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구조 성곽의 구조는 우리나라 성곽 사상 가장 완벽한 제도를 갖춘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옹성(甕城) - 모양이 독을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하여 '항아리 옹'자를 넣어 옹성(甕城)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적이 성문에 접근하여 성문을 뚫으려 할 때 문루와 옹성 에서 사방으로 협공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노대(弩臺) 노대란 누각이 없이 전돌을 쌓아 네모꼴의 대로 만들었는데 모서리를 깍아 모를 없앤 높은 대이다.
장대(將臺) - 장대는 지휘관이 머무르는 군사지휘본부로 서장대와 동장대 2개소가 있다. - 장대는 성 주변을 조망하면서 장병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화성은 남북이 짧고 동서가 길기 때문에 동쪽과 서쪽에 서장대와 동장대를 세웠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뾰족한 2층 누각의 독특한 건물이다. 장대 앞에는 깃발을 세울 수 있는 게양대를 마련하여 성내 지휘본부로서 위용을 갖췄으며 쇠뇌를 쏠 수 있도록 서장대 뒤에 설치된 서노대와 화성 방어사령부가 위치한 핵심부였다. 동장대는 지형이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어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지휘본부로 연무대라 불리운다.
암문(暗門) - 암문이란 성의 정문이 아닌 사잇문으로 양식, 가축, 수레 등을 들여오거나 배후공격 및 군수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은밀하게 만들어 놓은 비밀문이다. 따라서 암문의 위치는 성곽의 굴곡진 곳이나 수목에 가려서 외부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에 만들어져 있다.
봉돈(烽墩) - 봉돈은 파수를 설치하여 정찰과 정보전달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육지로는 용인의 석성산 육봉과 연락하고 바다로는 흥천대의 해봉과 연락하였다.
공심돈(空心墩) - 돈(墩)이란 원래 망을 본다는 뜻의 독립 망루였다. - 공심돈은 전시에 사용되는 장거리 관측소로써 위아래에 구멍을 많이 뚫어서 바깥동정을 살필 수 있을 뿐아니라 총포를 쏠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성벽상부에 3층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 있다. - 돈(墩)에는 항시 소수의 군대가 머물면서 초소 역할을 한다. 공심돈의 내부는 3층으로 층과 층 사이에는 나무 사다리나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했고 외부 벽체에는 구멍을 많이 뚫어 주변을 살피고 공격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 공심돈은 포루(砲樓)와 비슷하게 벽돌로 된 구조물 안이 비어 있어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포루와 다르게, 공심돈은 전체 높이가 성곽 높이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화성에는 서북 공심돈과 동북 공심돈만 남아 있으며, 남 공심돈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후 아직도 복원이 되지 못했다. 서북 공심돈은 돌로 된 부분 내부에 여러 층의 나무 바닥을 설치하고, 아래위로 오르내릴 때는 사다리를 이용했다. 이에 반해 동북 공심돈은 내부에 돌로 된 나선형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서북 공심돈은 포루(砲樓)처럼 성벽 밖으로 돌출되어 있지만, 동북 공심돈은 성벽 안에 설치되어 있다. 공심돈은 우리나라 성곽 중에는 수원성에만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시설이다.
치성(雉城) - 치성이란 이름은 꿩(雉:치)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는 까닭에 이뜻을 딴 것이다. 포루(鋪樓) : 포루는 성벽에 돌출 된 치성(雉城) 위에 세운 누각을 말하며 병사들이 주둔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성안에서는 2층 건물이지만, 바깥에서는 1층 건물로 보이며 화성에는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 동일포루, 동이포루 등 5개의 포루(鋪樓)가 있다. 포루(砲樓) : 포루(鋪樓)는 외관상 포루(鋪樓)와 비슷하지만, 돌출 된 치성(雉城) 위에 높은 여장(女牆)을 쌓고 내부에 포대를 주둔시킨 강력한 화력기지(砲樓)로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도 견고하도록 축대와 여장을 모두 전돌(벽돌)을 사용하여 구축했다. 높은 여장 때문에 누각의 벽체가 가려지고, 지붕만 얹혀져 있는 견고한 외형이다. 수원성에는 남포루, 서포루, 북서포루, 북동포루, 동포루 등 5개의 포루(砲樓)가 있다.
적대(敵臺) - 성문 가까이의 성벽을 돌출시켜 좌우에 설치한 치(雉)를 말한다. 성체에 설치된 치와 구분하기 위해 적대라고 부른다. 성문이 공격받을 때 가까이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 방어 시설이다. - 성문의 좌우에 80m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높은 대를 마련하여 창이나 활, 화살 등을 비치해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시설로 4대문 중 팔달문과 장안문 양쪽에 설치하였으나.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팔달문 좌우의 성벽과 적대는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복원하지 못했다. 정약용은 화서문 좌우에도 적대를 설치할 것을 제안 했으나 화서문은 왼쪽에서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오른쪽은 공심돈이 있어 적대를 세우지 않았다. 적대는 우리나라 다른 성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시설물이다. 해자(垓子) - 성벽주변에 호를 파거나 둔덕을 만든 인공적인 구조물로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시설물이다.
