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子金漢哲傳
金漢哲者 一善望族 世居居昌之棗湖 文學相傳 其父曰 會錫 固窮守經 惇行孝悌 以君子稱 漢哲 姿端性溫 遜愼勤約 克繩先武 家貧讀書之餘 躬畊釣 且捆織 以養父母 備志物 鄕隣嘉之 其父 六旬後 偶患脚疾 不能伸 不能起者 近一年 謝絶醫藥 曰疾固命也 齒旣暮分 且薄癈蟄以終 庶可云受正 何須鍼之焫之 勞人苦我 返毁遺體乎 隣閈愼應振 醫術頗精 每診之云 不過幾個鍼 可注效 請試之 固辭不從 漢哲 不勝憂悶 每夜潔沐 禱天輒號泣 無一日間斷而不使其父知 知之 必禁故 家人亦不言 如是者 且數旬一夕 會錫 方寢 其先親 傍臨撫之曰 苦哉 苦哉 吾 憫隣汝兒至誠極憂 擭一良醫 汝其受鍼 視其醫 乃愼應振也 會錫 以前日言辭之 其親 責且諭之 應振 按摩雙膝而下鍼曰 三里穴 且云 服人蔘可卽効 會錫 笑曰 資匱値高 安可得乎 應振 指壁上畵之曰 蔘在彼 矣畵紙 乃開城蔘商廣告而兩邊繪畵靈根 中刊月曆 可審節侯 故 貼干壁上者也 睡忽醒 乃一夢也 而瞭然可記 試摩受鍼處 若有微痕 心竊耿耿不復成眠 及朝對妻若子 細說夢事 其子聽畢 割取畵蔘而出 少頃進半椀溫水 乃畵蔘煎也 其父 哂之曰 夢固虛荒 畵豈有靈 遂却之 其妻勖之曰 兒旣誠進 雖謂無靈 試亦何妨 因備諗禱天之事 乃始聞也 爲之蹙眉 强引飮之 味似微甘嗅 其椀又似微香 心甚異之 侍伸脚膝 不識拘奱因試起 可以立 又試步 可以行 久蟄之餘 殊自奕豁也 遂出戶外 盤施庭除 家人 懽欣踊抃 喧笑達街 四隣驚疑 爭蹶赴視 始竊怪瞠 及聞其由 無不奇之 一日聞干一境 賀者如市 乃六十九歲 時事也 今七旬有一而更無他甚病 健康勝昔 步可日六七十里 見聞相傳 遂爲世間一大奇譚 遠近咸知棗湖金漢哲之爲孝子也 同郡坦齊老叟 知其人 聞其事詳且實 擊節而傳之曰 孝哉 金漢哲 格祖之靈 瘳父之疾 至誠感應 必有其理 經曰 微之顯 誠之不可 俺如是斯之謂歟 夫以畵蔘 擬於雪荀泳鯉則 彼眞而此假 其奇遇之禱天 與庚黔婁事 相符 然 感應之跡 彼微而此顯則 求之前古 雖或有如此人 絶無如此奇事 矧今世衰俗汚 倫滅綱斁 子不子 臣不臣 婦不婦乎 噫 紫陽世遠旣不得編列於小學之書 而邦憲如掃 公議亦晦褒揚之典 寥寥莫及 以若卓異之行 絶奇之事 將泯佚而不彰 是豈一金漢哲之不幸 實世道人紀之大不幸 可勝歎哉 可勝惜哉
丙寅 嘉平節 坦薺老叟 著
畵蔘詩 曰
繪葉摹根
藥性空靈
能療病妙
難通天翁
但感斯人
孝一借神
方付夢中.
丁丑年 端午節 不肖子 後根. 孫 榮昌 榮采 榮國 榮晋 榮奭 榮泰 榮信 謹竪
丁丑年 端午節 東來 後人 鄭淳祚 謹書
竹圃 處士 善山 金公 孝行碑
孝子 金漢哲傳
金漢哲은 善山 金씨 명문으로 대대로 거창 가조 대초리에 터전을 잡고 살아오며 문장과 학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부친 會錫은 몹시 곤궁한 형편에서도 성인의 가르침을 지켜 바른 행실에 힘쓰고 효도로 공경하여 군자로 불웠다.
漢哲은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온화 겸손하며 근검 절약하여 선대의 업적을 잇기에 힘쓰고, 집이 가난하여 책을 읽는 여가로 직접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또한 신을 삼아서 어버이를 봉양하고, 떡과 음식을 알맞게 해드리니, 이웃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의 부친이 나이 육십이 넘어 우연히 각질을 앓아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지 1년이 가깝자, 이제는 의원과 약도 마다하며
??병이란 운명일 뿐이다.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마르고 쪼그라들어 죽는 것이 바른 이치다. 어찌 침을 맞고 뜸을 뜨며, 남에게 수고를 키치고, 나를 괴롭혀서 부모님이 주신 몸을 상하게 하겠느냐 ???하였다.
