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향기)

[스크랩] 조선4대 임금 세종대왕

장안봉(微山) 2012. 12. 22. 10:58

 

 

세종대왕  
  • 1397(태조 6)~1450(세종 32). 조선 제4대왕. 재위 1418~1450년. 이름은 도, 자는 원정, 시호는 장헌, 능은 영릉. 태종의 3자,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 비는 심온의 딸 소헌왕후. 1408년(태종 8) 충녕군에 봉해지고 1413년 충녕대군에 진봉, 1418년 6월 형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나자 그 대신 세자에 책봉되어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 세종 임금은 우리 역사에서뿐 아니라, 세계 인류 역사에도 드물게 보는 위인이다.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취미와 재능이 여러 방면에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서화에도 뛰어났다. 정사를 보살피면서 독서와 사색에 머리쓰기를 쉬지 않았으며, 의지가 굳어서 옳다고 생각한 일은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기어코 실행하였다. 널리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어려운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져, 국민을 본위로 한 왕도 정치를 베풀었다.
  • 1420년 집현전을 설치, 1421년 도성을 개축하는 한편, 1426년 나이가 젊고 재주 있는 문신을 뽑아 사가독서하게 했고, 이듬해 태배법을 철폐, 1433년 최윤덕을 북변에 보내어 파저강의 야인을 정벌, 1437년 김종서로 하여금 두만강 방면에 6진을 설치하게 했다. 이 밖에 수재, 한발로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휼, 태조의 "경제육전"을 따라 "속육전" 및 "육전등록"을 편찬, 도천법을 설치하여 숨은 인재의 등용에 진력했고, "농사직설"을 편찬 반포하게 하여 농업 발전에 공헌했다.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하여 반포하는 한편 정음청을 두어 유교 전적. 음운서 등의 국문 ㅊㄹ간을 담당하게 했으며, 학문의 장려에 힘쓰면서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고려사", "역대 병요",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 각종 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서적의 간행에 따라 활자, 인쇄술의 개량,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의 동활자가 주조되고 국문 활자도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박연에게 명하여 아악기를 개조하여 고래의 아악, 당악, 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게 했으며, "정대업", "보태평" 등 저명한 악곡을 제작하게 하였다.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일구, 앙부일구, 자격루, 누호, 일성정시의 등 천문 기계를 제작하게 했으며, 고금의 천문도를 참작하여 새 천문도를 만들게 하였다. "칠정산내편", "칠정산외편" 등 역서를 짓게 했고, 측우기를 제작하게 하여 세계 최초로 우량을 측정하게 했다. 농잠에 관한 서적의 간행, 환곡법의 철저한 실시, 조선통보의 주조, 공법의 제정에 의한 전세제도의 확립 등으로 경제 생활 향상에 진력했다. 유학을 장려하는 한편 불교에 대해서 초년에는 종래의 5교, 양종을 '선, 교'의 2종으로 통합 정비하는 등 억압 정책을 썼으나 만년에는 불교를 장려했다. 한편 무비에도 힘써 6진뿐 아니라 압록강 방면에 4군을 설치했고, 군사 훈련, 무기 제조, 성진 수축, 병선 개량, 병서 간행 등에도 힘썼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는 세견선을 허락하는 등으로 회유책을 쓰고, 1419년 비인현에 왜구가 침입하자 도체찰사 이종무를 시켜 그 소굴 쓰시마도를 정벌하게 했으나 다시 본래의 평화주의로 돌아가 쓰시마도 사람들을 위해 삼포를 개항했다. 재위 32년간에 내정, 외치, 문화 등에 크게 기여하여 우리 나라 역대 군주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 세종조는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 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길렀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나아가 겨레 문화를 높이는 데에 기본이 된 훈민정음의 창제, 방대한 편찬 사업, 농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 의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세종 대왕 해적이〉

  • 1397년(태조 6년, 1세) 4월 10일(양력 5월 15일) 한성부 북부 준수방에서 정안군(태종) 이방원과 여흥 민씨(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다.
