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충청도)

[스크랩] [충남 예산]추사고택과 남연군묘

장안봉(微山) 2012. 12. 14. 23:20

날씨가흐리고 한 두방울 빗방울이떨어진다.    

어부인과 계족산 산행을하기로 했던 계획을취소해야 할 것 같다.

무얼할까?

비오는데 집에서 TV와 씨름하기는시간이너무아깝다.

무언가해야할것같아, 전번부터한번 둘러보기로 했던 예산을 가보기로 한다.

 

[추사고택]

추사 김정희는 본관이 경주이며,1786년 6월 3일 이곳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유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가 된다.

7세때 대문에 써붙인 입춘대길 글씨를 보고 번암 채제공이 명필을 예언하였으며 북학의거두 박제가에게서 수학 하였다.

1809년 24세때생원시에 합격하고 생부 김노경이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갈떄 자제군관이 되어 연경에 가게 된다.

이때 만나게 된 당대의 석학 옹방강, 완원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고 추사의 평생스승이 된다.

추사의 호 [완당]은 완원의 제자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추사는옹방강의 서체를비롯한 폭 넓은 서체를 배우고 익힌다음, 이를 바탕으로 淸明高雅하고 森嚴拙撲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하게 된다.

왕실의 외척으로 제주도, 함경도 북청등지에서 10여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고 1856년 71세를 일기를 과천에서 별세함.

 

 

 [추사의  탄생 설화]

1.  어머니 기계유씨가 임신한지 24개월만에 추사를 출산 하였다.

2. 추사가 태어나던날, 뒤뜰의 우물물이 갑자기 말랐다가 첫울음 소리에 다시 샘솟았다.

3. 뒷산인 오석산과 조산인 팔봉산의 초목이 모두 시들었다가 추사가 태어나자 다시 생기를 찾았다.

 

[추사고택]

사랑채는 보수작업중이라 볼 수 없고 안채는 6간대청의 'ㅁ'자 구조로 되어 있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아들딸,손자의 모임이다.

 

 

 추사의 글씨  만수무강(萬壽無疆]과 무량수(無量壽)

 

[추사고택 뒤뜰의 우물] 

 

사랑채 앞에 세워진 비석-석년(石年)이라 새겨져 있다.

 

 

 

 

 

추사 김정희 묘와 비석-[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

 

[추사기념관]  

 

 

  

  

 [추사 선생의 좋은 말씀들]

 

 

 추사의 두번째부인인 예안이씨의 세계(휴대용 족보)

 

 

 [세한도]

1844년 제주도에 유배중이던 추사가 그의제자 우선 이상적의 지극하고도 변함엇는 정성어린 마음에 감동하여 그려준 그림이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

비문:유명조선수록대부월성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증시정효김공기묘

화순옹주부좌-비문은 영조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

 

 

열녀문[열녀수록대부월성위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증 시 정효공김한신 배 화순옹주지문]

화순옹주는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음식을 전폐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영조는 화순옹주가 부왕의 뜻을 져버리고 죽음을 택한데 대해 정려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대 정조가 정려문을 내렸다.

 

묘막(墓幕) 은 당초 53칸이었다고 하나 소실되고 현재는 초석만 남아있다.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앞에 있는 백송]

추사선생이 25세때 자제군관 자격으로 생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가지고온 씨를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앞에  심은것이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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