이웃 마을에 사는 愼應振은 의술이 자못 밝았으니, 늘 그를 진찰하면서 ??몇 달만 침을 맞으면 큰 효과가 있으리다.?? 하고 시험해 볼 것을 권해도 굳이 사양하고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漢哲이 근심스런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매일 밤 목욕하고 하늘에 기도하며 울부짖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알지 못하도록 하였다. 만약 알게 되면 반듯시 못하게 할 것이므로 식구들 또한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지 수십일이 지난 어느 날 저녁, 會錫이 얼핏 잠이 들었는데 그의 선친(五友齌公)이 곁에 와서 그를 어루만지며
??고생이구나, 고생이구나. 내가 네 아들의 지극한 정성과 근심을 불쌍히여겨 여기 좋은 의원 한 사람을 데려 왔으니, 너는 침을 맞아라.??
하고 말했다.
의원을 보니 그는 愼應振이었다. 會錫은 전과 같이 말하며 사양하니, 그의 부친이 꾸짖어며 달래었다.
應振이 양 무릎을 주무르고 침을 놓으며 ??三里穴??또 말하기를
??인삼을 복용하면 즉시 효과가 있으리다.??하였다.
會錫이 웃으며 ??돈은 없고 값은 비싼데, 어찌 구할 수 있겠소.??하니, 응진이 벽 위의 그림 종이를 가르키며 ??인삼은 저기 있소.??하고 말했다.
그 그림 종이는 개성 인삼상회의 광고지였는데, 양쪽가에 인삼을 그렸고, 가운데는 달력을 인쇄하여 절후를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어 벽에 붙여 놓은 것이었다.
졸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으나,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주므르고 침을 놓은 곳도 약간 희미한 흔적이 있어 마음이 은근히 심란하여 다시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아내와 아들에게 꿈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였다. 漢哲이 다 듣고는 벽위의 그림 인삼을 떼 가지고 나가 조금 있다가 사발에 따뜻한 물로 만들어오니, 바로 그림 인삼을 달인 것이었다.
그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꿈이란 본래 허망된 것인데, 그림이 무슨 효험이 있게느냐???
하고 물리치니, 그의 아내가 곁에서
??아이가 정성들여 올리는 것인데 비록 영험이 없다고 할지라도 시험해 보는 것도 또한 어찌 해로울 게 있겠습니까 ???
하고는 지금까지 아들이 하늘에 기도드려 온 일을 말하니, 처은 듣는 일이었다. 눈썹을 찡그리며 억지로 그것을 마시니, 맛이 약간 단 냄새가 나고, 그 사발에도 인삼 냄새가 약간 나는 것 같아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다리를 펴서 시험해 보니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일어서보니 설 수도 있었고, 걸어보니 다닐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갇혀있다가 아주 상쾌한 마음이 되어, 드디어 문밖으로 나와 뜰을 거닐자 식구들이 기쁘 뛰며 손벽을 치고 소리내어 웃으며 골목으로 나가니, 이웃들이 놀라서 의심하여 서로 달려가 보고는 처음에는 신기하게 여기며 눈을 동그랗게 쳐다보았으나, 그 사연을 듣고는 기이하게 생각치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루만에 온 마을에 소문이 퍼지면서 축하객이 시장처럼 붐비니, 이때 나이 예순아홉 살이었다.
이제 일흔 한 살이 되었으나 조금도 다른 심한 병환이 없고 건강이 전보다 나아져 하루에 육,칠십 리를 걸을 수 있었다.
이 소문이 퍼져 세상에서 큰 화제거리가 되니 인근에서 모두 대초리 金漢哲이 효자임을 알게 되었다.
본군 坦薺老叟가 그사람을 알아 자세한 내막을 듣고, 무릎을 치며 전을 지었으니
??효자로다. 金漢哲은 할아버지의 영을 감동시켜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였으니,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 데는 반듯이 그 이치가 있는 것이다. 경서에 이르기를 ??작은 것도 드러나게 되고, 정성스런운 것은 감출 수 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무릇 그림 인삼을 옛날의 눈속에서 죽순을 얻은 일과 얼음에서 잉어를 잡은 고사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거짓말 같고, 그 기도가 뜻밖에 이루어진 것은 유금루의 일과 서로 같기는 하지만, 감응된 정도가 그것은 작고 이것은 드러났으니, 옛날을 살펴보더라도 비록 혹시 그렇게 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이처럼 신기한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하물며 세상이 쇠퇴하고 풍속이 더러워져 오륜이 없어지고 삼강이 무너져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지어미가 지어미답지 못한 오늘날에 있어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
슬프다 ! 주자의 시대가 멀어서 이미 소학에도 편찬될 수도 없고, 나라의 법이 없어지고 공의가 어두워 포상의 법도 고요하여 말이 없으니, 이 뛰어난 효행과 기이한 일이 장차 사라지고 드러나지 않는다면, 어찌 김한철 한 사람만의 불행이겠는가 ? 참으로 세상의 도리와 사람의 윤리에 커다란 불행이니, 가히 한탄스럽고, 가히 애석하도다 !?? 하였다.
병인년(1926) 12월 坦薺老叟(李埈燮) 지음
화삼시
그린 잎, 인쇄한 인삼은
아무 약효도 없는 것인데
하, 신묘하게 병환을 낫게 하였으니
통하기 어려운 하느님도
다만 이 사람에게는 감동하여
그 효성이 한 번 신을 불러
꿈속에서 부탁하였나 보다.
정축년(1997) 단오절에 不肖子 後根. 손자 영창 영채 영국 영진 영석
영태 영신 효자비를 세우다.
정축년(1997) 단오절에 東來 後人 鄭淳祚 글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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