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선조 )

[스크랩] 이종학李種學 선생의 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 8수

장안봉(微山) 2013. 4. 16. 12:24

 

(206)이종학李種學 선생의 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 8수

2009년 12월 18일 오전 3:55공개조회수 1 5

본 작품은 목은선생의 아들인 작자가 29세에 진사과거시험 담당관으로 논박을 받아 순천으로 귀양 가며 쓴 <남행록>과 그 다음 해인 1390년 여름에 이초사건에

연루되어 진천으로 귀양가며 쓴 <남천상산록>과 또 그 다음해인 31세 때 오대산을 여행하며 쓴 <관동록> 3부가 작자 32세에 이씨조선 개국과 함께 피살되고

120여년 후에 어떤 지인에 의하여 그의 자손에게 전해짐으로 해서 발간되었음.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의 말미에 참조 요망.

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

--常山卽今鎭川縣也--


작자 : 인제 이종학麟齋 李種學

번역 : 청계 조면희淸溪 趙冕熙

출전 : <인재유고麟齋遺稿>


南遷常山錄 常山卽今鎭川縣也

(一) 客中懶情

--余於六月初吉。離松都到長湍。侍湯藥有日矣。當月旣望。憲司以前事再封章。逐老親於嶺南。與予從之。及到驪江。聞門下府亦上狀論及僕罪。

不敢從西踰嶺。則拜送于江上。還至郡樓。與南計定宿。明日欲行指常山。雨大作。歸?寺留四日。乍晴。卽來陰竹。雨又大作。

天民水漲不可渡。留五日。移農所又留四日。察訪,監郡皆與僕素善舊。而監郡卽上舍同年也。談笑從容。如在順境。今月初二日臺吏踵來。

蓋將置余于常山也。雨又適晴。明日。與臺吏遂來于此。今已十餘日矣。自七夕以後絶不作詩。客中之情。似難傾寫矣。於是?成數首。

以志吾懶。十四日也--


客裏開懷只有詩。茫然今日愧吾癡。

秋風半夜吹庭樹。回首思親意苦悲。


*해설 : 나그내 생활중의 게으름(아래의 긴 제목 중에서 임의로 줄인 것임)

--내가 6월 초하룻날 송도를 떠나 장단에 이르러 아버님을 탕약으로 모신지 며칠이 되었다. 6월 열엿새날 헌사에서 앞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다시 사?소를 올려 아버님을 영남으로 추방하고 나로 하여금 따라가게 하였다. 그런데 여강(여주강)에 이르니 또 문하부에서

 나의 죄를 가지고 글을 올려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따라 서쪽으로 고개를 못 넘어가게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강위에서 절하여

작별하고 군청의 누각으로 돌아와 남계정과 함께 잤다. 다음 날 상산(진천)으로 가려고 하는데 큰비가 내렸다. 벽사(?寺 : 신륵사)로

 돌아와 나흘을 머물렀다. 날씨가 조금 개어 곧장 음죽陰竹에 이르니 비가 또 쏟아졌다. 하늘의 백성된 자가 물이 불어 다시 닷새를

 머물다가 농소(農所 : 음죽에 국농소가 있었음)로 옮겨가서 나흘을 머물렀다. 이곳의 찰방과 감군은 나와 예로부터 잘 아는 친구이다. 게다가 감군은 나와 상사(上舍 : 생원)에 함께 급제한 사람이다. 그들과 함께 조용히 담소하지나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순탄한 환경과

같았다. 이달(7월?) 초이튿날 대리(臺吏 : 대관의 아전, 죄인 감시자)가 뒤따라 왔는데 이는 나를 상산에 안치시키기 위함이었다.

비가 마침 개어서 다음날 대리와 함께 마침내 이곳에 왔는데 그 동안 벌써 열흘 남짓 걸렸다. 칠석(七夕 : 음력 7월7일) 이후로

시를 짓지 않았는데 나그네 생활 중의 정서를 집중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마침내 두어수 시를 지어 나의 게으름을 표현해

 보았다. 14일이었다.


나그네 생활 중에 회포를 푸는 일은 시뿐인데

오늘까지 못 썼으니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네.


