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향교,서원)

[스크랩] 도동서원(道東書院)

장안봉(微山) 2013. 4. 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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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을 쉬고 잠시 고향 다녀오는길에 도동서원을 둘러 보았다.

이제 설을 막 쉬고난지라 그런지 발길이 뜸 한것이 찾는이 없이 고색 찬연한 외로운 서원만이

우둑커니 서서 나그네를 반기고있었다. 창녕에서 대구로 오는길에 현풍읍에서 낙동강변을 따라난

현풍서로을 따라 8km를 들어 가다보니 얕으막한 산 능선을 오르면 다람재 가 나오고 여기서 건너다

보이는 도동서원이 나즉히 산 언덕데 자리하고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에 ...

 

< 道東書院 案內誌 에는 이렇게 기록 되어 있다.

道 가 동쪽으로, 서원 건축의 백미 "도동 서원" >

 

도동서원은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나즈막한 산을 배경으로 자리해 있으며, 다람재

서 내려다 보면 그 정경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이 서원은 원래 조선오현(朝鮮五賢)중 한

분이신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한 서원으로 1568년

유림에서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사우(祠宇)를지어 향사를 지내오다가 1573년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사액 되었으나 1597년 倭亂으로 전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604년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재건하고 보로동서원(甫老洞書院)으로 불리다가 1610년 도동서원

으로 사액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1871년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철폐령에도 훼철 되지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주요 서원중의 하나이다. 도동서원은 산지형 서원의 배치형으로 진입공간, 강학 공간, 제향공간

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밖에 신도비, 유물전시관, 전사청, 증반소 등이 있다. 진입공간에는 외삼문과

누각(水月樓), 강학공간 내 에는 강당(中正堂), 동재(居仁齋), 서재(居義齋), 장판각 등이 있으며, 제향공간

에는 사당(祠堂)이 있다.

 

강당과 사당, 그리고 담장이 1963년 보물 제 350호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서원전역이 사적 제 488

호로지정 되었다. 특히 강학 공간 출입문인 환주문은 그 구성이 특이하며, 담장은 아름다운 토담으로 전국

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어 되었다.

유물 전시관에는 임금님이 하사한 서책과 제기, 경현록 목판 등이 소장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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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돌아보니 주차장 부근에 도동서원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있어 둘러보며 답사전

사전 지식을 얻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안내소에 들려  간단한

안내원의 안애설명을 듣고

서원을 둘러 본다

 

 

 

 

 

수월루(水月樓)

이 문은 도동서원의 정문 격인 외삼문과 일종의 여유공간인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건물이다.

유생들의 휴식처나 강독 공간으로 사용 되었으며 누각에 올라 서면

동쪽에서 흐르는 낙동강과 고령 개진면의

일대의 평야가 보인다.

 

수월루 앞에서 바라본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내가 겨울에 찾은 탓에 옷을 홀랑 벗고 몸체와와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아서 나그네를 맞는다.

머지않아 남녁에서 봄 바람이 살며시 불면 새파란 옷 갈아 입고

제 모습 뽐 내리라.

 

이 은행나무는 서원으로 사액(賜額)된 기념으로

1607년 한강 정 구 선생이 심었다고 하니 나이가 400세가

 넘었으며, 높이가 20m, 가슴둘래가 7.9m, 수간폭 31x36m,

동쪽 가지가30m, 서쪽가지가 25m, 남쪽가지 20m,

중앙이 22m나 된다고 한다.

 

은행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기운이 강해서 기상 높은 선비를 기르는 최고의 상징으로

서원이나 향교등에 한 두 그루씩 심었으며, 또한 은행나무는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맺듯이 많은 선비를

배출 하라는 소망이들어 있어 

조선시대의 유림의 기개를

읽을수 있다 .

 

 

 

 

환주문(喚主門) 

수월루 옆문을 지나니 사방이 담장으로 막힌 작은 마당이 나오며,

마당을 한 가운데를  지나니 약간 휘어진 좁고 가파르게 생긴 계단이 나오고 이 계단을오르면

강학 공간의 정문에 해당하는 환주문(喚主門)에 이르게 된다.

환주문이란 주인을 부르는 문이다.

또한 환주문은 주인을 부른다는 뜻도 있지마는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부르는 뜻도되며, 이 문의 이름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시 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이 문을 들어서려면 갓 쓴 유생이라면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 설수 있는 작은 크기의 나즈막하게 설계되어 있었으며, 문 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작은 꽃 봉우리를 조각한 돌을 박아 놓아 눈길을 끌게끔 한것 같았으며,

이 환주문은 이 서원에서 아주 귀엽게 만들어진

구조물 인 것 같다.