  • 1408년(태종 8년, 12세) 2월 11일(양력 3월 17일)-충녕군에 책봉되다.
  • 1408년(태종 8년, 12세) 2월 16일(양력 3월 22일)-우부대언 심온의 딸 심씨(소헌왕후)와 혼인하다.
  • 1412년(태종 12년, 16세) 5월 3일(양력 6월 20일)-충녕대군에 진봉되다.
  • 1418년(태종 18년, 22세) 6월 3일(양력 7월 15일)-왕세자에 책봉되다.
  • 1418년(태종 18년, 22세) 8월 10(양력 9월 18일)-근정전에서 즉위 조선조 제4대 임금이 되시다.
  • 1419년(세종 1년, 23세) 6월 17∼29일-대마도를 정벌하다.
  • 1419년(세종 1년, 23세) 9월 20일-고려사를 개수하게 하다.
  • 1419년(세종 1년, 23세) 9월 26일-노상왕 정종이 승하하다.
  • 1420년(세종 2년, 24세) 윤1월 23일-대마도를 경상도에 편입시키다.
  • 1420년(세종 2년, 24세) 2월 22일-강무장을 일정한 장소로 정하다.
  • 1420년(세종 2년, 24세) 3월 16일-집현전의 기구를 확장 궁중에 설치하고, 문신 가운데서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고, 나이 젊은 사람을 택하여 이에 채워서, 오로지 경전과 역사의 강론을 일삼고 고문에 대비하다.
  • 1420년(세종 2년, 24세) 7월 10일-대비 원경왕후가 승하하다.
  • 1420년(세종 2년, 24세) 10월-주자소에서 활자 경자자를 만들기 시작하다.
  • 1420년(세종 2년, 24세) 11월 17일-서이궁이 낙성되다.
  • 1421년(세종 3년, 25세) 1월 30일-유관과 변계량 등이 수교 편찬한 고려사를 올리다.
  • 1421년(세종 3년, 25세) 3월 24일-경자자를 완성하고 인쇄법을 개량하니, 하루에 20배의 능률을 올리다.
  • 1421년(세종 3년, 25세) 6월 9일-신장(訊杖)의 제도를 정하여 태장을 마구 못치게 하다.
  • 1421년(세종 3년, 25세) 10월 27일-원자 향(문종)을 세자로 책봉하다.
  • 1421년(세종 3년, 25세) 12월 22일-사죄 삼복계(死罪三覆啓)의 법을 엄히 하다.
  • 1422년(세종 4년, 26세) 1월 15일-도성을 수축하기 시작하다.
  • 1422년(세종 4년, 26세) 5월 10일-태상왕 태종이 승하하다.
  • 1422년(세종 4년, 26세) 6월 20일-새로 개조한 저울을 중외에 반포하다.
  • 1422년(세종 4년, 26세) 10월 29일-주자를 개주하다.
  • 1423년(세종 5년, 27세) 2월 26일-경성 남산의 봉화대를 축조하다.
  • 1423년(세종 5년, 27세) 9월 16일-조선통보를 주조하게 하다.
  • 1423년(세종 5년, 27세) 12월 24일-정종과 태종 양조의 실록을 수찬하게 하다.
  • 1423년(세종 5년, 27세) 12월 29일-고려사를 개수하게 하다.
  • 1424년(세종 6년, 28세) 2월 7일-주전소를 경상도, 전라도에 두다.
  • 1424년(세종 6년, 28세) 4월 5일-불교의 여러 종파를 선종, 교종 양종 36사로 통합하여 불도를 정하게 닦도록 하다.
  • 1424년(세종 6년, 28세) 6월 8일-환자미의 출납을 철저히 다스리다.
  • 1424년(세종 6년, 28세) 8월 11일-고려사를 수교 편찬 완료하다.
  • 1424년(세종 6년, 28세) 11월 15일-본국의 지지(地志)와 주부군현의 고금 연혁을 편찬하게 하다.
