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全州李氏)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시조로부터 22세, 즉 한의 21대손이다. 그러나 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안사(安社) 이전의 사적(事蹟)은 전혀 기록에 전해지지 않는다. 안사는 원래 전주 사람이었는데, 그곳 지주(知州:지금의 知事)와 사이가 나빠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옮아갔다가 얼마 뒤 지주가 다시 그곳으로 부임해 오자 가족을 데리고 간도(間島)지방으로 가서 원(元)나라의 다루가치[達魯花赤:地方官]가 되었다. 그의 아들 익조(翼祖) 행리(行里:성계의 증조부), 또 그 아들 도조(度祖) 춘(椿:성계의 조부)도 때때로 두만강 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원나라에서 벼슬했고, 춘의 아들 환조(桓祖) 자춘(子春)도 원나라의 총관부(摠管府)가 있던 쌍성(雙城:永興)의 천호를 지냈다. 자춘은 공민왕의 북강(北疆) 회수운동에 내응하여 쌍성 함락에 결정적인 공을 세워 이 지방의 만호(萬戶) 겸 병마사(兵馬使)로 임명되었다.
성계는 영흥 태생으로, 22세 때 처음으로 고려에 벼슬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북면의 병마사가 되어 원군(元軍)과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워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 되었고, 이 때부터 고려 말 중앙정권의 중추로 등장하였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왕자대군(王子大君:嫡)과 왕자군(王子君:庶)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구분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즉, 이태조의 고조부인 안사의 상계(上系)에서 갈라진 파, 안사 이후 이태조 이전에 갈라진 파, 이태조의 후손으로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이다. 안사(18世) 이전의 분파로는 시조 한의 14대손인 단신(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15대손 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17대손 영습(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主簿同正公派), 안사의 종손 윤경(允卿)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한의 21대손 귀을(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門下評理公派) 등이 있다.
안사 이후 이태조 이전의 분파로는 안사의 아들인 안천(安川)·안원(安原)·안풍(安豊)·안창(安昌)·안흥(安興)의 5대군파(五大君派), 행리의 아들인 함녕(咸寧)·함창(咸昌)·함원(咸原)·함천(咸川)·함릉(咸陵)·함양(咸陽)·함성(咸城)의 7대군파(七大君派), 춘의 아들인 완창(完昌)·완원(完原)·완천(完川)·완성(完城)의 4대군파(四大君派), 자춘의 아들이며 태조의 서형제(庶兄弟)인 완풍대군파(完豊大君派)와 의안대군파(義安大君派) 등 18개의 파가 있다. 태조의 후손 분파(고종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99파(25大君·74君)로 알려져 있지만 미취졸(未娶卒), 즉 미혼으로 죽었거나 무후(無後), 즉 후사(後嗣)가 없는 대군·군이 20명 정도가 되므로 실제로는 그 수가 줄어든다. 2003년 현재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에 등록된 파종회는 모두 86개이다.
조선의 왕권은 전주이씨인 왕족(王親·宗親)을 주축으로 하고 왕대비·왕비·왕세자비의 동성친(同姓親:外戚)과 이성친(異姓親), 그리고 왕녀의 배우자와 그 근친 등 광범위한 혈연관계를 왕권의 일차적인 토대로 하여 발전·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왕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골육간의 다툼은 조선 500년을 통해 계속되었다. 역사적으로 전주이씨는 방대한 씨족기반 위에서 정치권력 또는 정치세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즉, 상신(相臣:三議政) 22명, 문형(文衡:大提學) 7명을 배출하여 타씨족을 압도했으며, 문과 급제자 873명을 내어 이씨의 문과 급제자 총 3,190명의 27%를 차지하였다. 전주이씨 100여 파 중에서 으뜸가는 명가는 밀성군파(密城君派:琛, 世宗의 아들)로서 6명의 정승과 3대 대제학을 배출했으며, 덕천군파(德泉君派:厚生, 정종의 아들)가 부자 대제학 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 1명을 내어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그 다음으로는 3명의 정승을 배출한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璵, 세종의 다섯째 아들), 정승 2명을 배출한 선성군파(宣城君派:茂生, 정종의 아들), 정승 1명과 많은 문·무관을 배출한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補, 태종의 둘째 아들) 등이 뛰어나고, 무림군파(茂林君派:善生, 정종의 아들)와 덕흥대원군파(德興大院君派:線,선조의 生父)는 무관(武官) 집안으로 유명하다.
조경단 (肇慶壇)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덕진시민공원 내 건지산(乾止山) 줄기에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한은 조선 태조 의 21대조로, 태조는 묘역을 각별히 수호하도록 하였으며 이후의 역대 왕들도 정성을 다하여 보호하였다.
특히 고종은 1899년(광무 3) 5월에 이곳에 단을 쌓아 당상관을 배치하고 비석을 세워 전주이씨 시조의 묘로 정하고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 명명하였다. 또한 해마다 한 차례 제사를 지내고, 단을 중심으로 450정보의 단역을 마련하였다.
이는 경기전, 조경묘와 함께 전주가 왕조 전주이씨의 발상지라는 의의를 한층 현실화한 조치였다. 전주이씨 선원계보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을 시조로 18대인 목조까지 전주에 기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태조 22대).
1만여 평의 경내에 주변을 돌담으로 쌓고 동·서·남·북문을 두었다. 조경단 남쪽 20m 지점에는 고종이 세운 비석이 비각에 안치되어 있다. 거북등 위에 세워진 비석은 너비 1.8m, 두께 0.3m, 높이 약 2m로 거대하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비석 앞면에 새겨진 ‘대한조경단’이라는 글씨와 비문은 고종의 어필이다. 비각은 한 변이 7.2m인 정사각형 3칸 팔작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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