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滴天髓摘要 體用論<?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o />
★ 八字術, 體用 完成
1. 八字에서 日干을 體로 본다면 月支가 用이 된다.
□體□□
□□用□
‘子平眞詮’ 論用神에 이르길, 八字用神專求月令이라 했다. 즉 八字의 用神은 月令을 떠나 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月支는 格局이 되므로 ‘格局은 곧 用神’이라 할 수 있다. 후대에 이 대목을 두고 논쟁이 일었다.
“用神을 어찌 月令에서만 구할 수 있는가”하는 반론이 요지다. 用神은 八字, 여덟 글자 중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데, 原典을 제대로 解讀(해독)하지 못하는 부류들이 月支의 글자 하나에만 얽매여 올바른 用神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국내에 이미 소개된 鮑黎明의 ‘앞서가는 中國命運學’을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體用의 분할은 八字 元局에서 日干을 體로 놓고, 정해진 用을 말한다.
鮑黎明이 후대 인사들의 원서 독해력까지 언급하며, 급기야 제 스스로 ‘子平眞詮’의 原詩를 곡해한 사연은 體用 분할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鮑씨는 ‘徐樂吾’를 전혀 엉뚱하게 옹호한 셈이다.
2. 命式을 體로 본다면, 用神이 用이 된다.
적어도 ‘徐樂吾’는 體用 분할의 準據(준거)를 분간했다. 이를테면 體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用이 달라지는 당연한 결과를 이해 했다.
결론적으로 鮑가 언급한 用神은 八字 元局을 體로 놓았을 때, 이에 대비되는 扶抑用神이고, 古書 일반이 거론한 用神은 日干을 體로 놓았을 때 格局이 되는 月支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體神에 따라 변하는 게 用神이다. 格局이며 用은 用神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3. 命式을 體로 보면, 用은 몇 가지로 구분된다.
八字를 體神으로 보면, 用神은 ‘扶抑用神’ 하나로만 정의되는 게 아니다. 가령 ‘子平眞詮’이 말하는 ‘相神’도 用이 된다.
또 八字의 氣候를 위주로 살펴 취하는 ‘欄江網’의 調候用神도 用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八字가 體라면 大運을 用의 영역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이중 특정한 글자를 지칭하는 ‘扶抑用神’과 ‘相神’, ‘調候用神’은 각기 의미와 용법을 달리 하므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八字의 格局을 成格시키는 글자로, 格局의 貴賤을 좌우 | |
調候用神 |
八字의 氣候를 완성시키는 글자로, 格局의 高低를 좌우 |
扶抑用神 |
八字의 균형과 발전 가능성을 암시하는 글자로, 格局의 貴賤을 판정하는데 고려되는 성분 |
體用 일반에서 ‘徐樂吾’의 실수는 格局의 貴賤을 가르는 글자로 ‘扶抑用神’을 포커스로 삼은 데 있다. 혼동의 원인은 다음 ‘子平眞詮’의 두 구절이 제공한다.
八字用神專求月令
八字中擦其旺弱喜忌, 或扶或抑, 卽以扶抑之神爲用
原詩의 두 번째 대목은 “八字 가운데 그 旺, 弱, 喜, 忌를 가려서 혹은 扶助하고 혹은 抑制한다. 즉 扶抑의 神으로 用神을 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前者의 月令之神만을 用神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扶抑用神으로 格局의 貴賤을 가리면 그만일 것을 굳이 相神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주의다.
이것은 한마디로 體用 분간의 기준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현상으로 ‘子平眞詮評註’에서 해설상의 빈번한 오류를 낳게 되었다.
原文의 ‘八字用神專求月令’이란 日干이 體神으로 보았을 때고, ‘或扶或抑卽以扶抑之神爲用’은 八字 元局 자체를 體神으로 정했을 때의 얘기다.
透派의 體用論은 특별히 취할 게 없다. 그저 命式를 體로, 行運을 用으로 구분하는 일반적 입장만을 피력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命理學史의 구분은 體用論의 발전사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므로 透派를 독보적 門派로 인정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반면 ‘徐樂吾’는 命理의 획을 긋는 존재로 명성을 굳혔다. 종래의 體用法에서 한결 진화된 體用 분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의 主賓論(주빈론)은 분명 이전에 비해 한 단계 상승한 대목이다. ‘滴天髓補註’에서 스스로 자부한 主賓의 개념으로 설명한 體用의 도해는 다음과 같다.