  • 1424년(세종 6년, 28세) 11월 18일-악기도감에서 악기를 제조하다.
  • 1425년(세종 7년, 29세) 2월 24일-악서를 찬집하게 하고, 악기와 악보법을 그리고 써서 책을 만들게 하다.
  • 1425년(세종 7년, 29세) 5월 13일-서강 효령대군 별서의 이름을 희우정이라 짓다.
  • 1425년(세종 7년, 29세) 8월 26일-경기 남양에 옥인(玉人)을 보내어 돌을 캐어 가지고 와서 석경을 고체제대로 만들어 시험하게 하다.
  • 1425년(세종 7년, 29세) 9월 25일-평양에 단군사당을 별도로 세우게 하다.
  • 1425년(세종 7년, 29세) 12월 5일-태조실록을 재필사하다.
  • 1426년(세종 8년, 30세) 8월 15일-춘추관에서 정종실록을 올리다.
  • 1426년(세종 8년, 30세) 12월 3일-속육전과 등록을 편찬 완료하다.
  • 1426년(세종 8년, 30세) 12월 11일-나이가 젊고 장래가 있는 이를 뽑아 사가독서하게 하다.
  • 1427년(세종 9년, 31세) 5월 15일-경기 남양에서 나는 돌로 1틀(12개)의 편경을 만들어 올리다.
  • 1427년(세종 9년, 31세) 9월 4일-종학을 설치하게 하다.
  • 1427년(세종 9년, 31세) 9월 11일-향약구급방을 간행하도록 하다.
  • 1428년(세종 10년, 32세) 11월 29일-육전과 등록을 편찬하다.
  • 1429년(세종 11년, 33세) 5월 16일-정 초 등이 농사직설을 찬술하다.
  • 1430년(세종 12년, 34세) 7월 5일 및 8월 10일-공법(貢法)의 편의 여부를 각도의 수령과 인민들에게 물어 가부의 숫자를 파악하다(우리 나라 최초의 여론조사).
  • 1430년(세종 12년, 34세) 9월 27일-수차(水車)를 장려하다.
  • 1430년(세종 12년, 34세) 9월 29일-주척(周尺)을 바로잡게 하고, 악보를 찬하게 하다.
  • 1430년(세종 12년, 34세) 10월 19일 및 25일-공처 노비 산아 휴가에 대한 법을 정하다.
  • 1430년(세종 12년, 34세) 11월 21일-사람의 등에 매질하는 편배를 법으로 금하다.
  • 1430년(세종 12년, 34세) 윤12월 1일-아악보가 이룩되다.
  • 1431년(세종 13년, 35세) 1월 12일-대소신민의 가사 제도(家舍制度)를 정하다.
  • 1431년(세종 13년, 35세) 3월 17일-춘추관에서 태종실록 편찬을 완료하다.
  • 1431년(세종 13년, 35세) 4월 18일-광화문이 이룩되다.
  • 1431년(세종 13년, 35세) 4월 25일-태조, 정종, 태종실록을 충주사고에 봉안하다.
  • 1431년(세종 13년, 35세) 12월-향약채취월령을 편찬하다.
  • 1432년(세종 14년, 36세) 1월 19일-맹사성 등이 신찬 팔도지리지를 편찬하다.
  • 1432년(세종 14년, 36세) 6월 9일-설순 등이 삼강행실도를 편찬하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1월 4일-황희 등이 산찬 경제속육전을 올리니, 인쇄하게 하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4월-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 등이 파저강 야인 이만주를 토벌하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6월 1일-자성군을 설치하게 하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6월 9일-정초, 박연, 김진 등이 새로 만든 혼천의를 올리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6월 11일-향약집성방을 편찬 완료하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8월 11일-정초, 이천, 정인지, 김빈 등이 혼천의를 올리니, 천체를 관측하게 하고, 이로부터 세종이 세자와 함께 매일 간의대에 이르러서 정초 등과 함께 혼천의의 제도를 의논해 정하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9월 12일-민속 가요를 채록시키다.
