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벌왕릉(경북 기념물 25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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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사벌왕릉(傳 沙伐王陵) 전경 |
사벌국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위치하였던 삼한 소국 중의 하나로, 일명 사량벌국이라고도 한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나라는 본래 신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점해왕 때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귀속하였다 한다. 그러자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사벌주를 설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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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벌왕릉은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묘역 입구 좌측에 비각/삼층석탑/사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그 뒤 신라 54대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다섯 번째 왕자인 언창이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어 사벌국이라 칭하고 11년간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 뒤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을 받아 929년 패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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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 계단 좌측에 위치한 사적비/신도비 모습 |
상주지방에서는 B.C 3∼2세기 이래의 청동기 유물이 다수 출토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경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찍 발달된 정치집단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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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벌왕릉 모습 |
사벌왕릉과 관련해서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아래의 내용이 있어서 발췌하였습니다.
"아래 내용들은 문헌상의 자료 일 뿐이다. 문헌은 어느 사람의 기준이냐에 따라서 먼 고대사를 상당히 유리하게 왜곡시킬 수도 있으므로 참고로 삼아 기록을 할 뿐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상당한 과학적 연구조사가 선행되어야만 할 것 같다. 본래 상주 지역은 전쟁이 많은 곳이라 전해오는 문헌은 거의 없다.
다만 입으로 구전되어 오는 내용을 그 지방 토착민이 아닌 떠돌이(예, 관리, ,.. )들이 지나가면서 더듬다가며 한소리를 늘어놓은 류의 것뿐이다. 시기적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상산 김씨의 선대의 기록도 누락된 상황에서 고려와 조선 초기에 조용하다가 떠들고 있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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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측면에서 바라 본 사벌왕릉 |
학설 1 상주군 사벌면 화달리 둔진산(屯鎭山) 동족 기슭에 사벌왕릉(沙伐王陵)이라 전하는 고분이 있다. 옛 기록에는 사벌국고성(沙伐國古城)이 병풍산에 있으며 성 옆에 높다란 언덕이 있으니 옛부터 사벌왕릉이라 전해 온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정사(正史)의 기록에는 없다.
1923년판 상산지(商山誌) 신본에 의하면 사벌왕릉이 사벌촌 서편 수백보 떨어진 둔진산에 밑에 있는데, 상주목사 이초노(李楚老)에게 사벌왕이 현몽(現夢)하여 능을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봉축(封築)을 크게 보수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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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분 앞의 능비 모습 |
일제 강점기때 출판된 조선보물고적 조사자료에는 <사벌면 화달리에 사벌왕릉이 있고, 전면에 망주석, 양마석, 등대석, 비석 등이 있다. 고분의 높이는 9척5촌, 직경 9간이며, 사벌왕은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5자로서 상산박씨의 시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무덤의 현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벌국 약사(略史)에는 <신라 54대 경명왕이 왕자 언창을 사벌군으로 책봉하고, 방어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사벌주를 지키게 했다. 그는 사벌동에 본부를 두고 긴요한 곳에 성을 쌓아 방비를 강화해서 적을 막았다. 사방으로 적침을 받아 신라의 원병도 두절되고 경명왕 2년사벌국을 세우고 자칭 왕이라 하여 사벌동에 도읍을 정하고 11년간 싸우다가 패망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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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역내 장명등과 문인석 모습 |
신도비(1954년 건립)에도 박언창,이초노,왕활교(王活橋)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특히 사벌왕묘(沙伐王墓)라고 쓴 석편(石片) 지석(誌石)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제 기록을 상고해보면 전 사벌왕릉(傳 沙伐王陵)은 옛 성읍국가시대의 사벌왕릉이 아니고, 신라 경명왕자 언창이 사벌군으로 상주에 와서 사벌국을 세워 후백제와 싸우다가 패망했는데 그의 무덤인 것이다. 여기에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동국여지승람이나 상산지 구지(舊誌)에는 사벌왕릉이라 전해진다고만 했지 어느 무덤인지는 지적하지 않고 있다.