▪ 體(格局) - 日干은 ‘體의 體’, 月令은 ‘體의 用’이다.
▪ 用(用神) - 用神은 ‘用의 體’, 喜神은 ‘用의 用’이다.
그는 格局을 體로 놓고, 이것을 다시 體用으로 분할해서, 古書 일반이 정의하는 用神, 月令之神과 자신이 정의하는 用神, 扶抑之神(扶抑用神)이 상치되지 않도록 논리의 틀을 세웠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바로 相神의 존재다. ‘子平眞詮’의 이론 체계는 이미 八字, 體神의 범주 내에서 體用의 변수를 모두 확장시켜 놓고 있었다.
‘體의 用’은 ‘體(日干)의 用(月令)’이기도 하고, ‘體(格局 : 月令)의 用(相神)’이 되기도 한다. ‘徐樂吾’는 끝내 相神과 扶抑用神을 선명하게 구분해서 운용하는 八字術을 구사하지 못했다.
결국 최근까지 가장 발전된 ‘徐樂吾’의 體用 수법은 功과 過로 남았다. 따라서 ‘徐樂吾’의 主賓論(주빈론)에서 한층 더 세분화된 體用論이 命理學의 신기원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 子平 3대 텍스트 體用 분할
體神 |
用神 |
體用 分割 |
體의 體 |
體의 用 |
用의 體 |
用의 用 |
子平眞詮 |
格局 |
相神 |
|
|
欄江網 |
月別 日干 |
十干 喜用 |
|
|
滴天髓 |
日干 |
月令 |
扶抑用神 |
扶抑喜神 |
子平眞詮 |
八字와 大運 |
歲月 |
欄江網 滴天髓 |
八字 |
大運과 歲月 |
4. 原詩의 ‘在扶之抑之得其宜’ 體와 用의 관계가 일반적으로 扶抑의 조율로 화목해지는 이치를 뜻한다.
摘要 「SUMMARY」
1。 對於「日干爲體, 月支藏干爲用」之論法, 不應斷定爲錯誤,
反而是最敎科書式之看法。 看來, 實際上, 當時較無使用,
現代一般術士所用的用神之槪念--扶抑用神。
2。 近賢徐樂吾之看法, 「格局爲體, 用神爲用」, 較容易了解,
但有關<子平眞詮>「八字用神, 專求月令。」之解釋, 較有所勉强。
故爲了克服之, 近賢徐樂吾提出了一個非常獨特之理論係統,
則對於格局與用神, 賦予主客之互應槪念,
結果發揮使自己理論附合於古書內容之天才性。
* 體(格局) - 日主爲「體之體」, 月令爲「體之用」
* 用(用神) - 用神爲「用之體」, 喜神爲「用之用」
則, <子平眞詮>所云之「月令用事之神」爲, 體(日干)之用, 與現代之扶抑用神(用之體), 有所不同, 但也可以稱爲「用」, 故可謂相當有彈性之理論。
反正, 近賢徐樂吾之前的「用」, 乃指「月令用事之神」之月支, 現代所謂之
「用」, 一般爲「輔助救應之神」之槪念。因<淵海子平>、<三命通會>、
<子平眞詮>等古書裏, 並無有關扶抑用神之解釋, 故我們可以如此類推。
之後, 先賢任鐵樵之<滴天髓闡微>或先賢陳素庵之<命理約言>裏, 有關
「用」之槪念, 與之前有所變化, 但扶抑用神之係統, 由近賢徐樂吾定立,
並對於現代推命家, 産生了極大影響。如今我們一般所用之用神槪念,
爲近賢徐樂吾之「扶抑用神」。
3。 體-命造, 用-行運
此一觀點, 以便捷性爲主, 規定了體用, 不能說爲錯誤。
但, 須考慮是否附合<滴天髓>原文之本意。値得注意的是,
先賢張耀文之體用槪念爲, 完全劃分, 而互相對立之個體。
因近賢徐樂吾之體用, 有時會發生體用爲一體之情況--例如,
正官格用正官時--, 爲了避免如此之情況, 先賢張耀文提出了,
不可成爲一體而完整的體用槪念。
4。 事實上, 「體用」爲命學界永遠不休之話柄。
非常明確的一點爲, <滴天髓>雖並重體與用, 但嚴密說來, 較注重「體」。
依此可以分別, 忠誠於古書之學術派, 與基礎不穩之九流術士。
例如, 不取正確的用神字(一般爲天干之一字), 而只着重於五行之生剋制化,
分喜神群與忌神群, 而特別重視行運, 則必定屬於後者。
若爲命學大師, 應採用, 先重視體(日干、原命)之觀法。
★ 體用과 四期 現代命理學
命理學史는 최근까지 古法과 新法, 그리고 ‘徐樂吾’ 이론체계를 주종으로 하는 現代관법의 三期로 구분되어 왔다. 이것은 곧 體用의 분할 논리와 일치한다.