  • 1433년(세종 15년, 37세) 9월 16일-장영실이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다.
  • 1434년(세종 16년, 38세) 2월 14일-함길도 관찰사 김종서가 석막의 영북진 백안수소로 옮겨 배설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 종성군을 설치하다. 이리하여 세종 31년(1449)까지 온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 등 6진을 모두 개척하다.
  • 1434년(세종 16년, 38세) 6월 26일-자치통감훈의 편찬에 들어가다.
  • 1434년(세종 16년, 38세) 7월 2일-이천 등이 조판 주조의 법을 개량하고, 새활자 갑인자를 만들다.
  • 1434년(세종 16년, 38세) 10월 2일-처음으로 앙부일구를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다.
  • 1435년(세종 17년, 39세) 9월 12일-주자소를 경복궁 안에 옮겨 두다.
  • 1436년(세종 18년, 40세) 10월 5일-공법(貢法)을 제정하다.
  • 1436년(세종 18년, 40세) 12월-납활자 병진자를 만들다.
  • 1437년(세종 19년, 41세) 4월 15일-주야 측후기인 일성정시의가 이룩되다.
  • 1437년(세종 19년, 41세) 9월 7일 ∼ 16일-평안도 도절제사 이천 등이 파저강 야인을 정벌하다.
  • 1437년(세종 19년, 41세) 10월 20일-경원성과 경흥성을 쌓다.
  • 1438년(세종 20년, 42세) 1월 7일-대호군 장영실이 건설한 흠경각이 이룩되다.
  • 1438년(세종 20년, 42세) 11월-신주무원록 음주가 이룩되다.
  • 1439년(세종 21년, 43세) 7월 3일-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짓게 하다.
  • 1439년(세종 21년, 43세) 8월 6일-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공험진과 윤관의 구성 터를 조사하게 하다.
  • 1440년(세종 22년, 44세) 3월 8일-성혼기를 정해서 남자 16세, 여자 14세 이상으로 하다.
  • 1440년(세종 22년, 44세) 5월 13일-종루가 이룩되다.
  • 1440년(세종 22년, 44세) 7월 27일-대소 신민 제사(第舍)의 제도를 한정하다.
  • 1441년(세종 23년, 45세) 4월 29일-세자가 비가 올 때, 구리를 부어 만든 그릇을 궁중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시험하다.
  • 1441년(세종 23년, 45세) 6월 28일-정인지 등에게 치평요람을 편찬하게 하다.
  • 1441년(세종 23년, 45세) 8월 18일-측우기를 제작 비치하고, 양수표를 세우다.
  • 1441년(세종 23년, 45세) 9월 29일-명황계감이 이룩되다.
  • 1442년(세종 24년, 46세) 5월 8일-측우의 제를 상정하다.
  • 1442년(세종 24년, 46세) 8월 12일-신개, 권제 등이 찬술한 고려사를 올리다.
  • 1442년(세종 24년, 46세) 9월 4일-태조, 정종, 태종의 실록을 수개하게 하다.
  • 1443년(세종 25년, 47세) 1월 7일-성혼기를 재조정하다.
  • 1443년(세종 25년, 47세) 4월 17일-세자(문종)에게 서무를 섭행시키다.
  • 1443년(세종 25년, 47세) 11월 13일-전제상정소를 설치하다.
  • 1443년(세종 25년, 47세) 12월 30일-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다.
  • 1444년(세종 26년, 48세) 2월 16일-언문으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다.
  • 1444년(세종 26년, 48세) 10월 11일-집현전에서 오례의주를 상정하게 하다.
  • 1444년(세종 26년, 48세) 11월 13일-전제상정소에서 전분 6등, 연분 9등의 제도를 정하다.
  • 1445년(세종 27년, 49세) 1월 7일-신숙주, 성삼문, 손수산을 요동에 보내어 운서를 질문하여 오게 하다.
