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불교)

[스크랩] 풍수적으로 바라본 廻龍弄珠의 직지사 中庵 1편

장안봉(微山) 2013. 3. 14. 23:26

 

廻龍弄珠의 직지사 中庵

오늘은 지인과 직지사 중암을 찾았다.

직지사 관응스님이 터를 잡고 이곳에 조선조 양반가의 소박한 집과 같은 華藏庵을 짓고

선을 행하신 곳이다. 만년에 이곳에 온 정열을 쏟고 깨달음에 들었던 한 스님의 거처치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적지 않이 놀랐다.

관응 스님은 본시 한학(유학)에 도가 깊었던 분으로서 늦게 불교의 승적을 얻은 분으로서 그의 일상적 삶은 많은 수행 제자들에게서 알 수 있다.

그는 동서양의 수 많은 서적을 섭렵하여 단순히 불가의 서적에만 천착하지 않은 분이었다. 그의 많은 법문 중에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사람다운 짓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려면 사람의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것이 인간의 교육이다. 그런데 기성인들이 그걸 제대로 못한다. 인간윤리에 대해서는 공자와 맹자가 이야기를 잘했다”면서 ‘맹자’에 나오는 내용 중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사람이 가장 귀한 까닭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萬物之衆 唯人最貴 所貴乎人者 以其有五倫也)’는 말을 인용하는 등 ‘맹자’를 가까이 했다. 이로보아 그가 유학자로서의 위치도 지키면서 불가의 선승으로서 그 격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선.교의 실천을 통한 자세는 이 시대의 귀감이라 할 수 있다.

 

자!

그의 공간적 혜안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 보기로 한다.

그의 터 잡는 마음을 이 곳 중암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선승이 되기 전 그의 신분이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孺子의 신분이었다는데서 그의 풍수적 깊이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겠다. 당시에는 유자로서 기본적으로 天.地.人의 술법 즉 명리학, 한의학, 풍수학이라는 술법을 상식적으로 알고 실생활에 응용하였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중암의 뒤 혈성을 찍은 사진

 

황악산 줄기의 한 켠에 자리 잡은 중암(본시 華藏庵으로 불렸다)에 십 수년의 나의 애마 카니발과 함께 올랐다. '靈山은 俗人의 근접을 불허한다' 하는데 오늘은 지인의 도움으로 그 윤허를 받고 이곳까지 차량 이동을 하였다.

낮게 솟은 목성이 뒤로 자리를 잡고 중암을 받쳐주고 있다. 배산임수의 기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관응스님의 마음처럼 너무 솟아 내세우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자고로 늘 겸손의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풍수의 본법인 것 처럼 이 중암의 혈성은 그렇게 낮은 듯 그러나 본연의 중심적 자세를 듬직히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의 전면에 어느 정도 높게 쌓은 축대를 보면 이곳에 중암을 건립하면서 나름의 공간형성의 묘미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알 수 있다. 즉 혈판이 부족하여 그 순전부분을 넓히는 인공의 법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흠은 아니다.

 

 

 

좌청룡쪽에서 내려오다 찍은 사진으로 중암의 혈성인데 이곳서 보면 금성체로 보이나 중암에서 바라보면 근본은 금기를 내장한 목성이다. 

 

 

 

축대 밑으로 인공 잔뒤 벽돌 주차장이 있고, 그 아래로 직지사로 내려가는 곳에 물길이 구불거리며 내려간다. 사진상 보기 어렵지만 구곡수처럼 흐르므로 문제는 안 되어 보이나 중암의 당판에서 보면 바로 밑으로 내리쏟는 부분은 흠이 되기에 축대를 통한 비보적 노력을 한 것이라 추측한다.

 

 

 

내백호 쪽에서 찍은 사진의 축대를 보면 백호방 쪽으로 깊이 쌓여진 축대를 볼 수 있다. 이는 이곳으로 당판의 물이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주차장에도 축성과 다짐으로 넓은 부차장을 보유하고 있으나 본 모습을 유추하면 중암 밑으로 급속히 물길이 흘렀다고 볼 수 있고 이를 보완하고자 축대를 쌓아 전면의 명당 공간을 일부 확보한 인공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주차장 끝으로 들어오는 차도가 보이며 이곳으로부터 지현자의 물길이 지속된다.

 

                            

                                          중암 뒤로 내려오고 있는 入穴脈

 

 

                                           청룡방 머리 (이곳이 바로 근접 여의주에 해당한다)

 

 

                                청룡의 끝부분으로 중암 밑 주차장으로 감아돌며 내려온다.

 

 

                         내백호의 모습인데 중암을 감싸고 돌면서 진돗개 집을 향한다.

 

 

                                       내백호가 중암을 감싸며 내려가는 모습

 

 

                                        외백호에 해당하며 청룡방에서 보이는 부분이다.