근자에 ‘徐樂吾’의 體用論이 간과한 점과 古書 일반의 이론체계를 융합하는 저술을 통해 새로운 體用 분할의 실마리를 제공하였으므로, 命理學史를 종래의 삼분법에서 사분법으로 정리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古法, 神法, 近世, 現代로 구분하고 韓國에서 命學의 서막을 연다고 생각하면 옳다.
문패만 갈아 치운다고 해서, 혹은 최근에 출간된 카피물이라 해서 무조건 ‘現代’라는 간판을 내건다면 말이 안 된다. 독창적인 내용이라 해도 體用論과 같이 근간이 되는 이론체계의 선명한 구분과 발전이 따라야 ‘新’을 논할 수 있다.
아래 古書 이론의 리뷰와 새로운 이론체계를 소개하는 의미에서 ‘欄江網 마스터리’의 도입부에서 언급하는 體用法을 인용해둔다.
▪ 八字와 大運, 歲月의 體用法
내가 그 동안 여타의 저술과 통신 매체를 통해 수회 설명한 바 있지만, 오늘날 인사들이 東洋術學의 근간이 되는 命理를 잘 모른다고 했다.
많은 先學들과 後學들이 고전을 답습하고 재해석하여 이론 체계를 세웠지만, 우선은 體用의 이론부터 분명하게 분간해서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八字學의 학문적 원칙과 학습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현실이다.
가령 ‘欄江網’이나 ‘子平眞詮’이 주로 쓰는 用의 개념은 格局을 成格시키는 핵심이 되는 글자로, 이것은 거개 八字에 이미 존재하는 神을 말한다.
즉 八字에 존재하지 않는 글자로서의 用은 별반 의미가 없기 때문에 결국 體神의 영역에서 이미 일차적인 貧富貴賤이 설정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後代에 이르러 비록 八字에 없는 글자라 해도 運에서 이를 구할 수 있다면, 命에 없는 것을 능히 보완할 수 있다고 思惟(사유)했다.
더욱이 大運이 아닌 歲月에서 조차 用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을 몹시 유용하게 여겼다.
이러한 바는 한마디로 體用을 전혀 분간하지 못하는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八字(體)에서 用이 되는 五行의 글자와 歲月에서 유용한 五行의 글자를 동일시하는 관법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이른바 八字의 强弱을 조율하는 扶抑用神의 글자는 그것이 八字(命式) 內에 있거나, 혹은 歲月에서 보거나 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喜神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이 같은 近世의 시각은 後代에 주해된 古書들의 眞價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테면 食神格의 命式은 八字에서 財나 殺을 보아야 食神生財나, 食神帶煞로 格局이 成格된다.
만약 八字에 財와 殺이 없거나, 혹은 財殺을 동시에 본다면 이것은 여지없이 破格이 되어 無用하거나 평범한 격에 불과해지고 만다.
이와 같이 月令에 의해 格이 정해지면 五行의 理法에 의해 格局을 成格시키는 중요한 글자를 用이라 했고 ‘子平眞詮’은 이를 相神이라 했다.