  • 1445년(세종 27년, 49세) 3월 30일-화전, 화포를 개량하니, 천자화포, 지자화포, 황자화포, 가자화포, 세화포의 사정 거리가 배 이상으로 늘어나다.
  • 1445년(세종 27년, 49세) 3월 30일-이달에 치평요람이 이루어지고, 제가역상집이 이루어졌으며, 또 칠정산 내외편을 편찬하다.
  • 1445년(세종 27년, 49세) 4월 5일-용비어천가 10권을 지어 올리니, 주해를 붙여 판에 새겨 발행하게 하다.
  • 1445년(세종 27년, 49세) 10월 28일-의방류취가 이루어지다.
  • 1445년(세종 27년, 49세) 11월 21일-태조, 정종, 태종실록을 춘추관의 실록각, 충주사고, 전주사고, 성주사고에 나누어 갈무리하게 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2월 29일-이달에 환자 분급의 법을 상정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3월 24일-왕비 소헌왕후가 수양대군 제택에서 승하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7월 19일-소헌왕후를 영릉에 장사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9월 상한(양력 10월 9일)-훈민정음을 반포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루어지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9월 27일-새 영조척으로 곡·두·승·홉의 체제를 정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10월 11일-고려사를 다시 교정하게 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11월 8일-언문청을 설치하다.
  • 1446년(세종 28년, 50세) 12월 26일-이과와 이전 취재 때에는 훈민정음도 아울러 시취하게 하다.
  • 1447년(세종 29년, 51세) 2월-용비어천가의 주해가 완성되어 간행하다.
  • 1447년(세종 29년, 51세) 6월 5일-치화평, 취풍형, 여민락 등의 악보를 이룩하다.
  • 1447년(세종 29년, 51세) 7월 25일-석보상절이 이루어져 간행되고, 월인천강지곡이 이루어지다.
  • 1447년(세종 29년, 51세) 8월 30일-새로 숭례문을 짓게 하다.
  • 1447년(세종 29년, 51세) 9월 29일-이달에 동국정운이 완성되다.
  • 1447년(세종 29년, 51세) 11월-신숙주가 사성통고를 편찬하다.
  • 1448년(세종 30년, 52세) 3월 28일-집현전에서 언문으로 사서를 번역하게 하다.
  • 1448년(세종 30년, 52세) 7월 17일-문소전 서북의 공지에 불당을 짓게 하다.
  • 1448년(세종 30년, 52세) 10월 17일-동국정운이 간행되어 반사하다.
  • 1449년(세종 31년, 53세) 1월 4일-전찬(前撰)한 고려사를 다시 수교하게 하다.
  • 1449년(세종 31년, 53세) 1월 28일-고려사의 보수를 춘추관에서 하도록 하고,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 정창손에세 이를 감장하게 하다.
  • 1449년(세종 31년, 53세)-사리영응기를 간행하다.
  • 1450년(세종 32년, 54세) 2월 17일(양력 4월 8일)-세종대왕이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승하하다.
  • 1450년(문종 즉위년) 6월 12일-소헌왕후 심씨가 안장된 영릉 서실에 합장하다.
  • 1451년(문종 1년) 8월 25일-지춘추관사 김종서 등이 고려사를 새로 편찬 완료하다.
  • 1452년(문종 2년) 2월 20일-세종대왕의 신도비를 영릉에 세웠으니, 공조판서 정인지가 비문을 짓고, 안평대군 용이 전액을 썼다. 지금은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 앞뜰에 있다.
  • 1452년(문종 2년) 2월 22일-세종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하다.
  • 1452년(단종 즉위년) 11월 28일-고려사를 인쇄하게 하다.
  • 1454년(단종 2년) 3월 30일-춘추관에서 세종장헌대왕실록을 편찬 완료하다.
  • 1455년(단종 3년) 중춘-홍무정운역훈을 간행하다.
  • 1469년(예종 1년) 3월 6일-영릉을 여흥부치(지금의 여주)의 북쪽 성산의 남향한 언덕에 천안하다.

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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