가을 바람은 밤중에 뜰안의 나무를 흔드는데

머리 돌려 아버지 생각하니 괴롭고 슬퍼지네.

南遷常山錄 常山卽今鎭川縣也


(二) 二十日。近絶不作詩。聞南先生行李在淸。

驪江江上幸相逢。夜話仍聞曉寺鐘。

旌旆何時臨鎭邑。煎茶更欲暫從容。


*해설 : 7월20일. 근래 시를 짓지 않다가 남선생의 행차가 청주(?)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여주강 강위에 다행스럽게 서로 만나서

밤내 이야기하다 새벽종 소리 들었는데.


행차는 언제 진천고을에 다다를 것인지

차를 끓이며 다시 한가로운 생활했으면.


*진읍鎭邑 : 진천? 아니면 진이 있는 고을?


(三) 八月二十日夜吟

蟲聲不絶曉鷄鳴。夜起無端笑此生。

盛代事君如合道。當時從衆豈干名。

山靑地僻心供寂。露白天高氣共淸。

耿耿思親頻不寐。吟來八句偶然成。


*해설 : 팔월 스무날 밤에 읊음.


벌레소리 끊이지 않고 새벽닭 울 때까지

밤새 일어나 까닭 없이 나의 삶을 비웃네.


좋은 시대에 합당한 도리로 임금을 섬겼다면

당시에 여러 사람을 따라 명예를 구했겠는가?


산은 맑고 땅은 외진 곳 마음도 함께 쓸쓸한데

이슬도 희고 하늘도 높으니 공기도 또한 맑구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어버이 생각에 잠 못 자고

여덟 구의 율시를 생각 없이 지어 읊조리었네.


(四) 九月初四曰 2首

1.

霜落川原菊已芳。客中佳節近重陽。

携壺準擬登高去。極目浮雲俯視鄕。


*해설 : 구월 초나흗날


냇둑에 서리 내리고 국화 향기 뿜었으니

나그네 생활 중에 중양절이 가까워졌네.


그 날은 꼭 술병 들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구름 아래 고향 하늘을 한껏 바라보려네.


2.

松都柳巷有高岡。忽憶年前獻壽觴。

今日分離誰所使。擧頭時復仰蒼蒼。


송도의 유항 마을에 높은 언덕이 있는데

연전에 거기서 어버이께 헌수 잔 드렸지.


오늘 이렇게 헤어진 것은 누구때문일까?

머리 들어 반복하여 푸른하늘 바라보네.


(五) 九日

今歲重陽雨氣昏。書生客裏政關門。

天心自古非難識。世事如今未易言。

溪上赤楓低兩岸。樹間黃菊濕孤村。

快晴更欲登高去。回望長安倒一樽


*해설 : 구일(중양절)


올해 중양절에는 비로 인해 날이 어두워서

나그네살이 선비는 그냥 문을 닫고 있었네.


하느님 마음은 예로부터 알기 어렵지 않으나

오늘날 세상 일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것을.


(六) 十一日失馬

禍福焉知失馬翁。吾今獨立仰蒼穹。

人間萬事非難料。擬向淸時學老農。


*해설 : 열 하룻날 말을 잃고


화복을 어떻게 알랴, 말을 잃은 이늙은이

나는 지금 홀로 서서 푸른 하늘 쳐다보네.


인간의 만사는 헤아리기 어렵지 않느니

좋은 시대에 늙은 농사꾼에게 배우려네.


*실마옹失馬翁 : 새옹지마塞翁之馬에 비유


(七)十六日。斯文金君自鷄林來訪。

斯文應亦衆。誠意似君稀。

遠訪仍携酒。初欣便誦詩。

新秋溪水落。薄晚嶺雲飛。

出戶還相別。重來定幾時。


*해설 : 선비 김군이 계림(경주)에서 찾아옴.


유학을 배우는 이는 매우 많으나

그대같이 성의 있는 이는 드물지.


멀리 찾아오며 술병까지 가져 왔으니

처음으로 반가워 문득 시를 낭송하네.


새 가을이 되자 시냇물은 줄어 들고

저물 무렵 고개 위에는 구름이 나네.


