 서자평에서 완성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서자평은 년주가 아닌 일주를 기준으로 하고 또, 그 가운데에서 특히 일간의 글자를 중심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글자들은 보조자료로 삼아 팔자를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적중률이 탁월하다.
서자평은 사주팔자를 해독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 수 있으며, 생월, 생일, 생시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으면 인간이 귀천과 수명의 장단 역시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하여 사주와 인간의 귀천이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주 명리학을 ’자평‘이라고도 했다.
서자평의 이론을 계승한 이가 서대승이다. 서대승은 사주 여덟 글자 가운데 인간을 그 사람의 주체로 삼고서 인간의 운명을 해독해야 정확하다는 서자평의 주장을 증명했다. 송대에 현대 사주 명리학이 완성 된 이후도 이론의 발전은 계속되어 원대, 명대, 청대를 거치면서 사주 명리학 내에서 다양한 유파가 경쟁적으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사주 명리학은 수나라, 당나라 때 그 이론의 토대가 갖추어지고 송나라 때 현 사주학의 원형이 형성되었으며, 원나라 이후 청나라 사이에서는 사주이론의 다양한 발전을 보게 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에서 사주 수용은 고려이전, 조선왕조, 해방이후로 나눌 수 있다. 고려이전의 사주 명리학은 중국에서 이미 당나라 때부터 사주 명리학이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충분히 사주 명리학이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으나 기록이 없다.
고려왕조에서는 인간과 한 집안 혹은 사회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학과로서 복학이 잡과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때 복업에 종사하는 관리는 여러가지 관찰에 따라 임금이나 왕실의 운명을 점치었다. 고려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운명예언가는 13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던 오윤부이다. 고려왕조시대에는 오윤부를 통해서 사주 명리학보다는 별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으로 중국에서는 사주 명리학의 체계가 완성되어 다른 그 어느 운명 예측술 보다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고려에서는 사주 명리학이 유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 사주 명리학은 다른 학문들과 함께 고려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에서의 사주 수용이다. 조선 정사에서 사주를 맨 처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태종편에서 당시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비록 고려의 무장이긴 하였지만 그 당시 고려 핵심 실세가 아니었다는 점과 개경이 아닌 변방 함흥에서 살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사주이론이 이미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의 유력자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조선조 잡과시험에 사주 명리학 서적들이 정식 고시과목으로도 채택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왕실에서 ‘사주’가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왕조가 바뀌면서 갑자기 조선왕조의 명과학 고시과목으로 ‘사주 명리학’이 채택 되 수 있었던 것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고려왕조로서는 너무 무력했고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제도와 이념에서 새로운 것들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어서 새로운 과목으로 대체한 조선왕조의 새로운 ‘이념정책’이기도 했다.
또 조선 초기부터 한문과 음양오행설에 정통해야 했던 만큼 관상감 신하 명과학 소속의 전문 기술진뿐만 아니라 당시 학식이 높았던 대신들이 사주 명리학을 수용했다. 그리고 세종임금은 세자의 배필을 정하는 데 사주를 활용했고 정조임금은 세자빈을 정하는 데 사주를 결정근거로 삼았다.
사주는 단순히 한 개인의 운명이나 배필을 구하는 데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 장악의 도구로서 활용된다. 그리고 조선왕조에서는 이 밖에도 사주가 역모사건에 자주 언급되는 데 실제로 역모나 반정을 도모할 때 내세우게 될 주동인물의 사주가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서 고려왕조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으로 주로 별점이 활용되었다면, 조선왕조에서는 사주 명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왕실과 사대부에 국한되었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당사주와 토정비결이다. 이 두 가지는 사주전문가들은 무시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게 심심풀이로 자주 애용되는 방법이다.
해방이후의 사주 명리학은 조선의 멸망과 더불어 공식적인 관학으로서 사주 명리학은 사라지고 사술로 타락되었다. 그 이유는 해방이후 1980년 이전까지 사주학이나 풍수학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적응에 실패한 ‘좌절된 인생’들의 호구지책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주 명리학은 조선조 명과학 관리들처럼 체계적인 교육기관을 통해 습득한 것도 아니었기에 사주 명리학의 수준 역시 지극히 조잡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이들은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한학을 배웠다’느니 ‘큰 뜻을 품고 입산수도 하여 크게 도를 깨쳤다’느니, ‘이인을 만나 사주의 비결을 전수 받았다.’느니 하면서 지신들의 책이나 광고에서 자신들을 소개한 해방이후 우리나라 사회여건상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근에 대학사회교육원과 각종 문화센터에서 인기 있는 강좌 가운데 하나가 ‘사주학’이다. 갑자기 나온 많은 강사들은 특별한 공인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권 교육기관이 배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없어서 사주학의 올바른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강사들이 대학교수라는 명함으로 광고성 책들을 출간하여 현재 일반인들의 사주에 대한 객관적수용을 흐리게 하고 있다.
사이비 술사들과 서술화의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박재완, 박재현, 이석영 등 극소수가 나름대로 해방이후 사주학의 명맥을 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 이후에는 이미 해방이후 합리주의 교육을 받은 이들에 의해 사주가 다시 쓰여 지기 시작한다. 이후 중국서적들이 번역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세대가 ‘전통사상’으로 사주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주 명리학은 또 다른 전개과정을 겪고 있다.
인터넷 시대와 더불어 사주업계도 역시 ‘온라인 사주’와 ‘오프라인 사주’로 나뉘어 지면서 전자가 점차 그 수를 더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사주 관련 사이트는 100여개, 취미 수준의 사주 홈페이지까지 포함하면 10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익명성과 신속성이 있는 ‘온라인 사주’의 수요가 늘기는 하나, 개인이나 한 집단의 중대한 결정을 하려는 이들은 은밀하게 실력 있는 사주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일대일 상담을 하기 때문에, 현재 ‘한국 사주 시장’의 큰돈은 ‘오프라인 사주 전문가’들에게 흘러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주 명리학에 대한 올바른 자리 매김과 학술적 평가, 혹은 이에 대한 비판적 수용 등은 제도권 학계에서 진지한 관심을 보여야 가능하다고 본다.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 혹은 동양철학 등의 학제간의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출처 : 역학살롱(實戰命理의 場)
글쓴이 : 우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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