 

 

강당(講堂)

도동서원의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은 강학 공간으로 높은 기단위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2칸의 주심포 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써 좌, 우 앞뒤가 있는 한칸씩은 온돌방

이고 가운데 3칸은 앞면을 개방한 대청이다.

강당의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그리고 갑석으로 구분 구성 되어 있는데,

기단의 갑석 바로 아랬단 면석 사이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용머리

4개가 설치 되어 있으며, 다람쥐 모양의 길 함을 나태내는 동물상과

서화(瑞花)가 좌, 우 면석에 조각되어 있다.

이 기단은 높이가 무려 150cm 에

이르러 강당의 위용을

한층 높이고 있다.

 

 

 

 

 

 

 

 

 

 

 

 

 

 담장(보물 제 350호)

담장은 자연석을 정열시킨 지대석 위에

자연 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를 5단으로 줄 바르게 놓아

그 사이에 진흙층을 쌓아올리고 1m 간격으로 수막새를 엇 갈리게 끼워 넣었다.

담장에 암키와와 수막새를 사용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장식 효과를 최대한 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담장의 모습이 매우 아름 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정 된

토담이라고 한다.

 

 

 

사당 (祀堂)

사당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위패와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제향 공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기둥에 

맛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정면 3칸에는 칸 마다 

밖 여닫이 널문을 달았고 내부에는 통 칸으로 틔였다.

정구 선생은 서원 건립시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고 유품 정리

할때의 공헌을 인정해서 1678년 추가 배양하였다고 한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중정일과

8월 중정일에 지고

있다고 한다.

 

♣ 이 사당은 출입이 금지이며, 제향 할 때에만 열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 갈수가 없어 대문 틈으로 촬영하였다 ♣

 

한훤당(寒喧堂) 김굉팔(金宏弼)은 누구인가

김굉필 선생은 1454년(단종 2년)서울 정능동 에서 태어났으며,자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喧堂) 

사옹(蓑翁),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고려 후기의 사족(士族)인 증조부 중곤(中坤)이 수령과 청환(淸宦)을 역임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현풍현에 이주하게 되면서 그 곳을 근거지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세 되던해에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개천바위 위에 한훤당을 짓고 선비들과 사귀면서

학문을 딱았다. 또한 그는 김종직(金宗直) 1431 - 1492)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웠는데,

이를 계기로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를 小學童子라 일컬었다고 한다.

 

이후 평생토록 소학을 독신(篤信)하고 모든 처신을 그것에 따라 행하여 소학(小學)의

화신(化身) 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나이 30세에 이르러서 사서삼경(四書三經)등 을

섭렵하였다. 1480년(성종 11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입학

하게 되었고, 그 뒤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 등이 되었으나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장(杖) 80대 와 원방부처

(遠方付處)의 형을 받고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가 2년뒤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 되었다.

그 는 유배지 에서도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힘써 희천에서는 조광조 에게 성리학을 전수

하여 우리나라 유학사의 맥을 잇는 계기를 마련 하였다.

 

그후 성균관 유생들의  문묘종사(文廟從祀) 건의가 계속되어 1575년(선조 10년) 에는 시호가

내려 졌고 1510년(광해군 2년)에는 대간과 성균관  및 각도 유생들의 지속적인 상소에 의하여

정여창(鄭汝昌 1450 - 1504), 조광조(趙光祖 1482 - 1519), 이언적(李彦迪 1491 - 1553),

이황(李滉 1501 - 1570), 과 함께 조선 5현( 朝鮮五賢)으로 문묘(文廟)에 종사( 從祀)되었다.

 

한훤당 선생을 입향한 전국에 현존하는 서원은 대구달성 도동서원, 전남 순천 옥천서원, 전남

나주 경현서원, 전남 화순 해망서원, 경북 상주의 도남서원 이있다.

 

서원방문자 기록 대장 에 나도 오늘 방문을 기록 한다.

 

 

 

 

 

 

 

 

 

 

 

 

유물전시관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관람을 할수가 없었다.

 

자료가 부족하여 보다 명쾌한 자료를 담을수가 없었다.

부족한 자료는 다음 기회에 좀더 수집하여 담기로하고 줄인다.

 

참고 자료; 대구시 도동서원 안내지.

 

감사 합니다.

촬영 ; 2013. 2. 14.

글 / 편집 ; 푸른솔 짱

 

 

출처 : 어린왕자의 들꽃사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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