여장(女牆) - 체성위의 구조물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을 말한다. 방패의 역할을 하면서 활이나 총을 쏘기 위해 구멍을 내었다. 여장(女牆)은 높이 1.2m, 4m간격을 1타(1타는 3∼4보)로 1타에 3개의 총구멍을 만들었으며 성곽의 주재료는 돌과 전(塼)돌이다.
각루 - 각루는 정찰, 군량운반통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원거리 전망이 좋은 성곽 모퉁이 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 각루는 비교적 원거리 전망이 좋은 위치에 누각 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다양한 용도의 시설로 서남각루(일명 화양루), 서북각루, 동북각루(일명 방화수류정), 동남각루 등 4개의 각루가 있는데, 각 각루마다 실제 모양이 모두 다르다. - 원래 각루는 이름 그대로 성의 네 모서리에 위치한 구조물이다. 중국처럼 사각형으로 성곽을 만들면 사각형의 네 모서리에 위치하는 것이 각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성곽을 만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연 지형을 살려서 곡선 형태로 성벽을 배치한다. 화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전체적인 형태가 곡선형이기 때문에 달리 모서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화성의 각루는 이름과는 상관없이 포루(鋪樓)와 비슷한 구조물이 되어 버렸다. 굳이 포루와 구별하자면, 각루는 목조건물에 나무벽이 없이 기둥만 있어 단순한 누각 형태인 것이 포루와 다르다. 화성의 각루는 순수한 군사용 구조물이라기보다는 전망대에 가까운 시설이며, 특히 동북각루(방화수류정)은 아름다운 정자로 유명하다.
성벽 화성은 일반적인 우리나라 성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벽돌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성벽 전체가 벽돌로 된 것은 아니다. 화성은 복잡한 구조물 (성문 구조물 중 일부, 암문, 공심돈, 포루, 봉돈, 여장)만 벽돌로 만들었을 뿐 성벽 대부분은 일반적인 돌로 되어 있어 기본적으로는 석성(石城)에 속한다. 화성은 새로운 제도와 재료, 공법과 기구들이 고안되어 축성된 성으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돌을 쓰고 위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성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배가 안으로 들어가는 규형(圭形)의 형태로 긴 돌을 세로로 눕혀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6.2m가 기준인데 지형에 따라 보통 5m 내외이며 여장(女牆)은 높이 1.2m, 4m간격을 1타(1타는 3∼4보)로 1타에 3개의 총구멍을 만들었으며 성곽의 주재료는 돌과 전(塼)돌이다. 전돌(벽돌)은 주로 암문 등 작은 원형이나 곡선형의 시설물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전돌(벽돌)은 돌보다 크기가 작아 손쉽게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돌로만 쌓은 석성(石城)은 한 번의 포격으로 무너지기 쉽지만, 전돌(벽돌)로 쌓은 성은 일부가 파손되어도 나머지 부분은 견고히 버틸 수 있는 방어용 성곽 가운데서도 가장 튼튼하고 실용적인 성곽이었다.
성문(城門) 화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에 4개의 성문이 있으며 서울을 향한 북문이 장안문(長安門), 반대 방향의 남문이 팔달문(八達門), 그리고 동서에 각각 창룡문(蒼龍門)과 화서문(華西門)이 있다. 이 가운데 장안문과 팔달문은 거의 같은 규모와 형태로 화성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2층 누각의 문루(門樓)를 올렸고 바깥에 반원형의 옹성(甕城)을 둘렀다. 성문의 좌우에는 높고 육중하게 돌출 된 적대(敵臺)를 두어 성문 좌우에서 적군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옹성 아치 상부에는 오성지(五星池)라는 구멍이 다섯 개 뚫린 일종의 물탱크가 있는데 이것은 적이 성문에 불을 질러 파괴하려고 할 때를 대비하여 만든 소화시설이다. 동문인 창룡문은 규모도 작고 형태도 간략한 편이며 옹성은 아치문이 정면에 설치되지 않고 서울 동대문처럼 왼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다. 화서문은 창룡문과 거의 비슷하며 다만 성벽의 일부가 휘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형에 맞추어 쌓았기 때문이다.
수문(水門) 화성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수원천이 성내를 관통하고 있어 수원천과 성벽이 만나는 곳에 2개의 수문을 설치하였는데 그것이 북수문과 남수문이다. 북수문에는 물이 흐를 수 있는 일곱 개의 아치형 수문이 있고 그 위로는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성벽과 바짝 붙여서 화홍문이라는 누각이 세워져 있다. 남수문은 단지 아홉 개의 아치문을 내고 그 위에 통로를 만들고 전돌(벽돌)로 여장을 높이 쌓았고 성내의 물을 조절하는 시설인 남은구(南隱溝)와 북은구(北隱溝)가 있었으나 남수문은 1922년 장마 때 유실되어 현재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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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펌] 성곽의 구조|작성자 sks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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