相神이란 한마디로 格局을 완성시키도록 돕거나 기여하는 글자를 말하는데, 이것을 두고 八字의 强弱을 가려 균형을 도모하는 喜神의 글자와 동일시하면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沈孝瞻을 위시한 당시의 대다수 先學들이 인식한 體用의 구분은 다음과 같다.
用神 | |||
體의 體神 |
體의 用神 |
用의 體神 |
用의 用神 |
日干 |
月支 |
相神 |
喜神 |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子平眞詮’, ‘論食神’에서 인용한 ‘謝閣老(사각노)’의 八字를 살펴보겠다.
神 |
體 神 |
相 神 |
|
庚 |
戊 |
壬 |
己 |
申 |
子 |
申 |
未 |
申月 戊土 生으로, 時干에 庚金이 透하여 用神, 食神이므로 食神格이다. 食神格은 財를 보아야 格局이 成格되므로 壬水 相神을 보아 貴格이 되었다. 이 八字는 食財가 强하여 한눈에 身弱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扶抑用神을 정한다면 응당 年干의 己土를 주목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일반 古書가 말하는 用神과 相神, 그리고 後代에 유행하는 扶抑用神이 각기 다름을 분명하게 인지했을 것이다.
만약 이 八字가 財星 壬을 보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貴는 현저하게 훼손된다. 이때 제한적으로 貴를 보완하려면 大運에서 壬癸의 財運을 기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大運에서 희구하는 壬癸는 扶抑喜神群이 아닌, 格局을 成格시키는 相神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데 大運에서 조차 壬癸의 財를 보지 못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歲月의 流年에서 그것을 기대하면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歲月의 流年은 大運과 의미 자체를 달리 한다.
大運은 八字와 마찬가지로 體身의 범주에 속하지만, 歲月의 流年은 體神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歲月에서 기뻐하는 글자는 扶抑用神 己土와 이를 보조하는 丙火 喜神을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徐樂吾에 의해 규격화된 扶抑用神은 정작 중요한 體身의 영역에서는 별반 효용성이 없는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徐樂吾는 扶抑用神의 중요성을 體用의 정확한 구분 없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의미를 확대했다. 이것이 곧 徐樂吾 관법의 중대 오차라 할 수 있다.
따라서 徐樂吾는 사각로의 命式에서 己土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食神生財’의 格局은 日元의 소모가 심하므로 필시 身强함을 요하니, 劫財 己土야 말로 貴를 결정짓는 중요한 用神의 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沈孝瞻은 분명 壬水를 필수적으로 주목했다. 徐樂吾가 인식하는 喜神은 大運과 歲月의 구분 없이 土나, 이를 生하는 火의 글자가 되지만, 沈孝瞻이 뜻하는 喜神은 大運에서 土의 財運을 말한다. 이렇게 18세기와 20세기의 命理學家들은 體와 用의
거시적인 구분 틀 자체를 달리 했다.
18세기 전후
用 | ||
八字 |
大運 |
大運 |
20세기 무렵
用 | ||
八字 |
大運 |
歲月 |
위와 같이 宋代와 明代, 淸代에 이르는 子平의 전성기인 18세기 무렵에는 歲月, 즉 매년의 成敗와 喜氣에 대한 관법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된 바가 없다.
반면 20세기 近代의 子平學은 大運과 歲月의 用法이 體와 用으로 구분되지 않고, 다 같은 用의 運 영역에서 주로 扶抑法의 틀로 喜忌와 成敗를 조율하는 관법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喜神의 의미도 18세기 경에는 大運의 영역에서 相神의 역할을 하는 五行의 글자를 의미했지만, 근대에는 大運과 歲月의 구분 없이 扶抑之神이 主가 되는 喜神으로 정의되었다.
결론적으로 무엇이 옳은가. 일단은 18세기 무렵의 논리가 옳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근대의 관법은 體用의 분간에서 이전과 같이 명료한 체계로 구성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徐樂吾는 ‘滴天髓補註’에서 기존의 先學들이 명확하게 분별하지 못한 體用의 구분을 확실하게 기했다고 스스로 자부한 학자다.
