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의 역사
중국 고대기록에서 온돌에 관한 기사가 보이는 것은 《구당서(舊唐書)》가 가장 오래된 것인데, 여기에 기록된 고려(고구려를 말함)항에 보면 “겨울철에는 모두 긴 구덩이를 만들어 밑에서 불을 때어 따뜻하게 한다(冬月皆作長坑下然溫火亂取暖)”고 하였으며, 《신당서(新唐書)》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외에 신라와 백제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는 그 풍속이 고구려와 같다고 하며, 신라에 관해서는 “겨울에는 부엌을 집안에 만들고 여름에는 음식을 얼음 위에 놓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것으로 백제에도 온돌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신라도 그 기록이 귀족계급의 생활을 말한 것으로 보아 서민층에 온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 온돌에 관한 옛기록은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대금국지(大金國志)》 《고려도경》 등이 있고, 한국의 것으로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목은집(牧隱集)》 등이 있다.
온돌의 유구(遺構)로서는 선사시대 조개무지발굴에서 발견된 웅기(雄基)의 주거지와 발해(渤海)에 있는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제5궁전지가 있다. 이와 같이 온돌은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 북부 및 중국의 동북부지방에 거주하던 부여족 계통의 민족 사이에서 시작된 것 같다. 그것이 4∼5세기부터 심해진 북방계민족의 남하운동에 따라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실시되니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서도 하층계급 사이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위에서 말한 신 ·구당서에 있는 긴 구덩이[長坑]라고 하는 것이 온돌의 원시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이 어떠한 형태였으며, 또 오늘날 한국에서 사용되는 온돌과 중국 동북부에서 사용되는 캉[年]의 어느쪽에 더 가까운 것인지는 고찰의 여지가 있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를 형성하던 민족의 기거양식(起居樣式)이 옛 기록과 고구려의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좌식(座式)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긴 구덩이란 바닥앉기에 알맞게 만들어진, 오늘날 한국에서 사용되는 온돌에 가까운 것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온돌, 중국에서는 캉 또는 캉촹[年床]이라고 한다. 《구당서》에 기록된 장갱(長坑), 《삼조북맹회편》의 캉 및 갱은 형태를 구별할 수 없으나 송(宋)나라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에는 화갱(火坑)이라 하였고, 한국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난돌(暖왼)이라고 하여 이름이 각각 다르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온돌(溫왼)이라 쓰인 것을 실록(實錄)에서 볼 수 있으나, 같은 실록에서 연돌(烟왼)이라고 쓰인 곳도 있어 초기에는 온돌이라는 이름이 고정되지 않았으나 이것이 고정된 것은 북관기사(北關記事)가 씌어진 19세기 초 이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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