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청풍비]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전국 유림에서 자하 장기석의 충의와 절개를 추모하기 위해 1936년에 세운 높이 320㎝, 너비 110㎝, 두께 45㎝ 비석으로 장광상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1937년 일본경찰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비라 하여 파괴하여 계천(溪川)에 버려진 것을 1946년 도내 유림과 유력인사들의 중의에 따라 버려진 비석 조각들을 모아 복구·재건하였다. 비문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짓고, 글씨는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썼다.
장기석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진여(振汝), 호는 자하로 1910년 일제의 국권 침탈에 비분강개하여 향촌사회의 항일의식 고취에 앞장서다 일본경찰에 의해 성주경찰서에 수감되었으며 대구형무소로 옮겨 1911년 1월 5일 순국할 때까지 일제의 갖은 위협과 회유에도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
일본경찰이 이 비를 파괴하려하자 자결사로 항거한 부인 박씨의 기열비(紀烈碑)가 1937년 그 옆에 세워졌다. 비문은 정인보(鄭寅普)가 짓고, 글씨는 김우진(金禹鎭)이 썼다.
[자하 장기석]
본관은 옥산(玉山-인동)이다. 자는 진여(震汝)이고, 호는 자하(紫下)이다. 경상북도 성주(星州)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 1910년 8월 국권피탈 후 성주군수와 경찰서장 등으로부터 일본왕 메이지[明治]의 천장절(天長節) 행사에 나오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거부하였다. 일제 경찰이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자 목침으로 때려 중상을 입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11년 1월 옥중에서 단식으로 투쟁하다가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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