아마도 命理學史에서 가장 치열한 학습을 수행한 이로 樂吾大師만한 인물을 찾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그는 기존의 體用論을 主賓論(주빈론)으로 다음과 같이 도해하면서 자신의 命理를 완성시켰다.
用[賓] | |||
體의 主 |
體의 賓 |
用의 主 |
用의 賓 |
日干 |
月支 |
用神 |
喜神 |
이만하면 꽤 면밀한 구분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그는 用神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用의 영역에서 주체가 되는 扶抑用神으로 명확한 정의를 기했다.
이것은 실로 命理學史에서 혁신적인 분기가 된 이론체계다. 따져보면 徐樂吾 이전에는 扶抑用神이라는 용어는 쓰이지도 않았고, 그 개념이 불분명했다.
그런데 徐樂吾가 이토록 자신 있게 八字(命)와 大運(運), 歲月(歲)을 포괄하는 전 영역에 걸쳐 扶抑用神의 글자 하나로 喜忌를 판독하는 독창적인 논리를 구사한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그가 八字學의 新法 시대로 분류되는 기본 텍스트와 그 이전부터 존재한 古法의 이론을 모두 수렴하는 과정에서 體用의 분별이 혼동되었기에 몹시 치밀한 과정을 거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體와 用의 구분이 八字(命式)와 運(大運과 歲運)으로 분리되는 모순을 초래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응당 이전에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여겨지던 相神의 존재는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子平眞詮’에 相神은 응당 八字의 體神에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大運에서 보아 敗中有成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相神은 근본적으로 八字와 大運의 體神 영역에서 존재해야 의미가 있지만, 徐樂吾의 扶抑用神은 體神에 있지 않아도 의미가 충분하다.
이와 같이 徐樂吾는 用神의 의미를 확정하기를 ‘八字에서 가장 유용한 五行의 喜神’으로 格局을 成格시키는 相神의 글자보다 八字의 균형을 도모하는 扶抑之神의 글자를 더욱 중요한 개념으로 결론지었다.
가령 通關用神 같은 경우에는 八字에 해당 五行의 성분이 아예 없어도 괘념치 않는다.
그렇다면 徐樂吾는 相神 자체를 부정했을까. 이 부분에서 그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體에 속하는 相神을 用에 속하는 扶抑喜神과 동일한 개념으로 뭉뚱그렸다. 그는 ‘子平眞詮評主’에서 相神과 扶抑喜神이 일치하는 命例에 한해서는 별 다른 異見을 제시하지 않으나, 그것이 다를 경우에는 매번 原文의 설명에 의문을 달아 註解했다.
가령 食神格이 財를 보면 身弱해지기 쉬우므로 필시 身强格을 이루어야만 貴命이 된다는 식으로 부언했다.
즉 劫財나 印綬가 透出하지 않은 食神生財로 成格되는 경우는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엄밀히 原書의 본뜻에 위배되는 관점이다.
원래 八字學은 4세기 경 珞祿子(낙록자)의 消息賦(소식부)이래 200년간 口傳되어 온 命理의 氣學 체계가 8세기 경 李虛中命書로 집약되었고, 이후 300년이 지나 宋代徐子平에 의해 八字命理의 理法 체계가 정리된 것이다.
徐子平 이후 沈孝瞻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新法 시대라 하고, 李虛中 이전을 古法 시대라 한다.
沈孝瞻 이후 200년 정도의 갭이 존재하고 20세기에 이르러 徐樂吾가 子平의 3대 텍스트를 집약, 주해한 시점부터 최근에 이르는 시점까지를 보통 近代 命理學의 시대로 규정한다.
흥미롭게도 고법에는 命과 運, 그리고 歲로 體用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서책들이 주종을 이루는데, 新法에는 歲를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新法의 취약성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 ‘滴天髓’가 이 점을 보완한 완벽한 텍스트의 모양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나 압축, 정제되어 그 奧義(오의, 심오한 뜻)를 온전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있다.
이후 清代에 이르러 ‘命, 運, 歲’의 體用 모두를 포괄해서 古書를 해설한 주목할만한 命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가령 任鐵樵의 滴天髓闡微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는 ‘滴天髓闡微’에서 비교적 歲月의 用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나, 體用 일반 법칙에서 혼동을 범한 흔적이 완연했다.
