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경복궁의 구조

장안봉(微山) 2013. 3. 27. 12:08
     경복궁의 구조


  새 대궐은 국초(國初)때의 유지(遺址) 그대로 옛 자리를 찾아 그당시의 제도(制度)에 따라 모든 전각의 간살까지 거의 같은 규모로 지어 졌다.

  뒤로  높이 솟은 북악을 등지고 앞으로는 넓은 거리가 시원스럽게 열려 있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문 앞에는 동. 서로 돌해태 두 마리가 마주 버티어 있고, 저만큼에 큰 길 양쪽으로 높직한 솟을 대문을 갖춘 육조(六曹) 관아가 마주 늘어서 있어서 광화문 앞은 그야말로 질서 정연하고  엄숙하였다.

  20척 1치 높이에 전체 둘레가 1813보나 되는 담장, 궁성(宮城)에는 그 동남쪽과 서남쪽 양모퉁이 뿌리에 망루인 동십자각(東十字閣), 서(西)십자각이 있고 동, 서, 북쪽으로 각각 문이 있어 건춘문(建春門), 영추문(迎秋門), 신무문(神武門)이라 하였다. 이처럼 문 이름마저 세종이래의 명칭을 그대로 살려서 썼다.

 중건 당시로 되돌아가 보자.

  돌해태 두 마리가 동, 서로 버티고 있는 저만큼에 삼홍예(三虹霓) 중첨이라고 일컫는 세 개의 아치형 돌문에 겹처마 다락집으로 된 광화문을 들어서면 동, 서양편으로 행각(行閣)이 일자로 서 있었다. 동행각에는 협생문(協生門), 서행각에는 용성문(用成門)이 나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흥례문(興禮門)이 있었다.<현재 복원 공사중>

  이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금천(禁川)이 흐르고  영제교(永濟橋)라는 돌다리가 걸려 있고  그다리 기둥 양쪽에 국초 때의 석천록(石天祿) 네 마리가 동, 서 양편으로 두마리씩 놓여 있었다.

  영제교에서 좀 멀리 떨어져 평행을 이루는 동편과 서편에 물 위로 돌기둥을 버티어 지은 수각(水閣)이 있었는데 그하나를 청량전(淸凉殿)이라 하고 다른 하나를 자신전(紫宸殿)이라 하였다.

  영제교를 건너면 청량전과 자신전에 연속된 북무랑에 동쪽으로는 덕양문(德陽門) , 서쪽으로는 유화문(維和門)이 있었다.
 그정면 북쪽이 바로 근정문(勤政門)이다.

 

 




                                                                                                      

      - 옛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적색> 

      -  변형되거나 남아 있는 건물<청색> 

      - 사라진 건물 <회색>

 1.광화문    2.흥례문    3.영제교   4.근정문   5.근정전  

 6.사정전    7.만춘전    8.천춘전   9.강녕전  10.교태전  

11.흠경각  12.아미산  13.경회루  14.수정전  15.빈청  

16.승정원  17.내반원  18.홍문관  19.내의원  20.검서청  

21.규장각  22.자선당  23.비현각  24.자미당  25.자경전  
26.흥복전  27.제수합  28.선원전  29.집경당  30함화당  

31.향원정  32.건청궁  33.곤녕합  34.장안당  35.협길당  

36.집옥재  37.신무문  38.문경전  39.회안전  40.건춘문  

41.동십자각 42.영추문 >

동,서 양편으로 협문(夾門)인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을  거느린 근정문을 들어서면 저 멀리 삼급(三級)의 돌층계 위에 웅장하고 화려한 근정전(勤政殿)이 의젓하게 높직이 앉혀 있다.

   이집이 바로 임금께서 문무 백관(文無百官)의 조하(朝賀)를 받던 정전이다. 정면5간, 측면 5간, 겹처마 집에다 돌난간이 휘 둘린 그짜임새는 진정 뛰어나고 훌륭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앞뜰에는 문무 양반(文武兩班)의 위계(位階)를 새긴 품석(品石)이 줄지어 차례로 세워져 있으며 넓은 뜰 사방으로는 행각(行閣)이 둘려 있다. 또한 그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근정전 뒤로 사정문(思政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임금이 정사를 보살피던 사정전(思政殿)이 있고  그서편에 천추전(千秋殿), 동편에 만춘전(萬春殿)이 있다.

 여기에도 동, 서, 남, 북 사방으로 행각이 둘리어 있고, 북쪽 행각에 향오문(嚮五門)이 있다.

 사정문 북문(北門)인 향오문을 들어서면 임금이 한가롭게 지내는 연침(燕寢)인 강녕전(康寧殿)이 있고, 그 동서 양편에 연생전(延生殿)과 경성전(慶成殿)이 있다.

  역시 그 뒤 북행각에 양의문(兩儀門)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안에 왕후가 사는 교태전(交泰殿)이 있었다. 교태전에도 동쪽에 인지당(麟趾堂)이 딸렸고 인지당 뒤에 동편으로 원길헌(元吉軒) 서편으로 함광각(含光閣)이 있었으며 다시 그동북편으로 건순각(建順閣)이 있었다.

  또 교태전 서편에는 앞뒤로 흠경전(欽敬殿)과 함원전(含元殿)이 있었다.

 이렇듯 교태전, 강녕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각이 배치되어 있었고, 교태전 뒤의  나직한 구릉지대는 아미산(峨嵋山), 즉 금원(禁苑)이었다.

  지난 날에는 늙은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있는 가운데 샘과 연못과 정자와 별궁이 여기저기 제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 아름다운 분위기가 한층 흥취를 돋우었었다.

 정문인 광화문을 들어서면 홍례문으로부터 이 곳 교태전에 이르기 까지 근정문, 사정문, 향오문, 양의문 등 문이 모두 그좌우의 둘림채, 곧 낭무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들 문무와 그울 안의 전당은 경복궁안에서 가장 중요한 그야말로 구중궁궐의 알맹이었다.

  일찍이 외국 사신이나 나라 안 신하들에게 향연을 베풀던 경회루에도 원래는 담장으로 휘둘려있어서 그동쪽에 정문인 함홍문(含弘門)이 있었고 서쪽에 천일문(天一門), 남쪽에 경회문(慶會門)이 딸려 있었다.

  경회루 남문인 경희문 밖에는 수정전(修政殿)이 있고  수정문이 딸려 있었다.  그 서쪽에 내각(內閣) 검서청(檢書廳)이 있었으며, 남쪽으로 내반원(內班院), 의약청(醫藥廳), 이 있었고 다시 서남쪽으로 옥당(玉堂), 즉 홍문관(弘文館)과 또 그 남쪽에 선전청(宣傳廳)이 있었다.

 그동쪽에 임금의 어명(御命)을 들이고 내는 직무를 맡은 승정원(承政院)과 대신 등 당상관(堂上官)들이 임금을  만날 때 모여서 회의하는 빈청(賓廳)이 있었으며 ,

 그남쪽인 궁성 울 안 서남쪽 모퉁이 지점에는 일영대(日影臺), 누국(漏局), 궁성 안에서 말 기르는 내사복사(內司僕司), 임금님 가마 고간인 연고(輦庫), 마구간(馬廚) 등이 있었다.

 

출처 : (사단법인)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초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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