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성도

[스크랩] 제팔 심학도 (第八 心學圖)

장안봉(微山) 2013. 3. 13. 12:41

제팔 심학도 (第八 心學圖)

 



심학도설(心學圖說)
心學 ; 마음의 학문


심학도설 설명
적자(赤子)의 마음은 인욕(人慾)이 물들지 않은 양심이지만, 인심(人心)은 욕구에 눈뜬 것이다. 대인의 마음이란 의리가 다 갖추어진 본마음이고, 도심이란 곧 의리(義理)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실은 형기에서 발생되면 모두 인심이 없을 수 없게 되고, 성명에 근원하면 도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정일(精一)과 택집(擇執) 이하의 것은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게 하는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신독 이하의 것은 "인욕을 막는 점"에 관한 공부인데, 반드시 "부동심(不動心)"에까지 이르러야 부귀가 마음을 음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마음을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마음을 꺽지 못하게 되어, 그 도가 밝아지고 덕이 세워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수 이하의 것은 "천리를 보존하는 점"에 관한 공부인데, 반드시 "종심(從心)"에까지 이르러야 심(心)이 곧 체(體)이고 욕(欲)이 곧 용(用)이며, 체(體)는 또한 도(道)이고 용(用)은 또한 의(義)의 관계를 가지면서, 언행이 법도에 맞아서, 생각하지 않고서도 이해하게 되고 힘쓰지 않고서도 절도에 맞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공부하는 요령은 어디까지나 한결같이 경의 태도로부터 떠나지 않는 것이다.
무릇 마음이란 "한  몸을 주재"하는 것이고, 경이란 또한 "한 마음을 주재"하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들이 "주일(主一) 무적(無敵)"의 설이라든가,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설과 저 "마음을 수렴하고 항상 또렷한 정신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설을 깊이 궁구한다면 그 공부가 더할 나위 없게 되어, 성인의 경지에 충분히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퇴계선생 말씀

위의 것은 임은 정씨가 성현들이 심학을 논한 유명한 말씀들을 주워 모은 것입니다. 이 도를 만드는 데서는, 그 성현들의 말씀을 분류 대치시키기를 많이 하여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함으로써, 성학의 심법이 역시 일단에 그치지 않는 것이므로 전체에 다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위로부터 아래로 배열한 것은 다만 깊고 얕은 점과 생소하고 익숙한 점을 들어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이와 같다는 것일 뿐, 그 공부하는 과정에 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과 같이 선후의 절차가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의심하여, 이와 대체적으로 서술한 것이라면 "방심을 구함"이 공부에 있어 첫째의 일이므로 "심재(心在)"의 뒤에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이 가만히 생각하여 보면, "방심을 구함"이란 얕은 정도로 말하면 진실로 제일 먼저 착수 입각해야 하는 점이지만, 깊은 정도로 지극하게 말한다면 순식간이라도 일념이 조금만 어그러지면 역시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안자 같은 분일지라도 3개월 이상이면 어기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어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곧 방의 상태에 들어선 것입니다. 다만 안자는 잘못 어그러져도 곧 그것을 알 수 있는데, 알면 곧 다시는 싹트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역시 방심을 구하는 종류일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정씨도의 서술이 이와 같습니다. 정씨의 자는 자견(子見)인데 신안 사람입니다. 은거 생활을 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고, 그 생실에는 의리에 맞는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백발이 되어서는 경전의 연구에 깊은 이해가 있어 [사서장도] 3권을 지었습니다. 자견이 원하지 않아 곧 향군 박사로 되었다가 치사하고 돌아갔습니다. 그의 사람됨이 이와 같사오니, 어찌 일정한 견해 없이 함부로 지었겠습니까?

출처 : 암천블로그
글쓴이 : 암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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