徐樂吾는 종래의 命書가 體用 두 글자를 제대로 분간하지 않았음을 인지했고, 이를 극복하려 몹시 애를 썼다.
그리고 그 단서를 ‘滴天髓’의 ‘體用論’에서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즉
“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得其宜” ‘要在扶之抑之得其宜’
즉 “扶助하고 抑制하여 마땅함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에서 확신을 더한 셈이다.
이 말은 매우 합당한 이법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扶助하고 抑制하여 마땅함을 얻는 이치 또한 體用을 구분하여 적용하는 이치를 간과했을 법하다.
까닭에 ‘滴天髓闡微’와 ‘滴天髓補註’는 얼핏 大同小異한 내용을 다루는 것 같지만, 정밀하게 살펴보면 體用의 분별에서 後者가 훨씬 선명한 논리를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이 바로 徐樂吾의 비교 우위라 할 수 있다.
徐樂吾는 體와 用의 전 영역에 걸쳐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이론 체계를 扶抑法으로 완성시켜 일대 혁신을 기한 것이고, 徐樂吾의 用法은 지금까지 命理 학습의 토대가 되어 왔다.
徐樂吾는 한마디로 大運과 歲月을 體用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모두 다 같은 用의 영역인 運路로 동일시했기 때문에, 喜忌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두 扶抑法의 체계상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八字의 판독법은 八字(命)와 大運(運), 歲月(歲)의 喜忌를 보는 방법을 달리 한다.
이점은 ‘子平眞詮’과 ‘欄江網’의 原詩 眞義를 간파하면 금세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徐樂吾의 관법은 歲月의 成敗를 판정하는 扶抑法의 표준을 정한 功을 세운 반면, 體神의 판단은 혼동을 야기한 過를 범한 셈이다.
20세기 후반에 張曜文이 근대의 관법을 추종하는 이들을 겨냥해 “최근의 子平家들 가운데 用神을 즉 喜神이라고 생각하는 답답한 자들이 있는데, 만일 用神이 喜神과 같다면, 구태여 두 종류의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一喝(일갈)한 바 있다.
또 ‘用神은 八字에서 가장 중요한 天干의 글자’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用神은 곧 格局을 정하는 月支에서 비롯된 글자이고, 喜神은 扶抑喜神으로 體와 用을 달리 함을 뜻하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역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로 널리 호평 받지는 못했다. 핵심을 말하자면 ‘子平眞詮’이나 ‘欄江網’과 같은 命書들은 歲月, 즉 流年의 喜忌를 거론하지 않고, 八字와 大運에 제한되는 用法만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體神의 영역에 집중되는 이론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무리가 없지만, 用의 영역까지 확장해서 歲月의 喜忌를 가리는데 相神이나 調候用神을 적용하게 된다면 몹시 우려할만한 왜곡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실제 江湖에는 매년의 干支로 格局을 成格시키는 역할이나, 調候를 완성하는 기법을 운용하는 分派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徐樂吾를 능가하는 이론체계를 구사한다고 자부하지만, 실은 학습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바에 기인하는 현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오늘날 命理學을 학습하는 대부분의 인사들이 거의 예외 없이 허술한 베이식을 노출하는 네 가지의 유형을 살펴보면 비교적 용이하게 결론에 이를 수 있다.
1. 첫째로 가장 두터운 계층을 이루는 부류는 대체로 徐樂吾의 近代 관법에 충실한 이들이다. 이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扶抑法 일반을 用의 영역인 歲月의 成敗와 喜忌에 초점을 맞추는 법칙을 넘어 體神의 영역인 八字와 大運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구사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徐樂吾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相神의 존재로 格局의 貴賤을 분별하지 않고, 扶抑用神의 존재로 貴賤을 가리며 또 이로써 大運의 喜忌를 조율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준으로는 절대 中級 術士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도중에 현상과 빗나가는 사례를 무수히 실감하게 될 것이다.
