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공 아곡 박수량(貞惠公 莪谷 朴守良)
1491(성종 22)∼1554(명종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태인(泰仁). 자는 군수(君遂). 전라남도 장성 출신. 문아(文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손(賢孫)이고, 아버지는 종원(宗元)이며,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김개(金漑)의 문인이다.
1513년(중종 8) 진사에 합격하고, 이듬 해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광주향교(廣州鄕校)의 훈도로 취임했다가, 다음 해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로 옮겼다. 이어 전적(典籍)·예조좌랑·정언(正言)·충청도도사 등을 거쳐, 1522년에 지평(持平)이 되었다.
1525년 양친을 봉양하기 위해서 고부군수로 나갔다. 1528년에 부친상을 치르고 이어 헌납(獻納)·장령(掌令),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사도시부정(司寺副正) 등을 역임하였다. 1531년 어머니 봉양을 위해 사성(司成)을 사퇴하고 보성군수로 나갔다가, 이듬 해 사예(司藝)가 되었다. 이어 사성·내섬시정(內贍寺正)·군기시정(軍器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1534년 함경도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지방 관서를 순시하던 중, 안원보(安原堡)·권관(權管)·전주남(全周男)이 야인들에게 임의로 우마(牛馬)를 준 사실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가 투옥되었다. 1536년 승문원판교 겸 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고, 이어 통정대부로 승진해 병조참지·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수찬관(修撰官)을 지내고 좌승지로 옮겼다. 이어 가선대부로 승진해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나주목사로 기용되어 찰리사(察理使)를 겸했고, 전위사(餞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였다. 1537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이어 한성부판윤·동지중추부사·공조참판·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또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 담양부사로 나갔다가 1542년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벼슬을 사양하다가 1546년(명종 1)에 다시 상호군(上護軍)에 나아가 곧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자헌대부로 승진해 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50년 우참찬에 임명되어 지경연의금춘추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하였다. 이듬 해에는 경기도관찰사를 겸임했고 숭록대부로 올랐다. 1552년에 우참찬을 비롯, 호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554년에 지중추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주세붕(周世鵬)과의 교유가 깊었으며 사람됨이 간중신밀(簡重愼密 : 곧으면서 신중함)하고 예법을 잘 지키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30여 년의 관리 생활에서도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결백해 청백리에 뽑혔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아곡 박수량 신도비-우측 계단으로 오르면 묘소가 있다
정혜공 아곡 박수량 신도비
정혜공 아곡 박수량 묘소 전경
박수량 백비-전,후면에 아무 글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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