 

 

         중암 바로 밑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주작은 시야가 흐리나 멀리서 주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청룡방 정상에서 본 주작으로 중암에서의 모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곳 중암의 풍수적 감평을 해 보면 용은 황악산이 먼곳으로부터 달려와 몸을 뒤돌려 본신의 조산을 바라보는 回龍顧祖形局이다. 용의 기운도 황악산 최고봉으로부터 일맥이 내려오다. 중암 뒤로 하나의 목성체 혈성을 이루고 자신의 몸에서 좌우의 보호사 즉 청룡백호를 만들러낸 모습이다. 입수는 중심출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용의 기운도 來脈의 起伏과 速氣는 上格의 혈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혈처의 중심기맥이 중암을 건립하면서 백호방쪽으로 들어 왔는데 이곳에 건립을 하면서 조우의 균형을 위해서 우측으로 반지하의 공간을 건립하고 그 위를 마당처럼 쓰고 있다. 즉 균형을 이루기 위한 일환이며 이곳이 혈처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보겠다. 

 

 

아래 사진 중암의 좌우를 보면 좌측 청룡방쪽은 마당이 널찍한데 우측 백호방쪽은 협소하여 옥상형식의 마루를 깔고 그 아래에 여러 사용처를 두고 있다.

 

방원하고 원만한며 평탄한 명당을 만들기 위한 스님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혈판은 둥글게 좌우가 감아 돌아야 길격명당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청룡,백호가 둥글게 감아돌고 있슴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중암은 암자라기보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격식을 갖춘 사찰의 풍모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하다는 것은 이 중암이 초기 암자로서의 공간형성과 자리매김이 이제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국의 형성은 길격인데 암자의 본채가 조금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조금 작게 지어서 본맥의 중심에 들어 앉았다면 아쉬움이 있다.

용의 중심출맥에 입혈도 좋고, 주변의 사세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이렇게 높은 곳에는 필시 장풍국이 되어야 그 생기를 보존할 수 있어 그곳에 안주한 거주인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다.

 

첫째가 바람을 피하는 것인데 현무와 청룡,백호 그리고 안산의 구분이 뚜렷치 않은 向上의 산들은 砂格으로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물길의 수구는 중암 본채 백호쪽으로 모여 나가는 형세인데 저 멀리 향상으로 가는 물길은 之玄字로 구불구불 흘러 직지사 경내의 외곽으로 흘러 빠져 나간다. 역시 吉格이라 할 수 있다.

향을 굳이 기록하지 않는 것은 이곳은 산사의 양택으로서 그 자리매김을 하고 있기에 앞이 트여 있는 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양기를 충분히 거두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며 향을 논하여 구설에 오를 필요가 있겠는가?

암자는 선승들이 참선을 하는 장소이니 앞이 트이지 않아 속세가 보이지 않아야 길격인데 이곳은 앞이 트여도 역시 산속이니 최대한 양기를 받아들이면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곳 중암의 공간 둘러보기의 백미는 중암의 왼쪽 청룡방에 있는 여의주형의 팔각정에 있다. 이곳을 모르고는 이 중암의 풍수적 감평을 할 수 없다고 본다.

중암은 형국론으로 말하자면 廻龍弄珠형국이다.

그것도 바로 곁에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는 형국이니 그 얼마나 좋은가!

이곳 청룡의 정상에 올라 팔각정에 오르면 이곳이 중심이 되어 혈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착시를 느낀다. 

경계할 일은 산에 올라 늘 마음의 火氣를 내리고 차분히 둘러보아 그 고요함과 따스함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또한 기맥의 좌우선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를 보호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한 기본을 갖고 둘러보면 이곳 팔각정이 중암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사로서의 기능을 알 수 있다.

꽃을 보되 造花 즉 虛花를 보면 만사가 다 그른 것이니 생기로운 生花의 속잎을 찾아야 한다.

혈심은 생화의 속잎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중암의 풍수적 감평을 하면서 관응스님의 혜안에 대해 탄복을 할 수 있었다.

터에 대한 스님의 관점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잘못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송한 마음을 느끼면서 많은 풍수학인들의 답산으로 이 자리에 대한 더 나은 공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답산시에 경건한 마음으로 걷되, 주변의 경관과 스님들의 참선에 누가 되지 않기를 간곡히 빌어 보는 것이다.

나는 본시 종교가 없으나 이곳을 찾는 이들은 무엇인가를 보시하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한줌의 국수라도 가져다 드리고 오는 미덕을 잊지 말기를 또 빌어 본다.

추신 : 청룡방의 여의주로서의 기능과 의미는 2편에 올리기로 한다.

 

변덕이 심한 2012년 4월 초순, 진달래 몽오리 갓 트이는 봄에

대전풍수문화연구소 淸園 安甲秀 기록하다.

출처 : 대전풍수문화연구소
글쓴이 : 淸園 안갑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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