문밖에 나가 서로 헤어져 돌아가니

다시 올 기약은 언제로 정하려는가?


(八) 十八日

客裏聞斯事。茫然默不言。

廢興元有數。出處獨離群。

送日唯頹筆。逢人欲置樽。

西隣餘隙地。隨分設柴門。


*해설 : 열 여드렛날


나그네 생활 중에 이 일을 당하여

넋을 잃은 채 아무 말도 못하였네.


흥하고 망하는 건 운수에 달린 것을

쫓겨나 사니 홀로 무리에서 떨어졌네.


날을 보내느라 글씨 쓰는 일에 기대고.

사람을 만나면 술잔을 대접하려 하네.


서쪽 이웃 조금 남은 땅에

분수에 따라 사립을 세웠네.


*이초彛初의 옥사 :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중랑장(中郞張) 이초(李初) 와 파평군(坡平君) 윤이(尹彛)

 가 명(明) 나라에 가서 황제에게 호소하여 시중(侍中) 이성계(李成桂) 를 제거하려고 모의했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자  이색(李穡) ㆍ 우현보(禹玄寶) 등 수십 명이 하옥되는 등 큰 옥사가 일어났다.

이를 이초(彛初) 의 옥이라 한다.

 

 


*작자소개 : 이종학 [李種學, 1361~1392]

본관 한산(韓山). 자 중문(仲文). 호 인재(麟齋). 1374년(공민왕 23) 14세 때 성균시(成均試)에 합격,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되고 밀직사지신사(密直司知申事)를 거쳐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가 되어 1389년(창왕 1) 동지공거(同知貢擧)를 겸했다. 이 때 아버지

 색(穡)이 국정에 참여하고, 종학은 성균시를 해마다 맡아보아 물의가 많았는데 공양왕이 즉위하자

 아버지와 함께 탄핵을 받아 파직, 1390년(공양왕 2) 이초(彛初)의 옥에 관련되어 부자가 함께

청주(淸州)에 투옥되었다.

수재(水災)로 풀려났다가 1392년 다시 함창(咸昌)에 귀양가고 그 해 고려가 망하자 정도전(鄭道傳)

 등이 손흥종(孫興宗)을 보내 살해하려 했으나 김여지(金汝知)가 도와주어 장사현(長沙縣)으로

 이배(移配)되던 중 무촌역(茂村驛)에서 살해되었다.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사실(史實)에 밝았다.

 후에 신원(伸寃)되고 문헌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집 《인재유고(麟齋遺稿)》가 있다.

 

----인터넷에서 인용----


*유고의 내용과 발간경위

창왕 1 1389 기사 洪武 22 29 厚德府尹으로 同知貢擧가 되어 進士試를 주관, 金汝知 등 33인을 뽑다.

 ○ 12월, 부친과 함께 파직되어 順天으로 유배되다. 이때에 지은 詩가 〈南行錄〉이다.

공양왕 2 1390 경오 洪武 23 30 5월, 尹彜ㆍ李初의 獄에 연루되어 李穡ㆍ李崇仁 등과 淸州獄에 갇혔으나,

 홍수가 나서 모두 석방되다.

공양왕 3 1391 신미 洪武 24 31 4월, 五臺山ㆍ鏡浦臺 등 關東地方을 유람하다. 이때에 지은 시가

〈關東錄〉이다.

○ 6월, 간관의 탄핵을 받아 常山(鎭川)에 유배되다. 이때에 지은 시가 〈南遷常山錄〉

이다.

○ 11월, 召換되다.

공양왕 4 1392 임신 洪武 25 32 정몽주가 피살된 후 그의 黨으로 몰려 巡軍獄에 갇혔다가 咸昌에

유배되다.

○ 8월, 長沙縣으로 移配되던 중 孫興宗이 보낸 사람에게 茂村驛에서 絞殺당하다.

중종 14 1519 기묘 正德 14 - 5대손 李耔가 李惟淸 집에서 遺稿를 얻어 이를 1책으로 편집ㆍ繕寫하다.

(李耔의 跋)

출처 : 하늘행복
글쓴이 : 하늘감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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