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 심통성정도 (第六 心統性情圖)
심통성정도설 (心統性情圖說)
心 ; 마음, 統 ; 거느리다, 性情 ; 웃고, 울고, 슬프고, 사랑하고 등의 마음의 활동,
심통성정도설
마음이 性(성)과 情(정)을 통섭하였다는 것은 사람이 오행의 빼어난 것(秀)을 받아 태어났고, 빼어난 오행에 오성(五性)이 갖추어지고, 그 오성이 동(動)하는 데서 칠정(七情)이 나옴을 말한다.
무릇 성과 정을 통회하게끔 하는 것이 마음이다. 그런 까닭에 그 마음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아 "성"이 되면 "심(心)의 체(體)"이고, 마음이 느끼어 마침내 통하여 "정(情)"이 되면 "심(心)의 용(用)"이다.
장자는 말하기를 "마음은 성과 정을 통섭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적당하다. 마음이 성을 포함하는 까닭에 '인, 의, 예, 지'를 성이라 하며, 또한 "인의의 마음"이라 하는 말도 있다.
마음이 정을 포함하는 까닭에 측은, 수오, 사양, 시비를 정이라 하며, 또한 측은한 마음이니 "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이라 하는 말도 있다. 마음이 성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 "미발(未發)의 중(中)"을 이루는 일이 없어 성이 무시되기 쉽고, 마음이 정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 "중절(中節)의 화(和)"를 이루는 일이 없어 정이 방탕하기 쉽다. 배우는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서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그 성을 기르고 정을 제약한다면 배움의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퇴계선생 말씀
신이 삼가 생각하여 보면, 정자의 호학론(好學論)에는 "정(情)을 제약한다"는 것이 "마음을 바로잡고, 성(性)을 기른다"는 것의 앞에 두었는데, 여기에서는 그것을 도리어 그 뒤에 두었습니다. 그 까닭은 이것으로 "마음이 성과 정을 다 포함하였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오나 그 이치를 궁구하여 말한다면, 마땅히 정자가 논한 순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도에 온당하지 못한 곳이 있기에 조금 고쳤습니다.
이상의 삼도 중에서 위의 일도(一圖)는 임은 정씨가 그린 것인데, 그 설도 그의 것입니다. 그 가운데의 것과 아래의 도(二圖)는 신이 망령되게도 성현들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뜻의 근원을 추구하여 지은 것입니다.
가운데의 도는 기품 중에서 "본연의 성"이 "기품(氣稟)"과 혼합되지 않음을 가르켜 말한 것입니다. 자사가 말한 "천명의 성", 맹자가 말한 "성선(性善)의 성", 정자가 말한 "성이 곧 이(理)라는 성", 장자가 말한 "천지의 성"이 그것입니다. 그 성을 말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발하여 정(發而爲情)이 되는 것도 모두 그 선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자사가 말한 "중절(中節)의 정",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의 정", 정자가 말한 "어찌 선하지 않은 것으로 이름지을 수 있겠느냐는 정", 주자가 말한 "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본래 선하기만 한 정"이 이러한 것입니다.
아래의 도(圖)는 이(理)와 기(氣)가 합한 점으로 말한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서로 근사하다는 성", 정자가 말한 "성(性)이 곧 기(氣)이며 기가 곧 성이라는 성", 장자가 말한 "기질의 성", 주자가 말한 "비록 기 중에 있지만 기는 어디까지나 기이고 성은 어디까지나 성으로서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성"이 이러한 것입니다. 그 성을 말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 발하여 정이 되는 것 역시 이기가 서로 기다리거나, 혹은 서로 해가 되는 점으로 말한 것입나다.
예를 들면 사단과 칠정 같은 것입니다. 즉 사단은 이가 발하매 기가 따르는 것이어서 본래 순선무악하지만 반드시 이의 발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에 가리어지면 불선으로 됩니다.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 중절하지 못하여 그 이를 어그러뜨리면 방일하여져 악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정자는 "성만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않으면 불비(不備)하고, 기만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않으면 불명하다 . 두 가지를 따로 분리하는 것은 옮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자나 자사가 이만 가리켜 말한 까닭은 불비하여서가 아니라, 기를 아울러 말하면 성의 본래 선함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운데 도(圖)의 뜻입니다.
요컨데 이와 기를 겸하였으며 성과 정을 포함한 것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이 발하여 정이 될 때가 곧 한 마음의 기미이고, 온갖 변화의 추요이며, 선악의 분기점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경의 태도를 지니는 데 오로지 하여, 천리와 인욕(人慾)의 분별을 분명히 알 뿐 아니라 더욱 이것들을 몸소 주의함으로써, 마음이 발동하지 않았을 때에는 존양의 공부(存養之功)가 깊어지고, 마음이 발동하였을 때에는 성찰의 습관이 익숙하여져서 참을 쌓고 오래 힘써 마지 않을 수 있다면, 이른바 "정일(精一)"의 방법으로 중(中)을 포착한다는 성학과, 본체를 보존함으로써 어느 경우에나 응용한다는 심법(心法)이라는 것이 모두 다른 곳에서 구하여 하기 전에 여기에서 얻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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