2. 둘째는 沈孝瞻의 格局用神을 숭상하는 이들로, 대개 徐樂吾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부류다. 이들은 格局의 高低貴賤을 가리는 데는 익숙한 편이지만, 歲月의 用法에는 취약하다.
徐樂吾의 體用論이 온전하지 못해도, 扶抑法 일반으로 歲月 流年의 成敗를 가리는 방법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體神에 한정된 格局論을 用의 영역에서 응용하면 바른 결과를 보지 못하기 일쑤다.
가령 相神의 글자를 歲月에서도 유효하게 보는 입장은 마찬가지로 體用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3. 셋째는 五行의 生剋制化 理法에만 충실하거나 혹은 氣候적 측면만 고려하는 극단적인 부류다.
대개 前者는 後者의 이론 체계를 잘 납득하지 못하는 고정적인 시각 틀로 굳어진 학습자들이기 쉽다. 이들은 ‘欄江網’의 사유 체계를 부정하거나 혹은 받아들여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後者는 이법에 충실한 종래의 학습으로 진정한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학습 과정에서 우회한 결과로 나타난 경우가 많다.
이들 역시 體用을 분간하는 방법을 잘 모르므로 歲月과 같은 용의 영역에서 調候用神을 중시하는 어설픈 자연론을 피력하기 십상인데, 이 모두 잘못된 학습 결과다.
4. 마지막으로 드물게 나타나지만, 아직도 淸代 陳素庵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춘 月令의 分日用事法을 쓰는 경우인데, 이는 시대착오적인 현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이들을 두고 古法論者들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그저 구식으로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 원래 古法이라면 ‘李虛中命書’ 이전 年本日柱의 氣學 체계에 충실한 것으로, 神煞과 納音을 주로 운용하는 논리 체계를 뜻한다. 이는 분명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지만, 理法체계는 부실하므로 古法만 옳다는 치우친 견해 또한 적절치 않다.
결론적으로 ‘欄江網’이나 ‘子平眞詮’의 이론 체계는 八字와 大運의 體身 영역에서 최적화된 논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徐樂吾의 扶抑 用法은 用의 영역인 歲月의 流年 成敗에 한정해서 구사하는 지식 체계로 구분하면 命理에 한결 정통해진다.
따라서 徐樂吾가 註解한 子平의 3대 텍스트로는 결국 ‘滴天髓補註’ 한권을 읽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므로 반드시 原書나 原書에 충실한 텍스트로 기본을 다져야 한다.
그리고 종래의 命書 학습을 통해 구하는 것은 ‘베이식’의 양분에 불과 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1세기의 現代 八字學은 用의 영역에서 보다 정교한 실전 기법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러한 내용은 종래의 서적을 통해 학습하기가 거의 불가하므로 ‘八字術 파이널블로’나 인터넷을 통해 발표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用 | |
命運[八字와 大運] |
歲[年月日時] |
‘相神’으로 格局의 귀천을 가리고, ‘十干用神’의 구성으로 格局의 高低를 세분화 |
‘扶抑用神’으로 歲月의 成敗와 喜忌를 판단, 刑沖會合과 運氣의 物象실기로 得失을 가림 |
최근에는 전혀 사리에 닿지 않는 천박한 占術에다 命理를 포장한 사태가 만연하는데, 이 부분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므로 더 이상의 견해를 피력하지 않겠다.
더해서 古書의 이론 자체를 부정하거나, 근원도 없이 허술하게 창안되고 카피된 국적불명의 조잡한 책자들은 가급적 멀리 하는 게 좋을 듯싶다.
다만 학문이 익어갈수록 점차 옥석을 가리는 혜안을 갖추게 되므로 마음만 급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움은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멀리 돌아가는 게 늘 나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體와 用은 어느 한 가지를 가지고 논하는 법이 없다.
이 둘은 대립 관계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體와 用 각각에 體用이 같이 숨쉬고 있으므로 陰陽의 道에 이른다면 어느 한 편의 인식 체계에 몰두하는 한 진리를 닿지 못함을 인식하게 된다. 要는 時空合一을 가능케 할 유연한 사유 체계에 있는 것이다.
출처 ★ 八字術, 體用 完成 -이수- [天地也人] |작성자 천지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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