둘째, 사벌국사(沙伐國史) 발초(拔抄)에도 왕릉에 관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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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역내 석물 모습 |
세째, 사벌국약사(沙伐國略史)에서 능전(陵前)에 있는 석탑 속에서 나왔다는 사벌왕묘(沙伐王墓)라는 지석의 기록이 왕의 휘자(諱字)가 없으므로 그것을 사실이라 믿고자 하더라도 누구의 능인지 확인할 수 없다.
넷째, 사벌이라는 호칭은 고려나 조선대에는 지명으로 사용한 일이 없고 1914년 1월1일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종래의 외북면, 대평면, 중북면 등을 합하여 사벌면으로 호칭하게 된다.
다섯째, 상주목사 이초노에게 현몽하여 비로소 왕릉임을 확인하고 있으나 꿈을 사실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으로 보아 세칭 사벌왕릉은 어느 분의 무덤인지 역사가 흐름에 따라 전기 또한 소루하여 상고하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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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벌왕릉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김성옥씨는 사벌왕릉이 상산박씨 시조 박언창의 무덤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신라 제4대 왕의 무덤으로 주장한다. 현지명을 중심으로 신라의 건국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그는 신라의 건국(BC57)은 서나벌(徐那伐, 서울)에서 시작되어 청주,보은을 거쳐 상주로 이동해 왔는데 상주 도읍시기를 AD67~100년으로 약 30년간으로 보고 있다.
그 뒤 의성을 거쳐 AD101년에 월성에 도착하는 이동시간을 157년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서 경주까지 이동해간 집단은 박씨이기 때문에 경주에 선주한 석씨 집단(昔氏 集團)과 만난 것은 경주로 진출한 AD94년 이후로 보아야 하므로 AD80년에 죽은 석탈해왕이 석씨의 시조는 될 수 있어도 신라의 4대왕은 될 수 없다.>는 학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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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역 좌측 권역에는 근래에 지은 듯한 사당과 재실이 있습니다. |
학설 2 . 본래 사벌국[일전(一傳) 사불(沙佛)]인데 신라 첨해왕(沾解王)때 빼앗아서 주州로 만들었다. 법흥왕이 상주(上州)로 고치어 군주(軍主)를 두었고, 진흥왕이 상락군으로 고치었고 신문왕이 다시 주로 만들었으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치었으나 혜공왕이 다시 사벌주로 만들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고 또 고적쪽에 보면 <사벌국고성 병풍산 아래 있다. 성 옆에 높고 둥근 구릉이 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를 사벌국의 왕릉이라 한다. 그리고 신라 말년에는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가 이 성에 웅거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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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117호인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이 사당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또한, 삼국사기에서 <유례이사금 시대에 벌써 사벌국이 신라의 영역이 되어서 사벌주를 칭하게 되었다. >는 기록으로 보아 사벌왕릉이라 볼 수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잡기 어렵다. 사벌면 화달리 둔진산 남쪽 기슭에 사벌국왕지릉이라는 거대한 고분 1기가 있다.
능의 높이는 4m, 둘레는 47m이며, 능 앞의 비갈(碑碣)에 <사벌국왕지릉>이라 음각하고 뒷면에 <광서팔년임오칠월일>이란 명문이 있으니 이것으로는 1882년(조선 고종 19)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비갈 앞에 향로대가 놓여 있고 좌우에 석수와 인물상 및 망주석이 각각 1좌씩 배치되었고 가운데 석조 장명등 1기가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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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 전경(숭의각 안의 영사전 모습) |
능 우측 앞에 <사벌왕신도비>와 <사벌국사적비>2기가 보호각 안에 세워져 있다. 사벌왕 신도비는 화강석으로 귀 부위에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웟다. 기두와 네발은 돗식적이고 귀갑문은 육각형으로서 예모습은 달랐다. 항면에는 단엽의 연화문을 조각하였으며 타원형의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금수도사방측면에 운룡과 화문으로 조각하였고, 비신도 전후면에 계서로 기록하였다. 또한, 옆 자리에 사벌국왕릉사적비가 신도비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 1981년에 세우고 두칸의 맛배지붕으로 보호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
전 사벌왕릉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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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왕릉 좌측에는 사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소재지 : 경북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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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우측 상단 부분에 사벌왕릉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상주시청과 상주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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